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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41)화 (141/177)
  • #141.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애초에 메이벨이 스티그 섬에서 발견되었던 것부터가 의심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원작의 주인공인 성녀라고 단단히 믿고 있던 나는 그 부분을 쉽게 간과하고 말았다.

    그때 내 중얼거림을 들은 정령들이 긍정했다.

    ― 우리 생각도 그래.

    ― 금기를 어긴 흑마법사는 걸어 다니는 죽은 땅, 오염을 흡수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니 신성력인 척하는 것도 쉬웠을 거야.

    이건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메이벨이 금기를 어긴 장본인이었다니.

    아마도 그간 우리 눈을 피해 교묘히 사역마를 움직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궁지에 몰리기 전의 일. 최근 벌어진 일련의 일들로 초조해진 그녀가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 게 덜미가 잡힌 원인이리라.

    물론 그녀가 섣부른 실수를 범하게 만든 건 내 의도였다.

    일부러 나탈리 후작에 관한 의심을 심어 주어 내부 교란이 일어나도록 했으니까.

    그 덕에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어서 통쾌했다.

    “그래. 애초에 내가 알던 메이벨이 아니었어.”

    원작 속 그녀는 흑마법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었다. 빛 속성 마법사이면서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자였으니까.

    사람을 해치는 데서 힘이 생기는 흑마법을 행할 만한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

    한참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무렵이었다.

    ‘난 각성을 못 할 거라 아빠가 챙겨 주신 물건이야. 일종의 위장품인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각성을 못 하다니?’

    ‘그게 내가 태어날 때 불꽃이 일지 않았대. 힘이 없다는 뜻이지.’

    문득 몇 년 전 캐서린과 했던 대화를 떠올린 나는 입을 벌린 채 경악했다.

    “설마.”

    그 금기라는 게 몸을 바꾸는 거였을까?

    그래서 지금 두 사람이 바뀌어 있는 상황이라면 벌어진 현상을 이해하기 쉬웠다.

    캐서린이 꾸던 꿈은 어쩌면 그녀가 겪은 전생, 그러니까 몸이 바뀌기 전 기억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게 맞는다면 소름인데.”

    나는 솜털이 쭈뼛, 곤두선 팔을 쓸며 생각했다.

    캐서린은 태어날 때 불꽃이 일지 않았다고 했다. 에셀가의 속성이 불이니 당연히 몸에 문제가 있을 거라 여겼을 터.

    하지만 애초에 그 몸속에 있는 영혼이 불 속성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게 만약 별의 루이스, 빛 속성 마법사의 후예였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각성기가 없는 게 당연했다. 원작 속 메이벨은 몇 세대를 건너뛰어 재탄생한 별의 루이스였으니까.

    애초에 각성기 자체가 필요 없는 영혼이니 각성기가 없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 당연한 사실을 이 세계에서 아는 이는 원작을 본 나뿐이었다.

    그래. 태어날 때부터 캐서린의 몸이 좋지 않았던 건 영혼이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금기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영혼이니 더더욱 몸에 무리가 왔을 테고.

    아픈 게 각성의 문제가 아니라 흑마법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이라면 모든 게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확인할 방법은 하나야.’

    자파르시아의 제자 가문은 태어날 때 각 가문의 속성에 맞는 기적이 일어난다.

    에셀은 불꽃, 하델루스는 암전, 하인트는 지진, 그리고 루이스는…….

    나는 두 영혼이 바뀐 걸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확인해 봐야겠어.”

    캐서린이 진짜 메이벨이 맞는다면 태어날 때 분명 별똥별이 떨어졌을 것이다.

    각성기가 없는 메이벨이라 해도 태어나는 순간에 벌어지는 기적은 똑같았을 테니까.

    내가 막 수도의 천문 기록을 확인하러 가려던 참이었다. 정령들이 날 붙잡았다.

    ― 기다려 봐, 로에나. 아직 알아낸 게 더 있어.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령들이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내뱉었다.

    * * *

    카타콤은 애초에 흑마법사가 아니면 진입하기 어려운 지하에 존재했다.

    오랜 세월 이곳이 요새와 같이 흑마법사들을 지켜 준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제이드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카타콤에 도착했다. 메이벨과 대화한 직후라 더더욱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다녀왔느냐?”

    그때 나탈리 후작이 온화한 얼굴로 제이드를 맞이했다. 제이드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다 문득 메이벨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라면 절대 나탈리 후작을 믿지 않을 거야. 그녀는 미래에 널 철저히 이용하다 죽일 사람이니까.’

    ‘무슨 뜻이지? 후작님께서 나를 죽일 이유가 없을 텐데.’

