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64)화 (64/177)
  • #64.

    “이렇게 먼 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테슬의 관리자인 매튜 테슬이라고 합니다.”

    관리자인 매튜가 버선발로 나와 저를 소개하며 우리를 사무소로 안내했다. 비서가 차를 내오는 동안 그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를 가만히 살폈다. 그의 손에는 웬 츄르가 들려 있었다.

    털 달린 동물을 싫어하게 생긴 외양인데 의외로 동물을 키우는 모양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못된 사람 못 봤는데.

    내가 경계를 조금 누그러뜨린 채 입을 열었다.

    “갑자기 찾아왔는데도 이리 환대해 주어 고맙네.”

    “아닙니다. 오시는 길이 험했을 텐데 무사히 도착하셔서 다행입니다. 보내 주신 원조품은 지역민들을 위해 잘 사용하겠습니다.”

    “넉넉히 보냈으니 필요한 곳에 잘 써 주게.”

    아키드의 당부에 매튜가 고개를 조아렸다. 몇 차례 인사치레가 오간 후, 코비슈타인이 말문을 열었다.

    “저는 드론을 개발한 아티팩터 코비슈타인입니다.”

    “아. 예, 코비슈타인 씨.”

    매튜는 아티팩터를 직접 대동한 것에 놀랐는지 낯빛이 나빠졌다. 코비슈타인이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내었다.

    “고장이 잦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지형을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함께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안 그래도 부탁하신 서류와 함께 최근 드론의 동선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매튜가 부리나케 일어나 서류를 내왔다. 미리 전령을 보냈던 터라 빠르게 준비할 수 있던 모양이었다.

    코비슈타인과 내가 서류를 살피자 사무실에 정적이 깔렸다. 매튜는 거북한지 연거푸 헛기침하며 차를 술 마시듯 후루룩 마셨다.

    이윽고 코비슈타인이 안경을 추키며 말했다.

    “유독 한 곳에서 고장이 잦군요. 동선상 드론이 혼선을 겪을 만한 장애물이 많지도 않은 곳 같은데.”

    “예. 그래서 저도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곳은 사람이 잘 드나들지도 않는 곳이거든요. 가파른 절벽을 끼고 있어서 목숨을 내놓고 싶은 게 아니라면 빙 돌아가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짓일 확률이 적겠군요. 혹시 마수가 출몰하는 지역입니까? 마수의 기운이 마석의 운용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마수 출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쪽은 청정 지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근에 유물 매립지가 있어서 관리를 철저히 하거든요.”

    “흐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코비슈타인이 갈피를 잃은 양 신음을 내뱉었다.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내가 의문을 제기했다.

    “이상하지 않아? 유독 사람이 안 다니는 곳에서 고장이 일어나고 있잖아. 꼭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예리한 지적에 코비슈타인과 매튜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키드가 대답했다.

    “확실히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 범죄를 저지르기 수월하죠.”

    “어느 누가 목숨을 내놓고 거기서 드론을 공격한답니까. 그것도 공중에 떠다니는 물체를요. 길도 협착해 뛰는 것도 무리인 곳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괜히 드론을 잡으려고 점프했다가 그대로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웬만한 정확성과 반사신경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수상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터라 확인이 필요했다.

    “직접 지형을 확인할 수 있을까? 멀리서라도.”

    “인근에 있는 유물 매립지라면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좋아, 말 나온 김에 바로 가자고.”

    내가 의욕적으로 일어나자 매튜가 주섬주섬 겉옷을 챙겼다.

    * * *

    유물 매립지는 규모가 상당한 편이었다. 매튜는 이곳에서 발굴한 유물은 파엘 강에 있는 박물관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아마 내가 정령들과 함께 봤던 아티팩트도 이곳에서 발견된 모양이었다. 아키드가 절벽 쪽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사람이 드나들기는 힘들겠군요.”

    “그렇네요.”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지대를 본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파면 팔수록 미궁이었다.

    사람의 짓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미쳤다고 마석만 골라 부순단 말인가.

    순간 마수의 짓인가 싶었지만 이지가 없는 마수가 영리하게 장소를 골라 가며 드론에게 덤벼들 것 같진 않았다.

    마수의 짓이었다면 진즉 주변에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결국엔 환경적 요인이 크다는 건데.

    만약 환경적인 문제라면 일이 복잡해진다. 이대로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면 드론 사업에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이런 비슷한 고장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서였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데 정령들이 주변을 빙빙 돌며 재잘거렸다.

    ― 여기가 이렇게 변하다니.

    ― 예전엔 시가지였는데 이런 가파른 절벽도 없었고.

    ― 옛 모습이 하나도 안 남으니 어쩐지 서운하다.

    듣자 하니 추억 놀이 중이셨다. 아마 테슬 지역이 예전엔 평지였던 모양이다.

    나는 놀러 나온 것처럼 까르르거리는 정령들을 살짝 흘겨보았다. 그러곤 아키드에게 말하는 척 정령에게 속삭였다.

