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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세요-36화 (36/70)
  • 36화

    [제이디! 이게 무슨 일이야? 한국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거야?]

    에릭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미에게 에릭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막 접한 상태였다. 제이든은 지겨운 듯 고개를 저었다.

    [시끄러워.]

    [한 달 만에 보는 거야, 친구.]

    에릭은 웃으며 제이든 방에 있는 소파에 익숙하게 앉았다.

    [올라오면서 수연과 밥이랑은 인사를 나눴어. 수연은 여전히 아름답던걸.]

    [당연한 소릴.]

    변하지 않은 반응에 에릭은 익숙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힐끗거리며 방을 둘러봤다. 그 시선이 이상해 제이든이 미간을 구기며 보자, 에릭이 순수하게 웃었다.

    [밥 말로는 네가 여자를 데려왔다고 하던데. 같이 머무는 거 아니었어?]

    [그걸 들었으면서 노크도 없이 들어온 네 예의를 거론하고 싶네.]

    [큼큼. 그래서 너의 피앙세는 어디 있는 거야? 얼마나 꼭꼭 숨겨둔 건지 보이지 않아?]

    [피앙세는 아니야. 아직은.]

    [그러면 한국에 발라 놓은 꿀이라는 거야? 오, 제이디. 잘 생각했어. 이제 그만 신데렐라는 잊어. 너의 허니 역시 한국인이야? 수연처럼?]

    킬킬 웃는 에릭의 모습에 제이든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대체 저 자식이 왜 인기가 많은 건지. 저런 놈을 누가 좋아하는 건지.

    잠시 확인할 일이 생겨 짧게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제이든은 지겹다는 듯 그것을 접었다. 그리고 틀린 정보도 수정해 줬다.

    [그 허니가 신데렐라야.]

    에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이든은 다시 말을 덧붙였다.

    [옆 방에 있지만, 짝사랑이란 것도 잊지 않길 바라. 드디어 찾은 신데렐라가 네 덕분에 도망갈 일도 없었으면 하고.]

    에릭은 두 손을 높게 들었다. 여러 번 신을 찾던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제이든을 바라봤다.

    [정말로? 정말로 제이든 리 에반스가 짝사랑을 한다는 거야? 오, 신이시여. 대체 어떤 여자길래…….]

    [무척 좋은 여자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을 뱉어낸 그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이라와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피곤해 보이기도 했고, 이미 잔뜩 쌓인 일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안 그래도 이라를 두고 어쩔 수 없이 미국행을 선택하게 된 이유 역시 그가 예정에 없이 한국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제이든의 반응에 에릭은 여전히 놀라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제가 알던 그가 맞나 싶기도 하고. 심지어 십 년을 찾아 헤매던 여자를 드디어 찾았다니.

    [궁금해!]

    벌떡 일어난 에릭의 모습에 제이든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녀에게 갈 거라면 그만둬. 당장 쫓아내 버리기 전에.]

    [하지만……!]

    에릭이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단정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저…… 제이든. 바빠요?”

    생각도 못 한 이라의 목소리에 이번에는 오히려 제이든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제발 닥치고 있어.]

    에릭에게 경고한 그는 빠른 걸음으로 가 문을 벌컥 열었다.

    “아니.”

    대답과 동시에 튀어나온 그를 보며 이라는 잠깐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안 그래도 늘 고양이 같던 그녀가 눈까지 크게 뜨니 저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였다. 아, 미치겠네.

    “아, 저기 급하게 오느라 휴대폰 충전기를 못 갖고 왔어요. 같은 기종이었던 것 같은데 충전기를 빌려줄 수 없을까 해서요. 에이미 씨에겐 이걸 잘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사실 그리고 불편하기도 했다. 제이든에게는 부탁이지만, 에이미에게는 뭔가 일거리를 주는 느낌이랄까. 이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는데, 문득 그의 뒤에서 시선 하나가 느껴졌다.

    “어……?”

    자연스럽게 시선을 올려 시야에 들어온 이의 모습에 이라가 처음에는 어, 하며 말을 멈추더니 이어 놀란 듯 표정이 커졌다.

    “어어어……!”

    “왜 그래?”

    “에릭 나이틀리……!”

    이상함에 돌아보려던 제이든의 시선이 다시 휙 이라에게 향했다. 에릭을 단번에 알아본 이라가 놀라 굳었다.

    [와우. 감사하게도 날 알아봐 줬네.]

    성큼 다가온 에릭이 해사하게 웃으며 제이든 어깨에 한 팔을 걸친 채 다른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알다시피 에릭 나이틀리라고 해요. 릭이든 리키든 편한 대로 불러요.]

    짧은 영어였지만 속사포로 쏟아진 말에 이라가 잠시 당황하며 손을 붙잡았다.

    “하, 하이. 어, 그게. 마이 네임 이즈 한이라.”

    제이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지, 고민하고 있던 짧은 순간이었다. 제이든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에릭의 팔을 쳐내며 대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너 뭐야.]

    그 짜증의 방향은 에릭이었다. 대뜸 내쳐진 에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이든을 바라봤지만, 그는 여전히 기분이 나쁜 듯 말을 이었다.

