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36)화 (136/177)
  • #136.

    “어…….”

    나는 허락 없이 일기를 읽어 버린 것에 당황하면서도 내용이 의미심장해 눈을 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캐서린도 나처럼 중간에 몸의 기억이 끼어들었나 싶어 마저 정독했으나 낯이 익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뭐지?”

    캐서린이 아키드를 만났을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7지구에는 잘 가지 않는 그녀이니 더더욱.

    그런데 제로니스 때와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팠다는 설명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후로 한참 접힌 페이지를 살펴보던 때였다. 나는 무언가 공통점을 발견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라, 이날은…….”

    내가 처음으로 빙의했던 날과 얼추 시기가 맞았다. 한겨울의 호수에 빠져 죽다 살아났던 바로 그때.

    ‘맞아, 그즈음 캐서린도 크게 아팠다고 했었어. 그때부터 꿈이 시작된 거구나.’

    나는 전혀 예상 못 한 공통점에 생각이 많아졌다. 하필 내가 빙의했을 때 캐서린의 꿈이 시작되다니.

    우연이라면 신기하고 필연이라면 소름 돋을 일이었다.

    실은 전부터 의아하기는 했다. 작중 악녀였던 캐서린이 너무도 선량한 데다 제로니스와도 썸을 타고 있었으니까.

    원작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으나 나하고는 상관없이 진행된 일이라고만 여겼다. 인트라비아와 델루스는 거리가 머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마차가 아칼리무트로 진입했다.

    지난번에 엠버의 난에 대해 듣고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싶다고 신청해 둔 덕이었다.

    외부로 유출할 수 없는 자료라 직접 가는 길이었다.

    방문 증서를 확인받고 마차가 도서관 앞에서 멈추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도서관의 규모가 엄청났다. 무턱대고 돌아다니면 원하는 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책이 많았다.

    다행히 책을 열람하기 쉽게 표로 구분해 두어 책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나는 ‘가문과 역사’ 관련 책장으로 곧장 걸어갔다.

    아키드가 오기 전에 먼저 열람할 생각이었다.

    “아, 찾았다.”

    나는 연도별로 구분된 역사서에서 엠버의 난이 일어난 해를 기록한 책을 꺼내었다.

    “확실히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첨부된 수장의 초상화를 보며 제이드의 얼굴을 떠올렸다.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이던 제이드와 달리 수장의 머리 색은 청록색이었다.

    그나마 눈 색이 닮은 것 같기는 한데, 워낙 초상화가 작아서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흐음.”

    뒤이어 엠버 가문의 가계도와 초상화가 있었으나 그 어디에도 제이드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후계자의 얼굴도 제이드와는 딴판이었다.

    나는 다소 맥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엠버가의 자식이 13지구에 있을 리가.”

    하도 별의별 일을 다 겪다 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진 모양이다. 초상화까지 확인하니 제이드에 대한 의문도 싹 가셨다.

    이어서 엠버의 난에 대해서 살펴볼 때였다. 인기척이 들려 아키드가 왔나 싶어 돌아보니 제로니스가 있었다.

    “음? 그대가 왜 여기 있지?”

    “아, 읽고 싶은 책이 이곳에 있어서요.”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은 모양이야.”

    제로니스는 내가 펼친 페이지를 눈대중으로 살피며 대답했다. 엠버의 난에 대해 보고 있는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책을 덮으며 대강 얼버무렸다.

    “네, 뭐.”

    여기다 대고 엠버 가문이 흑마법사 집단의 전 수장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탓이었다.

    그러자 그가 마저 읽으란 듯이 턱짓하는가 싶더니 돌연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대공자는 요즘 어떤가? 여전히 꿈을 꾼다던가?”

    “네?”

    꿈이라니? 무슨 꿈을 말하는 거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제로니스가 입술을 뻐끔거렸다. 잠시 후, 그가 난감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이런, 대공자가 말을 안 했나 보군.”

    아무래도 아키드가 나 몰래 숨기는 일이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추궁했다. 아무래도 ‘꿈’이라는 단어가 걸려서였다.

    “……숨기지 말고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각성한 직후부터 같은 꿈을 꾼다고 했네. 그래서 내게 미각성 발작을 앓던 사람 중에 비슷한 부작용을 겪은 이가 있는지 물어봤고.”

    “같은 꿈을 꾼다고요? 무슨 꿈인데요?”

    “그건 말해 주지 않아서 모르네. 아무래도 말하기 곤란한 꿈인 듯한데…….”

    제로니스가 뺨을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키드의 허락 없이 내게 발설한 게 계면쩍은 모양이었다.

    ‘또 꿈이라고?’

    나는 아키드도 캐서린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꿈 내용이 무엇인지는 대화해 봐야 알겠지만 덜컥 겁이 나려 했다. 이게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서 더더욱.

