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59)화 (159/177)

#159.

나는 물건의 정체를 듣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인데?’

대충 두 사람이 뭔가 작당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제이드가 메이벨에게 전해 달라 한 물건은 짐작한 대로 캐서린에게 위험한 물건이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저지르려는 짓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당사자가 모른다는 점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그쪽 말은 캐서린 에셀에게 메이벨이 지닌 금기의 부작용을 전이시키려 했다는 거예요?”

부작용이 무슨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할 수 있는 물건인 줄 아나.

애초에 금기를 저지른 건 지금의 메이벨이었다. 그 문신을 옮길 수 있었다면 세체르가 영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지 않았을 터.

하지만 제이드는 그 일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간 메이벨에게 오염을 받아 왔던 방식 그대로 캐서린 에셀에게 옮기려 했습니다. 어쨌든 그자도 금기의 당사자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여겼고요.”

“그러다 캐서린이 죽을 수도 있어요.”

제이드는 내 말에 반박할 생각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알고도 메이벨을 돕는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이기적일 수가 있지?’

나는 이 일이 위험한 걸 떠나서 아무 잘못도 없는 캐서린에게 또다시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메이벨과 그녀를 돕는 제이드에게 환멸을 느꼈다.

가뜩이나 잘 지내고 있던 아이를 영혼까지 바꿔 과거로 끌어와 놓고, 이젠 아픈 것도 다 몰아주겠다니.

내가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짓자 제이드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고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겁니다.”

“…….”

“분명 속으로 저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시겠죠.”

“잘 아시네요.”

내가 곧장 대답하자 제이드가 입술을 달싹였다. 설마 면전에 대고 긍정할 줄은 몰랐나 보다.

나는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메이벨에게 줄 수 없어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제이드가 도로 물건을 가져가려 할 때였다. 나는 정령에게 물건을 던졌다.

정령들이 눈치껏 물건을 삼키자 제이드가 날카롭게 항변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제이드 씨, 지금 그쪽이 하려는 일이 대륙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알고나 있어요?”

기세에 질세라 내가 더욱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뱉자 제이드가 움찔했다. 나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현 사태를 설명했다.

“만약 캐서린이 그쪽 뜻대로 부작용을 옮기다 죽었다면 이 대륙은 끝이었어요.”

“끝이라뇨?”

“대재앙이 왜 일어났는지 흑마법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나 보죠. 애초에 자기들이 벌인 일을 해결하거나 뉘우칠 생각은커녕 여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지냈다는 거잖아.”

“알아듣게 설명하십시오.”

“부작용은 그런 얕은 잔꾀로는 사라지지 않아요. 한 번 금기를 어긴 자는 죽어서도 죽은 땅으로 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죽어서도 죽은 땅이 된다고요?”

“그것도 수습 불가능한 죽은 땅이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의지도 없으니 손쓸 도리가 없어진다고요.”

“…….”

“애초에 대재앙이 일어난 이유도 무턱대고 제물을 죽여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말 다 했죠.”

“……!”

“이제야 그쪽이 하려 한 일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감이 오세요?”

원색적인 힐난에도 제이드는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는 대재앙이 일어난 경위 같은 건 모르는 듯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동안 나도 다른 것을 고민했다.

‘나탈리 후작도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진행하려는 걸까.’

만약 알면서도 아델쿠스를 소환하려 하는 거면 제일 미친 자는 그 여자였다.

어쨌든 자신이 하려던 일이 무모했다는 걸 알았으니 제이드도 더는 메이벨의 미친 계획에 협조하지 않을 터.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고 여긴 때였다. 제이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메이벨의 계획을 방해한다고 해도 다가올 재앙을 피하기는 요원할 테니까요.”

“무슨 뜻이에요?”

“벌써 어머니가 예식을 시작하셨으니까요. 저도 직전에야 그 예식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 * *

때마침 열린 마계의 문으로 인트라비아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오염까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메이벨은 여기저기 도망치는 사람들 틈에서 단 한 사람만을 찾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찾던 상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캐서린은 전생의 성녀답게 이 난리에도 도망가지 않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으니까.

‘황태자 전하께서 크게 다치셨어요! 지금 들것에 실려 임시 대피소로 가셨어요!’

메이벨은 캐서린을 유인하기 위해 제로니스를 이용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로 끔찍이 아끼는 이들이니 그녀를 간단히 속일 수 있었고.