    [대체 뭔데 나는 모르던 이라가 너를 알아. 대체 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제대로 설명해 줄 생각은 없을까?]

    [젠장.]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던 제이든의 시선이 이라에게 향했다. 에릭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이었다.

    “대체 릭은 어떻게 알아?”

    “릭이요? 아.”

    이라는 힐끗 에릭을 보다가 대답했다.

    “어떻게 몰라요? 유명한 배우잖아요.”

    심장이 콩콩 뛰었다. 이런 곳에서 진짜 유명한 스타를 만날 줄이야. 영화에서 보던 것보다도 잘생겼다.

    “하!”

    그때 제이든의 황당한 제스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치켜들더니 한쪽 입꼬리는 삐뚜름하게 올렸다.

    “나는 십 년이 넘도록 몰랐으면서.”

    “그거야……!”

    물론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꽤 충격받은 듯한 그의 모습에 이라는 서둘러 수습했다.

    “한 번 본 적 있어요. 한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나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방송국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봤어요. 진짜 아주 잠깐 본 건데 외국 배우는 처음이라 한참 구경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래요.”

    이라의 말에 제이든이 에릭을 휙 바라봤다.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에릭은 무척이나 궁금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응? 그녀가 뭐라는 건지 궁금해. 알려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나갔다고, 네가?]

    에릭은 잠시 의아해하더니 곧장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때 한국에 갔었어. 네 작품 시리즈로 갔었잖아.]

    언뜻 그도 기억이 났다. 아마도 에릭과 로레인이 함께 내한했었다. 같이 떠오르는 모습이 썩 좋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두 주연 배우가 스케줄을 함께 하는 건 당연했다.

    “아아.”

    이해는 하면서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에 에릭은 더 궁금해졌다. 결국, 참지 못한 에릭이 이라를 향해 질문을 폭격했다.

    [반가워요, 이라. 이라? 이렇게 발음하는 거 맞죠? 당신이 제이디가 그토록 찾던 신데렐라에, 한국에 발라놓은 꿀이군요! 일이 쌓이다 못해 거의 폭발할 지경에서야 미국으로 왔는데, 당신을 보니까 어느 정도 그가 이해되네요.]

    “네, 네?”

    뭐라는 건지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본토 발음에다 심지어 매우 빨랐다. 앞 문장 하나 정도 이해한 이라가 당황해 눈을 마구 굴리자, 제이든은 한숨을 내쉬며 에릭을 바라봤다.

    [이라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한국어로 말하든가, 그냥 닥쳐줬으면 좋겠어.]

    아마 후자이길 더 바라는 눈치지만, 에릭은 그저 생긋 웃으며 그를 말끔히 무시했다. 이 재밌는 일을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저기 혹시 뭐라고 하는 건지 말 좀…….”

    이라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제이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잠시 말을 전할까 말까 고민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결국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지만.

    “반갑다고 한 인사야.”

    “그렇게 요약할 정도로 짧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자, 제이든은 괜히 에릭을 노려보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찾던 신데렐라가 당신이냐고.”

    갑자기 웬 신데렐라를……. 잠시 의아해하던 이라의 눈이 순간 크게 떠졌다. 곧 당황스러운 얼굴로 제이든과 에릭을 번갈아 보던 그녀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시, 신데렐라 그 소리를 했다고요?!”

    미쳤나 봐. 십 년 전 자신이 그것도 스쳐 가며 했던 말을 남들에게도 했다니. 분명 저 남자가 날 이상하게 볼 터였다.

    하지만 이라의 생각과는 달리 에릭은 눈을 빛내고 있었고, 제이든은 슬쩍 그녀를 보다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꽤 오래 당신을 찾았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설마 그 말이 진짜일 줄이야. 찾았기야 했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찾았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자, 여태 옆에서 참고 있던 에릭이 불쑥 끼어들었다.

    [대화 중에 미안하지만,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 나도 알려줄 순 없어?]

    [없어.]

    단호한 제이든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는 에릭은 미소 지으며 이라를 바라봤다. 제이든은 짝사랑 중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잠시 둘을 바라보던 에릭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렇단 말이지.

    [이라,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난 당신에게 알려줄 정보가 아주 많고, 당신도 나의 궁금증을 풀어줄 정답을 들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참, 우리가 가까워지려면 번역기가 필요하겠네요.]

    씨익 웃은 에릭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알아듣지 못한 이라가 어리둥절해 있자, 에릭은 친절하게도 번역기 어플을 틀어 제 말을 다시 번역했다. 옆에 있는 제이든의 얼굴이 썩든 말든.

    [제이디가 당신을 얼마나 찾았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꿍꿍이가 가득해 보이는 에릭의 미소에 제이든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거칠게 빼앗았다. 이미 이라에게 한국어로 통역된 뒤였지만.

    “뭐가 필요하다고 했지? 충전기?”

    그가 수습하려고 나섰지만, 이미 이라는 에릭의 반응이 재밌는지 한배에 타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생각해 보니까 휴대폰 충전은 급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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