    ‘그러고 보니 나도 각성한 직후에 꿈을 꿨었어.’

    내 장례식에 온 아키드의 꿈. 원작과도, 로에나의 기억과도 전혀 상관없는 터무니없는 내용이었으나 여전히 뇌리에 생생했다.

    혼란스러워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자 제로니스가 말했다.

    “내가 말실수를 했어. 이 일은 대공자에게 비밀로 해 주게.”

    하지만 제로니스의 바람과 달리 그 당사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하, 제게 뭘 비밀로 하란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왔나?”

    제로니스는 아키드의 등장에 어색하게 웃었다. 내게 눈짓으로 ‘제발 부탁이네’ 하고 신호를 보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제로니스는 급한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피하는 길을 선택했다. 아키드는 얼이 빠진 내게 다가와 물었다.

    “전하와 무슨 일 있었습니까? 표정이 안 좋습니다.”

    “아키.”

    “예. 저 여기 있으니 편하게 말해요.”

    아키드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그를 멀거니 쳐다보며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혹시 요즘 꿈을 꾸나요?”

    “……!”

    아키드는 꿈 이야기가 나오자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표정을 갈무리한 그가 말했다.

    “전하께 들었습니까?”

    “네, 제가 알고 있는 줄 아시고 실수로.”

    제로니스에겐 미안하지만 이 일은 숨겨 줄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피할세라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제가 각성했을 때, 꿈이니 노파이니 하면서 허둥댔잖아요. 그 꿈과도 관계되어 있나요?”

    당시엔 워낙 경황이 없어서 물어본다는 걸 잊고 지냈다. 순간이지만 아키드가 내 죽음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싶어 헷갈리기도 했고.

    “뭔가 본 거예요? 꿈에서?”

    “로네, 그건…….”

    “왜 비밀로 했냐고 따지는 게 아니에요. 그냥 무슨 꿈을 꾸었는지 궁금해서 그래.”

    “…….”

    “내게는 늘 솔직해지라 해 놓고 아키만 쏙 빠지는 법이 어디 있어요.”

    추궁이 이어지자 아키드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렇게 걱정할까 봐서 그동안 말하지 못한 겁니다. 발작도 모자라서 각성기가 지나자마자 이상한 꿈까지 꾼다는 걸 알면 속상해할 테니까.”

    뒤이어 그는 나를 품에 안으며 등을 다독여 주었다. 나는 그의 심장에 귀를 댄 채 가만히 의지했다.

    “꿈 말고는 별다른 증상도 없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혹시 내가 죽는 꿈이라도 꾼 거예요?”

    “!!”

    나를 달래던 아키드의 손길이 뚝, 멈추었다. 그의 어깨가 바짝 굳는 걸 보니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었다.

    “유난히 제가 열이 나는 것에 과민 반응을 보였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군요.”

    돌아보면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평소보다도 내 몸을 과하게 걱정을 하고, 매일 체온을 재던 게 다 그 꿈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열에 예민하게 굴던 건 어쩌면 내가 원작처럼 전염병에 걸려 죽는 꿈이라도 꾼 걸 테지.

    가만히 답을 기다리니 아키드가 짙은 숨을 내뱉었다. 그가 나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예. 로에나가 죽는 꿈을 꾼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건 그것만이 아니에요.”

    “다른 꿈을 더 꾸었다고요? 전하 말로는 분명 같은 꿈을 꾼다고 했는데…….”

    “예. 전하께 연락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었죠. 하지만 갑자기 로에나가 죽는 꿈을 반복해서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전염병에 걸려서요.”

    “……그럼 그전에 꾼 꿈은 뭔데요?”

    조심스레 묻는 말에 아키드가 나를 놓아주며 눈을 맞추었다. 청회색 눈동자가 내 속을 꿰뚫을 듯 깊은 색을 띠었다.

    “그전에 로에나도 말해 주십시오.”

    “네?”

    “로네도 알고 있던 거죠. 본인이 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었다는 걸.”

    “그걸 어떻게……?”

    당황해 입술을 파르르 떠니 그가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헨리에게 들었습니다. 부인이 꽤 오래전부터 그 일을 대비해 왔다는 걸.”

    헨리가 거론되자 상황이 곧바로 이해되었다. 그에겐 오래전부터 오염이 북부에 퍼지는 걸 대비하도록 했으니까.

    게다가 최근엔 열병이 발생한 지역으로 방향을 튼 터라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내가 전염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던 아키드에게 그런 내 행동은 지극히 수상쩍었을 터.

    ‘어떻게 하지?’

    추궁을 당하는 입장이 되니 간담이 서늘했다.

    다짜고짜 ‘사실 저는 로에나 하델루스가 아니라 유이나예요’,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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