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25)화 (25/177)
  • #25.

    그 시각, 광산 안으로 횃불을 든 기사들이 대거 들어와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몇 시간 전 이곳에서 대공자비가 원인 모를 현상에 의해 대공자 앞에서 사라진 탓이었다.

    “여기도 없습니다!”

    광산을 통째로 뒤져 보았으나 대공자비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키드는 땀을 뻘뻘 흘린 채 웜홀 주변을 벌써 열 바퀴나 돌았다.

    혹시나 웜홀의 영향으로 다른 공간으로 이동된 게 아닐까, 해서 찾아본 것인데 로에나는 그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실종된 지 세 시간이 넘은지라 불안감이 용솟음치려 했다.

    “젠장!”

    아키드가 벽을 내리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눈앞에서 부인을 놓치고 말았다.

    분명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직원과 대화하는 사이 감쪽같이 로에나가 사라졌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꼭 마법의 장난 같았다. 분명 아래로 떨어진 느낌이 들었는데 금방 따라 내려갔을 때 로에나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른 공간으로 이동된 사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었다.

    누군가 대공가를 노리고 대공자비를 납치하기라도 한 걸까?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죽박죽 헝클어 놓았다.

    “대공자님, 일단 바깥에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작은 마님은 저희가 무슨 수를 써서든 찾을 테니 돌아가 계세요.”

    “그럴 순 없어. 부인의 생사도 모르는 마당에 나보고 발 뻗고 쉬고 있으라는 건가?”

    아키드의 날카로운 음성에 기사가 움찔, 떨었다.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그가 이렇게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니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아키드는 이런 기사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불안함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내버려 둔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내가 함께 외출하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아키드는 자책감에 마른세수를 하며 괴로워했다.

    예전이었다면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부인이었는데.

    차라리 이혼해 주자고 마음먹었던 게 불과 몇 주 전이었는데.

    ‘이혼은 절대 안 돼요. 이혼하기 싫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안심이 되었을까. 한심하게.

    아마도 자신은 성가시고 못돼 먹은 부인이라도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생모에게 버려져 거리를 배회했을 때, 사이좋은 부부가 다정히 지나가는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었던 거겠지.

    평생의 배우자라면 진정으로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처음 대공가에 들어갔을 때 아키드는 갑작스레 생긴 가족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사생아인 저를 대공비가 좋아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들어와서도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 했다.

    대공은 친부라 해도 무심한 성격에다 제 연애사에 바쁜지라 아키드를 챙기지 않았다.

    그러니 친부의 관심이나 사랑 역시 바라지 않았다.

    거리를 배회하며 구걸하는 것보다, 왕초의 발길질을 피해 달아나는 것보다 차라리 호화로운 성에서 유령처럼 지내는 게 더 나았으니까.

    그저 보호받을 울타리가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키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로에나를 만났을 때 깨졌다.

    아키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에 얼떨떨했다. 저도 가족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였다.

    해서 처음으로 로에나를 부인으로 맞았을 때, 제게도 진짜 가족이 생겼구나, 제 편이 생겼구나, 하고 기뻤었다.

    ‘로에나 에이프릴이에요. 아, 이젠 하델루스인가.’

    제 이름을 우물거리며 어색하게 웃던 로에나를 보았을 때 잠깐 기대란 것도 했었다.

    하지만―

    ‘날 속였어! 사생아라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비명을 지르며 엉엉 우는 로에나를 보았을 때, 아키드는 그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게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사치라는 것을. 그저 조용히 묵묵히 유령처럼 살아야 했다는 것을.

    그 후로 아키드는 로에나를 통제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를 내버려 두었다는 말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를 볼 때마다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울기만 했으니까.

    결혼하고 1년 내내 패악만을 부렸던 그녀가 몇 주 사이 갑자기 변한 지금, 아키드는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저는 언제나 아키드 님 편이에요.’

    이제 와서 달콤한 말로 왜 저를 흔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이대로도 충분히 과분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왜 자꾸 더한 기대를 갖게 하는 건지 몰랐다.

    특히 다이아나와 말씨름을 하고 있을 때 로에나가 와서 철렁했다.

    동시에 당연히 그녀가 다이아나의 편을 들며 저를 몰아세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밀었어요?’

    ‘아뇨. 안 밀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왜 당연하다는 듯이 저를 믿어 주는 걸까?

    실은 다이아나가 넘어진 건 그가 위협했기 때문이었는데도 어째서.

    앞뒤 상황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저를 편들어 주는 모습에 아키드는 혼란스러웠다.

