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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23)화 (23/177)

#23.

신나는 데이트를 예상한 것과 달리 에비스 탄광에 도착한 나와 아키드는 난관에 봉착했다.

다른 게 아니라 탄광 앞에 델루스 꽃이 한가득인 탓이었다.

‘오오! 지뢰가 잔뜩 퍼져 있네!’

나는 지난번 씨앗 농장에서의 공포를 생각하며 아키드의 소매를 바짝 붙들었다.

당장 몸이 아플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는 탓이었다. 아키드가 그런 나를 가볍게 부축하며 말했다.

“우선 사무실 쪽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그게 좋겠어요.”

아키드는 한차례 나를 안심시키고 곧장 인근 사무실로 대피했다.

마침 사무실에 있던 직원이 우리를 맞자 아키드가 노기를 띤 음성으로 직원을 꾸짖었다.

“분명 이쪽엔 델루스 꽃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제대로 확인해 본 게 맞나?”

“예? 델루스 꽃이요?”

직원이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창밖을 보았다가 두 눈을 홉떴다.

“아, 아니. 저게 언제 피어 있었지?”

마치 오늘 처음 본 것처럼 놀란 기색이었다. 그가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진짜로 없었는데…….”

많이 당황했는지 직원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제 두 눈으로 보기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비쳤는지 아키드가 냉랭하게 되물었다.

“그 말은 여태껏 없던 꽃이 갑자기 생겼다는 건가? 그것도 반나절 만에?”

나는 아키드의 차가운 힐난에 깜짝 놀랐다. 그가 누군가를 이렇게 냉정하게 대하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사색이 된 채 변명을 계속했다.

“그, 그게 저도 의아한 부분입니다. 부, 분명 연락 드릴 때까지만 해도 델루스 꽃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있었습니다.”

아깐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어이가 없어졌다. 아키드도 나와 같은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하며 대꾸했다.

“없던 꽃이 갑자기 생겼다기엔 꽃의 상태가 너무 좋은 것 같은데. 정말 제대로 확인한 게 맞나?”

“정말입니다! 분명 폭설 전까지만 해도 델루스 꽃은 없었습니다. 아, 아니. 애초에 이쪽은 마석 발굴 지역이라 꽃을 심지 않아요. 분명 오늘 아침까지도 꽃이 없었는데……!”

직원이 열변을 토하며 억울하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직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엔 바깥에 있는 델루스 꽃의 양이 상당했다.

한나절 사이에 갑자기 생겨났다기엔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아키드가 싸늘한 표정으로 일갈했다.

“이 일은 나중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

“대, 대공자님.”

“자네는 내 말을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일로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어.”

“예? 주, 죽다뇨.”

직원은 억지라는 듯이 중얼거렸으나 이어지는 아키드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내 아내가 최근 아팠던 이유를 알고 있나?”

“아, 크게 아프셨다고 전해 듣기는 했는데…….”

“델루스 꽃 때문이었어. 극성 알레르기라고 하면 알아듣겠나.”

“헉!”

직원이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델루스 꽃 알레르기가 있다는 건 대외비였다. 하델루스령의 상징과 상극이라는 건 대공자비로서 큰 흠인 탓이었다.

아키드가 머리를 한차례 쓸어 올린 후 마른세수를 했다. 화를 진정시키려는 것 같았다.

직원은 대공자비가 죽다 살아난 게 델루스 꽃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일부러 숨기려던 건 아닙니다. 정말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서…….”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는군.”

“죄, 죄송합니다…….”

“실수로 던진 돌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 있네. 더는 보고 싶지 않군. 다른 담당자를 불러와.”

아키드의 완고한 태도에 직원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다 물러났다.

아키드가 이런 식으로 부하를 쳐내는 모습은 꼭 원작 속 그를 연상시켰다.

여주에게 버림받고 흑화해 마음의 문을 닫아 전보다도 더욱 견고하게 철벽을 치던 바로 그때의 그를 말이다.

한 번 아니라고 마음먹으면 그대로 끝내 버리는 성격은 무정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그때 이혼 서류를 찢어 버리길 잘했다.’

만약 찢지 않았다면 그대로 이혼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내가 강하게 거부했기에 아키드도 한발 뒤로 물러났을 터였다.

그때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직원이 여전히 억울한 빛을 띠는 것이 보였다.

‘연기인 건지, 진짜로 억울한 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그의 실수로 나는 죽을 뻔했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말을 믿어 주기엔 창밖의 델루스 꽃밭이 너무 무성했으니까.

그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무심결에 델루스 꽃밭을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어라? 저게 뭐지?’

