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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72)화 (172/177)
  • #172.

    사라진 캐서린이 향한 곳은 메이벨의 처소였다. 메이벨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캐서린은 그저 물끄러미 메이벨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저 얼굴이 실은 제 것이었다니.

    원래 제 얼굴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분은 기묘했다. 애초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캐서린은 파리해진 메이벨의 얼굴을 뜯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메이벨에 의해 독을 먹고 쓰러진 직후, 캐서린은 전생의 기억이 모두 돌아왔다. 아마 비슷한 일을 겪을 뻔했던 게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이 메이벨 루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 허탈해졌다. 캐서린은 뭐가 아쉬워서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걸까.

    사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메이벨이라 하기엔 캐서린으로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넌 내가 부럽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네가 부러웠어.”

    캐서린은 돌아온 기억을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의식 없는 그녀에게 닿는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네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거든.”

    그녀는 늘 가족을 그리워했다. 저를 버린 자들이라 해도 핏줄이니까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성녀가 된 후 찾아온 가족들과 마주했을 때, 그녀는 서글퍼졌다.

    그들은 그녀에게 무언가 바라기만 했다. 바라는 종류는 다양했으나 거기에 그녀의 감정을 고려한 행동은 하나도 없었다.

    반면 캐서린의 가족은 무척이나 단란했다. 저를 못살게 굴던 에드워드가 캐서린을 끔찍이 아끼는 것은 그녀도 잘 알았으니까.

    해서 짓궂은 장난에도 쉽사리 대항하지 못했다. 에셀 가문의 단란함이 부러워서.

    삐뚤어진 행동마저도 사랑에 기반한 게 느껴져서 참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모습들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너는 내가 제로니스를 뺏었다고 했지만 사실 제로니스는 누구의 것도 아닌 거잖아.”

    애초에 사람을 소유물로 보는 태도부터 저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힐난할 수 없는 건 자신들 두 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닮아서였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두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서로에게서 느꼈을지도 몰랐다. 상대가 가진 것에 서로를 부러워하면서.

    메이벨이 캐서린의 가족을 부러워하듯, 캐서린은 제로니스의 애정을 받는 자신을 부러워한 거다.

    ‘있잖아, 캐시.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 마음에 구멍이 있대.’

    ‘조심하지 않으면 너무 커다래져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진 것 같지 않아질 거야.’

    로에나의 말이 맞았다. 모든 사람에겐 구멍이 존재했다. 그 구멍에 압도되는 순간 좀먹히는 건 순식간이고.

    전생의 메이벨은 이기적인 가족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힘들어했으나 그걸 외부 요인으로 돌리지 않았다.

    결핍된 애정에 집착하는 대신에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했었다.

    그게 제로니스였고, 메이벨은 그 덕분에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반면 캐서린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족은 등한시한 채 얻지 못한 애정만 가지려 억지를 부렸다.

    그리고 그게 독이 되어 그녀의 삶을 좀먹어 망쳐 버렸다. 메이벨은 캐서린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물론 동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으니까.

    캐서린은 코비슈타인과 한 대화를 떠올렸다. 그가 웬 노파를 데리고 왔었다. 이름은 세체르라고.

    코비슈타인이 아티팩트 해제에 관한 걸 설명하고 돌아간 것과 달리 노파는 따로 남아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지난 생에 미련이 남나요? 돌아가고 싶다거나.’

    ‘아뇨. 그것보단 가족들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반응이 걱정돼요.’

    ‘가족들이 당신을 외면할까 봐 두려운 모양이로군요.’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사실 몹시 두려웠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제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을까, 하고.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메이벨과 달리 당신은 태어날 적부터 캐서린 에셀이었지요.’

    ‘아.’

    ‘그러니 지금의 에셀가는 누워 있는 메이벨이 아니라 당신의 가족이라오.’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세체르의 말대로 그녀는 금술의 영향으로 캐서린으로 환생했으니 중간에 메이벨이 된 그녀와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캐서린이 고민하는 사이 세체르가 더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게다가 메이벨은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겁니다.’

    ‘네……?’

    ‘아티팩트 덕에 영혼이 분해되는 걸 겨우 막고 있거든요. 해제하면 소멸할 겁니다.’

    ‘!!’

    ‘어차피 손쓸 수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쪽은 남은 생을 사시면 된다오.’

    ‘제가,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가족 관계는 자격을 논할 수 없는 거라오. 거저 주어지는 탓에 소중함을 놓치기 가장 쉬운 관계이기도 하죠. 이 늙은이도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 소중한 가족을 잃었지요.’

