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병원비를 납부하고 처방받은 약을 타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니 저녁이 훌쩍 넘었다. 은우는 곱게 잠들어 있었다.
손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잠깐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이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지친 하루였다. 오전부터 회사로 불려가니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장 공과금도 걱정해야 할 판에, 직장까지 잘렸다. 아이는 다쳤고, 아이 아빠는 무책임했고, 도움은 생각도 못 한 십 년 만에 만난 첫사랑에게 받았다. 모든 게 다 비현실적이었다.
지친 얼굴로 고개를 든 이라는 잠든 은우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은우가 태어난 뒤로는 이라의 모든 삶이 은우를 위해 돌아갔다. 악착같이 일했던 이유도 결국 다 아이 때문이었다.
지친 몸을 일으켜 자는 아이를 깨지 않게 조심히 안았다. 밤이 되니 더 분주해진 응급실은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지이잉. 응급실 자동문을 거쳐 나가니 숨이 차올랐다. 일곱 살 남자아이를 깨지 않게 편히 안기에는 자신이 너무 왜소했다.
“아, 택시…….”
끙끙거리며 힘들게 휴대폰을 꺼냈다. 문득 아까 저장한 그의 번호가 생각났다. 길고 예쁜 손으로 제 번호를 찍고는, 이라의 번호까지 받아 간 남자였다.
피식. 어쩐지 힘들어 죽겠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괜히 딴생각이 들어 고개를 내저었다.
“아, 나왔네.”
휙. 놀란 이라의 눈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안 갔어요?”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번호를 교환하고 간 줄 알았는데, 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힘들어 보이는데, 아이 줘. 데려다줄게.”
그의 말에 이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왜 기다린 거지.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는 널찍한 품으로 아이를 데려가 안았다.
이라가 안을 때에는 은우가 너무 커 보일 지경이었는데, 그가 안으니 너무나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잠든 아이의 표정도 한결 더 밝아졌다.
“아, 아니. 왜 안 갔어요?”
“이럴까 봐.”
그는 아이를 안고 먼저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멍하니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를 후다닥 쫓아갔다.
은우가 다쳐 연락을 받았을 때가 대략 오후 두세 시 즈음이었다. 지금은 열 시가 다 되어가고 있고.
“저기…….”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를 따라 걸으며 우물거렸다. 너무 신세를 많이 진 것 같아 지금도 정중히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도 안 됐다. 병원비는 보험처리로 어떻게 하겠지만, 당장 다른 지출은 위험했다.
그는 아이를 안고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저를 부르는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힘들어 보이네.”
“네?”
이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만해. 아이가 다쳤다고 연락받았는데, 얼마나 놀랐겠어. 저 차야.”
“아, 문.”
이라는 후다닥 달려가 뒷문을 열었다. 조심히 아이를 뒷좌석에 눕힌 그가 이라를 향해 타라는 듯 바라봤다.
얻어타는 주제에 뒷자리에 타는 건 예의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잠든 그것도 다친 아이를 혼자 태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해요.”
차에 타자 그는 문까지 친절히 닫아줬다. 운전석으로 돌아가는 그를 창문으로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공허했다.
아이가 다쳤다는 데도 아이 아빠는 어느 병원이냐 묻지도 않았다. 당연히 오지도 않았고, 그 뒤로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처음 보는 이 남자는 반나절 가까이 기다려 손수 데려다주기까지 한다.
픽.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달칵. 문을 열고 차에 탄 그는 온도부터 적절히 맞췄다. 뒤로 돌아 이라와 아이를 확인한 뒤에 안전벨트를 찼다.
“주소 알려줘.”
“여기요. 고마워요, 진짜.”
미리 찍어뒀던 주소를 휴대폰으로 보여줬다. 이혼하며 위자료는커녕 거의 탈탈 털린 신세로 나온 이라에게 자가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나마 살던 전셋집도 3개월 전에 빼서 가까스로 월세 원룸을 얻었다.
십 년 전 월세방에 살던 자신이 고스란히 돌아왔다. 십 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는데, 그 노력은 전부 물거품처럼 없어지고 그녀는 빈털터리였던 처음으로 돌아왔다. 소리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눈 좀 붙여.”
주소를 확인한 그는 그 뒤로 아무 말 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잠든 은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창밖을 바라보던 이라는 어느새 제 시선이 그에게 가 있는지도 몰랐다.
십 년. 그를 만난 지 정말 십 년이나 흘렀다.
꿈 같았고, 신기루 같았고, 희망 같았다. 일생에 지친 사람들은 행복했던 여행과 그런 추억을 되새기며 살아간다고 했다. 이라에게 그는 그런 존재였다. 지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가슴 속 저 깊이 있는 추억을 꺼냈다.
이라의 눈이 운전에 집중한 그의 얼굴로 향했다. 그는 십 년 전보다 훨씬 더 멋있어졌다.
***
10년 전, Los Angeles.
장대한 건물에 이라는 넋을 놓았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예전부터 한 번 정도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와, 진짜 신기하다…….”
단 일주일. 있는 돈 없는 돈 박박 긁어모아 티켓을 사고, 여행비를 만들었다. 거의 5일에 가까운 여행이지만, 이라는 무작정 강행했다.
한여름의 LA는 타는 듯하게 더웠다. 땅바닥이 지글지글 끓었다. 달랑 배낭 하나만 멘 채로 이라는 끝없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구나…….
