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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53)화 (53/177)
  • #53.

    한편 에드워드가 숙소로 금방 돌아오자 제로니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벌써 와?”

    “호수에 갈 수 없게 돼서.”

    에드워드가 다소 넋이 빠진 얼굴로 터덜터덜 소파에 가 앉았다.

    아까까지 기운이 샘솟던 녀석이 돌연 축 늘어지자 제로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곰이라도 만났어? 왜 그래?”

    “제로니스, 너 카일 여동생 만난 적 있냐?”

    “아니. 갑자기 그건 왜?”

    제로니스가 묻자 에드워드가 또다시 로에나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나 방금 만났어.”

    “뭐?”

    “완전 내 이상형인데, 어떻게 하지?”

    제로니스는 황당했다. 하러 간 다이빙은 안 하고 대체 뭘 하고 온 건지 모르겠다.

    “조용히 다녀오라 했더니 어딜 들쑤시고 온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건 말 안 했겠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왜 말해. 그것보다 제로, 호수로 가던 길에 그녀와 우연히 마주쳤어. 이거 운명 아니냐?”

    “운명 같은 소리 하지 마. 에이프릴 영애라면 작년에 결혼까지 했잖아.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어쩐지 카일이 여동생을 안 보여 줬을 때부터 수상했어. 그렇게 예쁜 여동생을 꼭꼭 숨겨 두다니.”

    “글쎄. 내가 카일이라도 너한테 여동생을 소개하고 싶진 않았을 거 같아.”

    “내가 뭐, 어떻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해.”

    제로니스가 짧게 일갈하고 관심을 끄던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낯익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설마 했는데, 역시 전하셨군요.”

    제로니스가 손님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모님?”

    “오랜만이네요. 못 본 새 많이 자라셨군요.”

    엘레나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제로니스가 그녀를 의자로 안내하며 물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침 알리와 마주쳤거든요.”

    그러고 보니 엘레나의 옆에 그의 시종인 알리가 서 있었다. 그녀라면 알리를 보자마자 저가 여기 있음을 눈치챘을 터.

    “차는 괜찮으니까 나가 봐, 알리.”

    “예, 전하.”

    알리가 고개를 수그리고 자리를 뜨자 제로니스가 물었다.

    “프로디움엔 어쩐 일이십니까?”

    “볼일이 좀 있어서 아들 내외와 함께 들렀답니다.”

    “아.”

    제로니스는 아들 내외라는 말에 얼굴을 굳혔다.

    작년에 대공이 사생아를 입적시킨 일로 그의 아버지인 자카리 황제의 심기가 어지러웠던 게 생각난 탓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황제는 그 일로 대공을 벌하거나 꾸짖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푹푹 쉬며 ‘내가 죄인이지’ 하고 중얼거렸을 뿐.

    제로니스도 대공이 사생아를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수도에 있을 당시 대공은 그 흔한 염문 하나 없던 자였으니까. 해서 엘레나가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노파심이 들었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안 괜찮을 일이 있나요?”

    “그래도…….”

    “내 걱정은 넣어 두세요, 전하.”

    엘레나가 제로니스의 의중을 파악하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조카에게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신 걸까. 제로니스가 어두워진 얼굴로 말을 아꼈다.

    그때 에드워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공비 전하, 저도 있습니다.”

    “그래, 에드워드. 역시 너도 있을 줄 알았단다. 그럼 캐시도 이곳에 있으려나?”

    “아뇨. 캐시는 다리를 다쳐서 못 왔습니다.”

    “저런. 승마에 빠졌다더니 그새 다쳤나 보구나. 어쩐지, 공작이 서둘러 돌아간 게 캐시가 걱정되어서였나 보군.”

    “올해 큰일을 겪어서 더 그렇죠.”

    에드워드가 너스레를 떨자 엘레나가 물었다.

    “앓았던 원인은 아직도 못 찾았다고 했니?”

    “예. 그 일로 아버지께서 과보호가 심해지셨습니다. 저랑 놀지도 못하게 해요.”

    “그건 네가 너무 과격하게 놀아서 그래, 에디.”

    제로니스가 뼈 있는 말을 내뱉자 에드워드가 가자미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성격이 영 맞지 않는 두 사람인데 또 잘 붙어 다니는 게 신기했다. 엘레나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요즘 몸은 좀 어떠신가요? 프로디움에 온 걸 보면…….”

    엘레나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지자 제로니스가 말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의례적으로 온 거예요.”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옥체가 상하면 제국의 미래가 위태해지니까요.”

    “그러는 고모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북부의 추위 때문에 몸이 상하시지나 않을지 걱정되는군요.”

    제로니스가 능숙하게 화제를 돌리자 엘레나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어린 황태자는 지나치게 평정심이 깊었다. 가끔은 칭얼거려도 좋으련만.

