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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61)화 (161/177)
  • #161.

    지상에서 무슨 난리가 벌어지는지 모른 채 나는 여전히 카타콤이었다.

    원래라면 제이드를 협박해서라도 지상으로 곧장 돌아가려 했으나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한 탓이었다.

    그중 하나는 이미 아델쿠스 소환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염탐할 때 얼핏 듣긴 했으나 아직 시작하지 않은 줄 알았다.

    나는 제이드의 설명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마계의 문을 여는 동시에 예식을 진행했단 말이에요?’

    ‘예. 아델쿠스 소환은 세 번의 예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우선 소환에 필요한 피를 모으는 거죠.’

    ‘설마 성수대에 있던 피를 말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성수대가 피로 가득 차면 1차 의식이 완성되는 겁니다. 이미 필요한 만큼 가득 찼으니 1차 의식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뒤이어 성수대에 고인 피가 목숨값이라는 말에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 위에서 사망자가 몹시도 많이 나왔다는 뜻이니까.

    하긴 무방비한 상태로 마수 떼와 맞닥뜨린 현장이었다. 대부분은 발악 한 번 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 나갔을 터.

    나는 흑마법사들이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미 예식이 시작되었다면 이대로 지상에 올라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카타콤에서 벌어지는 예식을 막는 게 더 중요했다.

    다행히 제이드도 아델쿠스 소환이 위험하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기회를 봐 방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제이드를 향한 나탈리 후작의 감시가 예상보다 강화되어 메이벨과의 거래를 이행하기 어려워졌다고.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나였지만 나는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것으로 내 생명을 연장해 보았다.

    이미 벌어진 일에 잘잘못을 따져 봤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만 깎아 먹는 거니까.

    게다가 현재 두 번째로 내 발목을 이곳에 붙든 이유가 하나 더 있었으니―

    “금기의 부작용을 옮기려면 몇 가지 아티팩트가 필요합니다. 아까 뺏어 가신 게 그중 하나이고, 나머지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습니다.”

    제이드의 말을 들은 나는 눈을 가느스름히 뜨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걸 전달하려던 계획이 후작의 감시로 어그러진 거군요.”

    “그뿐만 아니라 남은 아티팩트마저도 훔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그 물건을 어머니께서 은밀히 빼돌리셨으니까요.”

    “후작이 빼돌렸다고요?”

    “평소엔 관심도 없던 물건이라 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저지른 악수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역시 내가 그의 정체를 후작에게 흘린 탓인 것 같아서였다.

    ‘한정된 정보 안에서 내가 너무 후작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 주고 말았구나.’

    제이드에게 괘씸죄가 붙어서 너무 한쪽을 겨냥해 버렸다.

    또한 카타콤에서 벌어지는 모자간의 은근한 알력 다툼까진 몰라 일어난 패착이었다.

    본의 아니게 일이 꼬이게 만든 것 같아 착잡했지만 일단 수습하는 게 중요했다.

    아직 예식을 막을 방도가 남아 있다고 하니 해 볼 만한 전투였다.

    “그래서 이미 진행 중인 예식을 막을 방법이 있기는 하다는 거죠?”

    “일단은요. 애초에 예식에서 최종적으로 필요한 건 부작용을 막을 매개체와 제물이니까요.”

    제이드가 나를 일별하며 마지못해 속내를 드러냈다. 나는 제이드의 계획을 간파하고 눈을 가느스름히 떴다.

    “그 말은 처음부터 나를 이곳에서 내보낼 계획이었다는 거군요. 예식에 필요한 매개체라는 건 정령사인 나일 테니까요.”

    “예. 아마 저와 메이벨의 계약이 들켰다면 메이벨도 조만간 이곳에 끌려올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제물이니까요.”

    나는 돌아가는 상황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안 그래도 내가 진짜 로에나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아 벅찬 상태였다.

    그 와중에 흑마법사들의 미친 짓까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혹시 메이벨이랑 연락하는 방법은 아예 없나요?”

    “암호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제이드가 협조적으로 대답할 무렵이었다. 나를 보호하던 정령이 슬쩍 서두를 던졌다.

    ― 있잖아, 로에나. 진지한 와중에 미안한데, 할 말이 있어.

    “응?”

    ― 아까 내가 삼킨 아티팩트 말이야. 아무래도 가짜 같아.

    “가짜라니?”

    ― 아티팩트 특유의 파동이 없어. 마치 대공의 서재에서 봤던 모조품처럼 텅 빈 느낌이랄까.

    “!!”

    정령이 날개를 퍼덕이며 아티팩트가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마저도 후작의 손에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나는 순간적으로 섬뜩한 생각에 얕은 신음을 내뱉었다.

