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 인생은 드라마인데 장르가 계속 바뀌는 (22/33)

22. 인생은 드라마인데 장르가 계속 바뀌는

“여어, 옆집!”

계단에 걸터앉아 손을 흔드는 이의 얼굴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요?”

“그럼 그쪽이 유민서 옆집이지 윗집이게?”

말장난처럼 대꾸한 서해량이 쓰윽 몸을 일으켰다. 입가의 흉터가 센서 등에 비쳐 선명히 보였다.

그렇게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티를 팍팍 내던 인간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이유가 짐작조차 되지 않아 경계를 풀지 않자 서해량이 내게 성큼 다가왔다.

“러스터 길드 안 들어갔더라?”

말의 저의를 알 수 없어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이니 뒷머리를 벅벅 긁은 서해량은 멋쩍게 입을 열었다.

“난 그쪽이 러스터 길드 들어가기로 확정돼서 나한테 그렇게 띠껍게 구나 했지.”

“밤중에 앞집 초인종이 1초 간격으로 울리면 누구라도 띠꺼워지지 않을까요?”

여전히 띠꺼운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린 서해량이 내 등을 두드렸다.

“그래, 그래.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그러니까 서로 앙금 풀고 넘어가자고.”

왜 민서 언니가 서해량을 보고 그렇게 질색하는지 알 것 같았다. 좋게 말해서 성격이 호탕한 거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남 눈치 더럽게 안 본다.

전에도 댁이 일방적으로 나한테 시비 튼 거거든? 댁이 나한테 쌓인 앙금이 어디 있는데.

상대하기도 귀찮아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서해량이 내 어깨를 턱 잡아 왔다.

“저한테 무슨 용건 있어요?”

“혹시 유민서 뭐 좋아하는지 아냐?”

내가 알겠냐. 그리고 내가 봤을 때 댁은 그 인성 뜯어고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선물 공세를 해도 안 돼.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서해량이 투덜거렸다.

“뭔 이웃사촌 간의 정이 이렇게 없어? 나 때는 검도장 마치고 옆집 문 두드리면 부모님 오실 때까지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하고 그랬는데.”

“그건 90년대 옛날이야기고요, 와룡 씨는 지금 옆집 사람이 뭐 좋아하는지 아세요?”

한숨 쉬며 묻자 서해량은 오만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내가 굳이 그걸 알아야 하나?”

“그러면 저한테는 왜 묻는데요?”

“아니, 원래 이런 조그만 집 사는 사람들은 이웃끼리 끈끈하지 않나? 드라마 보면 형편 어려운 사람들끼리 열심히 교류하면서 살던데?”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에 혈압이 올라와 뒷목을 움켜잡았다. 뭔 이런 놈이 다 있어?

치밀어 오르는 화에 부들부들 떨고 있자 뒤에서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혀를 차며 내 등을 떠밀었다.

“진짜 뒤통수에 칼 맞기 딱 좋은 화법이네. 그딴 식으로 계속 말하다간 언젠간 칼 맞을 테니까 조심하라 그랬지, 서해량.”

“내가 못 할 말 했던가? 이런 원룸에 사는 게 형편이 좋은 건 아니잖아?”

서해량의 진심 어린 대꾸에 민서 언니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검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씩 웃은 서해량 역시 팔을 뻗었다.

“오랜만에 한판 하자고? 나야 좋지!”

“설마 두 분 다 여기서 칼부림하실 생각은 아니시죠?”

빼꼼 위층에서 내미는 머리와 의심이 한가득 담긴 목소리. 이재의의 등장에 민서 언니가 순순히 검을 다시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이재의가 계단을 내려오며 타박했다.

“일반인 앞에 두고 뭐 하시는 겁니까?”

“여기 일반인이 어디 있어? 죄다 헌터구먼. 집에 틀어박혀 있는 놈들 말해?”

서해량이 빈정거리자 잠시 나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이던 이재의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첫 만남에서 내가 게이트에 휘말려 겨우 구출된 민간인 포지션이었다 보니 이재의한테는 일반인인 내 이미지가 크게 박혔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과장, 그 미친놈은 잡혔어? 네크로맨서라 빨리 잡힐 거라며.”

미친놈? 서해량의 껄렁한 말에 반사적으로 민서 언니를 돌아보자 언니는 자연스럽게 이재의를 향해 눈짓했다. 직접 물어보라, 이 말이었다.

“현재 등록된 네크로맨서는 모두 조사받았고 수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고등급 미등록 각성자인 듯합니다.”

“이야, 미등록 각성자면 찾는 데 고생 좀 하겠는데?”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며칠 전 BJ 민 헌터가 생방송 중에 습격당해 용의자 실루엣이 방송에 흐릿하게 나왔습니다.”

“걔 안 죽었죠?”

일방적 친밀감을 차곡히 쌓아 갔던 울 관종 고딩이 습격당했다고? 익숙한 헌터명에 다급히 묻자 급격히 피곤해진 얼굴이 된 이재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아주 멀쩡합니다. 범인을 잡겠다는 의욕이 너무 과해서 문제지만요.”

알 것 같다. 분명 범인 참교육 콘텐츠를 짜고 있겠지. 방송 분량 생겼다고 실실 웃고 있을 BJ 민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한숨을 쉰 이재의가 내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요즘 헌터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등급 헌터를 중심으로 한 습격 역시 늘고 있고요. 범인의 습격에서 도망친 헌터가 범인이 네크로맨서라고 증언해서…….”

“한마디로 등록 안 한 웬 미친 네크로맨서 놈이 자기 귀속 만들겠다고 고등급 헌터들을 죽이고 다닌다, 이 말이지. 그것도 능력 특이하고 강한 놈들만 골라서.”

나를 쳐다보며 씩 웃은 서해량이 덧붙였다.

“내가 봤을 땐 옆집 너도 목표물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와룡 헌터, 이제 막 헌터 라이선스 나온 초보 헌터 겁주지 마십시오.”

이재의의 타박에 서해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채현 씨도 조심해선 나쁠 것은 없으니 부디 조심하시고요. 게이트 같은 곳은 E, F급 게이트라도 꼭 다섯 명 이상 파티로 들어가십시오. 혼자면 습격 확률이 더 높아지니까요.”

이재의가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그가 보기에도 내가 표적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말을 마치고 가볍게 묵례한 이재의가 계단을 내려가자 서해량이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유민서 어디 갔냐?”

“방금 집 들어갔는데요.”

“거참, 왜 그렇게 나만 보면 질색하는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내가 쟤한테 뭐 잘못했나? 어이, 옆집. 유민서에게 들은 거 없어?”

서해량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내게 묻는 꼴을 보니 민서 언니와 저 인간의 사이가 좋아질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짧게 고개를 젓고 우리 집 문고리를 잡자 서해량이 킬킬거렸다.

“참, 밤길 조심하는 게 좋을걸. 네크로맨서가 괜히 1티어라고 불리는 게 아니야.”

“제가 표적이라고 확신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얼굴이랑 학교가 밝혀진 희귀 능력 헌터 정도면 그 네크로맨서 놈한텐 좋은 먹잇감이지.”

헌터증에 잉크도 안 마른 짭 A급 테이머인 나는 속으로 코웃음만 쳤다. 나를 노리고 습격해 봤자 걔가 뒈지지 내가 뒈지나?

내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겁먹었다고 생각하는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서해량은 여상한 목소리로 충고를 건넸다.

“만약 네가 정말 죽을 것 같으면 어떻게든 네크로맨서를 죽여. 시전자가 죽으면 소환한 것들 역시 사라지니까. 살인죄는 적용되겠지만 정상참작은 해 줄걸? 일단 그쪽이 사는 게 먼저 아니겠어?”

“그렇죠. 자칫하다간 제 이름에 빨간 줄 그어지는 게 문제죠.”

심드렁한 대꾸에 피식거린 서해량이 덧붙였다.

“게이트 안에서 죽이면 그 살인죄도 적용 안 될 확률이 높고 말이야. 몬스터가 죽인 건지, 사람이 죽인 건지 어떻게 알겠어?”

“적벽 길드 선점 게이트에서 죽이면 제 헌터 라이선스 기록 지워 주게요?”

