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제이드는 예식이 멈추는 걸 보자마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퍼엉―!
신호가 떨어지자 매복하고 있던 흑마법사들이 예식에 난입해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앞서 제이드의 회유로 넘어온 이들이었다. 같은 차림을 한 이들이 한데 섞이자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같은 편끼리 자충수를 두는 형세처럼 보였다.
“으악!”
“공격해! 어서!”
무방비하게 공격당한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 틈에 나는 나탈리 후작에게 집중했다.
“흰둥아!”
내 부름에 대기하던 흰둥이가 나탈리 후작에게 달려들었다.
나탈리 후작은 제게 달려드는 거대한 백표범을 보고 놀라 바짝 언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지팡이를 빼앗으려는 걸 알았는지 나탈리 후작이 요리조리 피하며 대항했다.
흰둥이와 대치하는데도 제법 버티는 게 대단하다 싶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큭!”
결국 나탈리 후작이 얕은 신음을 내뱉으며 고꾸라졌다. 흰둥이가 그 위에 올라타 지팡이를 빼앗아 정령에게 던졌다.
“막아!”
나탈리 후작이 이에 질세라 새된 명령을 내렸다. 바로 그 순간 땅속에서 인형들이 솟아올랐다.
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인형들은 마치 골렘처럼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골렘은 앞을 막는 이들을 무참히 내던지며 정령들을 바짝 쫓았다. 아군이고 적이고 할 것 없이 공격하는 게 몹시 위협적이었다.
그야말로 자기편의 안위보다 예식이 계속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움직임.
‘미, 미, 미쳤어!’
나는 흉흉한 인형들의 기세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흰둥이가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들이 본디 흙이라는 점에서 흰둥이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탓이었다.
‘이날을 위해 숱한 훈련을 거듭했지.’
나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 훈련들을 떠올리며 자신만만하게 흰둥이에게 눈빛을 보냈다. 본때를 보여 주라는 의미였다.
흰둥이는 나탈리 후작을 바닥에 짓누른 채 발을 굴렀다. 이에 땅이 크게 진동하며 정령을 쫓던 인형들이 일시에 멈추었다.
그들의 발이 진흙처럼 질어진 채 땅에 달라붙은 탓이었다.
골렘들이 발을 떼어 내려 우왕좌왕하는 사이 정령들이 내게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야말로 속도전에서 우위에 선 상황.
나는 지팡이를 잡자마자 망설임 없이 정화를 시도했다. 나탈리 후작이 도로 대응하기 전에 끝내 버릴 작정이었다.
우웅―!
지팡이에 힘을 강하게 싣자 진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팡이가 거세게 흔들리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안의 힘이란 힘은 다 쏟아부을 작정을 하며 정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지팡이가 쨍―! 하고 산산조각이 난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로, 로에나!
― 꺄아아악!
정령들의 비명이 점점 작게 들렸다. 마치 납치 당시 구속구를 찼을 때처럼 서로의 교감이 뚝 끊긴 기분.
“……어?”
나는 외마디 신음을 터트리며 몸을 휘청였다. 배 아래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내 몸을 꿰뚫은 느낌.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기이한 통증이 오감을 자극해 비트는 것만 같았다.
‘무, 무슨…….’
상황을 파악할 새가 없었다. 주변이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다. 모든 게 현실감이 떨어지고 감각이 둔해지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나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귀에서는 삐― 하는 이명이 들렸다.
마치 위험을 경고하는 신호처럼 생생했다. 나는 나를 공격한 사람을 보며 이를 짓씹었다.
애초에 완전한 아군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런 때에 공격할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제이드 씨…….”
우리 협조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쿨럭!”
나는 뒷말을 채 하지 못하고 제이드에게 고꾸라졌다. 밀쳐 내고 싶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 내가 부순 지팡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 지팡이로 나를 찌른 상황.
“어떻게……!”
분노에 찬 나는 지팡이를 쥔 그의 손을 붙들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이 배 안을 가득 채울 무렵.
그의 손에 못 보던 것이 끼워져 있는 걸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호갑투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끼고 있지 않았던 물건.
게다가 호갑투 아래로 높은음자리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문신은 호갑투에 반쯤 가려진 채 기이한 빛을 뿜어 대고 있었다.
그 순간 말도 안 되는 가정이 떠올랐다. 평소 호갑투를 즐겨 끼던 자가 불쑥 생각난 탓이었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열었다.
“설마 당신…….”
“많이 놀란 얼굴이네요.”
