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회귀자, 귀환자, 여기에 책 빙의자까지 있으면 완벽하군!
다행히 상식인인 이재의는 제 친구인 주태윤처럼 스토킹을 하면서까지 스카우트 제안을 하진 않았다. 그저 관리국에 곧 특채가 있다며 날짜를 살짝 흘리고 갈 뿐이었다.
“원래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굴려지는 법이지.”
내가 놀고먹으면서 꿀 빠는 공무원 헌터를 소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K-공무원들.
“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폐하. 하지만 그 나랏일의 가장 중요한 사항을 도맡으신 폐하께서는 왜 이리도 태평하신지?”
안드라스가 이를 갈며 내 말을 받아쳤다.
“태평하다고? 짐은 지금 마계와 지구, 양쪽에서 바쁘다만?”
안드라스의 손에서 고서들을 받아 든 후 다 읽은 책들을 안겨 주었다. 한숨을 내쉰 안드라스가 충언했다.
“그럼 하나를 포기하십시오. 왜 부담되는 상황에서 둘 다 잡고 있으려 하십니까.”
“하나는 내가 못 놓고 하나는 나를 안 놓아주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을 하냐.”
“이 세계가 폐하를 필요로 합니까?”
안드라스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했다.
글쎄, 관리자1 놈은 내가 은근 이 세계에서 나가기를 바라는 눈치고, 헌터로 활동한다 한들 나를 반기는 곳은… 많군.
관리국, 러스터 길드,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쩌리 길드들.
역시 난 이 세계에 필요한 인재였어. 자칫하면 안드라스 녀석의 말에 넘어가 ‘그래, 날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은 필요 없으니 마계를 선택하겠어!’ 이럴 뻔.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자 안드라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미간을 문지르던 안드라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마계에는 아직 폐하가 계셔야 합니다. 아직 통일된 마계가 안정되지 않았는데 휴가를 가시기에는 시기가 너무 일렀습니다.”
“너는 내가 여기 휴양하러 온 걸로 보이냐?”
“어차피 인간들의 수명은 100년도 채우지 못하는 찰나가 아닙니까. 그러니 이곳은 폐하께서 오랜 시간 계시기에는 걸맞지 않은 환경이죠. 이런 곳이 휴양지가 아니면 뭡니까?”
네 멋대로 내 고향을 휴양지로 만들지 말아 줄래.
그리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떠나기 전에 크라토스를 넘기고 평범한 인간으로 늙어 갈 거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보고나 해라, 안드라스.”
“예, 중앙의 마족들 중 현재까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는 딱히 없습니다.”
“의심 가는 놈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없습니다. 폐하께서 남겨 놓으신 중앙의 마족들은 폐하를 쉬이 배신할 놈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글쎄, 세이블의 말은 다르던데.”
“현 중앙의 마족 중 아무도 전대 마왕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기에 그럴 겁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세이블은 전대 마왕과 가까운 사이이지 않았습니까.”
내 첫 번째 신하이자 동료인 세이블은 전대 마왕의 마지막 신하이자 동료이기도 했다. 어두운 숲에서 비참하고 쓸쓸하게 홀로 외로이 죽어 가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 중앙의 놈들이 전대를 다 외면했다고?”
“전대 마왕이 인정을 못 얻어낼 정도로 유약하긴 했죠.”
그놈이 유약? 마계로 떨어진 첫 순간, 내게 합의도 없이 크라토스를 넘겨 놓고는 1마계의 모든 이들이 내 목숨을 노릴 테니 잘 살아남아 보라고 광소를 터트리던 전대 놈의 얼굴이 여전히 선명한데, 유약이라니.
아마 나한테 했던 꼴을 봤으면 진정한 마족이라며 당장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계속 감시해. 수상한 놈이 있으면 곧바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제게 부탁하셨던 좌표는 책갈피에 끼워 놨습니다.”
“그래, 이만 물러나 보도록.”
내 축객령에 안드라스가 고개를 숙였다. 소환을 해제해 안드라스를 다시 마계로 돌려보낸 나는 책갈피가 끼워진 책을 열어 보았다.