몸을 돌려 묻자 씨익 웃은 서해량은 손을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다른 건 다 모른 척해 줘도 내가 범법 행위는 눈 못 감아 줘서. 기왕이면 러스터 독점 게이트에서 죽이지 그래?”

범법 행위 밥 먹듯이 할 것처럼 생겨서는 의외네.

* * *

쿠웅―!

핵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와이번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황금빛 핵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핵에 손을 대니 이제는 익숙한 상태창이 떴다.

『차원 #SF668-7의 근거지입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차원 #SF668-7과의 연결을 영구히 끊으시겠습니까?』

“…연결 끊으면 그 녀석을 다시는 못 보겠죠.”

드래곤 친구라는 닉네임의 귀환자가 아련한 눈빛으로 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골드 드래곤과 돈독한 우정을 쌓다가 향수병에 걸려 제 친구 골드 드래곤의 도움을 받아 지구로 돌아왔다는 드래곤 친구는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꼭 다시 보러 간다고, 크흥, 그랬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하다, 크헝! 내가 X발, 로또 1등에 당첨돼서 못 돌아가겠어……!”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연신 핵을 쓰다듬는 드래곤 친구를 보는 눈길들에 연민이 감돌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크기의 미련을 남겨 두고 돌아온 사람들이었기에.

그리고 로또 1등이면 타 차원 우정 버리는 거 인정이지. 부럽다, 로또 1등.

“닫지 말까요?”

드래곤 친구의 등을 토닥여 주며 물었다. 물론 닫지 말라 해도 닫을 거지만. 내 물음에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든 드래곤 친구가 정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닫아야죠. 비만 도마뱀 놈들이 얼마나 포악한데. 그 새끼들은 인간이 햄스턴 줄 안다니까요. 그런데 걔들은 햄스터를 먹어요. 걔들 넘어오면 지구 망하는 거야.”

…친구 맞아? 혼자 일방적으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거 아니고? 사실 친구가 아니라 펫이었던 거 아니야?

“잘 살아라, 새꺄! 드워프 좀 그만 괴롭히고!”

영영 제 친구(인지 주인인지)에게 전해지지 않을 마지막 인사를 하며 울먹이던 드래곤 친구가 소매로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벅벅 닦으며 미련 가득한 몸짓으로 등을 돌렸다.

『차원의 연결을 끊어 냈습니다.』

『게이트가 닫히기까지 남은 시간 - 00:05:00』

차원 연결을 끊어 낸 후 세 걸음에 한 번씩 뒤를 돌아보는 드래곤 친구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며 게이트 밖을 빠져나왔다.

오늘의 게이트는 관악산. 우리 학교 바로 뒷산이었다.

하필 등산 코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게이트였던 탓에 등산객이 없는 느지막한 시간에 모인 터라 어느새 바깥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게이트가 스르륵 소멸하고 익숙하게 덤불로 향하던 나는 발걸음을 멈칫했다. 오늘은 웬일로 BJ 민이 등장하지 않아 덤불에 묻어 놓은 게 없었던 탓이었다.

“다들 잘 들어가세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늦은 밤 시간까지 수고해 준 귀환자 파티는 빠르게 해산했다.

편의점에 들러야 했기에 집으로 곧바로 순간 이동하는 걸 포기하고 버스를 타는 걸 선택했다. 집에서 편의점까지 걸어가는 것보다는 버스정류장에서 편의점까지 걸어가는 게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순간 이동 말고 운동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

순간 이동의 꿀맛을 잊지 못했는지 울망울망한 눈망울로 나를 힐긋거리는 백마왕을 향해 눈을 한 번 부라려 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 * *

저벅―

동네에 도착해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고 나와 원룸으로 돌아가던 중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멈칫했다.

동시에 내 뒤에서 들려오던 발소리 역시 뚝 끊겼다.

편의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흐릿한 가로등 조명 하나가 전부인 어둑한 골목길. 다르게 말하자면 범죄가 일어나기 딱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역시나 뒤따라오는 기척과 함께 발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눈치챘다는 티를 내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니 뒤에 있는 이가 점차 거리를 좁혀 오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어제 이재의와 서해량에게 들었던 그 미친 네크로맨서 살인마인가?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주면 나야 땡큐지. 분명 잡아가면 현상금 있겠지?

휙 고개를 돌리니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다가 걸음을 멈추는 남자가 보였다. 후드와 캡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는 내 눈길이 닿자 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서서히 걸음을 늦추며 언제 놈이 덤벼들지 타이밍을 재고 있자 다가오는 기척이 점차 빨라졌다. 계획대로 움직여 주는 놈을 향해 코웃음을 치다가 느껴지는 또 다른 기척에 입매를 딱딱하게 굳혔다.

‘일행인가?’

일단 뒤에 있는 놈부터 잡고 일행 놈을 잡을 수밖에. 여차하면 마기를 쓰고 기억 삭제하면 되고.

바로 뒤까지 접근한 수상한 그림자를 향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화르륵! 붉은 화염이 한발 먼저 타올랐다.

당황한 남자가 도망가려는 순간 골목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내가 일행으로 착각했던 바로 그 기척이었다.

“X발, 잡았다! 제가 뭐랬슴까! 분명히 이 새끼 같다는 필이 딱 왔다니까?”

셀카봉에 끼운 휴대폰과 스킬로 만드는 자체 조명. 이제는 나타나지 않으면 섭섭할 지경인 관종 고딩 BJ 민이었다.

빌어먹게도 저놈이 생방 중이라 스킬을 쓸 수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페리를 소환했다.

“휴대폰에 대고 떠들 시간에 잡아!”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몬스터와 내 버럭거림에 수상한 남자가 흠칫하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저 약해 빠진 놈은 페리가 한 대 쳐도 죽는다. 살살 물어도 죽는다.

그리고 저 생방 스트리밍이 돌아가고 있는 이상 내게는 저놈을 생포할 방법이 없었다. 죽일 수 없다면 페리는 그저 위협용일 뿐.

BJ 민의 화염이 덮쳐 오기 전 남자가 불러낸 그림자가 실드를 펼쳤다. 그림자는 뚜렷이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었다.

“거봐! 네크로맨서 맞다니까! 봤죠? 네크로맨서 빼박이죠?”

“그만 떠들고 잡으라니까!”

“그럼 누나는 왜 가만히 있는데요!”

“쟤가 물면 반토막 난다고!”

내 외침에 겁을 먹은 건지 습격범이 서너 개의 그림자를 더 불러냈다. 한 그림자의 손에서 얼음 사슬이 튀어나와 우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저 얼음 사슬, 세민 행님 능력인데……! 야, 이 X발 새끼야! 세민 형님 죽인 게 몬스터가 아니라 너였냐?”

쏟아지는 사슬에 화염을 불러내어 녹이던 BJ 민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 질렀다. 아는 사람이 이지가 사라진 언데드 그림자가 되어 저를 공격하고 있으니 저럴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그림자들이 쏟아 내는 공격은 우리를 죽이려는 목적이 아닌 제압하려는 수준의 공격.

아무래도 사람을 저런 언데드 그림자로 만드는 건 단순히 죽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조건이 있는 듯했다. 예를 들면 직접 죽여야 한다거나…….

‘시스템 간섭.’

『시스템에 접근합니다.』

『관리자 ‘이채현’ 님 확인되었습니다.』

일단은 놈의 정보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미등록 헌터라면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름이라도 알고 있다면 한결 일이 쉬워지겠지.

『김민수』

* 계열 - 법사

* 직업 - 네크로맨서

* 등급 - S

* 스킬 - SSS급(목록 보기), SS급(목록 보기) … E급(목록 보기), F급(목록 보기)

* 스테이터스 - 체력 B, 힘 C, 민첩 A, 지력 B, 정신력 A, 마력 S

“돌겠네.”

예상치 못한 타격에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왜 저 자식 이름은 김민수인데.

한국에서 김민수 찾기는 거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급이었다. 심지어 이 쓸모없는 정보창은 나이도 안 나왔다.

등급은 S급. 그렇지 않아도 1티어 중에서도 1군으로 불리는 네크로맨서에서 역대 최상의 등급이었다.

강자가 악인인 것만큼 귀찮은 일은 없다. 당장 진세빈만 보더라도 74명을 죽인 참극을 만들어 놓고는 대타를 밀어 넣고 입을 싹 씻고 있지 않은가.

