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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59)화 (59/177)

#59.

우리 어머님은 축하 선물도 통이 무척 크시구나.

나날이 엘레나를 향한 나의 호감이 상승하는 듯했다. 자고로 선물은 언제든 오예였다. 나는 냉큼 꽃다발을 받으며 배시시 웃었다.

“감사하다고 전해 줘!”

“네, 그리고 대공비 전하께서 선물을 주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당부?”

“네. 혹여 다른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기면 대공 전하께 알리기 전에 먼저 상의해 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님은 나를 비즈니스 파트너 삼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대공도 호시탐탐 내게 잘 보이려고 노리는 걸 보면 다들 나의 진면모를 알아챈 모양이지. 후후.

나는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괜스레 어깨가 올라가려 했다.

나야 아버님보다는 어머님의 깔끔한 일 처리를 선호하니 그녀의 뇌물이 달갑게만 느껴졌다. 내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겠다고 전해 줘.”

아버님, 더더욱 분발하도록 하세요.

나는 이곳에 없는 아버님에게 애도의 자세를 취했다.

“네, 작은 마님.”

아리아 백작 부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자리를 떠났다. 처음 빙의했을 때 은근히 날 냉대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게 바로 라인을 잘 탄 사람의 탄탄대로란 말인가.

나는 차근차근 대공 성에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이 기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실에 들어섰다. 그러길 잠시.

“응?”

저게 뭐지?

나는 내 테이블 위를 차지하고 있는 붉은 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붉은 새가 덩달아 나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새장 속에 있는 새는 털 색깔이 유독 붉어서 꼭 불사조를 연상시켰다.

넌 누구냐.

그러는 댁은 누구슈.

나와 새는 서로를 탐색하듯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뭐야, 이 싸가지 없는 새는. 눈 안 깔아?

하지만 새는 내가 아무리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보통은 내 얼굴이 험악해지면 시선을 피하곤 하는데, 담력이 센 새였다.

그렇게 한참 새와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한나가 나를 뒤늦게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어머, 작은 마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그런데 한나.”

나는 새장 속에 곱게 들어 있는 새를 가리키며 물었다.

“웬 새야?”

한나가 새의 존재를 잊었었는지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다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맞다. 아까 아키드 님이 보내셨어요. 앞으로 사업을 하다 보면 전령새가 꼭 필요할 거라면서.”

“아키드 님이 보내셨다고?!”

나는 아키드의 선물이라는 말에 보석 꽃다발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새장 앞으로 다가갔다.

아까는 불량하고 싸가지 없는 새처럼 보였는데 이제 보니 주인을 알아보는 영민한 새처럼 느껴졌다.

“안녕, 새야?”

깍.

새가 울음을 내뱉으며 날개를 퍼덕였다. 그게 마치 나를 반겨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들뜬 얼굴로 새장에 있는 아키드의 편지를 읽었다.

[불사조의 후예라는 별명이 있는 새입니다.

실제로 불사조가 아주 먼 조상이기도 하다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왠지 상인이 허풍이 심한 거 같았거든요.

그래도 붉은 털이 로에나와 무척 잘 어울리는 듯해서 골랐습니다.

저는 요즘 붉은색만 보면 로에나가 생각나거든요. 그래서 이 녀석을 보았을 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필요하실 때 전령새로 쓰세요. 물론 제게 편지를 보내실 때 사용해도 좋아요.]

“…….”

나는 아무 말 없이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멍한 얼굴로 편지만 들여다보자 한나가 물었다.

“뭐라고 쓰여 있길래 그래요?”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서서 심쿵사를 당했는데 시체가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아키드는 예고도 없이 내 심장을 조지고 부수어 놓았다.

이대로 가다간 죽을지도 몰라.

다시 심장을 뛰게 하려면 당장에 아키드를 봐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한나의 소매를 붙들며 다급히 말했다.

“나 지금 어때 보여?”

“네? 어때 보이다뇨?”

“머리 모양이라든가 옷차림이라든가, 괜찮으냐고.”

내 추궁에 한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 싶더니 배시시 웃었다.

“언제나 예쁘시죠.”

좋았어!

한나의 말이라 살짝 아부가 섞인 듯했지만 볼만하다는 데는 찬성이었다.

나는 지금쯤 마법 훈련을 하고 있을 아키드를 떠올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조금만 훔쳐보고 와야지.’

이게 다 내 심장을 위한 일이다. 내가 오래 살면 아키드에게도 좋은 일이 많겠지.

나는 합리화에 도가 튼 사람처럼 굴며 사뿐사뿐 훈련실로 향했다.

