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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 시집살이 너무 쉬운데요 (13)화 (13/177)

#13.

내게 델루스 꽃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하델루스 성이 한바탕 시끄러웠다.

안하무인에 제멋대로 굴 줄만 알았던 작은 마님이 알레르기를 숨긴 탓이었다.

속에 있는 말은 다 내뱉으며 사는 줄 알았던 터라 다들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왜 그런 걸 숨기고 그러세요!”

한나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으며 울음 섞인 음성을 토했다.

옆에 있던 비비안의 표정은 험악 그 자체였다.

“이럴 거면 그냥 혼자 사시지 그래요? 걱정하는 시녀들 생각은 안 하시고! 미련한 분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비비안, 어쩐지 뒷말에 힘이 실려 있어. 기회다 싶어 욕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지?”

“당연히 기분 탓이죠!”

비비안이 콕 찔리는 표정으로 버럭 성을 내곤 코를 팽 풀었다.

나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배시시 웃었다.

어쨌든 모두를 놀라게 한 건 사실이니까.

내가 예상외로 온순하자 슈리가 이를 으득으득 갈며 누군가를 험담했다.

“그 주치의가 조금이라도 예리했으면 이렇게 아프실 일도 없었을 텐데.”

“아키드 님이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뻔했잖아. 돌팔이 의사 같으니라고!”

슈리의 말에 비비안도 분노를 터트리며 개던 옷가지를 팡팡, 털었다. 한나가 합세하며 말을 받았다.

“그래도 아키드 님이 곧장 대공 전하께 고한 덕에 주치의를 새로 배정받았으니 다행이지.”

“사실 전부터 그 의사 마음에 안 들었어. 매번 대충대충 진찰했잖아. 아무리 우리 아가씨께서 까탈스럽다지만!”

까탈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내가 벌인 짓이 그렇게 귀여운 수준이 아닐 텐데?

나는 비비안의 팔이 안으로 굽는 현장을 목도하고 슬쩍 시선을 흐렸다.

어쨌든 의사가 직무태만했던 건 사실이었다.

로에나가 작년에 아팠을 때 제대로 진찰했다면, 내가 델루스 꽃밭에서 헬렐레, 하고 돌아다닐 일은 없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아키드가 나를 위해 대공에게 찾아갔다는 대목이 내 마음을 울렸다.

“아키드 님이 대공 전하를 찾아갈 줄은 몰랐어.”

괜스레 수줍어 이불을 만지작거리자 한나가 말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죠. 저희도 놀랐어요.”

아마 대공도 놀랐을 것이다. 아키드가 먼저 그를 찾아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리 아가씨 아끼는 분은 아키드 님뿐인 것 같기도 해요.”

“비비안 얘는, 언제는 우리 아가씨한테 철벽 친다며 투덜거렸으면서.”

“슈리, 조용히 해.”

비비안이 새침하게 굴자 슈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아키드 덕분에 월급 루팡을 즐기던 주치의는 쫓겨났다. 새로 온 주치의 마샤는 제법 열정 있어 나를 살뜰히 챙겼다.

아마도 내가 지옥의 주둥아리, 일명 ‘지주’로 불리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꽃축제가 얼마 안 남았는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는 날짜를 손꼽으며 고민에 잠겼다.

아무리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도 나는 하델루스 대공자비였다. 계속해서 델루스 꽃을 피해 다닐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대로 쉬고 있는 건 대공비에게 꽃축제에 관한 모든 일을 전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사이도 안 좋은데 일까지 몰아주었으니 대공비의 심기가 무척 나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한나와 비비안이 어느새 꽃축제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무슨 씨앗 뿌릴지 생각했어? 난 지난번에 심은 게 금방 죽어 버려서.”

“글쎄. 난 지난번이랑 같은 걸로 할 거 같은데. 일단 씨앗 뿌리는 거 자체가 너무 귀찮아서.”

“하여간 멋없긴. 그럴 거면 그냥 민들레 홀씨나 흔들고 다녀.”

“오! 그거 좋은데?”

내가 손뼉을 치고 호응하자 비비안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니 비비안이 뒤쫓아왔다.

“어? 아가씨, 어디 가시려고요?”

“어머님한테.”

“오늘 씨앗 농장에 가신다고 들었는데…….”

“어, 마침 마차가 들어오고 있어.”

슈리가 마침 커튼을 정리하다 대공비가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생각에 씨익 웃으며 우다다다 복도를 달렸다.

엘레나가 씨앗 농장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니 내 계획을 말하기에도 적기 같았다.

“같이 가요, 아가, 아니 작은 마님!”

비비안이 주변 눈치를 보며 호칭을 정정하고 뒤따라왔다.

나는 그녀를 기다려 줄 새도 없이 타닥타닥 계단을 내려갔다.

마침 성에 들어와 막 계단을 오르려던 대공비가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어머님, 안녕히 다녀오셨…… 억!”

나는 뛰다 말고 예를 갖추려다 그만 치맛자락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하필 계단이라 그대로 엘레나에게 돌진하듯 점프했다.