피해자가 더 많아지기 전에 그냥 페리에게 먹이로 던져 주고 실종으로 처리를……. 그러려면 일단 생중계부터 끄게 만들어야지.

- 간살간죽 님, 슈퍼채팅 3천 원 감사합니다. 네크로맨서 생포해서 얼굴 까면 후원 100만 원.

“아, 100만 원은 못 참지. 어, 어? 저 새끼, 어디 가! 야!”

BJ 민이 버럭 소리 질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림자와 네크로맨서. 흔적 하나 없이 텅 빈 앞을 보며 페리를 역소환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힘숨찐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했다.

저 녀석만 아니었으면 진작 저 연쇄 살인마 놈을 잡아서 관리국 앞에 내팽개쳤을 텐데.

휙 고개를 돌려 BJ 민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자 방금까지 네크로맨서가 서 있던 자리에 고래고래 욕을 쏟아붓고 있던 BJ 민이 나를 마주 보고는 씩 웃으며 깐족거렸다.

“고맙죠? 저 아니었으면 누나도 저 극악무도한 네크로맨서 놈에게 죽어서 그림자 될 뻔했죠?”

사이다 먹인 척하지 마라. 너 때문에 나는 강제로 고구마 먹었으니까.

그리고 언제 봤다고 누나 타령이야? 물론 우리가 사라진 기억 속에서 많이 마주하긴 했지만 분명히 기억 삭제를 했을 텐데.

“어떻게 그 사람이 그 연쇄살인범인지 알고 따라온 거야?”

“그놈 찾아서 제보받으면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미행했죠.”

그게 가능해? 차라리 그놈이랑 공범이라는 게 더 신빙성 있겠다. 의심을 거두지 않는 내 눈빛에 BJ 민은 휴대폰 화면을 연신 힐끔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 두명드래곤 님 슈퍼채팅 천 원 감사합니다. 테이머 방송 게스트로 불러오면 후원 10만 원.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낸 그가 슬그머니 말을 덧붙였다.

“제가 눈썰미가 좀 좋거든여. 제가 당했던 때랑 모자랑 신발이 똑같아서 저거 익숙한데? 하고 사람을 훑어보니까 어라, 체격도 비슷하네? 빙고.”

딱, 손가락을 튕기는 경쾌한 소리가 늦은 밤의 골목길에 울렸다. 어린놈이 눈치가 제법인데? 나중에 내가 기억 지운 것도 이렇게 추리하는 거 아니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BJ 민이 히죽이며 깐족거렸다.

“아무튼 고맙죠? 제가 생명의 은인이죠?”

말은 바로 하자. 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지. 너 혼자 S급 네크로맨서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니?

그놈이 A급 두 명+거대 몬스터 페리를 보고 상대가 안 되겠다 싶어서 도망간 거지, 만약 오늘 BJ 민 혼자 있었다면 다음 날 BJ 민의 실종, 혹은 사망 기사가 인터넷에 도배되었을 것이다.

생방송이야 휴대폰만 박살 내면 꺼지는 거고. 얘는 언데드 그림자가 되어 명령대로 화염이나 내뿜고 있었겠지.

“그러니까 나중에 제 채널 방송 출연 한번 해 줄 수 있슴까? 던전 레이드 도는 콘텐츠로.”

“거절. 얼굴 팔리는 건 딱 질색이라.”

“헉, 지금 좀 누나 얼굴 나왔는데. 아아니, 어두워서 제대로는 안 나왔을걸요.”

“영상 업로드할 때 모자이크 안 하면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 거니까 그거만 알아 둬라.”

내 심드렁한 말에 BJ 민이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거 이재의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괜찮아요? 아, 있잖아요. 관리국 대빵.”

이재의가 네 친구냐. 하여간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어요. 혀를 차며 몸을 돌리자 BJ 민이 잽싸게 붙어 왔다.

“골목 밖까지만 동행해 드리겠습니다, 누님.”

네가 무서워서 나한테 붙는 건… 물론 아니겠지. 무서우면 저를 죽이려는 놈 뒤를 밟아 덮치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겠지.

골목길이 끝나자 가로등이 늘어난 주택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험하니까 관둬. 오늘은 운이 좋았다지만 다음에도 이러리란 보장이 없잖아. 너 혼자였으면 큰일 났어.”

나름 진심 어린 충고였다. 앱으로 택시를 잡던 BJ 민이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 누나. 그러면 마스크 써도 되니까 저랑 같이 다니시면서 그 네크로맨서 놈 잡으실래요? 수익 6:4로 배분해 드릴게요. 2 대 1은 할 만하잖아요. 그리고 테이머 나온다고 입소문 타면 구독자 수도 늘 것 같은데.”

꾸준히 일관성 있게 방송과 관심에 미친 놈 면모를 보여 주는 BJ 민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결같은 걸 보니 아직 네가 죽을 때는 안 됐는가 보다.

* * *

YxxTube

(동영상)

연쇄 살인마 미등록 네크로맨서 참교육에 실패했습니다

☝10만 ☟201

[BJ 민] • 1일 전

목소리 변조 까먹어서 죄송합니다, 테이머 누님…ㅎ

좋아요 5.7천 답글 26개

[네이문] • 1일 전

네크로맨서랑 테이머가 왜 1군인지 알겠다 ㄷㄷ

좋아요 3.1천 답글 8개

업로드한 지 하루 만에 100만 조회 수를 찍은 영상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핫이슈로 등극했다.

요즘 들어 늘어난 헌터 사망률과 실종률. 그리고 습격당한 고등급 헌터들. 동영상에 나온 언데드 그림자화 된 사망자들.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그저 도시 괴담으로만 치부했던 ‘귀속을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네크로맨서’ 이야기가 이 동영상으로 인해 사실로 밝혀진 터였다.

범인이 미등록 각성자라는 것은 이슈화에 한몫했다.

지금의 사태로 인해 미등록 각성자와 네크로맨서의 이미지는 거의 나락까지 떨어졌다. 미등록 각성자가 적발될 시의 벌금과 신고 포상금을 올리는 법안을 검토 중이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신고 포상금을 50만 원까지 인상한다고? 신고할 맛 나겠는데? 인터넷 뉴스를 쭉쭉 내리던 중, 진동이 울리더니 전화 수신 화면으로 바뀌었다.

✆천세연

웬일이지? 연수원 19기 단체 채팅방 말고는 개인적인 연락을 한 번도 주고받은 적이 없던 터라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 석 자가 꽤 어색했다.

“여보세요?”

- 채현 언니, 제 말이 수상하게 들릴 거 알고 제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 들 것도 알겠지만 제 말 잘 들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떨리는 목소리와 몇 번이고 주저하는 기색. 심호흡한 천세연이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 지금 난리 난 그 네크로맨서, 한시라도 빨리 잡아야 해요.

“왜? 혹시 내가 죽기라도 해?”

반쯤 장난을 섞어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영상에 함께 찍힌, 습격당할 뻔한 사람이 나라는 게 퍼져 부모님은 당장 이사 가라고 성화에, 아현이와 세인이는 각자 자기 집에서 며칠간이라도 지내라고 난리였다.

물론 말을 듣지는 않았다. 아현이와 세인이의 집은 학교에서 너무 멀고 이사하기에는 지금 집 조건이 너무 좋았으니까. 이만한 조건의 방 찾으러 다니기 귀찮기도 하고.

내 말에 한숨을 내뱉은 천세연이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 언니는 그놈에게 죽을 수준이 아니잖아요. 언니가 아니라 언니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요.

진지한 목소리에는 방금의 나와 같은 장난기라고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제야 나 역시 얼굴에 띄웠던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싹 빼고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세웠다.

아무래도 회귀자가 연수원 급식 및 치킨에 이은 두 번째 활약을 할 모양이었다.

* * *

과연 믿을까? 혹시 악담으로 치부하는 건 아니겠지? 회귀했다는 사실이라도 밝혀야 하나?

초조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물어뜯던 천세연은 자책했다. 조금 더 빨리 말했어야 했다. 그 동영상이 올라오기 전에, 그러니까 이채현이 습격당하기 전에.

시기가 이때쯤이었다는 것만 기억했지 정확한 시기를 기억 못 한 제 실수였다.

하지만 늦었다고 자책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 본격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코 회귀 전처럼 흘러가게 둘 수는 없었다.

