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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81)화 (81/177)
  • #81.

    한편 로에나와 아키드를 놓친 캐서린은 울상을 지은 채 거리를 배회했다.

    혼자 신나서 앞서 나가다 뒤를 도니 두 사람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가뜩이나 수도의 길을 모르는 두 사람을 잃어버린 터라 캐서린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어떻게 해, 아버지한테 또 혼나겠다.”

    안 그래도 손님을 잘 모셔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에셀 공작이었다. 이대로 못 찾게 되면 분명 또 잔소리를 들을 텐데.

    그때였다. 기이한 새 울음소리와 함께 붉은 새 한 마리가 캐서린에게 달려들었다.

    일전에 로에나에게 한 번 소개받은 적이 있던 전령새였다. 붉은 털이 유독 신기해서 뇌리에 박혔었다.

    “이름이 키나였던가.”

    캐서린이 손을 뻗자 키나가 돌진하듯 다가왔다.

    “어어어.”

    캐서린이 뒤로 주춤하며 얕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러다간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당할 것 같아서였다.

    키나의 무서운 기세에 사색이 되던 찰나, 누군가 캐서린의 앞을 막아섰다. 백금발의 소년과 살구색 머리칼의 소년이었다.

    “제로? 오라버니?”

    캐서린이 둘을 알아보고 눈을 깜빡이는 사이 제로니스가 캐서린을 엄호하고 에드워드가 키나를 받아 내었다.

    깍.

    키나는 몸통 박치기를 당하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 에드워드에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무슨 전령새가 착지도 잘 못 하냐. 주인 닮아서 엄청 귀엽네.”

    깍깍.

    키나는 꺼지란 듯이 거칠게 날갯짓을 했으나 에드워드는 맞아도 좋다고 실실 쪼갰다. 그때 제로니스가 캐서린에게 물었다.

    “캐서린, 다친 곳은 없어?”

    “응, 없어.”

    캐서린이 헤실헤실 웃자 제로니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그들 뒤에 있는 붉은 머리 소년 둘을 힐끔 쳐다보았다.

    로에나와 같은 적발에 푸른 눈이었다. 한눈에 봐도 가족임을 알 수 있는 외관에 캐서린이 방긋 웃었다.

    “로에나의 오라버니들이시군요.”

    “너, 우리 막둥이 알아?”

    다소 험상궂은 표정을 한 일라이저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곤 에드워드의 어깨를 툭, 치며 성을 냈다.

    “뭐야, 우리 막둥이 여기 있다며.”

    “분명 동생이랑 관광한다고 들었는데…….”

    에드워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캐서린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아, 맞다. 로에나! 오라버니, 대공자 부부가 길을 잃은 것 같아. 아까까지 같이 있었는데……!”

    “무어?!”

    에드워드가 놀라 키나를 툭, 떨어뜨렸다.

    푸드득 날갯짓하던 키나가 코웃음 치며 캐서린 앞으로 가 다리를 쭉 펼쳤다.

    하지만 키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없었다. 일라이저는 로에나가 길을 잃었다는 말에 꽥, 소리를 질렀다.

    “막둥아아아!”

    그러곤 잡을 새도 없이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로니스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카일을 툭, 건드렸다.

    “쟤는 어딘지 알고나 가는 거야?”

    하지만 카일은 대답 없이 안주머니에서 근거리용 통신석을 꺼내었다. 뒤이어 서슬 퍼런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긴급 상황. 지금 당장 수도 전역을 샅샅이 뒤져 막둥이를 찾는다.”

    “…….”

    “장미처럼 붉디붉은 적발에 사슴 같은 눈망울,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 여자애와 곁에는 검은 머리에 요망한 청회색 눈동자를 지닌 남자애가 있을 거다.”

    카일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제로니스가 얼굴을 굳히며 뒤로 주춤했다. 설명이 왜 저따구인지 모르겠다.

    잠시 후, 통신을 마친 카일이 인사도 없이 쌩하니 가 버렸다.

    결국 그 자리에는 제로니스와 에드워드, 캐서린만이 남게 되었다.

    캐서린이 울상을 지으며 칭얼거리는데, 참다못한 키나가 꽥, 소리를 지르며 에드워드의 다리를 후려갈겼다.

    깍!(무시하지 마라, 인간!)

    “뭐야?”

    하지만 돌처럼 단단한 에드워드의 다리 탓에 아픔은 키나의 몫이었다.

    키나가 데구르르 구르자 그제야 캐서린은 키나가 로에나의 전령새라는 걸 상기했다.

    “아, 맞다!”

    이제 보니 키나의 다리에는 쪽지가 달려 있었다. 분명 로에나의 전령일 터.

    캐서린이 쭈그려 앉아 키나의 다리에 묶인 쪽지를 풀어냈다. 바둥거리는 키나를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급한 볼일이 생겨서 먼저 가 볼게. 먼저 성에 들어가.]

    “앗.”

    편지의 내용은 단출했다. 캐서린은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제로니스와 에드워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가 부산을 떨어 에이프릴의 쌍둥이를 오해하게 만든 탓이었다. 제로니스가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고 이마를 짚었다.

    이미 일라이저와 카일이 호들갑을 떨며 사라진 후였다.

    듣자 하니 정예 기사들까지 동원해 수도를 뒤질 작정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여동생을 끔찍이 아낀다는 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래선 수도에 소문이 쫙 퍼질지도 몰랐다.