종이에는 좌표가 적혀 있었다.
휴대폰의 지도 앱에 곧바로 좌표를 입력했다. 로딩을 끝낸 지도가 결괏값을 도출했다.
지도에 뜬 곳은 강원도였다. 그것도,
“정선 S급 게이트…….”
게이트 사태의 시작을 알린, 한국에, 아니 전 세계에 첫 번째로 생긴 그 게이트.
이 빌어먹을 게이트만 닫힌다면 내 책임은 이제 없어지지 않을까. 마계와의 연결이 끊기고 마계 놈들이 더는 넘어오지 않을 테니.
『스킬 ‘투명화(AA)’를 실행합니다.』
『스킬 ‘순간 이동(S)’을 발동합니다. 규모: 1인』
S급 게이트는 협회 소속 게이트였기에 뒷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모습을 감추는 게 최고였다.
곧바로 순간 이동을 실시하니 폴리스 라인으로 주변이 칭칭 감겨 있는 게이트의 앞에 도착했다. 다섯 대의 CCTV와 스피드 게이트, 지문 인식 기기가 게이트까지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순간 이동 스킬 보유자를 막기 위한 조치인지 마력 감지기가 스피드 게이트 너머를 끊임없이 스캔했다.
그래도 날 막을 수 있는 건 없지. 날 막을 수 있는 건 나뿐이다!
『S급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1년 반이 넘도록 공략이 되지 않은 난공불락의 게이트. 익숙하고 편안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조명 스킬을 켜고 던전 안쪽으로 향했다.
던전 안에 득실거리던 마수들이 내가 지나가자 길을 비키며 납작 엎드렸다.
세간에 알려지기는 지난 1년 반 동안 1km도 가지 못한 끔찍한 난이도의 게이트였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쉬운 게이트였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날 동안 그 누구도 밟지 못한 보스룸에 들어온 나는 곧바로 던전의 핵으로 걸어갔다.
핵 앞에 웅크린 채 누워 있다가 벌떡 거대한 몸체를 일으켜 이빨을 드러낸 보스몹 역을 부여받은 마수가 급히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히 마왕에게 이빨을 드러냈다는 죄목으로 덜덜 떠는 몸에 진정하라고 두어 번 머리를 토닥여 주고는 푸르게 빛나는 핵에 손바닥을 올렸다.
『차원 #SF105-2의 근거지입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차원 #SF105-2와의 연결을 영구히 끊으시겠습니까?』
차원 #SF105-2. 마계의 차원 번호였다.
이곳의 연결만 끊는다면 이제 한국에 더는 내 책임의 게이트가 생기는 일이 없겠지.
“끊어, 제발.”
긴장과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가 내 목에서 뚝뚝 끊겨 나왔다.
『죄송합니다, 현 차원은 관리자의 권한 밖입니다.』
『상위 존재의 허가가 없어 연결을 끊을 수 없습니다.』
내 상위 존재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마신.
내가 마신을 부를 기회는 단 두 번. 만약 이곳에서 마신을 불렀는데 마신이 차원 연결을 끊어 달라는 내 부탁을 거절한다면 기회 하나를 그대로 날리는 거다.
그리고 이 차원을 정복하면 마계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것이니 마신은 이 차원과의 연결을 끊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스킬 ‘순간 이동(S)’을 발동합니다. 규모: 1인』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와 관리자1을 불러냈다.
“상위 존재의 허가 없이 내가 정선 S급 게이트를 닫는 방법은 없어?”
『물론 있죠. (*ฅ́˘ฅ̀*)』
“뭔데?”
『님이 마신을 죽이고 새로운 마신으로 등극하면 돼요. ˚✧₊⁎( ˘ω˘ )⁎⁺˳✧༚』
그냥 없다고 말해, 망할 놈아.
* * *
한편 같은 시각.
“에이씨, 여기 순찰 도는 게 제일 무섭다니까.”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곳저곳 발광 아티팩트를 비춰 보는 선배의 모습에 그 뒤를 따르던 적벽 길드에 막 입사한 신입 헌터이자 연수원 19기, 이성찬이 물었다.
“왜요, 귀신이라도 나옵니까?”