천세연은 회귀 전의 사건 시간대를 차근차근 되짚었다.

‘제일 먼저 나연이가 죽었지.’

연수원에서 만난 또래 친구. 저를 둘러싼 주변 환경 때문에 강제로 성숙해져 버린 저와 다르게 싹싹하고 애교가 많아 언니들에게 가득 예쁨받았던 김나연.

E급이지만 당차고 외향적이었던 그 친구를 마지막 모임 이래로 다시 만나게 된 건 김나연의 장례식에서였다.

게이트 스틸 파티에 들어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김나연은 죽어서까지 욕을 먹었다. 정작 욕을 먹어야 할 건 게이트를 스틸한 이들이 아닌 그 게이트 안에서 파티원들을 죽인 네크로맨서인데.

장례식에서 이채현이 죽을 만했다고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말이면 다냐고 화냈던 건 바로 어제 일처럼 뚜렷하게 기억났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백야.’

한국의 유일무이한 S급 힐러. 그가 네크로맨서의 습격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레이드를 끝내고 귀가하던 중, 자신의 집 지하 주차장에서 공격당하여.

“나 때문이야. 내가 그때 죽이지 않고 보내 줘서…….”

“언니 잘못 아니에요. 그 미친놈 잘못이잖아요. 너무 자책하지 마요.”

이채현이 완전히 무너진 것도 그쯤이었다. 천세연이 옆에서 달래고 위로해도 오랜 친구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빠, 어떻게 좀 해 봐. 저러다 채현 언니 죽겠어!”

그리고 그때는 천세연의 적극적인 공세로 이채현과 천우현, 두 사람이 잔잔한 썸을 타고 있던 시기였다.

그때의 세연은 음료를 옷에 엎고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하던 저한테 오히려 괜찮냐고 되물으며 세탁비는 괜찮다고 택시 왔으니 어서 가 보라고 말하던 언니가, 연수원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나 친언니처럼 그를 챙겨 주던 언니가 좋았다.

기꺼이 제 소중한 오빠를 소개하고 둘을 적극적으로 엮을 정도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 ‘네크로맨서 습격 사건’의 범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자수한 피의자는 헌터 천우현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천우현이 그 네크로맨서를 죽였다. 갈기갈기 찢은 잔인한 모양새로.

경악스러울 정도의 잔인함에 뉴스는 온통 그 사건을 떠들어 댔고 시사 프로에서는 과연 저를 죽이려는 범죄자를 이런 수준으로 죽인 건 정당한 건지에 대한 토론이 연신 이어졌다.

이웃들의 껄끄러운 눈빛과 사이코 아니냐며 수군거리는 사람들. 옆에서 지켜보는 저조차도 지쳐 가는 터인데 오빠는 꿋꿋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오빠가 아니라 채현 언니가 죽인 거였어? 그런데 오빠가 뒤집어쓴 거고?”

진실을 알게 된 건 전 세계적으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는 바람에 그 일이 묻혀 모두에게 잊혀 갔을 때 즈음.

사건이 정당방위로 결론 나 천우현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으니 다시 제 오빠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 사건을 들쑤셔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깊게 드는 배신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실에 분노했지만 이제는 원망의 대상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안다.

그 네크로맨서 하나 때문에 나연이가 죽고 채현 언니의 친구가 혼수상태로 빠지고 오빠가 살인자로 낙인찍혔다.

S급 프리스트도 중태에 빠질 정도의 부상을 입었는데 B급 프리스트인 자신이 그 네크로맨서를 잡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혹여라도 오빠가 또다시 살인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당하고 욕을 먹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 네크로맨서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오빠는 김나연과 친분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이채현에게 손을 뻗었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정체를 말하여 경계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회귀자라고 똑똑이 각인을…….

- 알겠어. 그러면 그 미친놈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는 알고 있어?

예상외의 흔쾌한 대답이 돌아와 천세연은 눈을 깜빡였다. 이 언니, 혹시 내가 회귀자라는 걸 아는 거 아니야?

* * *

“어떻게 아는지는 안 물어볼게. 너한테 예지 스킬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지, 뭐.”

물론 나는 네가 회귀자인 걸 알지만. 저쪽이 지레 겁먹고 경계하여 정보를 숨기면 귀찮아지는 건 이쪽이었기에 마음 놓고 마음껏 말하라고 부러 판을 깔아 주었다.

회귀자의 말인데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 나를 경계하면서 직접 전화까지 할 정도면 더더욱.

며칠만 일찍 말해 줬으면 그날 어떻게든 잡았을 텐데, 아쉽네.

소리 없이 입맛을 다신 내 말에 한결 마음의 짐을 던 목소리로 천세연이 미래를 스포했다.

- 나연이가 게이트 스틸 파티에 들어갔다가 죽어요. 그러니 그 네크로맨서를 잡으려면 나연이가 게이트 들어갈 때를 노려야 해요.

“나연이면, 우리 연수원 19기 룸메 김나연?”

김나연이 죽는다고? 어째서 천세연이 저와 사이가 껄끄러운 내 주변 사람이 위험한데도 끼어든 건지 알 것 같았다.

- 네. 그러니 그때 무조건 잡아야 해요.

단호한 어조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렸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덧붙인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 만약 못 잡으면 그다음은 백야 헌터거든요.

* * *

HUNTED

[자유게시판] 네크로맨서만 들어와 질문 있음

20XX-09-20 03:11 조회: 51,472 작성자: 메인쿤

네크로맨서랑 힐러랑 상성 정반댄데 힐러 죽여도 귀속 ㄱㄴ함? 그리고 힐러가 언데드 그림자화 돼도 힐 쓸 수 있나?

댓글(356)

1818: 네크로맨서 놈들에게 또 어떤 창의적인 욕을 박았을까 궁금해서 들어왔다가 백스텝함

디베인: 시체대장 새끼들 컨셉질 ㅉㅉ 니네가 이래서 욕 처먹는 거야

polli: 미친 새끼 아니냐? 안 그래도 네크로맨서 욕 뒤지게 먹고 있는데 이런 글 올리고 싶냐?

└polli: 빨리 지워라

上high치킨버거: 이 새끼 작성글 목록 보니까 네크로맨서도 아닌데?

└복길: 네크로맨서 욕 먹이려는 고도의 전략 아니누…….

└에스터: 작성자 내 지인인데 지금 실종 상탠데……? 지금 실종 신고 들어가 있음

└수히: @에스터 구라 ㄴ

└에스터: @수히 진짜야 헌티드에서 만나서 파티 몇 번 같이 돈 지인임 내가 왜 이런 구라를 치겠냐고

└수히: @에스터 증거 없음 안 믿는다

└에스터: @수히 (사진) 카페 채팅 캡처본임 이제 믿기냐?

KK L: 해킹당했나 본데 계정 정지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레누이: 해킹당하면 이상한 광고 글 띄우지 저렇게 글 쓰나?

…….

dig1265: 야 설마… 그 네크로맨서가 글 쓴 거 아니냐……? 그 새끼 미등록이라 헌티드 가입 못 하잖아 그러니까 자기가 죽여서 귀속한 헌터 아이디로……

└혁규: 와 ㅅㅂ 이거 찐이면 개소름 돋는데

└okd8429: 미리 성지 순례

└은성56: ㄹㅇ 신빙성 있음 ㄷㄷ

└MK: 누가 얼른 아카이브 좀 따놔 봐

새벽에 헌티드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게시 글 하나에 헌티드는 물론이요, 다른 인터넷 사이트까지 발칵 뒤집혔다.

게시 글은 빛의 속도로 삭제되었지만 이미 수상함을 느낀 네티즌들에 의해 그 게시 글은 캡처본 및 아카이빙이 따여 사이버수사대에 보내진 지 오래였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그 아이디의 주인이 현재 실종 상태임을 공표했다.

‘숨어서 어그로성 글을 쓴 거다 vs 진짜 그 연쇄살인범 네크로맨서 놈이 올린 글이다’로 뜨겁게 공방이 이루어졌지만 여론은 후자로 기울어졌다.

그 아이디의 주인이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후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명확해졌다. 놈의 다음 목표물은 힐러였다.

이로써 아현이가 놈의 다음 희생양이라는 천세연의 말은 반쯤 기정사실화가 되었다.

“얼씨구? 절대 안 들어온다더니?”

