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몇 분을 그렇게 그에게 잡혀 있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손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흉은 남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네.”
그가 피식 웃으며 연고와 약국 봉지 등을 정리했다. 그가 치료해 준 손을 멍하니 봤다. 아직도 연고를 문질러 발라주는 손길이 생생했다. 따듯한 그의 손의 온기와 감촉도.
“……당신 알탕 먹어 봤어요?”
바스락거리며 정리하던 제이든의 행동이 우뚝 멈췄다. 황당함을 담은 녹색 눈동자가 이라를 향했다.
그냥 저도 모르게 알탕이 생각났다. 다정하게 대해주는 그를 보니까, 어쩌면 그도 그런 걸 먹으며 자라진 않았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그러니까 나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먹어 봐야 했나?”
피식.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에 이라는 고양이 같이 눈을 크게 떠 그를 올려다봤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가 결국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먹어 보진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내일이 좋겠군. 오늘 저녁이라든가.”
“알탕엔 소주거든요. 오늘 저녁 좋아요.”
반짝 빛나는 이라의 눈에 제이든이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호탕하게 웃으며 벌어지는 그의 진한 미소가 담긴 얼굴에 이라 역시 따라 웃었다.
“퇴근하고 봐요.”
퇴근이란 단어를 곱씹듯이 그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퇴근, 그래.”
***
“여긴데, 혹시 너무 그래요?”
이라가 걱정스럽게 가게 간판과 입구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옮긴 제이든은 피식 웃었다. 아침부터 황당하게 알탕 얘기를 하더니, 서재 정리를 끝내고 온 이라가 데리고 온 곳은 매우 빈티지한 가게였다.
일부러 그런 건지 간판의 불은 반쯤 꺼져 있고, 문은 허름해 여닫을 때마다 끼이익 소리가 났다. 그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혀 식당을 떠올릴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근데 의외로.”
“사람이 많죠?”
그의 말에 이라가 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저녁 시간대라 그런 것도 있지만, 금요일 저녁이라 평소보다도 사람이 바글거렸다. 다행히 웨이팅 있기 전에 온 거 같아 이라는 슬쩍 안을 보다가 그를 바라봤다.
“괜찮겠어요?”
“안 괜찮을 것까지야.”
씨익 웃은 제이든은 이라의 어깨를 감싸며 가게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매콤한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식사를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거의 술집 분위기였다.
바빠 보이는 직원에게 자리를 안내받았다. 그에게는 나름 나쁘지 않게 구석진 곳이 됐다.
“여기가 전통 있는 곳이에요. 나 대학생 때도 여기 자주 왔었어요.”
생긋 웃으며 수저와 물잔을 챙기던 이라는 아무렇지 않게 뒷말을 덧붙였다.
“은우 갖기 전까지는요, 꽤 종종?”
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이 어리고 젊어서 사실 근래의 그녀 모습을 상상했을 때 아이는 예외였다.
가게 안은 꽤 시끄러웠다. 요리하는 소리, 대화 소리, 그 외 잔이 부딪치고 물건을 옮기는 소리. 조용한 걸 선호하는 그가 찾을 법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방해물을 건너 앞자리에 있는 이라의 미소에, 바보처럼 소음 따위는 잊었다.
보글거리는 알탕이 금세 나오고, 뒤따라 시원한 소주 한 병이 나왔다. 뚜껑을 따려는 이라의 손짓을 본 그가 손을 뻗어 술병을 들었다.
“내가 할게.”
심각하진 않았지만 다친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게 꽤 신경 쓰였다.
“고마워요. 아, 소주는 마셔 봤어요?”
“응. 가끔.”
“미국에도 소주를 팔아요?”
이라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는 으쓱이며 술잔을 채웠다.
“김치도 팔아. 김도 팔고. 내 주변에도 좋아하는 사람 꽤 있어.”
“정말요?”
“그래, 정말. 내 친구 중 하나는 작년에 김장도 했어.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걘 토종 아메리칸이야.”
그건 진짜 신기하네. 놀랍다는 듯 이라가 국자로 알탕을 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SNS라던가 그런 거에 관심도 없고 뒤떨어져 있어 정보를 늦게 접하는 경우가 많긴 했다. 이런 신기한 일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었구나.
“당신은 그럼 김치나 이런 한국 음식 먹어요?”
마치 은우처럼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질문하는 모습에 제이든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봐도 서른처럼은 안 보인단 말이지. 행동도 그렇고.
“내가 다섯 살까진 한국에 살았어. 그리고 아홉 살까지 미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니까, 어릴 때 많이 먹었지.”
“아홉 살까지만요?”
“어머니는 4년 정도 미국에 있으셨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한국으로 가셨어. 그동안 어린 나는 전부 적응해서 거기 남게 됐고.”