미국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이 출발했다. 영어는 기초 수준이고, 호텔은 형편이 안 돼 게스트하우스를 급하게 알아봤다. 아마 다른 누군가가 지금 제 상황을 안다면 한심해 혀를 내두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아주 가까운 지인도 없었다. 아마 이곳에 갑자기 객사해도 걱정하는 이 하나 없겠지.
제일 처음 기억은 보육원에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나오던 거였다. 아마 그때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나, 유치원에 있을 때였나. 잘 기억이 나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무척 다정하셨다. 가족이란 걸 모르고 자란 이라에게 가족의 따듯함과 사랑을 알려주셨다. 한 번도 새 물건을 가져본 적 없던 이라에게 언제나 깨끗하고 좋은 물건을 사 주셨다. 그렇게 천천히 따듯한 할아버지 품에서 가정교육이라는 걸 받았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는 스무 살에 이라를 낳은 후 버렸다고 들었다. 그리고 6년 뒤,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졌을 때, 그때야 아버지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 길로 이라를 데려와 키웠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6년 동안에도 이라는 엄마 얼굴 한 번 못 봤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건, 이라를 데려오는 걸 반대하는 엄마 때문에 할아버지는 딸과의 연을 끊고 홀로 버려진 손녀를 키우셨다는 것 정도.
중학교 입학 전, 새 가방과 필기구 그리고 교복을 사 주셨던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손녀가 커 가는 모습이 삶의 낙이라고 인자하게 웃으시던 분은 위암 말기였다.
홀로 남겨질 이라가 걱정돼 몇 번이나 딸에게 찾아갔지만, 딸은 제 가정을 망치기 싫어 제 아버지를 못 본 체했다. 치료받을 시기를 놓쳤고, 어린 이라가 홀로 남겨질까 치료받지도 않으셨던 분이었다.
이라는 제 엄마가 미웠다. 아니, 끔찍했다. 할아버지를 죽인 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엄마였으니까.
‘너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으로 찾아온 엄마의 첫 마디였다. 할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은 엄마가 전부 가져갔지만, 사망하기 전 할아버지가 정리해둔 유산인 집과 성인이 될 때까지 쓸 수 있는 생활비 조금이 이라 앞으로 남겨졌다.
그렇게 또다시 6년이 흘렀다. 악착같이 공부해 서울의 4년제 대학 합격증을 거머쥔 이라 앞으로 다시 엄마가 찾아왔다.
‘네가 성인이 될 동안 살라고 내버려 뒀던 거야. 이 집에서 나가는 게 예의다.’
뭣도 모르는 이라가 순간 빈털터리로 내쫓겼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가득 담긴 그곳을 그냥 빼앗겼다.
첫 입학을 하기도 전에 휴학하고, 남은 돈으로 월세방을 구하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여행이란 걸 가본 적 없던 이라가 무작정 떠나게 된 건 그 이유였다. 당장 그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죽어도 그곳을 벗어나 죽고 싶어서.
수중에 있는 돈은 백만 원 남짓. 비행기 티켓과 게스트하우스 예약금을 털어내니 남는 거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이제 뭐 하지……?”
자세히 검색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무작정 떠나온 여행이라 그저 이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마저도 꿈만 같았다.
이국의 향과 분위기는 다른 걸 하지 않아도 여행의 기분을 잔뜩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가보고 싶은 곳은 있었다.
할리우드. 이라가 향한 곳은 그곳이었다. 애초에 게스트하우스도 그 근처였다.
“와…….”
사진으로만 봤던 유명 인사들의 손바닥, 발바닥을 찍은 별 모양의 사인이 거리에 수북했다. 주변에는 히어로 영화 주인공들의 코스튬을 한 사람들도 보였다.
주변에서는 낯선 언어가 들렸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일생에서 지금만 보고 말 뿐인 사람들이었다. 관광지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인종들이 있었다. 이라의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해 보였다.
툭-
넋을 놓고 구경하던 탓에 누군가와 부딪혔다. 백금발의 서양인이 곤란한 얼굴로 뭐라고 떠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어 ‘쏘리’만 연신 외치며 후다닥 자리를 떴다.
“깜짝이야.”
콩닥콩닥 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입국심사를 제외하고는 직접 외국인과 맞닥뜨리게 된 건 처음이라 크게 당황했다.
“그나저나 진짜 멋있네.”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근처를 구경했다. 건물도 멋있고, 모든 사람도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당장 이곳이 낯설고 무섭고 설레는 건 자신 하나인 것 같았다.
한창 구경하다 보니 종아리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오랜 비행과 구경삼아 오래 걸은 탓에 다리에 무리가 갈 만했다. 어디라도 당장 앉고 싶었지만, 우선 게스트하우스부터 급히 찾았다.
“이, 이쪽 길이 맞는데?”
급히 인터넷에서 찾은 게스트하우스라 프린트한 종이를 보며 길을 찾아 헤맸다.
“어어!”
익숙한 글씨와 입구 사진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다행이다. 조금 안쪽이었네.”
어릴 때부터 혼자 무언가를 해 나가는 성격답게 누군가에게 길 한 번 묻지 않고 찾았다. 물론 영어가 안 돼 묻지도 못했다지만.
조금 밝아진 이라는 낡은 문 옆에 달린 벨을 눌렀다. 띵동. 막상 가까이 오니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건물이 훨씬 낡아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인기척도 거의 없었다. 벨을 눌렀는데도 안에서 작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응?”
철컥. 철컥.
몇 번을 흔들어봐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에 이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