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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65)화 (65/177)

#65.

내 질문에 다투던 것도 잊고 정령들이 묻지도 않은 것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 응! 맞아! 신수들은 딱딱한 걸 좋아해! 특히 마나가 함유된 마석에 환장하지!

― 그래서 예전엔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마석을 주워 먹기도 했어. 귀여웠는데.

― 어? 그러고 보니 아까 맡은 냄새가……. 헉! 신수였나 봐!

마침내 정령들이 나와 같은 답을 내리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찾았다, 마석 사냥꾼.

나는 내 완벽한 추리력에 감탄하며 여전히 싸우고 있는 매튜와 비서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만 싸워. 범인이 누군지 알았으니까.”

“범인을 알아내셨다고요?”

매튜와 비서가 나를 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찰나의 침묵 후에 내가 당당하게 말했다.

“고양이가 범인 맞아.”

이에 매튜의 구겨진 얼굴과 달리 비서의 표정이 밝아졌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대공자비님!”

* * *

사무소로 돌아가는 사이, 나는 아키드에게 몰래 신수가 범인이었다고 언질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신수 출현에 놀라면서도 정령을 떠올렸는지 가볍게 수긍했다.

그렇게 마석 사냥꾼 소동은 쉽게 끝날 줄 알았으나 사무소 창고에 도착한 우리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고양이를 붙잡아 두었다고 하지 않았어?”

내 물음에 비서가 비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비서가 안내한 창고에는 끊어진 밧줄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뿐이랴? 창고에 있던 마석 주머니들이 텅텅 비어 있었다. 원조품으로 온 마석을 모조리 잃은 매튜의 눈이 허망함으로 가득했다.

‘고양이 옆에 생선을 두고 갔으니 홀랑 뺏길 수밖에.’

나는 비서의 안일한 대처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장난으로 마석을 갉아 먹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밧줄로 묶어 두었으니 도망가지 못하리라 여겼겠지만, 신수가 본체로 돌아가기만 해도 밧줄은 간단히 끊어졌을 터.

다 잡은 마석 사냥꾼을 놓친 나는 황당함에 이마를 탁, 두드렸다.

그때 매튜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 고양이가 범인이었다고? 아니, 어떻게 고양이가 마석을…….”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니까.”

“예?”

매튜가 어리바리하게 반응하자 곁에 있던 코비슈타인이 내 말에 동조했다.

“확실히 평범한 고양이는 아닌 듯합니다. 여기 보십시오.”

코비슈타인이 가리킨 곳에는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것에 긁힌 듯한 흔적이 있었다.

아마 마석 주머니를 낚아채기 위해 발돋움을 하다가 생긴 족적 같았다.

“단순히 고양이 발자국이라곤 보기 힘듭니다. 어쩌면 고양이로 위장한 마수일지도.”

“마, 마, 마수요?!”

매튜가 마수라는 말에 펄쩍 뛰었다. 비서 역시 사색이 되어 매튜를 바라보았다.

“우, 우리 죽을 뻔한 건가요, 매튜 님?”

하긴 고양이인 줄 알고 보살핀 동물이 실은 마수라고 하면 놀라지 않을 리 없었다.

‘마수가 아니라 신수라는 것까지 알면 기절하겠네.’

마수와 달리 신수는 높은 지능을 가진 고등 생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마수보다도 더욱 위험한 존재였다.

나는 창 쪽으로 이어진 족적을 따라가다 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발견했다. 마석들은 한 방향을 따라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도주 경로인 듯했다. 아마도 신수가 급하게 주머니를 채 간 탓에 발톱에 터진 주머니에서 마석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저기 좀 보세요.”

내가 아키드를 콕콕, 찔러 마석을 가리키자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길 따라가면 범인을 잡을 수 있겠군요.”

“뒤따라가야 해요.”

내가 당장에라도 달려갈 듯이 발을 박차자 그가 내 어깨를 붙들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걸 타고 가요.”

바깥에 이동용 말이 하나 묶여 있었다. 아마 매튜가 주로 사용하는 이동 수단인 듯했다.

“네.”

내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나를 말 위에 올려 주고 저도 뒤따라 올라탔다.

그때 한가롭게 족적 연구를 하던 코비슈타인이 우리를 의아히 쳐다보았다.

“어디 가십니까?”

“말 좀 빌리지.”

“예?”

“호위는 알아서 따라와.”

아키드가 그 말만을 남긴 채 “이랴!” 하고 말의 엉덩이를 찼다. 말이 힘찬 울음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바삐 따라오는 호위 기사가 보였다. 말의 속도가 빨라 주변이 휙휙 바뀌었다. 아키드가 착실히 마석을 따라가는데 정령들이 첨언했다.

― 저쪽이야, 저쪽에서 냄새가 짙어!

마석이 없어도 개코 정령들과 함께라면 신수 찾기는 수월할 듯했다. 그냥 처음부터 정령들한테 냄새를 쫓으라 했어야 했나?

문제는 포박이었다. 신수를 만나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를 어떻게 포섭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무력으로 반항하려 든다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때 정령이 했던 말을 떠올린 내가 확인차 입을 열었다.

