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39)화 (139/177)

#139.

메이벨은 거리 한복판인 줄 알면서도 나귀에서 내려 아이에게 물었다.

“얘, 그건 처음 듣는 노래인데…….”

“에엑? 성녀님은 기적을 일으키느라 유행가도 모르나 봐요.”

“유행가?”

“요즘 인트라비아에서 유행하는 노래예요. 하긴 성녀님은 시골에서 오셔서 모르시겠구나.”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말에 발끈했으나 메이벨은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

“으응. 나는 그런 노래는 처음 들어 봐. 노랫가락이 참 좋다. 누가 지은 곡인지 아니?”

“몰라요. 웬 음표 문신을 한 사람이 알려 주고 가던데요?”

“…….”

메이벨은 음표 문신을 한 사람이 알려 줬다는 말에 서늘한 눈을 했다. 그 말은 흑마법사들의 짓이라는 뜻이었으니까.

뒤이어 아이들이 노래를 멈추고 비켜 주어 행진이 재개되었다. 메이벨은 겉으론 웃으면서도 속에서는 혼란이 가득했다.

‘왜 하필 별이고, 별똥별이지.’

별은 중의적인 의미를 띠는 상징물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떠오르는 영웅’을 뜻했지만, 동시에 지금은 사라진 ‘루이스’를 뜻하기도 하는 단어였다.

물론 루이스가 멸문한 지금은 ‘떠오르는 영웅’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메이벨은 이 몸의 주인이 루이스의 후예라는 걸 알기에 저 노래가 마냥 해맑은 동요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별똥별이라니.

그건 대놓고 루이스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나 다름없었다.

‘혹시 내가 무슨 금술을 쓴 건지 눈치챈 건가?’

메이벨은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깨물었다. 이미 나탈리 후작이 자신이 어떤 금기를 어긴 건지 몹시도 궁금해한다는 사실을 메이벨도 잘 알았다.

그리고 현재 제 몸을 차지하고 있는 캐서린은 제 연적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만약 나탈리 후작이 제 원래 신분이 캐서린 에셀이며, 현 캐서린 에셀이 실은 메이벨 루이스라는 걸 안다면 큰일이었다.

안 그래도 제 목줄을 쥐려고 안달인 자에게 진짜로 끌려다닐 수도 있으니까.

금기는 성공함과 동시에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필 금기를 여러 개 어긴 탓이었다.

몸이 바뀌고 시간이 되돌아갔다.

영혼과 시간을 건드린 결과 자신은 걸어 다니는 죽은 땅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로에나가 정령사인 덕에 방출한 오염을 도로 거두는 일은 덜어 다행이었으나, 이것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메이벨은 자신의 힘이 신성력도, 빛 속성 마법도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저 거뒀다가 방출하기를 반복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는 것도.

‘하, 이쪽이나 저쪽이나 숨통을 조이는 건 마찬가지네.’

메이벨이 거짓 웃음으로 경련이 일기 시작하는 얼굴을 매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몸을 바꾸면 루이스의 힘도 쓸 수 있을 줄 알고 시도한 금술이었는데, 보기 좋게 실패한 탓이었다.

빛의 루이스의 몸이라면 금기의 부작용인 오염도 없앨 수 있으리라 자신한 게 화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부작용을 예상하고도 말해 주지 않은 게 바로 로즈 나탈리, 그 망할 수장이었다.

‘내가 이번에도 당할 줄 알고?’

메이벨은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나탈리 후작과 협력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애초에 저를 이런 밑바닥 인생으로 떨어지도록 유도한 자였다. 이용하다가 이쪽에서 먼저 버려 줄 생각이었다.

과거로 돌아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적어도 나탈리 후작은 본인 때문에 저가 금술을 하게 된 줄은 꿈에도 모를 테니까.

메이벨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은밀하게 검은 새를 소환해 제이드에게 접촉했다.

저쪽에서 목을 조이려 들기 시작하니 이쪽도 나름대로 대비를 해 두어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마침 나탈리 후작과 제이드를 이간질할 만한 정보도 알고 있었으니 늦장 부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메이벨이 간과하는 게 있었다. 각성한 로에나의 힘이 염탐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흑마법사들은 정령의 힘을 인지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빨강이 말대로 바로 보내네.

― 어쩌면 로에나는 천리안을 지니고 있는 걸지도 몰라. 가끔 보면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굴잖아.

― 꾸물거릴 시간 없어! 얼른 뒤따라가야 해.

― 가자, 카타콤으로!

기척을 감춘 키나의 등에 올라탄 정령들이 여전히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물론 실체화하기 전인 데다 정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로에나뿐이라 키나에겐 들리지 않을 말이었다.

까―압. 웁.

정령들은 깍깍대려는 키나의 입을 살뜰히 막으며 검은 새를 추적했다. 소리까지는 감추지 못하니 조심하는 것이었다.

키나가 몸부림치자 정령들이 투덜거렸다.

― 얘는 참 불평이 많아. 맨날 깍깍대. 꼭 쉐리처럼 말이야.

