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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지 마세요-13화 (13/70)
  • 13화

    얼떨결에 또 차를 얻어 탔다. 조수석에 앉은 이라는 아무 말 없이 유치원으로 향하는 그를 힐끔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저는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제 인생 스토리를 구구절절 말했는데.

    운전에 집중하는 그의 얼굴선이 눈에 들어왔다. 일이 일이다 보니 꽤 많은 연예인을 마주했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배우도 봤고, 화려하게 생긴 가수도 봤다. 그때마다 사실 그가 생각났다.

    “얼굴 뚫리겠네.”

    그가 피식 웃었다. 아, 너무 빤히 바라봤나. 이라는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그냥요. 왜 그 얼굴로 평범하게 사나 싶어서요.”

    그가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가를 쓸며 웃었다. 뭐가 그리 웃긴 건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를 보던 이라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포인트였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얘기해 줄게. 여기서 좌회전하면 되나?”

    “아, 네.”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힐끔 바라봤다. 그는 아까부터 자꾸 다음을 이야기했다. 다음이라. 그와 내게 다음이 또 있을까, 아니 있어도 될까.

    문득 창밖을 바라보던 이라가 서둘러 상체를 들었다. 은우가 다니는 유치원이 보였다. 그도 도착한 걸 알았는지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은우 데리고 얼른 올게요.”

    달칵. 차 문을 열고 나섰다.

    “엄마아!”

    마침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나오던 은우가 이라를 발견했다. 환하게 웃은 은우는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 엄마 왔어요!”

    “그럼 우리 은우 선생님이랑 인사하고 갈까?”

    “네! 안녕히 계세요!”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인사하는 아이에게 미소 지은 은우의 담임이 다가오는 이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조심시킨다고는 했는데 여기에 반죽이 조금 묻었어요.”

    “엄마, 이거 은우가 만들었다?!”

    품으로 달려오는 아이를 안아 든 이라가 활짝 웃었다.

    “손 아픈데도?”

    “하나도 안 아파!”

    “우와, 우리 은우 씩씩하네.”

    고개를 들어 담임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내일도 제가 등원시킬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은우도 조심히 가!”

    담임과 손을 이리저리 방방 흔든 은우가 활짝 웃으며 이라를 바라봤다.

    “엄마, 엄마.”

    “응?”

    “이거 형아 줄래!”

    허. 황당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늘 아침부터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꾸준히 제이든의 얘기를 하는 은우였다. 그가 꽤 마음에 들었던 건지,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낯을 좀 가렸던 은우가 신기하게 그를 좋아했다.

    은우가 이야기하자마자, 그가 차에서 내렸다.

    “어?!”

    아이의 동그란 눈이 더욱 커졌다. 그런 은우를 보며 그가 피식 웃었다.

    “형아다!”

    “은우, 안녕?”

    “우와! 우와!”

    그 나이의 남자아이답게 은우가 반응을 크게 하며 이라와 제이든을 번갈아 봤다. 이라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 아무렴 어떠한가, 좋아하니까 된 건가 싶었다.

    “우리 이거 타?”

    “응.”

    은우의 질문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는 신기한 듯 활짝 웃으며 마냥 좋아했다. 뒷좌석으로 먼저 올라타는 은우를 보며 이라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또 다쳤어?”

    그가 시선을 아이에게로 돌렸다. 활기차고 멀쩡해 보였다. 작은 손에 감긴 저 붕대만 아니었다면 더욱 그래 보였을 거였다.

    이라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쿠키 반죽이 붕대에 묻었대요. 혹시 모르니까 데려가서 갈려고요.”

    “그래야겠네. 어제 그 병원으로 가면 되나?”

    “미안해요.”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시 운전석으로 타는 그를 보며 얼른 조수석에 올라탔다. 타자마자 뒤에 앉은 은우를 바라봤다.

    “은우 안전벨트 해야지.”

    “응!”

