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가오지 마세요-9화 (9/70)

9화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몰랐다. 그저 눈이 맞았고, 그다음에는 입술이 서로를 찾았다. 얽히는 혀과 농후한 숨결에 시야가 흐려졌다. 상체가 젖혀졌고, 어느새 그가 위로 올라타 있었다.

부드럽게 뺨을 매만지며 키스해 오는 그의 온기가 따듯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술을 먹은 것처럼 후끈해졌다.

따듯한 그의 손이 볼을 쓰다듬고 턱선을 매만지고 목덜미는 훑었다. 작은 그의 손길 하나하나가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호흡이 가빠 오면서도 먼저 그의 옷깃을 잡은 건 이라였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이 바르르 떨렸지만, 멈추진 않았다. 계속하고 싶었다. 그 뒤에 뭐가 오는지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간절해졌다.

스윽. 상의가 그녀의 손에 들춰지자마자 그가 잠깐 입술을 뗐다. 곧장 따라오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찍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까지 생각한 건데.”

호흡이 가빴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를 만큼 머리가 멍했다. 그러나 뜨겁게 울컥 올라오는 욕구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라는 촉촉해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다요. 그냥 전부…….”

“그럴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그가 옅게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라를 바라봤다.

“버진인 거 같은데, 나로 괜찮겠어?”

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급한 듯 그의 옷을 더 들치자, 순간 그의 눈빛이 더 짙어졌다. 키스하는 것만 봐도 그녀가 경험이 없음은 이미 진즉 알았다.

“빨리요…….”

잠시 멈춘 그를 재촉하는 그녀의 말에 이성이 뚝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볍게 소파에 누워 있는 여체를 들어 올렸다. 보이는 것처럼 가벼운 여자는 쉽게 들렸고, 놀라 저를 감싸오는 팔다리가 짙은 만족감을 느끼게 했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입술을 부딪쳐 오는 그였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를 만큼 머리가 어지러웠다. 뜨거운 키스에 정신이 전부 빼앗겨 버릴 즈음에 다시 몸이 눕혀졌다. 뒤늦게 짧게 떨어진 입술에 그녀가 정신을 차려보니, 여긴 그의 방 침대였다.

누운 이라의 위로 올라온 그가 잠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모습마저 너무 섹시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켰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말해. 난 괜찮으니까.”

오히려 더 그가 긴장된 듯 이라를 바라봤다. 이미 스킨십에 아주 능숙한 그였다. 당연히 자신처럼 경험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마저도 좋았다.

“알다시피, 난 이런 거 잘 몰라요. 당신이 만족할…….”

“그런 건 당신이 신경 쓸 게 아니야.”

그가 고개를 숙여 이라의 목덜미에 짧게 입을 맞췄다.

“내가 바라는 건, 당신이 아프지 않는 거야.”

“아프게 안 할 거잖아요.”

“……노력해 볼게.”

습관처럼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작게 구겨진 그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누른 이라가 고개를 들어 먼저 다시 입을 맞췄다. 그게 버튼이 된 듯 그는 깊고 진하게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입을 맞추며 그가 그녀의 양손을 잡아 제 목덜미에 두르게 했다. 그를 끌어안은 자세가 되자마자 가볍게 입은 반팔티를 들추자 그녀의 납작한 배가 보였다. 그의 길고 큰 손으로 반쯤 가려지는 얇은 허리가 움찔 떨었다.

스윽. 입술이 잠깐 떨어진다 싶었는데 옷이 벗겨졌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바지도 순식간에 그의 손에 의해 벗겨졌다. 어느새 속옷 차림으로 덩그러니 놓였다.

“그…….”

괜히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몸을 보여주는 거라 적응이 안 됐다. 그는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아는 건지 부드럽게 목덜미에서부터 천천히 입술을 찍어 내려갔다.

툭 튀어나온 쇄골과 봉긋한 가슴, 납작한 배와 부드러운 허벅지까지 그의 입술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의 입술이 스친 곳마다 불이 데인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툭.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브래지어 훅이 아주 쉽게 풀렸다. 놀라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낮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오늘 온종일 눈이 가서 미치는 줄 알았어.”

“……나한테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당신이 얼마나 예뻤는데. 몰랐다니, 내가 다 아쉬운걸.”

“그렇게 꾸민 건 처음이니까요…….”

“당신은 꾸미지 않아도 예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끈 그 덕분에 어느새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다. 힘을 주고 있던 어깨도, 떨렸던 손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그는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제는 아무 소용 없이 걸쳐 있던 브래지어와 팬티가 그의 손에 의해 벗겨졌다. 완전한 나체가 된 이라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그가 낮게 웃었다.

“당신 어깨까지 붉어.”

“그, 그런 말 좀…….”

얼굴과 귀는 말할 것도 없었다. 희고 가는 어깨까지 붉어진 여체를 보던 그의 눈이 순간 짙어졌다. 그의 몸이 뻐근해졌다. 처음인 그녀를 배려해 조금 천천히 하고 싶었는데, 꽤 노력이 필요할 듯했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그녀의 골반을 향했다.

***

“물 줄까?”

그가 생수병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라는 침대에 웅크린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그가 작게 웃으며 그녀의 등으로 손을 넣어 가볍게 일으켰다.

“자.”

아이 다루듯 생수를 입가에 대주기까지 했다. 거절하고 싶었으나 온몸에 힘이 쫙 풀려 대꾸할 힘도 없어 이라는 물을 받아마셨다.