“신수가 너희를 졸졸졸 따라다녔다고 했나?”

― 응! 맞아, 우리가 지나간 곳에 델피나가 많아서 마석이 자주 생겼거든.

“그렇단 말이지.”

잘만 하면 신수를 손쉽게 포박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때 아키드가 말을 멈춰 세웠다.

“저기 있군요.”

아키드가 가리킨 자리에 흰색 꼬리가 보였다. 풍성한 흰 꼬리는 딱 봐도 고양이였다.

오도독오도독.

무언가를 씹어 먹는 소리만 들렸다. 나와 아키드는 조심스럽게 말에서 내렸다.

나는 아키드에게 잠시 대기하라는 말만 하고 정령을 실체화했다.

호위 기사가 뒤따라오기 전에 끝내야 하니 서둘러야 했다.

고양이가 정령의 기운을 느꼈는지 꼬리를 바짝 세웠다. 동시에 이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정령을 발견한 순간 뾰족했던 눈망울이 순식간에 순해졌다. 역시 예상한 대로 정령에게는 온순한 듯했다.

“안녕?”

야옹.

신수가 울음으로 반응하며 정령들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눈을 도르륵 굴렸다. 입에는 마석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채였다.

― 신수다! 정말 신수야!

정령들이 좋아서 요란을 피우는 동안 내가 신수에게 말을 걸었다.

“맛있니?”

크르르―

그러자 마석을 빼앗으러 왔다고 여겼는지 신수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아키드가 허리춤에 있던 검집에 손을 올렸다.

“물러나요, 로에나. 정말 신수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괜찮아요. 정령들 말로는 신수와 사이가 좋대요. 공격하려 들면 정령들이 막아 줄 거예요.”

― 맞아! 우리가 막아 줄게!

정령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나는 아키드를 뒤로 물리고 신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말했다.

“안 뺏어 먹어. 어차피 우리 집에 그거 많거든.”

뀽?

빼앗지 않겠다는 말에 신수가 경계를 풀었다. 동시에 많다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정말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하긴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면 쫄쫄 굶었을 터였다. 이제 보니 다소 말라 보였다.

― 상태가 좋지 않아.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몸속 마나도 너무 미미하고.

― 마석으로는 잘 채워지지 않았을 거야. 고양잇과 신수가 저렇게 위태롭게 된 모습은 처음 봐. 원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종인데.

정령들이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으며 내게 자비를 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굶주린 신수를 나 몰라라 할 생각은 없었다.

하필 마석 광산도 없는 척박한 곳에서 깨어났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나는 신수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우선 주린 배부터 채워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있잖아, 내가 그거보다 더 맛있는 거 줄 수 있는데.”

그 말과 함께 손바닥 위로 힘을 모았다. 그러자 내 몸속에 내재된 델피나가 물방울 모양으로 퐁 피어올랐다.

마석에는 비할 바 없는 순도 높은 델피나에 신수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내가 더 다가갈 필요도 없이 먼저 살금살금 다가왔다.

할짝할짝 델피나를 먹는 신수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동시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간 얼마 없는 마석으로 허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겠지. 나는 델피나를 한 모금 더 만들어 내며 다정히 속삭였다.

“나랑 같이 가자.”

야옹.

신수가 델피나를 모두 마신 후 내 품에 안겨 들었다. 그러곤 앞발을 들었다. 더 달라는 몸짓이었다.

* * *

델피나를 배불리 먹은 신수가 내 품에서 고롱고롱 잠들었다.

흉포한 신수를 단박에 녹인 모습에 코비슈타인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신수라고요?”

“그래. 신수야.”

“하지만 이마에 핵석이 안 보이는데요. 신수라기엔 너무 작고…….”

코비슈타인은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믿든 안 믿든, 이 고양이가 신수라는 건 정령이 인증한 일이었다.

“이건 본체가 아니라서 그래. 너무 굶주려서 본체로 돌아갈 힘도 없던 모양이야.”

“그럼 아까 그 족적은…….”

“무리하게 본체로 돌아가서 줄을 끊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거겠지. 눈앞에 마석이 잔뜩 있었으니까.”

그러다 인기척을 듣고 마석 주머니를 잡아채 도망친 것 같았다. 내가 착실하게 설명하자 코비슈타인이 다른 의미로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그대로 두셔도 됩니까? 구속구를 채워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신수를 품에 그러안으며 단호히 말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코비.”

오랜 시간 아티팩트에 갇혀 있던 아이에게 구속구를 채우는 건 비정한 짓이었다. 내 경멸에 찬 눈동자에 코비슈타인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어차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공격도 못 할 거야. 공격할 거였으면 진즉 했겠지.”

“하지만 데리고 가서도 문제고…….”

코비슈타인은 내가 정령사임을 모르니 신수의 존재가 불안한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마뜩잖은 표정을 짓기에 말을 덧붙였다.

“괜찮대도. 어차피 데려가 키우려면 구속구를 채우는 거로는 해결이 안 되잖아.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으니 더는 토 달지 마.”

“……알겠습니다.”

코비슈타인은 내 완고한 반응에 더는 말을 보태지 못하겠는지 백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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