* * *

“단전에 힘을 모으고 혈관을 수축시키듯이 이곳을 조여 보십시오.”

하델루스 가문 소속 마법사인 해링턴 백작이 아키드의 명치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아키드는 그의 설명대로 천천히 단전에 힘을 모았으나 자꾸만 흩어지는 마나 탓에 땀만 송골송골 맺혔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해내고 나면 금방입니다. 지금은 제대로 된 각성 상태가 아니라 더더욱 조절하기 어려울 겁니다.”

해링턴 백작은 학생을 살살 달래 가며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델루스 대공도 그에게 훈련을 받을 정도로 노련한 마법사이기도 했다.

“이만한 마나라면 대공 전하보다도 더 대단한 인물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제 힘이 그렇게 강한가요?”

“이미 어린 나이에 각성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부터가 범재의 영역은 벗어났지요. 물론 그에 따른 위험이 크지만 각성하고 나면 단언컨대, 마법으로 대공자님을 이길 상대는 많지 않을 겁니다.”

해링턴 백작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며칠 아키드의 지도를 해 봤을 뿐인데도 그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의욕도 대단해서 진도를 빨리 나갈 수 있었다.

대공께서 직접 어둠 속성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여 주면 더더욱 수월할 테지만 현재 공석이니만큼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우선해서 교육하고 있었다.

“특히 노력하는 천재는 아무도 못 이기죠.”

“해링턴 백작, 저는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고 싶습니다.”

아키드의 눈동자가 총명하게 반짝였다. 해링턴 백작이 왜냐고 묻듯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든요.”

“혹시 대공자비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아키드가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애어른이래도 표정을 숨기는 것에는 아직 서툴러 그게 의미하는 바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이가 좋아졌다고 하더니 사실이군.’

해링턴 백작은 하델루스가의 자문단으로 활동하는 터라 본성과 별장에 자주 드나들지 않는 편이었다.

작년에 잠시 본성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대공자 부부는 서로에게 냉랭하기 짝이 없었는데, 불과 반년 사이 성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특히 대공자비인 로에나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바뀌어서 해링턴 백작은 못 본 새 사람이 바뀐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이전에는 세상 모든 불행을 저가 도맡은 것처럼 까칠하게 굴었는데 지금은 불행의 낌새조차 없었다.

이번에 대공자의 수업을 맡게 되면서 본성을 자주 드나들기 시작하자 자연히 대공자비와도 종종 마주치게 되었다.

물론 로에나가 일방적으로 수업을 방해한 것에 가까웠다.

둘 사이는 아주 단란했다. 대공 부부가 서로 냉대하는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라 가신인 해링턴 백작은 흐뭇했다.

드디어 하델루스 가문에도 부부다운 부부가 생겼구나.

“지킬 것이 생기면 으레 강해지는 법이지요. 훌륭한 자세입니다. 앞으로도 그 마음가짐으로 정진하십시오.”

“예.”

해링턴 백작이 다시금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잘 따라오던 아키드가 돌연 집중이 눈에 띄게 흐려지는 게 느껴졌다.

해링턴 백작은 칭찬하던 것도 잊고 눈을 번뜩였다. 그가 막 지적하려는 찰나, 아키드가 중얼거렸다.

“왔네…….”

그 중얼거림에 해링턴 백작이 날쌘 움직임으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슈슉.

동시에 붉은 물체가 창 아래로 사라지는 게 잔상처럼 남았다.

해링턴 백작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마치 누가 훔쳐보는 건지 알겠다는 듯이.

잠시 후, 대공자비가 고개를 빼꼼 내밀다 해링턴 백작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허허, 이것참.”

해링턴 백작은 어김없이 등장한 로에나를 보고 헛웃음을 삼켰다.

수업을 시작한 이래로 늘 있던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또 훔쳐보고 계시는군요. 대체 왜 저러시는 걸까요.”

“죄송합니다.”

얼굴이 빨개진 아키드가 고개를 숙였다. 아키드가 쑥스럽다는 듯이 뒷머리를 만지작거리자 바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대공자비가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살벌한지, 수업을 그만하라는 무언의 협박으로 보였다.

“크흠, 아무래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야겠군요.”

“예. 그게 좋겠습니다.”

아키드가 빠르게 주변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마치 바깥에서 기다리는 토끼 같은 부인에게 당장 가야겠다는 듯이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 순간, 해링턴 백작은 그가 대공자비의 염탐을 은근히 즐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일부러 창문에서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려고.’

해링턴 백작은 자신이 노망이 나서 지나친 망상을 한다 치부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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