    세체르는 금술로 시간을 돌린 세상에 가족들이 없었다고 했다. 그게 충격이었다고.

    애초에 미래와 완전히 같아질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야 좀 정리가 된다.”

    캐서린은 혹시라도 예전 얼굴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까 싶어 메이벨을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더는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처럼 느껴질 만큼.

    “잘 가, 메이벨.”

    그건 죽어 가는 그녀에게 하는 인사가 아닌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작별이었다.

    캐서린은 홀가분해진 얼굴로 메이벨의 침실을 빠져나왔다.

    * * *

    내가 막 캐서린을 찾아 나서려는데 그녀의 음성이 등 뒤로 들렸다.

    “로에나? 나 보러 왔어?”

    돌아보니 캐서린이 문가에 선 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밝은 모습에 내심 안심되었다.

    “응. 깨어났다고 들어서.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아, 그냥 마음 정리가 조금 필요해서.”

    “그랬구나.”

    하긴 전생이 떠오른 것도 심경이 복잡한 마당에 독살 시도에 납치까지 당한 직후였다.

    마냥 침실에 누워만 있기엔 속이 답답했으리라. 나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물었다.

    “좀 괜찮아졌어?”

    “응. 있잖아, 로에나. 나 실은 너한테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캐서린이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이 돌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캐서린 에셀로서 살고 싶다고. 나는 그녀의 결단에 조금 놀라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캐서린은 단단한 사람이었다.

    “가족들에게는 내가 말할 생각이야.”

    “괜찮겠어? 천천히 해도 돼.”

    “아냐. 시간이 그리 많지 않거든. 메이벨이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지.”

    “메이벨이 죽는다니?”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놀라 눈을 깜빡이자 캐서린이 말했다.

    “이미 영혼이 분해된 지 오래래. 아티팩트가 겨우 혼을 잡고 있다나 봐.”

    “아.”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해 주고 싶어. 그래야 나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고.”

    이미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나는 캐서린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평생 루이스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 수는 없으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나는 내내 고심했던 생각을 꺼내었다. 캐서린을 만나면 하고 싶던 말이었다.

    “있잖아, 캐시. 누가 뭐라 해도 지금의 에셀가는 네 가족이 맞아. 적어도 이번 생에선 온전히 네 가족이었어.”

    “세체르 씨랑 같은 말을 하네.”

    “세체르를 만났어?”

    “응. 메이벨의 상태를 알려 준 게 그분이야. 굉장히 초연해 보이셨어.”

    고대부터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니 초연할 수밖에.

    ‘메이벨의 소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겠네.’

    죽고 싶은 사람은 정작 죽지 못하고 영겁의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 가야 한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나는 메이벨이 불러올 대재앙이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동시에 그녀의 기구한 운명에 마음이 좋지 않아졌다.

    “고마워, 도와줘서.”

    그때 캐서린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의아히 쳐다보니 그녀가 말했다.

    “사실 예식 때 네가 정령들에게 했던 말 들었어.”

    “어?”

    “죽으려고 했던 거 말이야.”

    “……!”

    “그때 몸을 움직일 순 없었지만 소리는 들렸거든.”

    “그랬구나.”

    그렇다면 더 잔인하다. 본인의 몸이 더는 제 몸이 아닌 상태로 제단 위에 있었다는 거니까.

    의식을 잃은 와중에도 주변 소리가 들렸을 줄은 몰랐다. 내가 엉겁결에 수긍하자 캐서린이 말했다.

    “네가 희생하려 들 줄은 정말 몰랐어. 그래도 다행히 네게 구슬이 있어서…….”

    “그럼 그때 날 치료한 게 그 구슬이 맞았구나…….”

    “응. 그 구슬은 내 힘을 농축해 둔 거거든. 원래는 부적처럼 들고 다니던 거였어. 뭔가 가시적인 위로가 필요했거든.”

    매일 들고 다녔다는 안젤리카의 말과 일치하는 답변이었다. 이로써 그녀의 기억이 모두 돌아온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캐서린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다음엔 그런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 널 걱정하는 가족들을 봐서라도.”

    “응. 나도 사실 후회했어, 좀 더 발버둥 쳐 볼걸, 하고.”

    “어쨌든 네 덕분에 살았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게.”

    나는 캐서린의 말에 눈을 빛냈다. 안 그래도 그녀에게 부탁하고 싶던 게 있었으니까.

    “아, 그럼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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