    “위로 올라가서 확인해 봐. 놀지 말고.”

    ― 알았어!

    정령들이 쪼르르 올라가자 아키드가 의아히 쳐다보았다. 대뜸 올라가라고 하니 당황한 것 같았다.

    ‘정령에게 말했어요.’

    내가 작게 귓속말하자 아키드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이런 식으로 정령들에게 말을 거는 탓에 이젠 그도 익숙해진 듯했다.

    정령들이 한창 절벽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데 코비슈타인이 매튜에게 말했다.

    “몇 해 전에 아티팩트가 발굴되기 시작했다고요.”

    “예. 땅을 개간하려고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지요. 신수를 부화시키는 아티팩트도 이곳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아아, 그 아티팩트라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화시키는 용도가 확실합니까? 제가 보기엔 부화용 아티팩트라기엔 모양이 좀 달라서요.”

    “사실 저도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학계마다 의견이 분분했는데, 큐레이터 말로는 고고학계의 거장인 나탈리 후작의 해석대로 정의했다고 들었습니다.”

    “나탈리 후작님의 소견이라면야 믿을 만하긴 하군요.”

    코비는 우리가 마석 사냥꾼을 잡으러 왔다는 걸 까먹은 걸까?

    나는 그가 매튜와 신나서 유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흐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와중에 그 아티팩트가 부화용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안 건지.

    확실히 코비슈타인은 아티팩트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맞는 듯했다. 그사이 정찰을 마치고 온 정령들이 부산스럽게 종알거렸다.

    ― 사람의 흔적은 안 보여. 최소 1년은 사람이 지나다닌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래? 별다른 이상함은 없고?”

    ― 으음, 실은 이상한 발자국이 있어. 아주 작아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고양이 발자국 같기도 하고.

    ― 아냐, 그 옆에 엄청나게 큰 발자국도 있었잖아.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녀석 같아.

    ― 흐음, 그럼 마수이려나.

    마수라고?

    내가 멍하니 쳐다만 보자 정령이 말을 이었다.

    ― 아냐, 마수라기엔 냄새가 향긋했어. 마수였다면 고약한 냄새부터 났을 거라고. 그것보다 좀 익숙한 냄새 아니었니?

    ― 글쎄. 너무 오랜만에 맡아 본 냄새라 잘 모르겠다.

    정령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뭔가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결론은 발자국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단다.

    발자국 모양이라도 말해 보라고 하려던 찰나였다. 매튜의 비서가 요란 법석을 떨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매튜 님!”

    “아니, 사무소를 비우고 여길 오면 어쩌자는 건가.”

    “그게, 좀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 와 보셔야 할 것 같다니. 손님들 앞에서 이 무슨 무례인가? 자초지종부터 설명하게.”

    “그, 그게…….”

    비서가 나와 아키드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드론을 고장 낸 범인을 찾은 것 같습니다.”

    “범인을 찾았다고? 대체 그게 누구란 말인가!”

    매튜가 눈을 홉뜨며 재촉하자 비서가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 고양이입니다!”

    “뭐?”

    “왜, 그 있잖습니까. 매튜 님께서 나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던 흰색 고양이.”

    “지금 나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건가? 자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나비라는 말에 매튜의 얼굴이 더더욱 사나워졌다. 도통 말이 통하지 않자 비서가 머리를 헝클였다.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고양이가 원조품 속 마석을 훔쳐 먹는 걸!”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고양이가 왜 마석을 먹어. 츄르도 아니고!”

    “고양이를 붙잡아 뒀으니 확인해 보시면 될 거 아닙니까? 마침 먹다 만 마석도 있습니다.”

    “나비를 묶었다고? 이런 잔악무도한 자를 보았나! 거짓말 좀 작작하게!”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범인도 아니고!”

    매튜와 비서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령들까지 갑론을박을 이었다.

    ― 어멋, 정말 고양이가 범인인가 봐. 그런데 고양이가 돌도 먹나?

    ― 고양이가 어떻게 마석을 먹어. 신수도 아니고.

    ― 그건 그렇지만……. 에잇, 몰라! 그냥 고양이가 범인이라고 하자. 그럼 다 해결되는 거 아니야?

    ― 인간들은 별것도 아닌 거로 맨날 싸워. 으휴, 귀 따가워.

    시끄러운 건 본인들도 마찬가지인데 모르나 보다.

    가만히 정령들의 수다를 듣던 중 뭔가 내 뇌리에 번쩍, 떠올랐다.

    ‘잠깐만.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차근히 지금까지의 단서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대뜸 고양이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비서와 절벽 위에 있는 고양이 발자국이 과연 우연일까?

    마침 절벽 근처에 유물 매립지가 있고, 이곳에서 신수를 봉인하는 아티팩트가 발견된 것을 상기하니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평범한 고양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짓이지만 만약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면?’

    내 추리가 맞는다면 범인의 정체는 하나였다. 나는 여전히 고양이가 범인이다, 아니다로 싸우고 있는 정령들에게 물었다.

    “혹시 신수의 주식이 마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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