“그럼…….”
아차. 자신도 모르게 너무 물어보려고 한 것 같아 이라는 입을 다물었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 아주 잠깐 다시 만난 거니까.’
그때 그 말이 어쩐지 벽처럼 다가왔다. 그저 우연으로 잠깐 만난 것일 뿐이라고. 매번 감정에 흐려지는 이성을 단단히 붙잡는 말 같았다. 그가 정말 그런 의도로 말했을진 모르겠지만.
귀엽게 조잘조잘 물을 때는 언제고 어쩐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의아하게 보던 제이든은 술잔을 들었다. 이라가 웃으며 따라 들자 챙, 하고 잔을 부딪쳤다.
“왜 묻다 말아.”
시원한 소주를 넘겼다. 표정 하나 변화 없이 술 마시는 그를 보던 이라는 반 잔을 꼴깍 삼켰다.
“그냥 너무 많이 물어보면 실례잖아요.”
이라는 슬쩍 시선을 내리며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그는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우연 같기도, 기적 같기도 한 이 만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흘러가는 인연으로 취급하고 싶었던 것도 맞다.
“새삼.”
그는 피식 웃으며 다시 잔을 채웠다. 잠시 시선을 떨궜던 그는 제 잔만 빤히 바라봤다. 찰랑거리는 투명한 액체는 곧 시간이 지나니 잠잠해졌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며 이라를 바라봤다.
“당신은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아주 작은 정보조차 모르거든.”
이라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그것을 똑바로 바라봤다. 솔직한 감정을 말하자면. 그래, 맞다. 한이라가 좋다.
‘나는 고아였어요.’
이라는 낯선 타지에서 처음 만난 자신에게 모든 걸 털어놨다. 힘들었던 일생을 털어놓으며, 그와 함께했던 그 짧은 날이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싱그럽고 풋풋했던 이라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십 년간 매 순간 문득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십 년이 지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그의 인생 한 구간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작은 그의 착각이 그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 믿게 해서.
제이든은 파동이 멈춘 술잔을 들었다. 아까처럼 다시 소주를 털어 넣은 그는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짙은 녹색 눈동자가 조명 밑에서 더 반짝이는 듯했다. 그는 이라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다섯 살에 버려졌어. 보육원에.”
담담하게 말을 꺼내는 그의 이야기에 이라의 입술이 놀라 벌어졌다. 생각도 못 했다. 번듯하게 수연이 있는데…….
말하지 않아도 이라의 생각을 알았다. 제이든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이 은우를 낳았을 나이에, 어머니도 날 낳았어. 연고 하나 없던 어머니가 레스토랑에 일하면서 사업차 한국에 들렀던 아버지를 만난 거지. 그 실수로 내가 생겼고.”
너무 놀라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힘들었을 거야. 아버지는 어머니가 임신한 줄도 모르셨으니까. 어린 나이에 홀로 아이까지 챙기긴 어려웠을 거야.”
이라는 문득 수연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일곱 살이면 엄청 어리네요…….’
‘어릴 때 트라우마는 더 오래가겠죠……?’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수연은 아직도 아파했던 거구나. 이라가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 그는 한 잔 더 비우며 말을 이었다.
“보육원에 버려졌지만, 고작 일주일이었거든. 어머니는 고작 일주일도 못 버티고 날 찾으러 왔지.”
생생했다. 그때 그 수연의 울음소리, 떨리는 몸, 사과하던 말투.
“고작 일주일이긴 했지만, 외모 탓인지 그 일주일 동안 보육원에서 학대당했어.”
“네?”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그런 반응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보육원 자체가 문제긴 했어. 나뿐만 아니라 거기 있던 애들 대부분이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거든.”
그 일주일 동안 못 볼 걸 너무 많이 봐 버려서인지, 아이는 늘 그에겐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늘 사랑받고, 애정에 웃고, 보호 속에 놀고.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그런 감정을 늘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찻길에 홀로 있는 은우를 봤을 때 뇌가 정지한 것 같았다. 이미 몸은 뛰쳐나가 아이를 구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그에게 다른 어떠한 방식의 족쇄가 됐다.
“일종의 트라우마라면, 부정하진 못하겠고. 나는 그래도 일주일이었는데, 남은 그 애들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니까. 아무 힘도 없던 다섯 살의 내가 그 애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그건 당신 탓이 아니잖아요…….”
“맞아, 아니지. 그런데 정말 구하지 못했거든.”
씁쓸하게라도 짓고 있던 그의 미소가 한순간 사라졌다. 정말 괴로운 무언가를 떠올린 사람처럼 그의 미간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자조적인 표정과 함께 그가 말을 뱉었다.
“아이를 잃었어. 두 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