“차라리 귀신이 낫지. 한 번씩 여기 나타나는 것들이 얼마나 끔찍한 모양새인지 아냐?”
생각도 하기 싫다며 선배가 진저리치며 고개를 저어 댔다.
던전 내에서 계속해서 채굴되는 희귀한 야명주와 마석들에 적벽 길드는 공략이 끝난 이 게이트를 닫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다섯 달 전 던전 안의 몬스터들은 물론이요, 보스 몬스터까지 싹 잡으며 공략을 끝냈음에도 한 번씩 던전 안을 돌아다니는 정체 모를 무언가에 적벽 길드는 말단 헌터들에게 순찰을 지시했다.
‘그것’은 피부가 녹아내린 채 온몸의 관절이 뒤틀린 사람이기도 했고, 움직이는 시체이기도 했으며, 피투성이가 된 채 가죽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 짐승이기도 했다.
몇몇 괴생물체들은 헌터들에게 트라우마까지 일으킬 정도였다.
괴생물체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흔하게 발견된 장소인 보스룸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주저를 한가득 담고 있었다. 멈칫한 선배가 휙 뒤를 돌아보더니 이성찬의 등을 떠밀었다.
“야, 신입. 네가 먼저 보고 와라.”
“아, 선배! 이러기 있습니까?”
“꼬우면 짬밥 더 먹든지.”
적벽 길드는 군기가 빡셌고, 현재 이성찬의 위치는 까라면 까야 하는 신입이었다.
발광 아티팩트의 빛을 최대한으로 높인 채로 이성찬은 조심스럽게 보스룸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럭.’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몸을 딱딱히 긴장시켰다.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선배! 안쪽에 뭐가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보고하게, 네가 일곱 살 먹은 애새끼냐? 일일이 보고하지 말고 네가 죽이고 와!”
그의 외침에 신경질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묻어 나왔다.
덜덜 떨며 검을 움켜쥔 이성찬이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침내 웅크린 그림자의 앞까지 도달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티팩트를 비추었다.
챙―!
분명 방금까지 웅크려 누워 있던 이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목이 잘릴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이성찬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네놈은 누구냐. 혈교 소속인가?”
찢어 죽일 듯한 시선으로 저를 보는 눈과 정면에서 마주한 이성찬이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혈교요? 적벽 소속인데요…….”
“적벽? 혈교의 지부인가?”
여자의 기세가 더욱 사나워졌다. 검을 휘두르는 여자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고 몰아붙이는 솜씨는 몇십 년간 검을 잡아 온 이의 그것이었다.
매화 향이 보스룸에 스쳤다.
아름다운 검의 궤적과 달리 살벌하기 그지없는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으며 이성찬이 밖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X발, 선배! 저 뒤지기 전에 빨리 좀 오십쇼!”
“야, 이 X발 새끼야! 그거 하나 처리 못 하냐?”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가 원색적인 욕설을 쏟아 냈다. 그 말에 여자의 검이 멈칫했다.
“…X발?”
중얼거린 여자가 검을 거두었다. 잔뜩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여자가 이성찬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혹시 한국입니까?”
* * *
HUNTED
[자유게시판] 야야 뉴스에 곧 한국 최초 귀환자 발표 뜰 거다
20XX-08-06 10:30 조회: 184,795 작성자: castle찬
적벽 길드 관할 게이트에서 발견됐고 정황상 귀환자 맞는 듯. 거기가 몰래 들어가서 노숙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라;;; 현재 관리국에서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던데 이제 조사 끝나면 관리국이 발표할 듯?
내가 A급 검사인데 검 딱 맞대자마자 넘사로 강한 게 느껴졌음. 아마 S급 받고도 남을 것 같은데. 그리고 무려 무협 세계관에서 귀환하셨다더라. 혹시 무협 잘알들 암향매화검이 어느 문파 검술인지 아냐?
댓글(314)
Rㅔ바: 귀환자 ㄹㅇ 있었던 거였음? 어그로가 아니고?
후리즈: 님이 먼저 귀환자인 거 알아봄?