    어쩌면 나탈리 후작이 예식 때 노린 게 나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든 탓이었다.

    하필 이때 세체르가 했던 말이 떠오르며 내 섬뜩함을 부추겼다.

    ‘이곳은 흑마법으로 시간이 되돌려진 세계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전생을 기억하는 자가 늘어날 겁니다.’

    ‘제일 먼저는 시전자와 관계된 이들이 하나둘 기억을 떠올리겠죠. 계기만 있다면 말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나탈리 후작이 감옥에 있던 악녀에게 금서를 전해 준 자라면, 지금쯤 전생을 기억하게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사실 금서를 전달해 줄 만큼 고위급 흑마법사가 드물기도 했고.

    만에 하나, 후작이 전생을 기억했다면 지금의 캐서린이 루이스라는 것도 단박에 알아챘을 터.

    그렇다면 나탈리 후작이 노린 매개체가 나뿐만이 아닐 경우를 배제할 수 없었다.

    “혹시 메이벨이 금기를 어기게 만든 흑마법사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나요?”

    확인차 묻는 말에 제이드는 청천벽력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나탈리 후작이 금서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

    ‘처음부터 나만 노린 게 아니었구나!’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제이드를 붙들었다. 지금은 한가하게 이곳에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 좀 위로 올려 줘요! 지금 당장 캐서린에게 가야 하니까!”

    * * *

    그 시각, 인트라비아 1지구의 하델루스 별장 안. 침실에는 데미안이 창백한 얼굴로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옆에는 기사단장인 제널드와 집사장 아실, 그리고 아키드가 대기했다.

    하나같이 어두운 얼굴인 반면 데미안은 별일 아니라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다들 죽을상이야. 누가 보면 내가 죽은 줄 알겠군. 오호라, 설마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건가?”

    “장난하실 때가 아닙니다. 마나독이라지 않습니까? 이대로면 해독을 해도 예전처럼 마법을 사용하시긴 힘들지도 모릅니다.”

    제널드가 분통을 터트리자 데미안이 너스레를 떨며 받았다.

    “그간 내가 너무 완벽해서 신이 질투라도 했나 보군. 뭐, 이 정도 능력치 하향으로 무너질 내가 아니지만.”

    “전하께선 대체…….”

    “딜란도 이겨 냈는데 이깟 마나독을 못 이길까?”

    태연한 반응에 제널드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말을 삼켰다.

    그때 데미안이 누군가를 기다리듯 거듭 문가를 힐끗거렸다. 이를 본 아키드가 말했다.

    “어머니라면 잘 계십니다.”

    “안 물어봤는데.”

    “문을 부술 듯이 노려보기에 한 말입니다.”

    아키드의 촌철살인에 데미안이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로에나가 사라진 일로 내내 죽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저가 엘레나를 신경 쓰는 건 귀신같이 알아챈 모양이다.

    데미안은 문을 노려보던 것을 멈추고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날 이후 엘레나는 침실에 한 발자국도 걸음 하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답변이었다. 데미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기어이 그의 곁을 떠나겠다는.

    ‘그건 진짜 싫은데.’

    그나마 안팎이 소란하여 당장 이혼 서류를 들이밀지는 않는 눈치였다.

    아직 빌어 볼 여지가 남아 있으나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로에나라도 곁에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

    데미안은 사라진 로에나를 떠올리며 나직이 물었다. 그쪽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라 속이 말이 아니었다.

    “새아가 소식은 아직 없나?”

    “예…….”

    “하필 이런 때에 성녀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져서 접근도 어렵군.”

    멋모르고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가 결국 물려 버린 형국이었다.

    메이벨이 흑마법사와 연루되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데다 신전을 어떻게 구슬렸는지 다들 그녀를 보호하려 들었다.

    게다가 로에나가 사라지자마자 프로디움 근처에 오염이 거세져 파블로 일행이 수도로 오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미리 짜고 실행한 것처럼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이래선 신전과 대치하지 않는 한 그녀를 붙잡을 수도 없는 실정.

    솔직히 말하면 로에나가 사라진 터라 대공가는 그쪽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데미안이 미간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 세체르라는 자는 아직도 찾고 있나?”

    “예.”

    아키드가 짧게 대답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로에나가 사라지자마자 세체르부터 수소문 중이었다.

    세체르는 제례가 시작되자마자 자취를 감추었다. 떠나기 전 로에나와 만났다는 걸 알게 된 아키드는 노파를 잡으려 혈안이었다.

    제례 당시 이상한 반응을 보이던 로에나가 신경 쓰였다. 아키드는 그게 세체르와 관련 있다 판단했다.

    뭔가 충격받은 듯한 얼굴이었는데, 당시 곧장 추궁하지 않은 게 몹시도 후회되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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