팔짱을 낀 백아현이 캐리어를 끌고 제집으로 입성한 내게 던진 첫 마디였다.

집 한번 더럽게 넓네. 인테리어는 백아현의 취향대로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스물세 살에 서울에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친구를 잠시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울 백야는 내가 지켜야지. 그나저나 협회는 경호원도 안 붙여 준대?”

“무슨 경호원까지 고용해. 집도 아파트인데 그냥 조심히 다니면 되지.”

아현이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친구의 미래를 들은 나는 그 말에 차마 맞장구칠 수 없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일단 나연이의 죽음부터 막고, 만약 막지 못한다면 24시간 아현이의 곁에서 밀착 경호를 할 수밖에.

아현이가 안내해 준 방에 캐리어를 놓고 짐을 푼 나는 문을 닫고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채현 언니! 무슨 일이에요?

“응, 나연아. 잠깐 통화 괜찮아?”

친구의 안전을 확보했으니 이제는 연수원 동기의 죽음을 막을 차례였다.

“혹시 요즘 게이트 들어갈 계획 있어?”

내 물음에 김나연이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 와, 언니, 어떻게 알았어요? 저 5일 후에 게이트 들어가요! 헌티드에서 C급 게이트 파티 모집하길래 한번 지원해 봤더니 허가받았어요! 파티장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언니한테만 말하는 거예요!

딱 봐도 게이트 스틸 파티잖아……. 습격하고 묻기 딱 좋은 조건이다. 해맑은 목소리에 무어라 하지도 못하고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인원 모집 끝났대?”

- 언니도 참가하게요? 제가 파티장에게 물어볼게요! A급 데려오면 그쪽도 당연히 오케이하겠죠.

질문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우다다 말을 쏟아 낸 김나연이 통화를 끊었다. 그냥 들어가는 게이트 위치만 슬쩍 알아내서 투명화로 뒤쫓으려 했는데 일이 좀 커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김나연을 따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 거지.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는 문이 벌컥 열렸다.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아현이가 물었다.

“이채, 저녁 뭐 먹을래? 요리하기 귀찮은데 배달시킬까?”

“우리 당분간 배달도 끊자. 그 미친 연쇄살인범 네크로맨서 놈이 배달원으로 위장하고 오면 어떡해.”

그냥 내가 표적이 되어 위협받고 살 때는 못 느꼈는데 친구가 위험에 처하고 나니 세상이 너무 험악했다.

“대체 배달원으로 왜 위장하고 오겠냐고. 그리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냥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하면 되지.”

“만약 안 가고 우리가 문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문 열기 전에 경찰 불러.”

쟨 분명 MBTI S일 거야. 연어회를 시킨다고 통보한 아현이가 문을 닫자마자 다시 나연이에게 전화가 왔다.

- 언니, 언니, 파티장이 언니 데려와도 된대요! 처음에는 안 된다고 그랬는데 제가 언니 주태윤 진짜 싫어한다고 하니까 파티장이 바로 오케이했어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스틸할 게이트가 러스터 길드 소유인 모양이었다.

“그래, 날짜가 언제라고?”

- 9월 28일이요! 새벽 2시에 집합이래요.

새벽 2시에 모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면 딱 봐도 수상하지 않니? 얘는 정말 다단계 넘어가기 딱 좋은 상이다.

‘그나저나 5일 후면 아슬아슬했네.’

하긴, 컴퓨터나 아이큐 200 이상의 천재가 아닌 이상 회귀 전 일은 정확한 날짜가 아닌 큰 흐름들로만 기억하겠지.

곧이어 난 오픈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대충 닉네임을 헌터 2라고 치고 채팅방에 입성했다.

〉Local Channel-ROK

〉##동 게이트팟

〉〉공지 사항: 파티 끝나면 이 채팅방은 폭파됩니다

파티장: 새로 들어오신 분 헌터증 사진이랑 본인 헌터명/오늘 날짜 적은 포스트잇 같이 보이게 찍어서 인증해 주세요

스틸 파티는 그냥 후다닥 모여서 스틸하고 후다닥 흩어지는 줄 알았는데 인증까지 하고 의외로 꼼꼼했다.

캐리어를 뒤적이다가 보이지 않는 포스트잇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닫힌 방문을 벌컥 열고는 소리쳤다.

“백야, 나 포스트잇 좀!”

* * *

5일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어느덧 결전의 시간.

준비물이라고 알려 준 모자와 마스크를 깊숙이 눌러쓴 나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순간 이동으로 약속 장소에서 몇 미터 떨어진 외진 곳에 무사히 도착해서 게이트 앞쪽으로 걸어가니 CCTV의 사각지대에 사람 대여섯 명과 함께 서 있던 여자가 내게 손짓했다.

“헌터증.”

짧은 말에 인벤토리에 던져 놓은 지갑에서 헌터 라이선스를 꺼내 건네자 헌터 라이선스가 내 손가락 사이에서 유유히 빠져나가 여자의 손에 안착했다.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확인을 마친 여자가 다시 내게 헌터 라이선스를 돌려주었다. 물론 이번에도 염력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게이트 스틸팟의 파티장인 듯했다.

그때 도착해 있던 사람 무리에서 체구가 작은 사람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내게 달려왔다.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얼굴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언니이이이!”

“친목 금지.”

내게 안기려던 김나연은 파티장의 단호한 목소리에 멈칫하고 내 옆에 착 달라붙었다. 나는 빠르게 스카우터를 띄우고 모인 파티원들의 정보를 털었다.

『김민수』

* 계열 - 법사

* 직업 - 네크로맨서

* 등급 - S

* 스킬 - SSS급(목록 보기), SS급(목록 보기) … E급(목록 보기), F급(목록 보기)

* 스테이터스 - 체력 B, 힘 C, 민첩 A, 지력 B, 정신력 A, 마력 S

‘찾았다!’

역시나 놈은 이 파티에 있었다. 아마 저놈이 내민 헌터 라이선스는 희생된 헌터의 것이겠지. 만약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오늘 김나연이 죽었을 거란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선득해졌다.

파티장이 선두에서 익숙하게 CCTV 신호를 교란하고 정체 모를 QR코드로 스피드 게이트를 열었다.

『C급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 발광 아티팩트를 켜자 어두컴컴했던 던전 안이 시야를 식별할 수 있을 수준으로 밝아졌다. 긴장이 풀렸는지 서로 떠들며 던전 안쪽으로 향하는 파티에 내 소매를 가볍게 잡아당긴 김나연이 속삭였다.

“언니, 그런데 혹시 안 들키겠죠?”

“너, 여기 게이트 스틸 파티인 거 알고 들어왔어?”

고개를 끄덕이는 김나연을 매우 의외라는 눈으로 보고 있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E급 법사계를 파티로 받아 주는 곳은 이런 곳 말고는 아무 데도 없단 말이에요. 여자는 짐꾼으로도 못 쓴다고 빈정거리고.”

왜 굳이 게이트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들어가 봤자 귀찮고 몸 힘들고 재수 없으면 죽기밖에 더해?

마석이 광물처럼 붙어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장비로 마석을 떼어 내어 각자 가져온 자루에 담는 이들을 지켜보던 내 시선은 소심하게 작은 덩어리만 떼어 인벤토리에 마석을 집어넣는 김나연을 지나 가만히 서 있는 네크로맨서 놈에게 향했다.

설마 저 자식, 마석 채굴을 끝낼 때를 노리는 건가? 힘도 빠져서 저항하기도 어렵고 채굴된 마석도 얻고 일석이조의 이득을 얻기 위해.

내 시선이 제게 닿은 것을 눈치챈 건지 네크로맨서가 한두 발짝 물러섰다.

채굴은 한 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내가 얻은 건 적당한 크기의 마석 다섯 덩이.

“자, 이제 돌아갑… 허억!”

가득 찬 자루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뒤를 돈 파티장은 통로를 빽빽하게 막고 있는 그림자에 식겁하며 주저앉았다.

빌어먹게도 우리의 앞에 펼쳐진 사자(死者)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직업과 요즘 떠들썩한 연쇄살인범의 직업은 같았다.

“네, 네크로맨서……!”

상황 파악을 마친 파티원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어디엔가에 있을 네크로맨서를 찾아내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보는 네크로맨서의 눈이 즐거움으로 반짝였다.

