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76)화 (176/177)

#176.

“예?”

데미안은 엘레나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때마침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눈치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엘레나가 그의 눈물을 보고 당황한 빛을 띠었다.

“우, 울어?”

“아, 아닛. 이건…….”

데미안이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막 무릎을 꿇고 빌려던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이미 데미안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퍽이나요.”

엘레나는 믿지 않는다는 듯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다정한 반응에 데미안이 얼떨떨한 얼굴로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엘레나가 손수건을 줬어…….’

눈앞에서 울어도 절대 표정 하나 안 바꿀 것 같던 사람이 다정하게 구니 데미안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차마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칠 생각도 못 하고 있는데 뒤늦게 서류 봉투에 황실 인장이 있는 걸 확인했다.

게다가 봉투에는 ‘피해보상에 대한 황실의 입장’이라는 표제가 적혀 있었다.

‘피해보상?’

데미안이 봉투의 내용을 해석하는 동안 엘레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 상황을 모를 줄 알고 설명하러 왔더니 다 안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본론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불쌍하게 구니 의아해졌다. 엘레나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아키드가 말 안 하던가요?”

“무얼 말입니까?”

“허어.”

엘레나는 그제야 이 대화의 불협화음의 이유를 알았다. 설마 아키드가 데미안에겐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줄이야.

물론 아키드는 두 사람이 대화하길 바라서 비밀을 지켜 준 것이었다. 하필 그게 데미안을 삽질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대충 데미안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된 엘레나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왜요? 내가 이혼 서류라도 들이밀까 봐서 겁먹었어요?”

“아니, 난…….”

데미안은 엘레나의 방문 목적이 이혼 통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아마 이번 사태로 황실에서 하델루스가에 치하라도 하려나 보다 짐작했다.

다행이었다. 이혼 서류만 아니면 데미안은 엘레나가 억만금의 빚을 가져와도 괜찮았다.

데미안이 언제 울었냐는 양 평소대로 유쾌하게 말했다.

“제가 오해를 했군요.”

하지만 뒤이은 엘레나의 말에 기겁하며 표정이 깨지고 말았다.

“나랑 이혼이라도 하고 싶나 봐요?”

“절대 아닙니다!”

데미안이 와락 성내듯 대답하자 엘레나의 두 눈이 둥그레졌다. 이윽고 그녀의 눈이 곱게 접혔다.

“……!”

“그럼 확인부터 해요.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시고.”

“지, 지금 웃었습니까? 비웃은 거 아니죠? 순수한 웃음인 겁니까, 지금?”

데미안은 엘레나가 불쾌함 하나 담지 않고 미소 짓는 것에 얼이 빠져 되물었다.

그간 그녀의 비웃음을 숱하게 받아 왔어도 호의를 담은 미소는 못 받아 본 탓이었다.

엘레나는 뒤늦게 미소를 거두며 쌀쌀맞게 대꾸했다.

“읽으라니까.”

“옙.”

데미안은 내려갈 줄 모르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고정한 채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맨 앞장에 놓인 서류를 보고 굳어 버렸다.

[친자 확인서]

맨 첫머리의 말이 낯설었다. 데미안은 갑작스러운 친자 확인서에 한껏 당황했다.

설마 그녀가 다른 곳에서 아이를 낳았을 리는 없고, 이제 와서 아키드의 출신이 의심스러워지기라도 한 걸까?

만약 아키드의 친자 확인서라면 곤란했다. 그는 제 자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워 온 자식이니까.

하지만 데미안의 예상과 달리 친자 확인서에는 그와 아키드가 친자관계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데미안 하델루스(이하 A라 한다)와 아키드 하델루스(이하 C라 한다)가 친자관계일 확률은 99.9%이다. 그러므로 A와 C는 친자관계가 성립한다.]

물론 더 충격적인 내용은 그다음이었다.

[엘레나 하델루스(이하 B라 한다)와 아키드 하델루스(이하 C라 한다)가 친자관계일 확률은 99.9%이다. 그러므로 B와 C는 친자관계가 성립한다.]

“!!”

데미안은 말도 안 되는 검증 결과에 입을 쩍, 벌렸다. 서류의 내용은 아키드가 저와 엘레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밤을 보낸 적도 없는 남녀에게 아들이라니.

데미안의 손이 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게, 뭔, 대체…… 아닛.”

데미안은 동봉된 피해보상 내역을 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그가 얼빠진 표정으로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이 버리고 온 아들이 다시 돌아온 거죠.”

“예?”

“목숨까지 바쳐 힘들게 낳아 놨더니 버리고 오면 어떻게 해, 디안.”

“!!”

데미안은 엘레나의 대답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엘레나가 회귀 전 일을 아는 탓이었다.

