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40)화 (140/177)
  • #140.

    나는 눈앞의 노파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응시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음울한 낯의 노파가 저는 무해한 사람이라는 양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세체르라고 합니다.”

    “어서 오시게.”

    “저를 보고 싶어 하셨다고요.”

    노파가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몽가 세체르. 아키드에게 꿈 해석을 도와준 자이자 의문스러운 말을 한 노파.

    ‘금술이 행해지면서 로에나의 영혼이 피해를 입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키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세체르를 기민하게 살폈다.

    사실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게 빙의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아키드야 내 상황을 완전히 알지 못하니 저 말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나는 아니었으니까.

    “그대가 꿈 해석에 능하다고 들었어. 내 남편의 일도 도와주었다지.”

    “미약하게나마 재주를 가지고 있지요.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으신 듯한데 편히 말씀하시죠.”

    기다란 눈매로 히죽 웃으니 어쩐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동화에나 나오는 마녀와 같은 어둑한 기운이 풍기는 것 같기도 했고.

    “내 영혼이 금술에 피해를 입었다는 말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네.”

    떠보듯 질문하자 세체르가 호탕히 웃으며 맞받아쳤다.

    “이미 스스로도 아시리라 여겼는데. 아무래도 부인께서는 제 확답을 원하시는 것 같군요.”

    그러곤 카드를 손으로 섞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

    나는 전생이라는 말에 눈을 홉떴다. 아직 내 전생에 대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곧바로 알아챈 탓이었다.

    어쩐지 경계심이 들어 잔뜩 움츠리니 노파가 나를 일별하며 말을 이었다.

    “꽤나 복잡한 일을 겪으셨군요. 대공자님보다도 더더욱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노파가 펼친 카드에는 무지개가 그려져 있었다.

    형형색색의 무지개가 시선을 사로잡았으나 그런 것보다도 세체르의 말이 더더욱 신경 쓰였다.

    나는 상체를 그녀 쪽으로 바짝 숙이며 물었다.

    “잠깐만. 대공자보다 복잡한 일을 겪다니? 그럼 대공자도 전생을 기억한다는 뜻인가?”

    아키드에겐 전생이랄 것이 없었다. 내가 본 전생은 책 속 이야기일 뿐이었으니까.

    내 질문에 세체르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꿈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들 하죠. 계기 없는 꿈은 없습니다. 꿈이 시작된 이상 그분이 전생을 볼 확률도 높아지겠죠. 어떤 전생을 볼지는 당사자만 알겠지만.”

    “…….”

    “다른 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금술의 영향권에 들어온 영혼들은 각자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증상을 겪곤 하죠.”

    그 말에 문득 캐서린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원작의 꿈을 꾸기 시작한 캐서린이.

    아키드가 내 전생을 꿈꾸기 시작한 한편 캐서린은 원작 속 악역이었던 제 원래 모습을 꿈꾸었다. 그것도 메이벨을 괴롭히는 장면만을.

    그때 세체르가 모래시계가 그려진 카드를 펼치며 말했다.

    “보아하니 미래를 보고 오신 모양이군요. 유독 대공자비님의 영혼은 금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죽어 가는 로에나를 보며 배후를 찾으라던 대공과 죽은 아내의 묘비 앞에서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염없이 사과하던 아키드가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로에나의 죽음에 누군가의 음모가 섞여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설마 로에나의 죽음이 금술과 연관이 있던 걸까.

    나는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금술과 관련이라도 있다는 뜻인가?”

    “그건 아닙니다. 그저 운이 조금 나빴다는 쪽에 가깝죠.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듣던 중 다행이었으나 오싹한 기분이 쉽사리 사그라들진 않았다. 나는 이어서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다.

    “자네 말대로 나는 미래를 보았네. 하지만 본 그대로 행해지지는 않더군.”

    “그때와 지금이 완전히 같을 순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가 본 미래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캐서린과 메이벨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처음 캐서린과 메이벨을 만났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내가 원작에서 본 두 사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꼭 성격이 뒤바뀐 것 같았다.

    물론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꺼림칙한 건 사실이었다.

    내 질문에 세체르가 카드 하나를 뒤집었다. 카드에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니 세체르가 말했다.

    “글쎄요. 부인과 같은 상황이거나 금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혼일 확률이 높겠지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혼이라면……?”

    “낮과 밤이 바뀌는 게 한순간인 것처럼 계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참과 거짓을 뒤바꿀 수 있는 게 금술입니다.”