그 말을 끝으로 내가 알던 제이드의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야를 흐릿하게 만드는 찰나의 울렁거림을 끝으로 나탈리 후작이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물었다.
“언제부터……?”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언제부터 제이드가 아니었던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제이드와 협력한 이후로 계속 같이 행동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뀔 틈은 없었기에 혼란스러웠다.
그때 나탈리 후작이 말했다.
“제이드는 이미 죽었어요.”
“……!”
“기억이 돌아오자마자 죽였거든요. 방해될 거 같아서.”
“!!”
그 말은 처음부터 나탈리 후작이 제이드인 척 나를 속였다는 뜻이었다.
나는 바보같이 그녀가 제이드인 줄 알고 함께 행동해 온 것이었다. 실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인 줄은 까맣게 모른 채로 말이다.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공격당한 부위는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정확히는 나를 뚫은 지팡이가 내 힘을 쪽쪽 흡수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정령들이 실체화를 푼 것 같았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힘이 빨리고 있어서인 듯하고. 나는 나탈리 후작을 노려보았다.
“처음부터였나. 나를 속여 예식에 참여하게 만든 건.”
“생각보다 그쪽이 너무 고단수라 이런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었거든요.”
“…….”
“애초에 분신을 만드는 건 제게 식은 죽 먹기랍니다. 인형들과 달리 저건 제 본체를 뗀 것과 같거든요. 생각도 공유되니 시간을 맞추기도 아주 수월했어요.”
나탈리 후작이 흡족히 웃었다. 나는 두 명의 나탈리 후작을 보며 오싹해졌다.
그녀 말대로 인형술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둘 다 진짜처럼 보였다.
‘이건 밸런스 붕괴 아니냐고. 상대가 너무 강하잖아.’
예기치 못한 뒤통수에 생각이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정령 소환 시도를 꾸준히 했으나 지팡이의 영향 탓인지 소통조차도 불가능했다.
‘어쩌지…….’
흰둥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도 이미 상대에게 무장해제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나는 흰둥이의 상태를 보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캬악!
어느새 흰둥이는 본체에서 고양이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목에 찬 구속구를 앞발로 긁으며 괴로워했다. 그가 고양이로 돌아간 건 저 구속구 탓인 듯했다.
애처로운 울음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나는 발악에 찬 음성을 토해 냈다.
“흰둥이를 놓아줘! 괴로워하잖아!”
“그저 얌전해지게 했을 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저 아이는 본디 제 것이던 터라 다루는 법을 꽤 잘 알거든요.”
“로즈 나탈리!”
그 말은 과거에 신수를 먼저 발견한 게 그녀라는 뜻이었다.
내가 벌게진 눈으로 항변했으나 나탈리 후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헛소리를 지껄였다.
“너무 나를 원망하진 마세요.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몸이 지금껏 살아 있던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요?”
“뭐라고?”
“맞잖아요. 원래보다도 더 오래 살아 놓고선 더 이상 욕심부리면 안 되지.”
나는 후작의 기억이 돌아왔다는 걸 확신하며 악에 받친 음성을 쏟아 냈다.
“그게 지금 당신이 하려는 짓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데!”
내가 죽더라도 나탈리 후작에게 좋은 일을 하고 죽고 싶진 않았다. 너무 분해 짓씹은 입술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이렇게 무기력해진 게 너무 오랜만이라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하하하!”
나탈리 후작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제단에 가득 울려 퍼졌다.
“진짜 예식을 시작해 볼까요?”
이제 보니 예식이 셋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거짓인 모양이었다. 그저 준비물을 모으는 과정에서 시간을 벌려던 게 분명했다.
나는 그녀가 기어이 아델쿠스를 소환하려 함을 알고 소리쳤다.
“미쳤어, 당신. 제대로 돌아 버렸다고!”
“미친 건 이 세상이지 내가 아니에요.”
나탈리 후작은 내 말에 콧방귀를 뀌며 흑마법사들에게 턱짓했다.
이윽고 흑마법사들이 나를 제단 위에 올렸다.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차렷 자세로 칭칭 묶었다.
공격할 수단을 모조리 뺏긴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본격적인 예식이 시작되려는지 세 사람이 누운 제단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원형 바닥에 거대하고 웅장한 문이 소환되었다.
아마도 저기서 아델쿠스가 나오려는 것 같았다. 문은 천천히 열렸다.
다친 부위에서 계속해서 피가 흘렀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나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내가 이렇게 당할 줄 알고?’
가까스로 몸을 뒤척여 주머니에 손을 넣은 나는 무언가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