“그, 그, 그건 또, 어떡, 어떻게……? 아닛, 그것보다 돌아왔다는 말은 또 뭣…….”

“생긴 거랑 달리 역시 새가슴이라니까.”

엘레나는 진실을 듣자마자 혼절했던 자신은 생각도 않고 피식 웃었다.

“당신이 시간을 돌릴 때 우리 애도 따라왔다는 뜻이에요, 디안.”

“!!”

“기특하지 않아요? 그만한 기개를 보면 우리 애가 확실하지.”

엘레나가 팔불출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씨익 미소 지었다.

“그, 그런, 그런 게…….”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말하려던 데미안이 말을 아꼈다. 인장 반지는 본디 하델루스의 힘에 반응하는 아티팩트.

‘그러고 보니 회귀 전 애 앞에서 비전을 열었지.’

데미안은 비전을 사용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아키드는 미각성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힘을 타고났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데미안이 내막을 모두 파악하고 안도의 한숨을 터트렸다. 그제야 자파르시아가 굳이 ‘시간을 돌리는 마법’을 알려 준 이유를 알았다.

만약 시간을 돌리지 않았다면 아키드는 비전을 훔쳐본 여파로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몰랐다.

당시 아키드에게는 인장 반지가 없었으니까.

비전은 인장 반지를 지닌 진짜 가주만이 열람할 수 있으니 제삼자는 즉결처분이었다.

데미안은 자신이 엘레나를 살렸다면 벌어졌을 비극을 떠올리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자파르시아의 큰 그림에 압도되었다.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나비가 된 기분이었다.

“하아, 하, 하하.”

데미안이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한숨짓기를 반복했다. 안도감이 몰려오다가도 자칫 잘못했으면 벌어졌을 비극에 가슴이 철렁해져서였다.

“많이 놀랐어요?”

엘레나가 진정할 줄 모르는 데미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데미안이 엘레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엘레나는 깜짝 놀라 몸이 굳어 버렸다.

데미안과 포옹해 본 게 오랜만인 탓이었다. 결혼 후엔 한 번도 없던 일이라 얼떨떨했다. 엘레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안아도 된다고 한 적 없는데.”

“아.”

데미안이 놀라 떨어지려 하자 엘레나가 막았다.

“뭐, 이번만 봐줄게요. 많이 놀란 것 같으니.”

그러곤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의 등을 툭툭, 다독이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엘레나의 다정한 반응에 울컥했다.

곧이어 그가 평소처럼 짓궂게 물었다.

“……그럼 놀랄 때마다 안아 주는 겁니까? 그럼 슬플 땐 입도 맞춰 주나?”

“첩에게 하듯이 하지 말라고…….”

“나 안 했어.”

“?”

“너 말고는 아무하고도 입 맞춘 적 없다고.”

그 말과 함께 데미안이 엘레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엘레나는 폭탄 같은 말에 놀라 말했다.

“정말로? 그럼 그동안은…….”

“하는 척만 했어. 나는 밤을 보낸 것도 너뿐이고, 입을 맞춘 것도 너뿐이야. 물론 넌 기억 못 하겠지만 그래. 그리고 난 앞으로도 너랑만…….”

“자, 잠깐만! 그렇게 적나라하게 말하라곤 안 했어.”

당황한 엘레나가 데미안을 밀쳐 내고 손바닥으로 그 입을 막았다. 우선 그가 결백하다는 사실이 좋으면서도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일단 기억에도 없는데 그랑 밤을 보냈고 아키드를 낳은 것부터가 어이없기도 했다.

어느새 엘레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번 생의 그녀는 경험이 하나도 없으니 당연했다.

이를 본 데미안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데미안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돌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 너무 오랜만이야…….”

“또 울어?”

데미안은 눈물을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또옥또옥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크게 방울졌다 또르륵 흘러내리는 광경은 몹시 외설적이었다. 평소 안 그러던 자의 눈물을 보니 당혹감에 휩쓸렸다.

애써 평정심을 찾은 엘레나는 그가 내내 쥐고만 있던 손수건으로 그의 눈가를 훔쳐 주었다. 그가 제 앞에서 우는 게 너무도 오랜만인데, 어쩐지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울보가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참고 있었어. 그것도 머저리 같은 방식으로.”

“응. 나 머저리 맞아.”

데미안이 순순히 인정하며 처연하게 눈을 내리떴다. 엘레나는 그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동했다. 그게 어처구니가 없었고.

“알겠으니까 그만 울어. 남들 보기 창피하니까.”

“걱정 마. 난 네 앞에서만 울어.”

데미안은 울면서도 한마디를 지지 않았다. 엘레나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뱉었다. 그것참, 다행이다.

“그래. 앞으로도 그러도록 해. 딴 여자 앞에서 울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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