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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43)화 (143/177)

#143.

다음 날, 나는 천문관에서 천체 기록을 확인했다. 역시나 캐서린이 태어난 날 별똥별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었다.

이로써 여주와 악녀의 몸이 바뀌었다는 게 확실시된 상황.

하지만 나는 선뜻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내가 빙의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지금 당장 캐서린으로 살고 있는 메이벨이 걱정되어서였다.

캐서린은 아직 꿈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반면 희대의 악녀와 성녀의 몸이 바뀌었다는 걸 안 나는 다이어리를 다시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모든 꿈속에서 메이벨과 캐서린이 등장했다는 거.

해서 캐서린은 자신이 메이벨을 괴롭히는 꿈을 꾼다고 여겼지만 실은 반대였다.

그녀는 과거 저를 괴롭히던 캐서린의 꿈을 꾸는 것이었다. 즉, 전생의 기억인 셈이었다.

만약 가족인 줄 알았던 에셀가가 실은 제 전생의 원수 가문이라는 걸 캐서린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분명 심경이 복잡해질 터였다. 전생과는 별개로 캐서린으로서 산 지금의 삶도 그녀의 일부이니까.

물론 그녀에게 과몰입하는 건 내 상황과 메이벨의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은 탓이었다.

나 역시 타인의 몸으로 오랜 시간 살아오고 있었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나보다도 캐서린의 충격이 더 클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며 아카데미 입구에서 마차를 대기시켜 캐서린을 기다렸다.

잠시 후, 캐서린이 메이벨과 함께 나란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냉큼 마차에서 내렸다.

“캐시!”

“아, 로에나! 벌써 와 있었네?”

캐서린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곁에 있던 메이벨이 미묘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정령사라는 걸 알게 된 이후 첫 만남이라 경계심이 든 모양이다.

물론 지금 당장 메이벨을 어찌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어떤 금기를 어겼는지 알게 되었다 해도 일단 처분을 유보했으니까.

어차피 메이벨 하나를 처리한다고 끝날 일은 아니었다. 흑마법사 세력 전체를 도려내야 과거에 있던 대재앙이 사라질 터.

그 일을 위해선 우선 시간이 필요했다. 상대를 무력화시킬 방법이 아직은 부족하니까.

“메이벨도 오랜만이야. 아카데미에 편입한다는 소식은 들었어. 정신없지?”

나는 메이벨에게 밝게 인사했다. 마치 그녀가 흑마법사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처럼.

메이벨이 전과 같은 내 태도에 안심한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네. 아직 적응 중이에요. 모르는 것투성이였는데 에셀 영애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전보다 눈치를 많이 보는 걸 보면 나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하긴 나는 지금쯤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살아 있는 것도 모자라 정령사이기까지 하니 얼마나 두려울까.

나 역시 원작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면 당황하곤 했다. 내가 알던 미래가 아니게 된다는 건 대비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적어진다는 뜻이니까.

나는 메이벨에게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드레스 예쁘다. 역시 메이벨은 사제복을 입었을 때보다 드레스를 입은 게 더 자연스러운 거 같아.”

* * *

메이벨은 로에나의 말에 입 안의 여린 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평소와 같은 듯하면서도 전에 없던 여유가 생겨서 몹시 불쾌했다.

“그런가요? 저는 사실 사제복이 더 편해서.”

“그래? 나는 네가 화려한 옷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전혀요.”

메이벨은 로에나의 떠보는 듯한 태도에 가까스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뭔가 알고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사제복보다 드레스를 더욱 좋아하는 게 맞으니까.

물론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다. 메이벨은 최근 신경 쓸 일이 많아 예민해진 모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행히 로에나는 저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간 나탈리 후작과 거리를 유지한 게 도움이 된 셈이었다.

그때 로에나가 물었다.

“아참, 이번 제례 때 봉화를 올린다고 들었어. 대단한데?”

“과찬이세요.”

“대륙의 오염을 모조리 없앤 기적의 성녀님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지.”

기적의 성녀라는 단어에 메이벨은 움찔했다.

그러한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 다름 아닌 로에나인 탓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메이벨은 로에나의 의중을 살피려 교묘히 화제를 돌렸다.

“아, 저도 소식 들었어요. 나탈리 후작께서 흑마법사였다죠. 납치까지 당하셨다고 들었는데 괜찮나요?”

“메이벨은 소식이 참 빠르구나.”

“해링턴 백작님께서 알려 주셨거든요.”

“응. 괜찮아, 일단은.”

로에나가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를 본 메이벨의 눈이 그와 반대로 빛이 났다.

‘그때 뭔가 일이 생긴 걸까?’