원래 이게 이렇게 힘든가? 온몸에 근육통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끙끙거리며 물을 몇 모금 간신히 마시자, 그가 뚜껑을 닫고 협탁에 올려뒀다.

“당신은 운동을 좀 해야겠어.”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녀의 맨 허리를 쓸었다.

“체력이 너무 약해.”

이라는 힘없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체격 차이가 이렇게 나는 데 감안해야죠.”

“조심한다고는 했는데.”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원나잇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처음인 여자랑 안 자본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여자들과 다를 것 없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와 잤던 여자 중에 가장 체구가 작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거라곤 생각도 못 해 괜히 미안해졌다.

그의 표정을 읽은 이라는 괜히 더 웃음을 흘렸다. 힘들긴 했어도 그가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원래 처음은 아프고 힘들다고도 했고.

옆으로 누운 그의 허리에 팔을 휘감아 안았다. 탄탄한 복근과 굵직한 그의 허리에 팔을 감자,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였어요.”

급격히 몰려오는 졸음에 이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언뜻 쓰다듬던 그의 손길이 멈칫한 것도 같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잠든 그녀를 보던 제이든은 쿵쿵 뛰는 제 심장에 잠시 멍했다. 몸 한 번 섞었다고 의미 부여할 나이도 지났고, 그런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러지.

그가 시선을 내려 피곤했는지 색색 잠이 든 그녀를 바라봤다. 내일이면 그저 스쳐 지나간 여자 중의 한 명이 될 여자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뛰는 이 심장도 분명 잊을 게 분명했다.

누군가와 잠자리를 하고 난 뒤에 나란히 함께 잠을 청한 적은 없었다. 그저 관계를 맺은 후, 그게 끝이었다. 대화를 나누거나, 더 챙겨주거나, 심지어 관계 도중 이렇게 부드럽게 대해준 여자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피식. 웃음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잊을 게 분명했지만, 조금 더 그녀가 궁금해졌다. 내일 그녀가 깨면 더 사적인 걸 물어봐야지.

그는 품에 이라를 넣은 채 잠을 청했다. 그녀를 깨워 물어보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할 것도 모르고.

***

스르륵.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이라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차창밖을 바라봤다. 제가 사는 원룸촌이었다.

“아.”

그가 있는 운전석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깼어?”

그는 차를 정차한 채 잠시 핸들에 기대 있었다. 이라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깨우지 그랬어요.”

“방금 도착했어.”

거짓말이라는 걸 안다. 도착하고도 삼십 분은 더 지났을 시간이었다. 약 기운 때문인 건지 아직도 푹 잠든 은우였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이라가 서둘러 은우를 안으려고 하자, 그가 운전석에서 내려 뒷문을 열었다.

“줘.”

“네?”

쉽게 아이를 품에 안자, 이라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안 그래도 되는데…….”

“편히 눕혀야 하지 않아?”

어서 집이나 안내하라는 듯한 말에 이라가 허탈하게 피식 웃었다. 이 남자는 십 년 전에도 그러더니, 지금도 불쑥 나타나 도움만 줬다.

차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구불구불한 골목을 걸었다. 이미 어둑해진 밤에 가로등도 없는 단지는 꽤 위험해 보였다.

그는 이라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주 어릴 때 한국에서 살았을 적에 그도 이런 곳에 살았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동네였다.

“여기예요.”

도착한 이라는 힐끔 위를 올려다봤다. 겨우 5층뿐인 건물은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이라의 집은 4층이었다. 열 평도 안 되는 작은 원룸을 그에게 보여주기 민망했다.

“이제 은우…….”

“몇 층이지?”

그는 가볍게 이라를 스쳐 지나가며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애초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정도로 큰 건물도 아니었고, 중앙 현관에 잠금장치도 없는 낡은 건물이었다.

“4층이요.”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들어간 이라가 서둘러 먼저 계단을 바삐 올라갔다. 집 앞에 도착해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침대 하나 없는 원룸은 문을 열자마자 훤히 다 보이는 구조였다. 서둘러 아이를 누일 이부자리를 깔았다.

일곱 살 남자아이를 안고서 4층 계단을 올랐는데도 그는 숨 하나 차지 않고 멀쩡했다. 작은 원룸 안으로 들어오니 보통 남자보다 덩치가 큰 그에겐 확실히 비좁아 보였다. 이라가 깐 저 이불 역시 그에겐 애기용 정도로 보였다.

안으로 들어와 현관에 신발을 벗은 그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이불 위로 눕혔다. 편안했는지 은우는 깨지 않고 푹 잠이 들어 있었다.

“고마워요.”

“닳겠어.”

그가 피식 웃었다. 오늘만 해도 그녀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듣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이라는 그래도 부족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매번 당신한테 줄게 고맙단 말뿐이어서요.”

“그거면 됐지.”

“아, 힘들죠? 물이라도 줄게요. 다른 건 없어서…….”

서둘러 작은 냉장고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 건넸다. 손이 큰 그가 잡으니 생수병이 얇아 보이기까지 했다.

투득. 쉽게 뚜껑을 딴 그가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던 목을 축였다. 아이를 눕히고 상황이 정리되니 이제야 제대로 서로를 볼 수 있었다.

뜨거웠던 밤을 보내고, 정말 신데렐라처럼 사라져 버린 그녀였다. 아무것도 묻지 못한 그 밤을 제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그녀는 아직도 모르겠지.

“한이라.”

그가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라가 그를 바라보자, 그가 허탈한 듯 피식 웃었다.

“당신 이름이 얼마나 궁금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