└castle찬: ㄴㄴ 그분이 먼저 여기 한국이냐고 물어봄
└슈히: @castle찬 한국인지는 어케 알았대?
└castle찬: @슈히 씨X이라는 욕 듣고 알았다던데
└uflus: @castle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sdaf567: @castle찬 도랏ㅋㅋㅋㅋㅋㅋㅋㅋ
└mali우유: @castle찬 한국인의 한국 구별법ㅋㅋㅋ
└dsfjl: @castle찬 역시 노쒸발 킵고잉과 시바루상의 민족ㅋㅋㅋ
베르베르: 암향매화검은 화산파 아님?
└단니가: 천마가 아니었구먼 쩝
└엽병: 천마 귀환을 기대했는디,,,
└탱커어그로전문: 이십사수매화검법 존나 간지나는데
고운말을쓰자: 와 이제 한국도 귀환자 보유국 되나
└부농젤리: 보유하면 좋은 게 뭐야?
└넥스트레에벨: @부농젤리 다른 나라에게 꿀리지 않아
침묵의구주: 난 솔직히 이 사람이 귀환자 최초라고 생각 안 함 분명 숨어 있는 귀환자들 있을 거 같음
디베인: 이런 어그로에 끌려서 먹이 주냐ㅉㅉ
└7845: 어그로 아닌 것 같은데
Vㅔ인: 미리 성지 순례 왔습니다 S급까진 안 바라니까 제발 재각성해서 등급 A급으로 떡상하게 해 주십쇼
M19: 성지 순례 222 거너 떡상을 기원합니다
…….
헌티드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 하나에 헌티드가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게 그 게시글은 공식적인 한국 최초 귀환자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갑자기 규제된 게시글로 옮겨져 삭제당한 것 역시 여론에 불붙이는 것에 한몫했다.
잠잠했던 귀환자 이슈에 다시 한번 뜨거운 기름을 들이부은 꼴이었다.
[이 귀환자도 무협 세계관에서 돌아왔다는데]
[함 만나 보시는 건?] 오후 5:21
[같은 세계였을 수도 있잖아요] 오후 5:22
[류사현 - 그래 봤자 정파 놈 아닙니까] 오후 5:32
[류사현 - 정파 놈들에게는 마교나 혈교나 똑같이 족쳐야 하는 주적인 터라] 오후 5:33
[류사현 - 만나면 제게 칼 들고 달려들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오후 5:34
한참 류사현이랑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가 6시 뉴스 시작 음악에 휴대폰 화면에 고정하고 있던 고개를 들어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앵커가 곧바로 소식을 전해 왔다.
- 오늘 오후 5시 30분, 각성자 관리국은 윤모 씨를 한국의 공식적인 첫 번째 귀환자로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윤 씨의 대변인은 윤 씨가 신상을 밝히길 원치 않는다는 걸 언급했으며 관리국에서 윤 씨의 신상 보호를 맡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뉴스 화면이 관리국 대변인의 기자회견 영상으로 바뀌었다.
[관리국은 귀환자의 신상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너무 과도한 관심은 자제를 부탁…….]
- 이로써 윤 씨는 공식적인 101번째 귀환자로 등극하였으며 한국은 78번째로 귀환자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류사현 - 누군진 몰라도 머리가 제법 굴러가네요] 오후 6:11
[류사현 - 자기 신상 깔 생각 안 하고 숨긴 걸 보니] 오후 6:12
[류사현 - 별호 하나 얻으려고 강호를 헤집고 다니는 무림 놈들 사고방식이 아닌데] 오후 6:13
당분간은 몸을 좀 사려야겠다.
한국에도 귀환자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광신도 집단 ‘레벨레이션’의 지부가 있었고, 귀환자가 나타난 이상 사람들은 분명히 다른 귀환자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거다.
[류사현 - 혹시 귀환자가 발견됐다는 그 적벽 길드 관할 게이트가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까?] 오후 6:15
[류사현 - 제가 지구에 귀환했을 때 나온 게이트도 적벽 길드가 차지했더라고요]
[류사현 - 혹시 우연인가 싶어서] 오후 6:17
한낱 소시민1에게 물어봐 봤자 답이 나올 리가…….