그럴 만도 하지. 여기에는 전에 그가 나를 습격했을 때처럼 생중계도 되지 않는 폐쇄된 공간이고, 전에 놓쳤던 테이머와 염력 주력 메이지까지 있으니.

“저 찾아요?”

네크로맨서가 느릿하게 손을 들며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순간 네크로맨서에게로 집중되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가 그에게서 후다닥 멀어졌다.

물론 언데드 그림자가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어 도움은 딱히 안 됐지만.

덜덜 떨리는 손을 슬그머니 뒤로 감춘 파티장이 거래를 시도했다.

“누굴 원합니까? 원하는 사람 넘겨 드릴 테니 나머지는 그냥 보내 주시죠.”

그러면서 나를 연신 힐긋거리는 게 내가 그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만약 저 네크로맨서 놈의 입에서 테이머라는 단어가 나오면 망설임 없이 나를 저놈 쪽으로 밀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테이머도 좋죠. 그런데 제가 염력 주력의 메이지가 가지고 싶어서 이 파티에 들어왔거든요.”

마치 가챠 게임에서 SSR 카드를 가지고 싶다고 말하는 듯한 어조로 네크로맨서가 말했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파티장에게로 몰렸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파티장이 몸을 움찔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었다. 아마 나 하나 넘겨주고 살아 나가려 한 모양인데 어림없지.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몰라?

다른 파티원 하나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 메이지 한 명만 넘기면 그냥 보내 주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림자의 스킬이 발언한 파티원을 덮쳤다. 칼날과도 같은 공격이 파티원의 목을 치려는 순간, 옆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김나연의 마스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실드. 김나연은 그 짧은 순간에 실드를 쳐 언데드 그림자의 공격에서 파티원을 보호한 것이다. 하지만 등급 차이는 어쩔 수 없어서 그림자와 파티원을 가로막은 실드에 점점 금이 갔다.

“E급 실더는 필요 없는데.”

가치를 가늠하는 눈으로 김나연을 훑던 네크로맨서가 사형선고를 내리듯 손가락을 밑으로 내렸다. 그림자 하나가 스르륵 김나연의 앞으로 다가왔다.

벌벌 떠는 김나연과 그런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네크로맨서를 번갈아 본 내 입가에 차가운 비소가 걸렸다.

“살인자 새끼가 가치 따지고 지랄이네.”

『관리자 권한을 사용합니다.』

『각성자 ‘김나연’의 능력에 개입합니다.』

『수정 기능을 사용합니다.』

『등급 변경: E → B』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진작 올려 줄걸. 등급 업 알림이라도 떴는지 마스크를 벗고 연신 피를 뱉어 내던 김나연이 고개를 퍼득 치켜들었다.

금이 가던 실드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왔다. 김나연의 앞에도 전에 생성해 낸 실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단단한 실드가 생성되어 있었다.

김나연의 앞으로 다가온 그림자가 실드를 연신 공격했지만 방금과는 달리 쉽게 금이 가지 않았다.

좋아, 안전장치는 이 정도면 될 것 같고, 그러면 이제 내 차례인가?

『스킬 ‘소환(L)’을 실행합니다.』

페리가 튀어나와 네크로맨서에게로 달려들었다. 당황한 네크로맨서가 파티원들을 포위하고 있던 그림자를 거두어 페리에게로 집중시켰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던전의 천장과 벽을 스킬로 무너뜨렸다. 갑자기 무너지는 던전에 사람들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는 틈을 타 돌 더미로 막혀 가는 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정확히는 네크로맨서가 있는 쪽을 항해.

“언니!”

김나연의 다급한 외침은 곧이어 와르르 쏟아지는 돌 더미에 의해 묻혔다.

머리와 어깨에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를 툭툭, 턴 나는 이내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쾅―! 퍼엉!

제가 소환해 낸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페리를 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네크로맨서가 인기척에 시선을 돌렸다.

내가 누군지 알아차린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테이머도 괜찮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피식 비웃으며 페리를 역소환하자 갑자기 사라진 몬스터에 놈이 잔뜩 경계하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꼴에 1급 몬스터는 두려운 모양이었다.

“몬스터 찾기는 안 해도 돼. 역소환했으니까. 우리 페리가 털에 흠집 생기면 하루 종일 울어 재끼거든.”

나를 노려보던 네크로맨서가 내 주변으로 언데드 그림자를 배치하며 마스크를 내리고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쟤는 무슨 속셈이지? 왜 몬스터를 역소환한 거지? 무슨 한 수라도 있나?”

“말했잖아? 페리 털에 흠집 나는 거 싫다니까?”

“아아, 몬스터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소리구나.”

네크로맨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말을 이해한 듯 박수를 쳤다. 나를 벽으로 몰고는 도망갈 구석이 없이 빼곡하게 내 주변을 감싼 그림자들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둘러보던 그가 그림자 검을 소환했다.

“귀속 스킬 발동 조건이 너무 성가셔. 왜 굳이 내가 찔러서 죽여야 하는지. 그림자가 죽여도 귀속 안 되나?”

미친놈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내게 다가온 놈이 내 심장을 향해 검끝을 겨누고는 금방이라도 찌를 듯이 뒤로 힘껏 팔꿈치를 뺐다.

“…어?”

옴짝달싹 못 하는 팔에 네크로맨서가 당황 어린 탄식을 뱉어 냈다. 시커먼 마기가 마치 노끈처럼 그의 팔을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퍼버벙! 주변을 메우고 있던 그림자들이 터져 나갔다.

마기가 스르륵 공간을 뒤덮었다. 어차피 죽을 놈이니 내 능력을 마음껏 밝혀도 상관없었다. 점점 마기로 물드는 공기에 얼굴이 거무죽죽해진 네크로맨서가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놈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넓고 서늘한 공간을 울렸다. 벽에 비친 내 그림자가 꾸물거리며 점차 크기를 키워 나갔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에 공포가 섞여 가는 걸 발견하고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이 개자식아.”

* * *

꾸물꾸물 뭉쳐진 마기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는 네크로맨서에게 손을 뻗었다.

“으아아악!”

바닥에서 튀어나온 상체의 인영에 숨을 헐떡이며 던전 안쪽을 향해 달리던 네크로맨서가 공포에 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삔 발목을 문지르는 것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내 발소리에 그는 필사적으로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사람을 그렇게 죽여 왔던 놈이 이 정도로 겁먹으면 어떡해.”

“잘못했어요, 정말로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사이코인 척은 다 해 놓고 꼴에 네가 죽는 건 무서운 모양이지? 그런데 넌 희생자들이 살려 달라고 했을 때 말 들어줬어? 아니잖아.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싹싹 비는 놈의 앞에 환영(幻影)을 선사해 줬다. 메모리테이크로 읽어 내어 구현화한 환영이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라, 개자식아.”

“평생 네놈을 따라다닐 거다. 평생! 네놈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그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던 희생자들, 저주를 쏟아붓고는 눈을 감은 피해자, 눈도 채 감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보며 눈을 부릅뜬 채 죽은 피해자.

그의 귀속이 된 그림자들이, 아니 정확히는 내가 만들어 낸 환영이 손을 뻗으며 천천히 네크로맨서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연신 깨워 대서 기절하지도 못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던 놈이 기어코 오줌을 지렸다. 지린내에 혀를 차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지고 놀았으니 이만 죽일까? 적당히 던전 몬스터가 죽였다고 둘러대면 되겠지.

마기가 네크로맨서의 목을 칭칭 감았다. 놈이 흐어어, 우는 소리를 내며 마기를 뜯어내려고 애쓰고는 버둥거렸다. 숨을 쉬지 못하도록 힘껏 조르려는 순간,

『죽이면 안 돼요. (꒪⌓꒪)』

『당신이 쌓은 카르마가 지금 아슬아슬하거든요? ( •̀ o •́ )』

『만약 저놈을 죽이면 저놈이 짊어져야 할 카르마가 다 당신 몫으로 얹어진다고요. (。・~・。)』

『저 인간의 수명은 아직 많이 남았답니다. (⑅´•⌔•`)*✲゚*。』

관리자1이 튀어나와 나를 만류했다.

“내가 카르마 많이 쌓은 건 나도 알거든. 거기에 조금 더 얹어진다고 해서 뭐 해될 것 있어?”

