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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세요-29화 (29/70)
  • 29화

    울음소리가 병실을 가득 메웠다. 수술을 끝내고 마취가 풀린 로레인은 목이 쉴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뒤늦게 넋이 나간 채 도착한 제이든을 보며, 로레인은 울다 쓰러졌다.

    쓰러진 로레인을 챙긴 후에 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함께 있던 에릭이 그에게 생수를 건넸지만, 그것조차 받을 힘이 없었다.

    장장 12시간의 왕복 비행에 오랜 차 이동까지, 그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리고 그 무엇 보다 죽어 태어난 아이의 생각에 그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5개월은 훌쩍 넘겼으니 초음파에서 봤던 것처럼 새 생명은 하나의 아이였다. 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은 채 태어났다.

    결국 제 아이조차 지키지 못했다.

    “…….”

    숨이 턱 막혔다. 무언가 기도에 꽉 들어찬 것처럼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복부부터 기관지까지 꿀렁이며 무언가를 뱉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건 그의 정신만 더 혼미하게 했다.

    [젠장! 제이든! 정신 차려!]

    어느새 그의 의식이 흐려지고, 옆에 있던 에릭은 소리치며 의사를 불렀다. 곧이어 흐려진 의식 사이로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보였다. 호흡할 수 있게 도와준 손길에 그는 그제야 숨을 뱉어냈다.

    “허억……!”

    거칠게 상체를 숙인 그가 마른기침을 연거푸 쏟아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의료진과 새파랗게 질린 에릭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 정도 시야가 돌아왔다. 그리고 흐려졌던 정신이 맑아지며 현실이 다시 아가리를 벌려 그를 삼켰다.

    “흐으윽.”

    그가 괴로움에 신음을 쏟아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성대를 긁으며 찢어지는 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진정된 그를 보고 의료진이 다시 나갔고, 에릭과 단둘이 남았다. 슬픔에 허덕이며 정신을 못 차리는 제이든의 등을 에릭이 천천히 토닥였다.

    [……어떻게 된 거야.]

    다 갈라진 음성으로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미 핏발 선 눈동자는 다 상했다. 여기로 올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지, 수화기 너머 믿을 수 없다고 소리치는 그의 음성이 생생했다. 아이를 사산했다는 말에 넋이 나갔고, 그는 로레인은 괜찮냐고 물었다.

    [왜……, 어째서.]

    [로렌이 캐서린이 주도하는 파티에 초대돼 갔어. 너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몰랐어?]

    어딘가를 갔다는 것만 알았다. 제이든이 대답이 없자, 에릭은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난 안 갔지만, 나중에 피를 쏟는다는 캐서린의 연락을 받고 갔어. 네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나한테 했대. 먼저 병원에 이송하면서 나도 쫓아갔어.]

    [……무슨 일이 있었대?]

    묻는 그의 음성이 거칠게 흔들렸다. 울음 가득한, 후회 가득한 모습에 에릭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들은 바로는 갑자기 하혈했대. 캐서린 말로는 그저 앉아서 수다를 떨려고 한 건데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

    분명 아침에 초음파를 찍었을 땐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이야.

    내가 또 못 지켰어.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한 초음파를 꾹 잡았다. 지갑 채로 소중하게 잡은 그는 그대로 얼굴을 묻고 괴롭게 흐느꼈다.

    지키지 못해 미안해서. 죽을 만큼 미안해서.

    ***

    [고마워.]

    [아, 약 가져올게.]

    달칵. 방을 나온 제이든은 문을 닫고 주방으로 향했다. 잔에 미지근한 물을 따라 트레이에 올렸다. 약봉지도 챙겼다.

    아이를 사산하고 석 달이 흘렀다. 트레이의 양쪽을 잡던 그가 멍하니 행동을 멈췄다. 괜찮은 척했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그는 문득문득 고장 났다.

    멍한 시선은 다시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술하고 회복한 로레인은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그는 일정을 다 취소한 채 로레인을 돌봤다. 수연 역시 며칠간 미국으로 와 로레인을 챙겼고, 로버트도 그런 그들을 많이 걱정했다.

    남들과 있을 땐 멀쩡한 척 지내지만, 이렇게 혼자 있을 땐 그는 고장 나버렸다.

    […….]

    로레인은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는 점점 더 수척해졌다. 살이 빠져 턱선은 더 날카로워졌고, 눈가는 더 짙어졌다. 이따금 죄책감이 그를 덮쳤고, 그때마다 호흡이 가빠졌다.

    몇 분을 멍하니 있었는지 몰랐다. 정신이 없었다. 로레인이 나와 옆에 서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제이디.]

    이제는 멀쩡해진 로레인이 홀로 서 있는 제이든을 보며 놀라 굳었다. 로레인을 확인한 그는 금세 괜찮은 척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왜 나왔어, 있으면 갖다 줄 텐데.]

    [무슨 일 있나 해서. 불러도 대답이 없고.]

    [아니야. 온 김에 약 먹고 들어갈래?]

    그가 웃으며 로레인에게 컵과 약을 건넸다. 그녀가 먹는 걸 확인하고 나서 그는 자연스럽게 로레인을 들어 침실로 향했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웠고, 로레인의 건강마저 해친 것 같아 미안했다.

    함께 침대에 눕자 로레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제이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여전히 탄탄하고 다부졌지만, 어쩐지 감기는 부피가 미세하게 줄어든 것 같았다.