그래서 인맥을 활용했다. 나는 소시민이지만 내 인맥들은 소시민이 아니지.
[야야, 센, 혹시 귀환자 발견됐다는 게이트 어디인지 알아?] 오후 6:20
[센 - 부천 A급 게이트] 오후 6:31
[센 - 왜? 거기 들어가서 차원 이동하게?] 오후 6:32
[도랐니? 뜨신 집 놔두고 차원 이동을 왜 해?] 오후 6:33
이미 했다가 돌아왔단다, 친구야. 판타지 세계 체험만으로도 충분해. 거기에 무협까지 얹고 싶지는 않다고.
한숨을 쉬며 윤세인의 답장을 그대로 류사현에게 전달했다.
[부천 A급 게이트라네요] 오후 6:34
[류사현 - 와, 나도 귀환 첫날 부천에서 서울까지 돌아온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오후 6:35
같은 무협 세계관. 그들이 귀환한 같은 지역의 게이트.
우연이라고 그냥 넘기기에는 꽤 찝찝했다.
[한번 가 보죠] 오후 6:40
[그쪽이 나왔다는 그 게이트] 오후 6:41
그렇다면 직접 부딪혀 볼 수밖에.
* * *
『스킬 ‘순간 이동(S)’을 발동합니다. 규모: 2인』
“확실히 검보단 마법이 더 편하긴 하네요.”
순식간에 바뀐 시야에 류사현이 감탄을 내뱉었다. 우리는 지금 부천의 적벽 길드 소유 A급 게이트 앞에 와 있었다.
굳이 류사현을 데려온 이유는 그가 있던 차원의 게이트이기에 뭐라도 단서를 잡을 수 있을까 해서.
무언가가 많이도 설치된 게이트 앞 풍경을 쓱 훑었다.
“CCTV에 스피드 게이트에 침입자 경보등까지, 참 철저히도 막아 놨네.”
“어쩐지 그 전 세계에서만 볼 수 있던 야명주가 시중에 풀리더라니, 여기서 꽤 쏠쏠한 수익을 버는 모양이군요.”
류사현이 비소했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처발라도 나 같은 규격 외 사람들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그냥 돈지랄이죠?
투명화+순간 이동 크리로 간단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발광 아티팩트를 켰다.
『A급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게이트 안은 몬스터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때, 근처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사람이라고 하기에 어려웠다. 사람보다는 날것의 고깃덩이에 더 가까웠다.
벗겨진 피부와 뒤틀린 관절이 징그러워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혈교 놈들의 실험체이자 인신 공양의 결과물입니다. 혈교 놈들이 아직도 연구 중인가 보군.”
류사현이 혀를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류사현의 검이 깔끔하게 목과 몸통을 분리해 실험체가 된 인간에게 편안한 안식을 안겨 주었다.
마침내 다다른 보스룸으로 들어가자 이미 선객이 있었다.
“…분명히 혈교 놈들의 은거지를 쳐들어가 주교 놈들을 죽였고, 그다음이…….”
“101개의 초가 켜진 동굴 벽의 피로 그려진 진에 피에 물든 손을 대었겠지. 그 피로 인해 진이 완성되어 지구로 귀환했고.”
이마를 짚으며 마지막 기억을 꺼내려 애를 쓰던 귀환자 윤모 씨가 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검자루에 손을 올리며 휙 뒤돌았다.
한숨을 쉬며 투명화 스킬을 풀었다. 스르륵 나타나는 사람 두 명의 인영에도 귀환자의 얼굴에는 동요 따윈 없었다.
나를 먼저 보았다가 내 옆에 서 있는 류사현을 본 귀환자의 얼굴이 곧바로 사납게 일그러졌다.
“너, 천마……! 네놈이 이곳이 어디라고 넘어왔느냐!”
“본좌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온 건데 왜 타박이지, 검존?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무림맹의 맹주께서도 이곳으로 넘어왔으니 강호가 발칵 뒤집혔겠군. 그 꼴을 본좌의 눈으로 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구나!”