    한쪽 손으로도 혼자 잘 매는 아이를 보며 이라가 작게 웃었다. 그는 그런 이라를 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당신도 해야지.”

    “아.”

    서둘러 안전벨트를 채웠다. 그는 씨익 웃으며 출발했다.

    “형아, 형아.”

    아이의 부름에 그가 거울로 힐끔 뒷좌석을 바라봤다. 은우는 쿠키 봉지를 번쩍 들었다.

    “이거 형아 거예요. 초콜릿도 세 개나 넣었어요!”

    “우와, 맛있겠는데?”

    아이가 부스럭거리며 봉지를 열었다. 이라가 서둘러 고개를 뒤로 돌렸다.

    “차에서 먹으면 안 돼.”

    “근데 형아 주려고…….”

    시무룩한 아이가 입술을 툭 내밀자, 그가 귀여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먹어도 돼.”

    “부스러기 떨어질 거예요.”

    “치우면 그만이지.”

    “안 돼, 정은우.”

    끝까지 안 된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거울로 은우를 힐끔 바라봤다.

    “어떤 쿠키 만들었어?”

    제가 만든 쿠키에 관심을 주자, 은우는 시무룩했던 것도 잊고 금방 활짝 웃었다.

    “초콜릿 넣은 형아 쿠키랑, 예쁜 토끼는 엄마 쿠키고요, 그리고 은우 거는 로봇 쿠키예요!”

    “우와, 은우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

    아이를 잘 다루는 그의 모습이 의외였다. 애를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이 생겨선. 피식 웃으며 잔뜩 신이 나 떠드는 은우를 바라봤다.

    오늘 있던 일을 종알종알 떠드는 은우의 얘기를 듣다 보니 금방 병원에 도착했다. 앞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그는 주차장까지 들어가 주차했다.

    치료받으러 들어가기 전에 은우는 그에게 쿠키 봉지를 쥐여줬다. 결국, 아이가 준 쿠키 봉지를 들게 된 그를 보며 이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쿠키 안 좋아한다면서요?”

    “뭐, 나름 좋네 이건.”

    “은우가 당신을 엄청나게 좋아하네요. 원래 낯 많이 가리는데.”

    힐끔 이라를 바라본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런가.”

    “당신도 아이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의외예요.”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좋아하는 거랑은 조금 다른 감정이야.”

    이라가 그를 바라봤다. 제 손에 들린 아이의 쿠키 봉지를 보던 그가 어쩐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드레싱을 끝내고 새 붕대로 간 후에 은우가 나왔다. 아이는 먼저 보이는 엄마보다 그 뒤에 있는 제이든에게 달려갔다. 저를 지나쳐간 은우 때문에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형아, 이거 형아 거예요.”

    내내 주고 싶었던 건지 제이든 손에 들린 쿠키 봉지를 열어 은우는 제가 만든 쿠키를 그에게 건넸다. 딱 봐도 엄청 달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는 환하게 웃으며 받았다.

    “엄청 잘 만들었네?”

    “엄청 맛있어요!”

    “지금 먹어볼까?”

    “네!”

    받은 쿠키를 곧장 먹은 그는 아이의 마음에 들게 크게 미소 지었다.

    “엄청 맛있는데?”

    “그쵸?! 짱 맛있어요! 엄마도 얼른 먹어 봐!”

    이라에게까지 쿠키를 쥐여줬다. 손에 들린 토끼 모양 쿠키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토끼라니까 그런 줄 알았지, 미리 말을 안 해줬으면 곰인 줄 착각했을 게 뻔했다. 바삭한 쿠키를 한입 베어 물자, 아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와그작, 씹히는 쿠키는 너무 달고 안에 뭐가 들어간 건지 쫀득한 것들이 씹혔다.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라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밝은 미소를 지었다.

    “우와, 우리 은우 엄마한테 맨날 만들어줘야겠는데? 엄청 엄청 맛있어.”