엘레나의 당황한 얼굴과 함께 나는 그녀에게 폭삭 안겨버렸다.

“헉!”

뒤따라오던 비비안이 놀라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엘레나에게 덜렁 안긴 채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식으로 격한 환영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망할 놈의 다리가 내 마음대로 따라 주질 않았다.

이건 마치 주인님 오기를 기다렸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지 않은가.

엘레나 역시 놀랐는지 몸이 굳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떨어질까 몸을 단단히 붙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으아아, 죽고 싶어.

나는 수치스러움에 그녀의 목을 바짝 끌어안았다. 그러자 엘레나가 말했다.

“환영이 격하구나. 목이 좀 아픈데.”

“……다, 다, 다녀오셨어요?”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사뿐히 내려 주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사실 그녀가 받아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과 포옹할 뻔했다. 품에 안긴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때 엘레나가 느긋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리 호들갑을 떠는 거니?”

“아! 이번 꽃축제 일로 상의 드릴 일이 있어서요.”

내가 냉큼 본론을 꺼내자 엘레나의 표정이 짐짓 굳어지는가 싶더니 도로 차갑게 말했다.

“난 또.”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지 않다 해도 이미 말하려고 왔잖니?”

“헤헤.”

“따라오렴.”

엘레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냉큼 그녀의 곁에 붙었다.

제법 걸음이 빨라 버겁게 따라가니 그녀가 은근히 속도를 줄여 주는 게 느껴졌다.

‘의외로 세심한 면도 있네.’

일을 다 떠맡겼다고 무섭게 다그칠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화난 기색은 없었다.

테라스에 도착하자 간단한 다과가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였다.

마카롱이 영롱한 빛깔을 내며 ‘나를 먹어 줘’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간식 시간이 가까워서 그런지 제법 출출했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엘레나가 새침하게 말했다.

“누가 보면 내가 먹는 거에 눈치 주는 줄 알겠구나. 갑자기 웬 내숭인지.”

“잘 먹겠습니다!”

내숭 떨지 말라 돌려 까는 말에 나는 냉큼 마카롱을 집어 먹었다.

그래. 로에나가 언제 이런 거 눈치 보며 살았다고.

이번 알레르기 사건으로 눈치를 보는 아이였구나, 하는 인식이 생긴 거지 실제로는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핑크색 마카롱은 그 색만큼이나 달콤한 식감을 자랑했다. 꼬끄가 쫀득쫀득하니 입에 착착 감겼다.

그 속의 필링은 사르르 녹는 게 구름을 먹는 것 같았다. 우유까지 적셔 먹으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잠시 마카롱 먹방에 온정신이 쏠려 있던 나는 뒤늦게 엘레나의 그윽한 시선을 느끼곤 움찔했다.

아, 너무 맛있어서 본분을 잊어버렸다.

“저어.”

“원래 이렇게 잘 먹는 아이였니?”

“네?”

“그간 새 모이만큼도 먹지 않아서 먹는 것엔 통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엘레나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인지 심기가 아주 나빠 보였다.

‘아, 내가 대공비 몫까지 다 먹어 버려서 그런 건가!’

나는 그제야 접시에 있던 마카롱 네 개를 게 눈 감추듯 모두 먹어 치웠음을 깨달았다.

“어…… 저기 혼자 다 먹으려던 건 아닌데.”

“너 혼자 다 먹으라고 내온 거다.”

엘레나가 홍차를 홀짝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랄까, 심기가 나빠 보이는데 그게 꼭 내 탓 같지는 않다고 할까?

어쨌든 마카롱 때문이 아니라니까 나는 배도 채웠겠다, 본론을 꺼내었다.

“이번에 제 알레르기 때문에 어머님이 고생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떤 정신 빠진 하녀가 너한테 그런 소리를 했니? 이름을 대 보렴.”

아니, 시어머니는 왜 또 갑자기 미친개 모드인 걸까?

그냥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해서 대충 말한 건데 눈까지 부릅뜨며 으르렁댄다.

누구 하나 잘못 걸리면 투견처럼 달려들 기세였다.

나는 땀이 삐질삐질 새 나오는 기분을 느끼며 정중히 말했다.

“아뇨. 누가 그런 건 아니고 제가 그냥 넘겨짚었어요.”

“일 없다. 네가 신경 쓸 일도 아니야. 어차피 작년에도 나 혼자 했잖니. 이제 와서 도와주는 게 더 피곤해.”

이 어머님, 은근히 뼈 때리는 기질이 있으시네.

애초에 꽃축제 준비는 대공비와 대공자비의 소관이었다.

그런 일을 어차피 혼자 해 왔으니 신경을 쓰지 말라니.

이건 마치 조별 과제에 지친 조장이 혼자서 조원을 모두 끌고 가겠다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다.

한순간에 무임승차하는 돼먹지 못한 조원이 된 기분.

일부러 그러시는 거면 말싸움에 재능이 있으신 거고, 아니라면 그것도 그거대로 문제였다.

나는 이대로 대공비가 독박 과제를 하지 못하도록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도 어머님을 돕고 싶어요. 마침 제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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