― 아아, 맞아맞아. 서로 싫어하는 걸 보면 동족 혐오인 게 분명해.

― 너무해, 험담은 나쁜 거랬어.

― 아냐, 앞담은 괜찮아. 어차피 듣지도 못하는데, 뭐 어때?

― 그런가.

정령들의 수다스러운 음성이 어느새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 * *

한편 아키드는 로에나에 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날 황궁 도서관에서 로에나가 혼비백산하던 게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탓이었다.

분명 ‘이나’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위축되었었다.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분명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어.’

13년간 거리에서 지냈던 아키드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사실 안하무인이었던 로에나의 태도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듯 180도 달라졌을 때부터 아키드는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 몰라서 늘 그녀가 말해 주기를 기다린 게 벌써 7년째였다.

물론 더 기다리는 일쯤은 그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가 번민하는 이유는 가볍게 지나쳤던 일이 예사롭지 않은 방향으로 그의 생각을 붙든 탓이었다.

북부에 있던 당시, 아키드는 업무차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헙! 대, 대공자님?’

그리고 그곳에서 웬 고양이 가면을 쓴 영애를 만났었다. 고양이 가면을 쓴 영애는 그를 보자마자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봤었다.

반면 그는 영애가 어느 가문의 여식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가 쓴 가면이 코비슈타인의 작품인 탓이었다.

다행히 그 가면은 아키드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로에나가 아사모에 갈 때마다 꼭 챙기던 토끼 가면과 비슷했으니까.

분명 아사모 회원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했던 것까지 떠올린 그는 가면을 알아보며 영애에게 알은체했다.

‘아사모 회원이신가 보네요.’

‘헉! 어떻게 아셨어요?’

‘아내가 그 가면과 비슷한 걸 들고 있는 걸 봤거든요.’

‘네? 그, 그럼 대공자비님께서도 아사모 회원이시란 뜻인가요?’

고양이 가면을 쓴 영애는 잔뜩 당황하며 말을 이었었다.

‘세, 세상에……. 호, 혹시 무슨 가면을 가지고 있으셨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 아니다. 이건 규칙 위반이지, 크흠. 그, 그럼 대공자님께서는 이미 아사모의 진짜 이름을 알고 계신 거세요?’

눈에 띄게 당황한 영애는 그도 몰랐던 ‘아사모’의 진짜 이름을 알려 주었었다.

그간 ‘아름다운 식물을 사시사철 즐기는 모임’이라고만 생각했던 사교 모임이 실은 ‘아키드를 사랑하는 영애들의 모임’이었다나.

‘수, 수상한 모임은 절대 아니에요. 모임장이신 토끼 님께서 애장품을 공유하며 소소하게 대공자님을 칭찬하는 아주아주 순수한 모임이랍니다.’

토끼 가면이라면 로에나의 가면이었다.

아키드는 그녀가 모임의 장으로 활동하며 저에 관한 애장품을 잔뜩 공유하고 있었음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키드는 로에나의 신변을 보호해 주기 위해 고양이 가면을 쓴 영애에게 로에나가 토끼 가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비밀로 했다.

고양이 가면을 쓴 영애는 대공자비가 모임 회원이었다는 말에 잔뜩 얼어붙은 것 같았다.

아마도 익명성을 이용해 저들을 염탐하고 있던 게 아닌가 의심하는 듯했다.

‘제가 이 가면을 쓰고 나온 건 비밀로 해 주세요. 모임 이외의 장소에선 가면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거든요. 오늘 무도회에 너무 오고 싶은 마음에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고양이 가면을 쓴 영애가 손의 지문이 마모되도록 싹싹 빌며 퇴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키드는 별생각이 없었다.

딱히 염탐을 보낸 적이 없을뿐더러 로에나가 저를 그렇게나 끔찍이 생각한다는 게 흡족했던 탓이었다.

최근 들어 제 평판이 좋아진 이유도 다 그녀의 물밑 작업 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게다가 고양이 가면을 쓴 영애를 만난 덕에 코비슈타인을 협박해 제 몫의 가면을 만들도록 했으니 그리 나쁜 만남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사모에서의 로에나의 행동이 자신이 꿈에서 본 여인과 몹시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면 꿈속 여인이 매일 정성껏 닦았던 인형이 어딘지 나를 닮은 것 같았어.’

한 번 의심이 싹트자 점차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아키드의 생각이 튀고 있었다.

어쩌면 로에나가 실은 꿈속 여인인 게 아닌가, 하는.

하필 세체르에게 이상한 소리까지 들은 터라 더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로에나의 영혼이 피해를 입었다는 게 그 꿈속 여인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도 함께 들었다.

만약 두 사람이 관련이 있다면 지금의 로에나와 결혼 1년 차 때의 로에나가 다른 인물일 가능성도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호수에 빠진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었으니 아예 이상한 추리도 아니었다.

“아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아키드는 제가 생각해도 미친 생각인 것 같아 머리를 헝클였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의구심은 쉽사리 지워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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