캐서린은 아무런 의심 없이 메이벨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곳이 제 묫자리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점차 인적이 드물어지자 캐서린이 의아한 음성을 내뱉었다.

“메이벨, 정말 여기에 대피소가 있다고?”

“물론이죠. 거의 다 왔어요.”

대피소 근처라기엔 사람이 너무 없었다. 캐서린이 아차 싶어 의심의 눈초리로 메이벨과 거리를 벌릴 때였다.

돌연 발이 묶인 기분이 들어 땅을 쳐다보았다가 기겁했다. 새까만 뱀이 그녀의 다리에 똬리를 틀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탓이었다.

“메, 메이벨!”

캐서린의 애탄 음성에 메이벨이 빙글 돌며 웃음 지었다. 어느새 주변엔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여전히 잘 속네. 사람 의심하지 않는 버릇은 이쯤 되면 고쳐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하구나, 넌.”

메이벨의 비아냥거림에도 캐서린은 그저 멍하니 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캐서린이 그녀를 직시하며 말했다.

“……여전한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어머, 기억이 얼추 돌아왔나 봐?”

메이벨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반면 캐서린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기억이 다 돌아온 게 아닌 탓이었다. 캐서린은 여전히 자신의 존재가 헷갈렸다.

자신이 캐서린 에셀인지, 아니면 메이벨 루이스인지를 말이다.

차라리 메이벨과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 와중에 함정에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의 말대로 스스로가 한심하고 바보 같았다.

어느새 뱀은 덩치를 키워 캐서린을 꽁꽁 묶었다.

차갑고 축축한 뱀의 피부가 살에 닿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메이벨이 캐서린에게 성큼 다가서며 말했다.

“기억이 돌아왔다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대강 알고 있겠네.”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메이벨이 제이드의 부하에게서 받은 물건을 꺼내 들었다.

족쇄처럼 생긴 구속구에는 기이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 캐서린은 몸을 바르작거리며 반항했다.

“이것 놔! 놓으라고!”

“뼈가 으스러지고 싶은 게 아니면 가만히 있는 게 좋아. 내 사역마들은 성미가 급해서 힘 조절을 잘 못 하거든.”

그 말과 함께 캐서린의 몸을 압박하는 힘이 더욱 세졌다.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에 캐서린이 비명을 내질렀다.

메이벨은 상대가 신음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목에 구속구를 채우며 태연히 말했다.

“제이드가 그러더라고. 네가 나 대신 제물이 되어 줄 유일한 존재라고.”

“허, 허억!”

“어차피 넌 내 것이라면 뭐든 뺏고 싶어 했잖아. 그러니까 이것도 네가 가져가야 옳지 않겠어?”

“난 뺏은 적 없어!”

“뺏긴 사람은 있는데 뺏은 사람은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어느새 메이벨의 목소리에 광기가 들어찼다.

당장에라도 이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벗어나고, 눈앞의 여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이 빌어먹을 부작용 때문에 캐서린에게 손도 대지 못했지만 이것만 있다면 다른 문제였다.

구속구는 캐서린의 목에 채워지자마자 빛이 나며 사라졌다. 하지만 캐서린은 여전히 목에 구속구가 채워져 있는 이물감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아참, 선물 하나 더 있다.”

메이벨이 즐거운 유흥거리라도 되는 양 품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오래전 로에나에게 쓰려다 실패했던 독이었다. 캐서린은 한눈에도 수상한 약병에 먹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맨몸으로 메이벨의 사역마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우욱!”

이어지는 뱀의 괴력과 메이벨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캐서린의 입이 허무하게 열려 버렸다.

“하하하하!”

메이벨의 깔깔거리는 음성과 함께 캐서린의 목구멍으로 유리병에 든 액체가 모조리 쏟아졌다.

“컥, 커헉!”

“옳지. 잘 먹네.”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끔찍했다. 어느새 캐서린의 눈가엔 눈물이 범벅되어 있었다.

메이벨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놓아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만 현장으로 돌아가 수습해야 했다.

“콜록! 콜록!”

캐서린이 몇 차례 고통을 호소하다 그대로 쓰러졌다.

더 두고 볼 것도 없는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은 메이벨이 후련하다는 듯 작별을 고하며 뒤를 돌았다.

“잘 가, 메이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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