    [제이디. 저번에 말했던 한국 말이야.]

    조심스럽게 꺼내는 로레인의 말에 제이든은 눈을 감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다음에. 더 건강해지면.]

    조심스럽게 다시 한국 이야기를 꺼냈지만, 늘 그는 이렇게 피했다. 그의 품속에서 얼굴을 묻고 있던 로레인이 나지막하게 입술을 열었다.

    [우리 아이 다시 가질까?]

    그의 큰 몸이 움찔 떨렸다. 반응을 느낀 로레인이 고개를 휙 들어 그를 바라봤다.

    [나 이제 건강해졌어. 아이 다시 가져도 된다고 닥터가 그랬잖아. 아이 다시 갖자, 제이디.]

    [……로렌.]

    [나 다시 우리 아이 갖고 싶어. 제이디가 전처럼 웃고,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제 떠나간 아이 생각하며 슬퍼하고 싶지 않아.]

    울먹이는 로레인의 말에 그가 대답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혼란스러웠다. 자신보다 더 힘들 로레인이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무 미안해서 그러자고도, 안 된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나 제이디가 슬픈 건 싫어.]

    겹쳐오는 그녀의 입술에 그는 말없이 입 맞췄다.

    ***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

    로레인은 원했던 것처럼 두 달을 넘기지 않고 자연 임신했다. 그녀가 첫 임신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계속 피울 생각은 아니었다. 로레인이 없을 때 지금 딱 한 번만.

    그는 다 타버린 꽁초를 버리고 수연과 통화했다. 임신 소식을 전하니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 역시 기뻤다. 그러나 전처럼 마냥 좋진 못했다. 아이를 또 잃을까 걱정됐다.

    “잘할 수 있을까요.”

    낮은 그의 목소리에 수연의 걱정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그럼. 로레인도 용기 낸 건데, 네가 그러면 안 되지.

    그래. 로레인은 더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흐린 미소를 지었다.

    “노력해 볼게요.”

    -응, 잘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아들. 아빠 된 거 정말 축하해.

    “감사해요.”

    수연과의 전화를 끊고서 로버트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그 역시 잠시 놀란 듯하나 곧 축하해줬다. 아직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전보다 더 활기찬 로레인의 모습에 그 역시 한시름 놓았다.

    [브런치 먹으러 가자.]

    로레인이 사산한 후 높은 관심이 쏟아졌다. 대부분 그들을 위로했으나, 도움이 되진 않았다. 웬만해선 밖도 잘 안 나가다가, 둘이 함께 오랜만에 외출했다. 해변에 있는 브런치 가게로 들어가 창가에 앉았다.

    “와, 여기 팬케이크 진짜 맛있대.”

    “헐, 경치 봐. 이런 데서 일상 보내고 싶다 진짜.”

    멀리서 익숙한 한국어가 들렸다.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보자, 로레인 역시 들었는지 그쪽을 보다가 제이든에게 시선을 돌렸다.

    [크큭, 귀엽다. 나 이제 저 정도는 알아들어.]

    [수연이 좋아하겠다. 뭐 먹고 싶어?]

    [글쎄, 흐음.]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린 로레인을 보던 그가 다시 한국어가 들리는 쪽을 바라봤다. 이십 대의 어린 학생들 같았다.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에 문득 한 여자가 떠올랐다. 왠지 가슴 한편이 욱씬, 아팠다.

    [난 이거로 해야지.]

    [그럼 나도.]

    로레인이 생긋 웃으며 주문했다. 직원이 알아보며 사인을 요청했다. 몇몇 눈길이 더 있었지만, 다가오는 이는 생각보다 적었다.

    그렇게 괜찮을 줄 알았다. 천천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다시 아이를 맞이하고, 함께 행복을 느끼면 될 줄 알았다. 그는 그러리라고 굳게 믿었다.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저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번 나의 아이는 내가 꼭 지킬 수 있을 거라고. 그런 헛된 믿음을 가졌다.

    10주를 넘기지 못하고 유산하기 전까진.

    두 다리를 덜덜 떨며 하혈했던 옷 그대로 입고 있는 로레인이 제이든을 쳐다봤다. 엉망으로 구겨지고 몸 대부분이 드러난 옷은 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제이디…….]

    풀린 눈과 멀리서도 느껴지는 술 냄새. 그리고…….

    [아니야, 아니야. 오해야. 제발, 내 말 먼저 들어 줘!]

    온몸을 달달 떠는 로레인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아이를 잃은, 그의 아이를 두 번이나 잃게 한.

    [너 돌았어?!]

    함께 왔던 에릭이 눈을 번뜩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무표정하게 서 있는 제이든 옆으로 에릭은 불같이 날뛰며 화냈다.

    [네가 그러고도 엄마야?! 어! 제이든이 얼마나 힘들어한 줄 알면서! 그때도 이렇게!]

    [리키, 오해야. 제발, 제이디 내 말 좀 들어 줘!]

    [하, 뭐가 오핸데?]

    에릭이 사납게 표정을 구기며 로레인을 향한 노골적인 비웃음을 지었다.

    [네가 임신한 상태로 다른 남자들이랑 잔 거? 아니면, 아이 갖고도 술 마시고 마약 한 거?]

    울렁거렸다. 소리치는 에릭과 울고 있는 로레인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의 시선에는 하혈 자국의 붉은 피만 또렷하게 들어왔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꼭 말아쥔 작은 주먹이 떠올랐다.

    아아. 정말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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