나는 꽃밭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흰 물체들에 고개를 갸웃했다. 물체들이 움직일 때마다 델루스 꽃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하얀 물체들은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

‘눈이었나?’

흰색이니 나무에서 눈이 떨어지는 걸 보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바람에 눈발이 날리는 걸 보고 착각했던가.

그사이 또 다른 직원이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탄광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으니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아까 그 직원의 말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아키드가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혹시 모르니 입과 코를 막고 계세요. 아니면 사무실에 남아도 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안에 있으라고요?”

“그건 그렇지만…….”

“거리가 멀어서 괜찮아요. 눈으로 본다고 알레르기가 생기진 않는답니다.”

나는 손수건을 입가에 대며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아키드의 팔에 손을 댄 채 우리는 에비스 탄광으로 향했다.

* * *

로에나와 아키드가 탄광 안으로 들어간 후, 로에나가 눈송이로 착각했던 존재가 델루스 꽃밭을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가녀린 날개를 펄럭이는 그것은 분명 흰나비였다. 흰나비들은 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꽃밭 위를 배회했다.

나비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없던 델루스 꽃이 피기 시작했다.

마치 요술을 부리듯, 신이 피조물을 창조하듯 무의 공간이 채워지며 델루스 꽃이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참. 흰나비들이 언제 있었냐는 양 자취를 감추었다.

델루스 꽃을 탄광 앞까지 잔뜩 피워 낸 채로.

* * *

에비스 탄광의 직원이 하델루스 성에 확인을 요청한 이유는 탄광에서 발견한 커다란 웜홀 때문이었다.

웜홀에는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순도 높은 마석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기존의 채굴량을 크게 웃도는 굉장한 발견이었다. 해서 직원은 이 웜홀을 채굴해도 좋을지를 대공에게 승인받으려던 것이었다.

“와아.”

나는 웜홀을 내려가자마자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마석에 두 눈을 빛냈다. 꼭 별 무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땅속에서 보는 별 무리라니.

게다가 웜홀의 규모는 위에서 볼 때보다 훨씬 커서 꼭 땅 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래. 분명 땅속 깊이 들어온 상황이건만, 이상하게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곳곳에서 요요한 인광을 번뜩이는 마석들 탓인 거 같았다.

“이 정도면 엄청난 규모입니다.”

“채굴하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이전에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건가?”

“예. 폭설로 지대가 내려앉은 덕에 발견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매일 드나드는 광부들도 몰랐습니다. 꼭 정령의 장난처럼 갑자기 등장했다니까요.”

잠깐. 정령이라고?

나는 직원이 우스갯소리로 한 말에 입을 쩍 벌렸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 대공비 소유의 탄광이 정령의 가호를 받은 땅이 되지 않았었나.’

원작에서는 로르크 남작의 체벌 문제를 공론화시키지 않는 대가로 엘레나가 데미안에게서 광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 그 땅이 정령의 가호를 받아 노다지가 되었었고.

‘분명 그때 마석의 채굴량이 몇 배로 뛰었다고 했어.’

정황상 아무래도 그 광산이 바로 이곳인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한껏 원작의 시간을 요모조모 따지고 있는데 아키드가 물었다.

“발견해 두고 일부러 감추었던 건 아닌가?”

“아닙니다! 어찌 감히 하델루스 대공 전하의 소유지에서 함부로 횡령을 하려 들겠습니까? 걸리면 목이 날아갈 텐데요.”

“근 3개월간의 일지를 확인해 보지. 혹시 모르니까.”

“그, 그걸 다 말입니까?”

웜홀만 확인하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서류까지 요구하자 직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미 앞선 관리자의 안일한 태도에 한껏 예민해진 아키드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왜? 어렵나?”

“아, 아닙니다. 그럼 우선 올라가서 사무실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직원은 태세를 전환하며 아키드에게 깍듯하게 굴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대충 넘어가려다 딱 걸린 사람처럼 쩔쩔매는 게 우스웠다.

‘이게 바로 내 남편의 매력이지.’

아까의 실수까지 있으니 아키드가 더욱 꼼꼼하게 확인하려 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대규모의 웜홀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건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일이었다.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믿기엔 사업이란 게 그리 녹록하지 않으니까.

나는 아키드가 훌륭하게 대공의 빈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뿌듯하게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웜홀 안을 들여다볼 무렵이었다.

번쩍―!

돌연 주변의 마석이 강하게 발광하는가 싶더니 누군가 내 몸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엇!”

“로에나!”

그리고 미처 아키드가 나를 붙들 새도 없이 나는 웜홀 바닥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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