내 투덜거림에 관리자1이 즉각 반박했다.

『조금이 아니라서 그렇죠. 저놈이 죽인 생명이 몇인데.』

『그리고 당신의 카르마는 당신 개인이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끼치거든요.』

『그게 신의 자아를 품고 있는 이의 숙명이니까.』

크라토스, 이 빌어먹을 크라토스. 신의 자아를 불어넣은 마왕의 심장이 평범할 리가 없지. 하루빨리 내버릴 방법을 찾아야겠다.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네크로맨서의 목을 칭칭 감았던 마기를 거뒀다. 미친 듯이 숨을 몰아쉬던 네크로맨서가 목을 붙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부디 그 빌어먹을 카르마는 세계가 버틸 수 있을 정도까지만 유지해 줘요. (◞‸ლ)』

“세계가 내 카르마를 버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

내 물음에 잠시 침묵한 관리자1이 느릿하게 채팅을 띄웠다.

『지옥이 시작되죠.』

『당신에 의해서 현재 유일하게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허가받은 당신의 차원 말고도 하위의 다른 차원의 침입자들까지 이 세계로 나오려 할 거니까.』

침입자들이 이 세계로 나온다 함은…….

“…던전 브레이크.”

『네, 던전 브레이크요.』

신음처럼 내뱉은 내 중얼거림에 관리자1은 긍정의 답을 띄웠다.

『언젠간 일어날 일이에요. 이건 최대한 그 시간을 늦추는 것뿐이고.』

『악의는 당신이 막을 수 없어요. 그러니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에요.』

그 말인즉슨, 던전 브레이크는 언제가 되었건 반드시 터질 거란 소리인가.

역시 던전 브레이크 없이 방치형 던전에서 쏙쏙 이익을 빼먹는 비교적 평화로운 헌터물 세계관은 존재할 수가 없나 보다.

그 말을 끝으로 관리자1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 나는 내 발치에 주저앉아 끙끙거리는 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약을 걸지.”

허리를 숙인 나는 네크로맨서의 턱을 부러뜨릴 듯 세게 움켜잡고는 마기로 혀를 잡아 꺼냈다. 굳이 손으로 잡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놈의 눈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말에 힘을 실어 나직하게 속삭였다.

“너는 네 수명이 끝날 때까지 오늘 이곳에서 들었던 진실과 나의 존재를 언급할 수 없다.”

내 언령에 따라 놈의 혀에 검은색 문양이 스르륵 새겨졌다. 네크로맨서는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뒤틀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지만 딱히 불쌍하지는 않았다.

이제 놈은 내 존재를 발언할 수 없게 되었다. 애매하게 잘릴 기억 삭제보다 훨씬 나은 대처였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놈의 머리채를 잡고 일으켜 손날로 목 뒤를 힘껏 쳤다. 놈이 추욱 늘어졌다. 아무래도 수면 저주는 억지로 깨워도 안 일어나면 수상하니까.

기절한 네크로맨서의 멱살을 붙잡아 질질 끌고 내가 만들어 놓은 돌 더미 벽으로 향했다. 이제 게이트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벽을 무너뜨려야 했다.

“저기요, 들리세요?”

내 외침에 벽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언니! 살아 있죠? 언니 맞죠?”

“테이머 목소리 아니야? 저기요, 살아 계세요?”

“님, 네크로맨서는요? 죽었어요?”

“헐, 설마 우리 유인하려고 네크로맨서가 함정 판 거 아니야?”

벽 너머는 역시 방음이 잘 안 됐다. 혹시 몰라 방음 스킬을 걸어 놓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다시 목소리를 높여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벽에서 물러나세요! 잘못하다간 깔립니다!”

내 외침에 멱살 잡혀 널브러져 있던 네크로맨서가 눈꺼풀을 꿈틀하며 깨어나려는 기미를 보이자 다시 한번 목 뒤를 힘껏 내리쳤다. 놈의 눈이 다시 얌전히 감겼다.

『스킬 ‘소환(L)’을 실행합니다.』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환된 페리를 향해 힘차게 명령했다.

“가라, 몸통 박치기!”

내 명령에 몸을 한껏 뒤로 뺀 페리가 힘차게 달려가 힘껏 몸을 부딪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높게 쌓여 공간을 분리하던 돌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돌벽 너머로 잔뜩 경계를 한 채로 앞을 보고 공격 태세를 갖춘 파티원들이 보였다. 파티원들은 그림자가 아닌 멀쩡히 살아 숨 쉬는 내 모습과 축 늘어진 네크로맨서를 보고는 경계태세를 풀었다.

특히 나를 제물로 바치고 빠져나가려 했던 파티장은 내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 댔다.

그런 그들을 보며 태연히 손을 흔들어 주고는 무너진 돌벽을 훌쩍 넘어왔다. 내 손에 멱살을 잡힌 채 질질 끌려오는 네크로맨서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몬스터로 잡았나 봐.”

평범하게 제 손으로 잡았습니다.

“언니이이이!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김나연이 내게로 달려와 나를 마구 흔들어 댔다. B급으로 올렸더니 아무래도 힘 스탯도 상승된 모양이었다.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에서 김나연의 손을 떼어 냈다. 언니 멀미 난다.

누군가가 제공한 로프로 네크로맨서의 손발을 칭칭 묶고 혹시 몰라 입에 천으로 재갈까지 채운 우리는 놈을 질질 끌고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다들 살아서 나왔네요.”

“와, 진짜 저기가 무덤 되는 줄…….”

다들 죽다 살아난 탓에 정신이 없어 멀쩡히 작동하는 CCTV를 교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새벽 공기를 맞고 있었다. 여기서 제정신인 사람은 나뿐이군. 혀를 차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디 보자, 미등록 각성자 신고는 국번 없이 1771.

신호가 두어 번 울리고 달칵, 전화를 받았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선수 쳐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여기 미등록 각성자 잡았는데요. 그런데 제가 잡은 미등록 각성자가 아무래도 요즘 난리 난 그 연쇄살인범 네크로맨서 같아서요.”

우당탕탕―!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난리에 미미하게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마치 네크로맨서 놈의 미래처럼.

* * *

움찔거리며 몇 번씩이고 깨어나려는 네크로맨서 놈의 뒷목을 발로 콱콱, 밟아 다시 기절시킨 지도 어느덧 세 번째.

신고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통화 시 말해 준 위치로 당직 서던 관리국 요원들을 비롯하여 경찰까지 출동했다. 사이렌 소리가 서늘한 새벽 공기를 울렸다.

스피드 게이트 앞에 서서 멍한 정신으로 몰려오는 차들을 보던 파티원 중 한 명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X된 거 아니에요……?”

“뭐가?”

“스틸 파티인 거 뽀록나잖아요.”

그 말에 다들 뒤늦게 퍼득 제정신을 차린 듯 허둥지둥했지만 차에서 내려 달려오는 관리국 요원들은 점점 가까워져만 왔다.

이제는 도망가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물론 최초 신고자인 나는 빠져나갈 구석이 있었기에 태평하게 하품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범인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요.”

내 발치에 쓰러져 있던 네크로맨서의 머리를 발끝으로 툭툭, 쳤다. 같은 각성자에 고등급 헌터 몇을 죽인 실력자인 터라 네크로맨서에게 접근하는 관리국 요원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기절한 네크로맨서가 관리국 요원 두 명과 경찰차에 타는 것까지 지켜보고는 이제 집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내 앞을 막아선 경찰이 단호하게 말했다.

“잠시 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피해자 및 목격자 신분으로 경찰서로 향했다. 살다 살다 경찰서도 다 가 보네. 하늘이 점차 푸르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 *

진술서를 쓰고 터덜터덜 경찰서를 나왔다. 어느새 날은 새벽을 지나 환한 아침이 되어 있었다.

선점된 게이트 스틸은 원래는 벌금을 물어야 할 범죄였지만 엮인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우리의 게이트 스틸은 스리슬쩍 묻혔다. 하지만 스틸 건이 묻혔음에도 파티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끄응, 주태윤이 고소하는 건 아니겠지.”

파티장이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게이트 스틸은 형사처벌과 별개로 민사소송까지 거는 것이 가능했다. 그게 다 죽상을 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주태윤은 다들 알다시피 돈이 썩어 넘쳤다. 변호사 선임쯤은 그에게 일도 아니라는 소리였다.

