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65)화 (165/177)

#165.

아키드가 향한 곳은 엠버 성이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외부와 달리 내부는 딴판이었다.

흡사 위험한 술법을 쓰는 공간처럼 탁 트인 곳에는 기이한 고대어가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소식 들었습니다.”

코비슈타인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앞서 에단을 보낸 후라 상황을 모두 전달받은 덕이었다.

이미 진행 중인지 마석이 웅웅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코비슈타인이 말했다.

“그나마 박물관에 있던 흑마법사들의 아티팩트를 참고해서 구현하기는 했는데……. 사실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데미안은 수도로 온 직후, 아키드와 함께 카타콤에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카타콤에 진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한 행동이었다.

남들 눈에는 데미안이 드디어 엠버 성을 갈아 치우려나 보다 했기에 위장하기에도 적합한 장소였다.

원래라면 좀 더 완벽해진 후에 실행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급했다. 아키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실패하면 안 돼.”

“……노력해 보겠습니다.”

실패하면 위험해질 것 같은 직감을 받은 코비슈타인이 비장하게 대답했다.

다행히 하델루스령에는 마석이 풍부해 이 거대한 아티팩트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천문학적인 분량의 마석을 지원할 수 있었다.

아티팩터로서 이만한 아티팩트를 구현할 기회가 주어진 건 엄청난 천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 확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수치로 따지면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코비슈타인이 심혈을 기울이는 때였다.

― 까아악.

어디선가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로에나가 사라진 이후 침실에 처박혀 있던 키나였다.

아키드는 키나의 다리에 묶인 주머니를 보고 냉큼 두 팔을 뻗었다.

키나는 평소답지 않게 무사히 착지하며 곧장 다리를 내밀었다. 원래라면 간식을 줄 때까지 편지를 주지 않을 텐데 이상했다.

아키드는 단박에 송신인을 알아채고 두 눈을 홉떴다. 로에나가 주로 사용하는 주머니인 탓이었다.

냉큼 주머니를 빼 내용물을 확인했다. 주머니에는 웬 아티팩트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로에나가 자주 쓰던 편지지였다.

“이건 마법 저장 아티팩트인데.”

코비슈타인이 아티팩트를 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아티팩트를 살피는 동안 아키드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카타콤에서 제이드를 만났어요. 마침 중간 목적이 같아서 협조하게 되었고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로에나는 무사해 보였다. 뒤이어 그녀는 나탈리 후작의 계획을 상세히 적어 두었다.

아키드는 세체르를 통해 아델쿠스 소환을 위한 예식이 이미 시작한 걸 알고 있어 크게 놀라지 않았다.

문제는 그 뒤였다.

[그들은 저뿐만 아니라 캐서린도 매개체로 이용할 계획이에요. 이미 캐서린이 납치된 정황을 확인한 이상 제가 나서는 수밖에 없고요.

실은 캐서린이 루이스의 후예거든요.]

아키드는 로에나가 또다시 카타콤으로 내려갔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캐서린 에셀이 별의 루이스였다니.

루이스가 힘을 잃은 후, 다들 빛 속성 마법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여겼다.

방계를 후계자로 들인 이후 급속하게 가문이 쇠퇴한 탓이었다.

모두가 루이스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하며 그 힘에 대해서는 잊고 지냈었다.

한데 이렇듯 몇 세대를 거쳐 재탄생될 줄이야.

미처 몰랐던 마법의 생리였다.

루이스의 힘은 원상복구. 그건 단순한 치료를 넘어선 기적의 영역이었다.

떨어진 팔다리를 재생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초대 루이스의 경우엔 죽은 사람을 살릴 정도로 아주 막강한 힘이었다.

한데 메이벨이 초대 루이스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인 점은 로에나가 아무 계획도 없이 카타콤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동봉한 아티팩트에 카타콤으로 출입할 수 있는 흑마법을 저장해 두었어요.

코비에게 보여 주면 아마 카타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입장 제한 마법도 속성을 따면 금방 해제 가능할 테고요.]

“오오!”

때마침 코비가 아티팩트 속 마법의 정체를 알아채곤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아티팩트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거라면 걱정 없이 카타콤을 강제로 열 수 있겠어요! 설마 이걸 이런 식으로 응용하실 줄이야. 대공자비님께선 천재인 게 분명합니다!”

코비슈타인은 신이 나서 아티팩트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로에나가 동봉한 아티팩트는 마법 저장 아티팩트. 정령술을 좀 더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만들었던 대용량 아티팩트였다.