    세체르가 뜻 모를 소리를 하며 히죽 웃었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과 캐서린과 메이벨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몰랐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알아듣게 설명하게.”

    “말 그대로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뒤바뀌었다는 뜻입니다.”

    “!!”

    세체르의 폭탄선언에 나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잃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긴장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은 두 사람의 영혼이 바뀌기라도 했다는 건가?”

    “후후후. 이론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이 말입니다.”

    세체르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마 그녀도 그것까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건가?”

    내 질문에 세체르는 옅은 미소만 머금을 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헷갈리는 말만 내뱉었다.

    “미래라는 건 때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숨어 의식을 흐리게 만들기도 하지요. 대공자비님이 보았다고 생각한 그 미래조차 어떤 이에게는 과거일 뿐일 수도 있답니다.”

    그것참,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내가 본 원작이 이곳의 미래인지도 이젠 확단할 수 없었다.

    그대로 이루어진 것보다 어그러진 게 더 많은 세계였으니까.

    “그런가.”

    내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사색에 잠기자 세체르가 말했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눈을 빛내며 쳐다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미래는 결국 과거의 어떤 행위의 결과이기도 하죠. 분명 미래가 바뀐 계기가 있을 겁니다. 마치 대공자비님께서 예정된 죽음을 무사히 피해 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계기라면…….”

    “이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무언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게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간에 말입니다.”

    * * *

    별장에 돌아왔을 때는 키나가 실체화한 정령들을 잡으려고 용을 쓰던 때였다.

    어디를 크게 굴렀는지 키나의 붉은 털에 나뭇잎이 잔뜩 묻어 있었다.

    기를 쓰고 정령들을 잡으려는 걸 보면 나들이 때 뭔가 원한 살 일을 만든 모양이었다.

    물론 실체화를 했다는 점에서 정령들은 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깃털을 쓰다듬자 키나가 서러움을 토하듯 깍깍거렸다. 가까스로 키나를 달래며 정령에게 물었다.

    “그래서 위치는 알아냈어?”

    ― 네 말대로 제이드인지 뭔지 하는 애를 만나기는 했는데…….

    ― 위치가 카타콤이 아니었어. 신중한 녀석인 거 같아. 나중엔 청각 교란 장치까지 이용해서 대화 내용을 다 엿듣지도 못했어.

    “카타콤이 아니었다고?”

    ― 응. 신전에서 신분을 위장하고 있더라고. 얼굴도 바뀐 걸 보면 뭔가 흑마법을 사용한 거 같고.

    “인형술사가 있으니 얼굴을 바꾸는 것쯤은 일도 아닐 테지.”

    나탈리 후작의 양아들이니 그 정도 잔재주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카타콤에서 만나지 않았다니 조금 아쉬웠다.

    이대로 저쪽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다.

    하긴 이렇게 쉽게 풀리면 일이 재미없지.

    아쉬움을 달래며 키나를 만지작거리는데 정령들이 말을 이었다.

    ― 그것보다 메이벨 걔, 조금 수상해.

    “걔가 수상한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 뭐.”

    ― 아니, 뭔가 좀 이상하다고 할까. 그래. 분명 그 전령새는 마수였어. 성녀가 마수를 다룰 수도 있어?

    “마수라고?”

    나는 전혀 뜻밖의 말에 눈을 홉떴다. 메이벨과 마수는 전혀 상성이 안 맞는 탓이었다.

    불쑥 세체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캐서린과 메이벨의 영혼이 바뀌었을 가능성을 논하던 것.

    ‘설마 진짜로 두 사람의 몸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나는 심각해진 얼굴로 키나를 내려놓으며 정령들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좀 더 말해 줄래?”

    ― 아이에게 그림을 받고 메이벨이 웬 마수를 소환해서 제이드에게 연락했어. 마수 소환은 흑마법사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

    ― 그래. 신성력과 흑마법은 우리처럼 상극이라 절대 공존할 수 없어. 혹시 그 애, 실은 신성력을 못 쓰는 게 아닐까?

    “신성력을 못 쓰다니? 그럼 오염은 어떻게 없, ……아!”

    나는 말을 하는 도중 무언가 깨달으며 얕은 탄성을 내뱉었다.

    신성력을 쓸 수는 없지만 오염을 없앨 수 있는 존재.

    흑마법사이면서 오염을 자유자재로 거두고 방출할 수 있는 존재.

    그러한 사람은 이 세계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는 다소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메이벨이었구나, 금기를 어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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