    “안 되겠다. 쌍둥이들이 날뛰기 전에 먼저 찾아야 해.”

    “어떻게?”

    에드워드가 되묻자 제로니스가 아직도 캐서린의 쓰다듬을 받고 있는 키나를 턱짓했다.

    “쟤가 주인이 어딨는지 알겠지.”

    * * *

    “콜록! 콜록!”

    쉐리는 목구멍에 빵이 걸렸는지 연신 기침을 해 댔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길잡이 역할을 해 준 아이가 놀라 바짝 경계를 세웠다. 순식간에 거리의 아이들이 나와 아키드를 둘러싸 공격 태세를 갖췄다.

    쉐리가 눈물, 콧물을 쏙 빼는 것에 쾌재를 부르며 내가 사납게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키를 힐난하지 마.”

    “콜록! 보면 딱, 큽, 보이는데 뭘 모른다는 거야! 저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 우리한텐 오지도 않고! 배신자!”

    쉐리가 핏발 선 눈으로 아키드를 노려보았다. 아키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도카니 서 있었다.

    원작인 《나를 품어 주세요》 속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나는 아키드의 손을 꼭 잡으며 쉐리와 맞서 싸웠다.

    “너희에게 연락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곤 생각 안 해?”

    “풋, 사정? 사정이 있는 애가 저렇게 호의호식해? 우리는 여전히 13지구에서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아키드가 1~6지구에서 지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랬으면 진즉 13지구로 찾아왔을 아키드일 텐데, 쉐리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혼자만 배불리 먹고, 의리도 없는 놈!”

    “그렇게 의리를 잘 아는 사람이 죄책감을 이용해 친구를 착취하니?”

    “뭐?”

    “너나 아키드나 둘 다 어린이인데, 누구한테 책임을 져라, 마라야. 원래 인생은 각개 생존인 거 몰라?”

    내 호령에 쉐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술을 벙긋거렸다. 이윽고 사나워진 표정으로 톡 쏘아붙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애가 뭐라는 거야! 오호라, 너는 쟤가 사람을 죽인 줄도 모르나 본데, 쟤는……!”

    “사람을 죽이긴 누가 죽여. 설마 제이드인지 뭔지 하는 녀석 이야길 할 거면 집어치워.”

    대뜸 말허리를 자른 내가 서늘하게 뇌까렸다. 흰둥이가 내 감정에 반응해 앞발을 땅에 쿵, 찧자 땅이 진동했다.

    갑자기 여진이 돌자 아이들이 혼비백산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쉐리 역시 갑작스러운 진동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무슨.”

    아까까지만 해도 호기롭게 쏘아 대던 쉐리의 입술이 사정없이 떨렸다. 누가 봐도 인위적인 힘이라서 더더욱 두려움이 밀려온 듯했다.

    흰둥이가 앞발을 한 번 더 찧자 쉐리 주변에 흙 기둥이 솟아올라 새장을 만들었다.

    어느새 흰둥이의 이마에 금색 핵석이 올라와 있었다.

    ‘잘했어, 흰둥이.’

    나는 흰둥이의 핵석을 가만가만히 쓰다듬고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말했다.

    “그 녀석이 죽었든 말든, 나는 관심 없어. 괜한 말로 아키드를 곤란하게 하지 마. 그날 일은 사고이고, 아키드도 충분히 힘들었으니까.”

    “제이드가 쟤 때문에 죽었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하! 죽긴 누가 죽어? 버젓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뒤쫓아 왔는데?”

    화가 나서 목소리가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내가 머리를 거칠게 헝클이며 쏘아붙이자 쉐리의 눈이 탁한 빛을 띠었다.

    “사, 살아 있다고?”

    “그래. 그러니 화를 낼 상대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아직 제이드의 생사를 알지 못했으나 더는 아키드를 욕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 한 말이었다.

    저들이 아키드를 증오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제이드의 죽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아키드가 누군가를 잘못 봤을 리는 없으니까.’

    설령 잘못 봤다 한들 상관없었다. 쉐리가 더는 아키드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흑, 흐어엉. 제이드으으.”

    쉐리가 풀썩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죽은 줄 알았던 아키드에 이어 제이드까지 살아 있다는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싸늘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비록 원작에서지만 죄책감을 이용해 아키드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상처를 준 장본인에게 베풀 자비란 없었다.

    게다가 내 두 눈으로 직접 그 패악질을 목격한 이상 덕후로서 꼭지가 돌지 않을 리 없었다.

    내가 막 그녀에게 다다다 쏘아붙이려는 찰나였다.

    “이제 됐어요.”

    아키드가 내 어깨를 지그시 붙들었다. 미약한 압력에 나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가 혹여 내게 화가 난 걸까 싶어 걱정스럽던 찰나, 아키드가 내게 흐릿한 미소를 보냈다.

    그게 위태로워 보여 손을 붙드니 그가 마주 잡았다.

    잠시 아키드의 시선이 쉐리에게 닿았다. 생각보다 싸늘한 눈빛이라 나는 조금 놀라웠다.

    그는 쉐리를 위로하지도 그렇다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저 타인을 보듯 무감한 눈으로 바라볼 뿐.

    “아키드.”

    내 부름에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죠.”

    나는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키드가 붙들고 있던 인연의 끈을 스스로 놓아 버렸음을. 조금은 후련해졌음을.

    “네. 가요.”

    나는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며 아키드를 따랐다. 뒤에서 엉엉 우는 쉐리의 소리는 완전히 무시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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