당시 나탈리 후작의 인형들이 모두 부서지고 현장에 있던 흑마법사들도 모두 죽임당했다고 들었다.

해서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후작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몰랐다. 메이벨이 지그시 바라보자 로에나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실은 그때 흑마법사가 극한에 몰려서 나한테 딜란을 먹였거든. 진짜 죽을 뻔했지 뭐야.”

“로에나, 그게 정말이야?”

잠자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캐서린이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딜란의 심각한 부작용을 잘 아는 탓이었다.

로에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메이벨은 로에나가 딜란을 먹었다는 말에 쾌재를 불렀다. 그녀 역시 딜란에 의한 부작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딜란의 부작용으로 각성이 이르게 진행된 모양이었다. 해서 몸에 이상이 온 듯하고.

그런 와중에 정령사인 걸 밝히는 게 부담스러우니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켜 시간을 끈 것 같았다.

몸속 독소를 해독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하지만 이내 로에나가 최근에 대규모 정화를 시도한 일이 떠오르자 메이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의구심은 로에나의 이어지는 말로 해결되었다.

“응. 난 딜란이 뭔지 몰랐어서 생각 없이 무리를 좀 했더니 요즘 상태가 너무 안 좋네.”

‘이거 완전 바보 아니야?’

메이벨은 로에나의 무모함에 속으로 피식 조소했다.

딜란을 먹어 몸이 안 좋은 상황인 줄도 모르고 정화를 시도해 상태가 더 악화된 모양이었다.

하긴 계속 북부 쪽을 갉작갉작 괴롭혔으니 조급해질 만도 했다. 한 번에 해결하고 싶었겠지.

메이벨이 두 사람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흑마법사들의 기지 덕에 계획이 수월해졌다.

‘제법 쓸모있는 짓을 하고 죽어 주었네?’

그 말에 놀라 로에나를 붙들고 걱정하는 캐서린을 보며 메이벨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제 걱정이나 하지 남 걱정할 정신이 있다니 퍽 우스웠다.

애초에 그녀의 목표는 눈앞의 캐서린이었다.

다가올 위험도 모른 채 행복에 겨워하는 저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이번에는 꼭 보고야 말겠다.

메이벨이 다가올 미래를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 * *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메이벨의 표정을 기민하게 살폈다.

내 상황이 안타까운 듯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얌전을 떨었지만 실은 웃고 있다는 걸 알아챈 탓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아까보다 경계를 늦추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러한 정보에 의심부터 했을 텐데 어지간히 몰려 있는 모양이었다.

딜란을 먹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저쪽에서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당시 아키드가 제대로 날뛰어 준 덕에 증거조차 남아 있지 않은 탓이었다.

‘악녀의 목표는 역시 진짜 메이벨이려나.’

나는 캐서린과 메이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악녀는 제로니스에게 여전히 호의적이었다. 원작에서도 그녀는 제로니스에게 늘 사랑한다고 했었다.

정작 사랑을 받는 제로니스는 그녀의 집착에 진저리를 쳤지만. 그녀의 사랑은 아집과 집착뿐이었다.

황태자비라는 자리에 대한 열망과 갖지 못한 자에 대한 집착이 그녀를 점점 망가뜨렸으니까.

‘설마 악녀가 막판에 흑마법을 사용했을 줄이야.’

원작에선 감옥에 갇히고 끝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후에 누군가 그녀에게 흑마법을 알려 준 모양이었다.

‘우선 흑마법사들의 꿍꿍이가 무엇인지도 알아내야 해.’

그러려면 하루빨리 카타콤의 위치를 파악해 흑마법사들을 일거에 쓸어버려야 했다.

정령들은 제이드가 갑자기 땅으로 훅 꺼졌다고 했다. 그가 대지 속성 마법을 구사할 리는 없으니 카타콤이 지하에 있다는 뜻.

이에 흰둥이가 그 주변의 땅을 뒤집어엎다시피 했지만 카타콤의 입구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말인즉, 평범한 방식으로는 카타콤에 진입조차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왜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았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네.’

어쩌면 흑마법사만이 지하의 카타콤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운 좋게 누구 하나를 붙들어 함께 내려간다 해도 다시 뭍 위로 올라오는 방법을 모르면 매장될 뿐이었다.

‘그럼 다 기어 올라오게 만들면 되지.’

나는 흑마법사 집단을 도발할 만한 훌륭한 미끼를 잘 알고 있었다.

제이드 엠버. 엠버가의 사생아로 입적조차 못한 비운의 흑마법사.

나는 그의 정체를 빌미로 흑마법사 집단을 둘로 분열시켜 그들 스스로 바깥으로 기어 나오게 할 셈이었다.

우선 그러려면 제이드의 시선을 교란하는 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나는 한 사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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