안색이 멀쩡한 건 오직 나와 김나연, 단둘이었다. 내 소매를 잡아당긴 김나연이 까치발을 들어 내 귀에 속삭였다.

“언니, 저 재각성했어요. B급이래요, B급.”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재각성시켰는데 모르겠니.

보다시피 인생 역전을 이룬 김나연에게 고소의 공포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재검사받고 재등록할 거라며 팔랑거리며 택시를 향해 뛰어가는 김나연의 뒤통수에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고는 나 역시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순간 이동으로 집에 가기에는 장소가 영 좋지 않았다.

‘…괜찮으려나.’

유치장에 널브러져 있던 네크로맨서를 회상하며 볼을 긁적였다. 네크로맨서는 손발이 묶이고 입이 막혀 있어도 스킬을 쓸 수 있는 법사계였다.

유치장을 지키고 있는 헌터 두 명은 각각 A급과 B급. 깨어나면 영 귀찮아질 것 같은데.

하긴, 뭔 상관이야. 하품하며 망설임 없이 경찰서에서 등을 돌렸다.

범인을 잡아 줬으니까 내 할 일은 끝이지. 미등록 각성자 신고 포상금 50만 원이랑 현상금만 제때 내놔라.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됐었다.

그냥 유치장 앞에 죽치고 앉아 네크로맨서 놈의 기선을 제압했어야 했다.

“다시 오라고요?”

잠시 얹혀사는 아현이의 집에 도착해 막 잠든 지 다섯 시간째, 시끄럽게 울려오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접했다.

- 네, 협회로 오시면 됩니다.

아현이의 집과 협회는 가깝긴 했지만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였다. 관리국이 아니라 협회에서 헌터 범죄자 인도를 맡나?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슬픈 소시민은 어쩔 수 없이 안락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어? 명색이 마왕인데!

젠장, 유치장 앞에 있었으면 놈이랑 같이 옮겨지기라도 했지. 귀찮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 건데?

도착한 협회에서 안내를 받아 취조실로 간 나를 반긴 건 협회장 김도빈이었다. 취조실의 매직미러 너머로 탁자에 널브러진 네크로맨서가 보였다.

단둘뿐인 취조실에서 김도빈이 입을 열었다.

“피의자가 협조하지 않고 능력을 쓰며 탈출 시도를 해 대서 실례인 걸 알지만 불렀습니다. 등급이 S급이라 상당히 까다롭더군요.”

저 인간이 나를 부른 원흉이었군.

“협회에서 범죄자 인도까지 맡아요?”

“S급 범죄자를 가둘 수 있는 취조실은 현재 협회가 유일해서 말입니다. 유치장에 관리국 취조실까지 박살을 내더군요.”

미리 만들어 놓길 잘했다며 김도빈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아무래도 회귀자인 천세연에게 언질을 받은 듯했다.

“능력 무효화 포션을 계속 먹이고는 있지만 등급이 S급이다 보니 지속 시간이 겨우 30분이고 부작용이 발작 및 기절이라서 취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인벤토리에서 작은 포션 병을 꺼내어 가볍게 흔든 김도빈이 다시 포션을 집어넣었다.

“능력 무효화 포션이요? 연금술사는 그런 것도 만들 수 있어요? 이거 아무리 봐도 밸붕인데.”

“관리자가 레시피를 알려 줬습니다. 시중 판매는 엄격히 금지하고 범죄자 제압용으로만 사용 중입니다.”

그래, 그런 말 하면서 제조된 약물치고 외부 유출 안 되는 약물 못 봤어. 물론 소설에서. 불신이 묻어 나오는 눈빛에 큼큼, 헛기침을 한 김도빈이 다시 화제를 바로 돌렸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군요. 그래서 이채현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혹시 등급을 내려 달라는 거라면…….

“오늘은 등급 다운그레이드가 불가능한데요.”

내 말에 김도빈이 당황으로 눈을 깜빡였다. 나도 저놈의 등급을 당장이라도 팍 내려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루 한 명 한정이라. 이미 오늘 한 명 올렸거든요. 적당히 B급으로 올렸으니 생태계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약효 부작용에서 깨어난 듯 부르르 몸을 떨며 엎드린 고개를 드는 네크로맨서를 매직미러를 통해 보며 씩 웃었다.

수사 협조도 안 하고 탈출한다고 난리를 쳐? 네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러니까 하루만 더 기절시켜요. 내일 처리해 드릴게.”

* * *

“게이트 스틸 파티는 왜 들어간 건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는 내게 아현이가 물어 왔다. 네가 죽는다고 해서 범인 미리 잡으려고.

“새로운 체험을 해 보고 싶어서?”

하지만 이 말을 하면 미친놈 취급 혹은 회귀자 취급을 당할 걸 알기에 적당히 둘러냈다.

“이채, 헛소리는 그만하고. 그 네크로맨서는 어떻게 잡은 건데?”

“내 몬스터가 잘?”

“왜 자꾸 대답이 의문형으로 끝나지?”

그야 이 대답이 먹힐지, 안 먹힐지 가늠이 안 되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자 백아현이 한숨을 쉬었다.

“이채현, 자꾸 숨기지 마.”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리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캐리어에 옷을 집어넣었다.

나도 비밀 만들기 싫어. 그런데 너희가 경멸 어린 눈으로 나를 보면서 비난하는 건 더 싫단 말이야.

『순간 이동(S) - 저장된 좌표』

- 자취방

- 본가

- 자연대 건물…….

『스킬 ‘순간 이동(S)’을 발동합니다. 규모: 1인』

다음 날, 아현이가 협회로 출근하고 나서야 나는 순간 이동으로 내 캐리어와 함께 자취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애쉬가 들어앉아 있지는 않았는지 자취방은 며칠 사람이 비운 집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페리를 소환하자 고양이 모습을 한 페리가 단번에 폴짝 침대 위로 올라갔다.

김도빈이 문자로 보내 준 좌표로 순간 이동하니 곧바로 취조실 안에 도착해 있었다.

“직접 대면해야 하는지, 아니면…….”

“여기서도 충분해요.”

매직미러 앞에 선 채 눈앞에 스카우터를 띄우며 대꾸했다.

『관리자 권한을 사용합니다.』

『각성자 ‘김민수’의 능력에 개입합니다.』

『수정 기능을 사용합니다.』

『등급 변경: S → F』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F급으로 내리고는 등급 변경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했다.

『김민수』

* 계열 - 법사

* 직업 - 네크로맨서

* 등급 - F

* 스킬 - E급(목록 보기), F급(목록 보기)

* 스테이터스 - 체력 B, 힘 C, 민첩 B, 지력 B, 정신력 C, 마력 F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애!”

한순간에 S급에서 F급으로 추락한 이의 처절한 비명이 취조실 안을 울렸다. 책상에 연신 머리를 찧는 네크로맨서를 바라보다가 혀를 찼다.

헌터들을 죽여 귀속시킨다는 미친 생각만 실행하지 않았으면 저 인간은 S급 네크로맨서로 이름을 날리며 떵떵거리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 멍청한 놈은 제 손으로 그 운을 날린 거다.

놈이 갇혀 있는 취조실 문으로 걸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휙 고개를 돌린 네크로맨서와 내 눈이 마주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는지 그가 경련하며 몸을 떨어 댔다.

쉿, 말없이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

아마 무기징역이 나올 것 같다고 했던가. 그날 내가 선사해 준 기억을 평생 잊지 말길 바라. 바로 지금처럼.

* * *

- 헌터 19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네크로맨서 김 씨가 살인 혐의로 구속되어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김 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실종자들에 대해서는 게이트 안에서 죽이고 게이트를 닫았다고 진술해…….

기자의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독기가 쫙 빠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네크로맨서 김민수의 모습이 뉴스 화면에서 재생되었다.

“이제 저런 미친놈은 없겠지.”

컵라면의 면발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식탁 용도의 앉은뱅이 탁자에 놓인 휴대폰이 길게 진동했다.

✆주태윤

윽, 휴대폰 발신자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지레 찔려 움찔했다. 그냥 받지 말까, 수십 번을 고민하다가 주저하는 손길로 통화 아이콘을 터치했다.

한 건 잡았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우리 계산할 거 있지 않나요, 채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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