    한참 이야기꽃을 피울 무렵이었다. 바깥이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메이가 차마 들어오지는 못하고 문밖에서 소리쳤다.

    “마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무슨 소란이니.”

    “대공자비님께서 급하게 찾으십니다.”

    “로에나가?”

    “예, 시녀의 말로는 대공자님께서 위독하시다고.”

    “뭐?”

    엘레나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 * *

    호수를 반 바퀴 돌았을 무렵이었다.

    ‘손이 왜 이렇게 뜨겁지?’

    아키드와 맞잡고 있는 손이 유독 뜨끈해 의아했다.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열기가 전해지다니.

    나는 걸음을 멈추고 아키드를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아키드의 얼굴빛이 아까보다 창백한 것 같았다.

    “아키드 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닙…… 윽.”

    아키드가 대답하다 말고 몸을 휘청였다.

    “아키드 님!”

    깜짝 놀라 그를 붙들었던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몸도 손처럼 열이 나는 탓이었다.

    “열이……!”

    “괜, 괜찮아요. 전.”

    “괜찮긴요! 몸에 열이 이렇게 날 동안 왜 제게 말하지 않았어요? 당장 의무실로……!”

    아키드가 내 팔을 붙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전 정말 괜찮습니…… 큭.”

    하지만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그가 내게 완전히 쓰러지고 말았다. 그 여파로 나 역시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덩달아 몸을 휘청였다.

    “호위!”

    내 부름에 은신하고 따라오던 호위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숙소, 아니다, 지금 당장 의무실에 가야 해!”

    “존명!”

    내 명령에 기사가 냉큼 아키드를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다른 호위가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나를 번쩍 들고 뛰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몸으로 숙련된 기사의 달리기를 따라갈 수 없는 탓이었다.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아키드가 풀썩 쓰러지는 광경을 목도하다 보니 손끝이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때 곁에 맴돌던 정령이 이상한 말을 했다.

    ― 걱정하지 않아도 돼. 죽진 않을 거야.

    “죽지 않는다니?”

    내가 기사에게 들리지 않을 만치 작게 중얼거리자 정령이 말했다.

    ― 여긴 자파르시아의 레어였던 곳이잖아. 특히 이 호수는 자파르시아가 자주 수영하던 곳이라 다른 곳에 비해 마나가 충만해.

    ― 아마도 내재된 힘이 자파르시아의 마나와 만나면서 각성을 촉진시킨 모양이야. 쟤 굉장히 강한 힘을 갖고 있나 봐.

    ― 그러게. 일반적인 사람은 자파르시아의 마나와 닿아도 아무런 감응이 없던데. 역시 머리가 까맣고 눈이 회색이라 그런가?

    ― 아직 각성하기엔 이르니 역시 발작이려나. 조금 아프긴 해도 잘 버티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얘,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 뭐가 됐든 저 아이에겐 잘된 일이지. 남들보다 일찍 힘을 깨우치는 건데. 물론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정령들의 수다스러운 말에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하는 각성을 지금 시작하다니.

    하필 대공령 바깥에서 발작이 시작된 탓에 위험에 노출된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의원에게 향하던 기사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의무실 말고 아키드 님의 숙소로 가.”

    “예? 하지만…….”

    “외부인에게 들키면 안 돼. 이건 단순한 몸살이 아니야.”

    “예?”

    “슈리, 넌 지금 당장 어머님께 이 사실을 전하고 와. 나는 아키드 님의 숙소에 있을 테니까.”

    “네, 작은 마님.”

    슈리가 빠르게 명을 받고 달려갔다. 기사는 내 뜻대로 아키드를 숙소에 내려 둔 뒤, 전령을 보내 주치의 마샤에게 급보를 보냈다.

    하델루스 성에서 이곳 프로디움까지 말로 달리면 오늘 밤 안에는 올 수 있는 탓이었다.

    갑작스럽게 외박이 결정된 터라 주치의를 대동하지 않은 게 이 사달을 낼 줄이야.

    나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는 아키드를 보며 전전긍긍했다.

    ‘난 덕후 자격도 없어. 혼자 들떠서 아키드의 상태도 못 알아채고.’

    최애의 컨디션 하나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덕후라고 칭하는 게 가당치도 않게 여겨졌다.

    산책길에 혼자서 헤벌쭉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속상해 죽을 것 같았다.

    하필 대공이 출장을 간 때에 발작이라니.

    각성 전 발작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동일한 속성의 마법뿐이었다. 아니면 그에 준하는 상대가 마나를 힘으로 누르는 수밖에.

    애초에 성인이 되기 전에 각성기와 비슷한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었다.

    남주인 제로니스도 발작 때문에 어린 시절 굉장히 고생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숙소 안으로 엘레나가 들이닥쳤다.

    “로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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