    전혀 기대가 없던 와중에 선물처럼 주어진 일이라 그랬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로에나가 사라졌던 그곳에 열한 번째로 갔을 때였다.

    “아키드 님!”

    환청처럼 로에나의 음성이 들렸다. 줄곧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괴로워하던 아키드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웬 나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로에나를.

    하필 나비들이 자체 발광하듯 희게 빛나서 로에나가 사라질 것만 같이 보였다.

    그게 아키드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로에나가 사라지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기껏 얻게 된 제 편을 더는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아키드는 줄였던 속도를 높여 로에나에게 달려갔다.

    “로에나!”

    그리고 언제 혼란스러웠냐는 양 로에나를 끌어안았다. 그 탓에 주변에 있던 나비들이 부산스럽게 흩어졌다.

    로에나는 갑자기 포옹한 것에 놀랐는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후, 그녀가 아키드를 걱정스럽게 올려다보았다.

    “아키드 님?”

    “대체 어디 있었던 겁니까? 다친 곳은! 괜찮은 거예요?”

    아키드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호통치자 로에나가 소매로 그의 이마에 난 땀을 닦아 주며 말했다.

    “미안해요. 많이 걱정했어요? 세상에, 이 땀 좀 봐. 대체 얼마나 찾아다닌 거예요?”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이대로 사라지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아키드는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 내는 것이 겁이 나 채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로에나가 배시시 웃었다.

    “헤헤. 나 걱정했구나. 그쵸?”

    그 모습에 아키드는 기운이 탁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반짝한 탓이었다.

    * * *

    내가 정령과 계약하는 사이 바깥의 시간이 많이 흘렀던 모양이었다.

    아키드는 몇 번이고 내가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아키드가 나 때문에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이라니.

    진즉 코비를 닦달해 영상석을 만들어 두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만큼 혼자 보기 아까운 모습이었다.

    나는 아키드가 기사들과 대화하는 사이 정령들에게 속삭였다.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으면 말을 했어야지!”

    ― 인간들은 고작 세 시간으로도 부산을 떠니? 우리는 천 년 넘게 살아서 그 정도는 별거 아닌데.

    ― 쟤도 참 성격 급하다.

    ― 원래 인간들은 대체로 콩알만 한 일에도 자주 울고 기뻐하고 화내잖아. 넓은 아량으로 우리가 이해해야지.

    이 어르신들을 보게?

    나는 인간이 성격이 급하다느니, 여유가 없다느니 수다스럽게 종알거리는 정령들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바로 앞에서 사람이 사라졌는데 안 놀라는 게 더 이상하잖아. 아키드 욕하지 마. 차라리 나를 욕해.”

    ― 그나저나 저게 네 남편이라는 거지? 세상에, 너 이제 보니 얼굴 밝히는구나?

    ― 아냐. 내 눈엔 로에나가 더 귀여워. 어떻게 머리가 빨간데 눈이 파래?

    ― 왜왜. 쟤도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거 같은데, 뭘.

    “저기, 내가 한 말 잊은 거 아니지? 괜히 눈에 띄지 말고 얼른 실체화 풀어. 이러다 내가 너희랑 계약한 걸 들키겠어.”

    내가 손으로 나비를 쫓으며 타박하자 정령들이 구시렁거렸다.

    ―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너무해!

    ― 맞아! 우리한테 이렇게 매정한 계약자는 네가 처음이야!

    ― 우리 상처받았어! 흥!

    처음은 무슨. 어디서 로맨스 소설 속 남주 같은 대사를 하고 난리람?

    난 너희들의 여주인공이 아니거든?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으로 정령들을 내쫓고 있을 무렵이었다.

    “로에나.”

    아키드가 기사들과 대화를 마치고 내게 왔다. 그러곤 하는 말이 다소 곤란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바깥에 나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왜요?”

    “그게…… 광산 입구에 누가 델루스 꽃을 잔뜩 심어 둔 모양입니다.”

    “네?”

    “분명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실체화를 풀고 아키드를 관찰하는 나비들을 노려보자 정령들이 날개를 팔랑거리며 시치미를 떼었다.

    “아무래도 그때 직원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누군가 우리가 이쪽으로 오는 걸 알고 수를 써 둔 걸지도 모르겠군요.”

    “그러게요.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음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정령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당장 델루스 꽃 치워! 냉큼!’

    그 신호를 알아듣기라도 한 양 정령들이 입구 방향으로 부산스레 이동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