    둘의 반응에 그제야 크게 만족한 듯 은우가 활짝 웃었다. 이라는 힐끔 그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초콜릿이 안 들어간 제 것도 엄청 단데, 그가 먹은 쿠키는 더 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맛있게 먹어줬다.

    다시 차에 타 집으로 향하는 내내 은우는 재잘재잘 떠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도 좋지만, 제 마음에 쏙 든 제이든이 더 좋은 듯싶었다.

    “근데 은우야, 윤진 이모는 왜 이모고 제이든 형아는 왜 형이야?”

    이라의 물음에 그가 힐끗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부러워?”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으면서 형이라 불리니까 좋아요?”

    그가 재밌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이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뒤에 있던 은우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앙증맞은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형아는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짱 멋있고 음, 또.”

    “또 있어?”

    “응! 눈이 예뻐!”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바라봤다. 아이가 예쁘다던 그 눈, 십 년 전 자신이 빠졌던 그 눈. 짙은 녹색의 눈동자와 허공에서 시선이 맞부딪혔다.

    “아.”

    놀라 시선을 피해 아이를 바라봤다. 괜히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는 그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근데 제이든 형아 아니야?”

    은우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라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야. 은우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돼.”

    “그럼 형아도 엄마 집에 가요?”

    “어?”

    “형아도 가면 안 돼? 나 형아랑 더 놀고 싶은데…….”

    “안 돼. 제이든 형은 매우 바빠서 금방 가셔야 해.”

    은우가 시무룩해 하자, 그는 힐끔 아이를 바라봤다.

    “다음에 은우 맛있는 거 사주러 올게.”

    “진짜요?! 언제요?!”

    은우가 짧은 다리를 동동 굴렀다.

    “엄마 나 계속 엄마 집에 있으면 안 돼?”

    “어?”

    “나 아빠 집 가기 싫은데……. 거긴 엄마도 없고, 형아도 없고.”

    이라가 곤란한 듯 그를 힐긋 보며 은우를 달랬다.

    “그래도 거기에 은우 장난감도 다 있고…….”

    “싫어. 할머니가 맨날 나 혼내고, 아빠도 무섭단 말이야.”

    이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빠가 왜 무서워?”

    “자꾸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휴대폰도 안 줘. 이것도 할아버지가 준 건데…….”

    이라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이혼하고 따로 살게 된 지는 반년이 채 안 됐다. 물론 그동안 너무 바빴고, 이라는 퇴근하고 나서도 아이 방에서 자길 반복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있는데,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한 차는 속도를 줄였다. 함께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는 딱히 더 묻지 않았다.

    “고마워요. 매번 이렇게.”

    “오늘 아주 값진 걸 받아서.”

    “네?”

    “초콜릿이 세 개나 들어간 쿠키를 받았잖아. 돈 주고도 못 살 쿠키지.”

    그가 씨익 웃자, 은우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이라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황당함의 연속이네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은우도 형한테 인사해야지.”

    “형아, 감사합니다!”

    이라가 웃으며 먼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리며 은우가 탄 뒷좌석 문을 열기 위해 몸을 틀었을 때였다.

    “한이라?”

    익숙한 목소리에 문손잡이를 잡았던 이라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녀의 원룸이 있는 골목 앞에서 정차한 차를 보며 다가오는 남자는 지강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비싸 보이는 외제 차와 그 차에서 내리는 이라를 번갈아 봤다.

    “너…….”

    지강의 말이 다 나오기 전에, 뒷좌석 문이 달칵 열렸다.

    “엄마, 나 이거 혼자 할 수 있어. 형이 알려줬다?!”

    씩씩하게 먼저 문을 열고 나온 은우가 활짝 웃으며 이라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앞에 있는 제 아빠를 보고서는 아이의 웃음이 굳었다.

    차에서 은우까지 함께 내리자 지강의 표정이 더욱 황당하게 변했다.

    “지금 이거 뭐야? 이거 누구…….”

    달칵. 그때 제이든이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수려하게 생긴 외국인이 차에서 나오자 지강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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