팔찌만으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워 대비용으로 만든 것인데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

아키드는 진행 속도가 붙는 걸 보면서도 안심하지 못했다.

로에나가 카타콤에 가서 무얼 하려는 건지 편지에 적지 않은 탓이었다.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아키드는 씁쓸했다. 그녀가 유이나이면서 로에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과거 결혼 1년 차 때가 불쑥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녀가 북부로 온 첫날, 침실에서 나눈 대화가.

‘각방이네요……? 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요?’

‘혼자 쓰시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부인께서도 저와 한방을 쓰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달갑지 않다고?’

‘정략혼은 으레 이렇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저와 억지로 결혼했다는 뜻이네요.’

‘저는 남편으로서 최선을…….’

‘필요 없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따위 안 했어.’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거다. 로에나가 이유 없이 쌀쌀맞게 굴고 제 출신에 대해 비방했던 건.

말을 걸면 걸수록 험한 말만 되돌아왔다. 첫날부터 시작된 냉전은 1년 가까이 이어졌고, 아키드 역시 진저리를 칠 즈음 그녀가 변했었다.

그리고 몰랐던 사실을 하나둘 알면서 아키드는 미안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성이었다. 에이프릴 가문의 분위기로 보아 모든 게 낯설고 스트레스였을 터.

‘델루스 꽃 알레르기가 있던 것도 숨겼었지.’

모난 모습을 자꾸만 드러내다 보면 자기방어적으로 굴기 쉬웠다. 게다가 그때의 그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적응 중이라 로에나의 심정을 이해할 여력이 없었고.

당시의 아키드는 신경 쓸 게 많았다. 사생아라는 꼬리표와 냉대하는 부모 밑에서 그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아키드는 그녀가 이 결혼을 원해서 온 게 아니라고 여겼다. 가문 간의 정략혼인 데다 결혼식 내내 제 눈을 황급히 피했으니까.

어쩌면 둘 다 극한 상황에 몰려 서로를 온전히 의지하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다.

“다 되었습니다!”

때마침 코비슈타인이 콧김을 훙훙, 내뿜으며 외쳤다. 아까와 달리 아티팩트의 고대어가 일부 수정되어 있었다.

“이제 대공자님의 마나만 주입하면 끝입니다.”

“훌륭하군.”

아키드는 상념을 떨치며 아티팩트 위에 손을 얹었다.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마나를 주입하자 마법진이 검게 물들었다. 동시에 주변이 크게 진동했다.

이내 바닥이 쩍, 갈라졌다. 그 아래로 기다리던 카타콤이 보였다.

공간을 분리하는 아티팩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도로 닫히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된 걸 확인한 아키드는 코비슈타인에게 당부했다.

“닫히지 않게 단단히 막고 있어. 뒤따라올 사람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날을 위해 마석도 잔뜩 비축해 두었잖습니까.”

코비슈타인이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안심하란 몸짓을 취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코비슈타인이 당황한 음성을 토해 냈다.

“어, 어어, 이게 왜 이래?”

* * *

내가 카타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캐서린과 메이벨이 제단 위에 올려진 후였다.

전과 달리 신전 분위기가 어두침침했다. 둘 다 의식을 잃은 상태 같았고, 예식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직 제단이 이상하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구나.’

이대로라면 중도에 예식이 멈출 터. 그때를 노려 캐서린과 메이벨을 구할 예정인 나는 제이드와 함께 기척을 숨긴 채 대기 중이었다.

카타콤에 있는 제단은 고대부터 존재하던 아델쿠스의 제1 신전이었다.

삿된 힘이 담긴 예식을 멈추기 위해선 나탈리 후작이 든 지팡이를 빼앗아야 했다.

저 지팡이가 이 예식을 진행할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이었으니까.

“저 지팡이는 흑마법사의 수장에게 내려지는 물건입니다. 예식을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아티팩트죠.”

제이드가 예식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지팡이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했다.

아델쿠스의 유물인 지팡이는 삿된 힘의 기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저걸 부술 수 있는 건 정령사인 나뿐이었다.

“저거만 부수면 다 끝난다는 거죠?”

제이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제단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할 겁니다. 당황하는 순간을 노려 후작을 공격해야 합니다. 다른 데 신경 쓰지 않도록 뒤에서 엄호하겠습니다.”

“좋아요. 맡겨만 줘요.”

나는 흰둥이와 눈빛을 교환하며 예식이 멈추길 기다렸다.

잠시 후, 제단에 문제가 생긴 걸 눈치챈 이들이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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