    ‘이유야 충분하지. 네가 바로 엠버가의 사생아니까.’

    ‘!!’

    메이벨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자신이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출생의 비밀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게 충격적이었다.

    ‘너도 이미 죽은 친모한테 들어서 알 거 아니야. 네 아버지가 죽은 엠버 가문의 가주라는 걸.’

    제이드는 아버지라는 말에 얼굴을 굳혔다. 그녀의 말대로 그는 이미 자신의 친부가 엠버 가문의 가주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거리의 아이로 전전하지는 않았었다. 아주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그에겐 어머니가 있었다.

    유명한 무희였으나 귀족에게 희롱당한 후 버려진 불쌍한 여자였다. 임신한 그녀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제이드를 사랑으로 키우려 했다.

    하지만 가난의 그늘이 그녀를 좀먹었고 결국 그녀는 그가 다섯 살이 되었을 즈음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 그녀는 그에게 값비싼 회중시계를 주며 친부에 대해 알려 주었었다.

    황족 시해를 도모하고 제국을 지탱하는 4대 가문을 위협한 죄로 멸문당한 비운의 가문인 엠버.

    그게 바로 어머니를 나락에 빠뜨리고 저라는 존재를 오물처럼 느끼게 만든 친부였다.

    그는 어머니의 시체를 묻으면서 회중시계도 같이 묻었다. 제 생에 아버지는 없다고 선언하는 행위였다.

    그랬던 친부가 거론되니 제이드는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내가 엠버가의 사생아인 걸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게 후작님이 나를 죽이려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너도 알 거 아니야, 네 친부가 흑마법사들의 전 수장이었다는 걸.’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수장이 아랫사람들에게도 비밀로 한 채 반란을 도모하다 숙청되는 게 애초에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엠버 가문이 정말로 그렇게 멍청했을까?’

    ‘뭐?’

    제이드가 인상을 찌푸리자 메이벨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태도만큼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원수인 줄도 모르고 어머니로 모시고 있는 기분이 어때?’

    ‘?!’

    ‘엠버 가문을 반란으로 몰아 멸문시킨 게 바로 나탈리 후작이야.’

    제이드는 메이벨이 했던 말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나탈리 후작에게 경과를 보고했다.

    “제물이 협조하는 조건으로 제례 때 성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했습니다.”

    “쇼라도 벌이고 싶다는 건가?”

    “예. 그날 마계의 문을 열어 달라고 했습니다.”

    “호오.”

    나탈리 후작이 놀랍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마계의 문을 열어 달라는 건 인트라비아 한복판에 마수가 들끓게 해 달라는 말과 같았다.

    게다가 제례 때는 모두가 무장해제 한 채 경건한 몸가짐으로 의식에 참여해야 했다.

    무방비한 상태로 마수와 맞닥뜨리는 건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척이라도 해 달라고 요구할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성녀께선 화끈하시구나.”

    나탈리 후작이 호갑투를 낀 손가락을 까닥이다 흔쾌히 대답했다.

    “협상에 응하겠다고 알리거라. 마침 계획하던 일과도 뜻이 맞아떨어지니.”

    제이드가 유쾌해 보이는 나탈리 후작을 힐끔 쳐다보다 그대로 부복했다.

    “명을 받듭니다.”

    고개 숙인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 채였다. 그는 메이벨과 했던 진짜 거래는 숨긴 채 자신의 거처인 신전으로 돌아갔다.

    * * *

    “그러니까 제이드가 엠버 가문의 사생아였다고?”

    내가 다시금 확인하는 말에 정령들이 부산스럽게 종알거렸다.

    ― 그렇다니까. 기록에 없던 건 족보에 오르지도 못한 사생아라서 그랬나 봐.

    하긴 사생아를 입적시키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사생아 자체를 수치의 결과라고 여기는 문화 때문이었다.

    해서 아키드의 경우에도 말이 많지 않았던가. 명문가 하델루스에서 대공비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사생아를 후계자로 세웠으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하델루스 대공이 미쳤다고 여길 만한 대사건이었다.

    “그나저나 메이벨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시간을 돌렸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그녀가 어긴 금기가 시간과 관련 있다는 뜻.

    하지만 그러면 메이벨과 캐서린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게 성립이 안 되었다.

    애초에 금기는 하나만 어겨도 버거운 게 아니었던가?

    게다가 진짜 메이벨이 흑마법까지 사용하며 시간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원작에서 그녀는 원하는 대로 사랑도 얻고 명예도 얻는 성공한 여주인공이었으니까.

    나는 이해되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있잖아. 한 번에 금기를 여러 개 어길 수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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