야, 저기도 스펙이 장난 아니다. 화산파 장문인에 무림맹주라니. 뭐든지 끝판왕을 봐야 하는 한국인답다.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서로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두 전직 무림인들을 만류했다.
“자, 무협 세계 검존이랑 천마 말고 기왕 귀환한 거 한국인 대 한국인으로 인사하시죠.”
“한국인이었다고?”
류사현을 보는 검존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류사현이 먼저 한국인 자기소개 국룰인 이름과 나이를 말했다.
“류사현입니다. 나이는 이곳 나이로 스물여섯이고요.”
“천마 놈이 한국인이었다고……? 대체 왜?”
“제 국적을 가지고 왜냐고 물으면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넋 나간 중얼거림에 류사현이 팔을 으쓱했다.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문지르던 검존이 툭 이름과 출생연도를 내뱉었다.
“윤선아, 9X년생.”
“어라, 두 분 동갑이시네.”
이게 라노벨이라면 제목은 『차원 이동한 세계에서의 원수가 동갑내기에 같은 국적 사람이었답니다』 정도가 되겠군.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나?”
검존 윤선아가 물었다. 그 물음에 류사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귀환해 놓고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냐고?”
담담한 얼굴로 류사현을 마주 본 윤선아가 대꾸했다.
“네 말대로 강호가 혼란에 빠질 터인 걸 알 텐데? 이미 네놈이 교주로 있던 마교는 차기 교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으로 흔들리는 중이지.”
갑작스럽게 떨어졌던 세계를 원망하고 인간성까지 버려 가며 벗어날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왔던 우리 둘과 다르게 윤선아는 제가 떨어진 그 세계를 꽤 아끼고 사랑했던 모양이었다.
그걸 류사현 역시 느꼈는지 윤선아를 향해 짓는 미소가 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신교가 어떻게 되든 이제 제 손을 떠났으니 상관없죠. 그러니 윤선아 씨도 기왕 돌아온 거 무림에 미련을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부님과 사제들, 사질과 제자 녀석들에게 인사도 못 했는데…….”
미련 가득한 중얼거림에 류사현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래서 정파 놈들은.”
둘의 신경전을 보다 못한 내가 입을 열었다.
“윤선아 씨?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다시 넘어가실래요, 아니면 여기 남으실래요?”
“넘어갈 방법은 있습니까?”
“물론 저야 모르죠.”
그때 던전 핵 뒤의 진이 빛나더니 꾸물꾸물 무언가를 뱉어 냈다. 그 무언가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사람이었다.
“주교, 네 이놈!”
검을 뽑아 혈교 주교의 목에 겨눈 윤선아가 호통을 쳤다.
“…클클, 누가 진을 작동시켰나 했더니만 역시 맹주, 그대였군. 용케 멀쩡하시외다.”
가래 끓는 목소리로 웃은 주교가 하나 남은 눈으로 윤선아를 올려다보며 검끝으로 제 손바닥에 ‘華’ 자를 새겼다.
그리고 다시 진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선아가 주교의 눈앞에 검을 콱 꽂고는 다급히 물었다.
“잠깐, 돌아갈 수 있는가?”
“물론 돌아갈 수 있지. 함께 가겠는가? 먼저 들어가시게.”
화상을 입은 듯 잔뜩 일그러져 멀쩡한 부분이 3분의 1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주교가 히죽 웃었다.
고개를 끄덕인 윤선아가 진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잽싸게 그의 팔을 잡아챘다.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윤선아가 고개를 숙였다.
“놓아주십시오. 전 돌아가야 합니다. 이 세계에는 미련 한 줌 없습니다. 제가 미련을, 인연을 두고 온 세계는 저 진 너머입니다.”
낯선 곳에 내던져져 평화로웠던 삶이 한순간에 지옥 같아졌던 사람도 있지만, 지옥 같은 삶이 평화로워진 사람도 분명히 존재했다.
난 이 세계에 미련이 많았기에 내가 떨어진 세계에서 불행했고, 윤선아는 이 세계에 미련이 없었기에 그가 떨어진 세계에서 행복했다.
내가 그의 선택을 막을 권리는 물론 없었다. 하지만…….
“방금 칼로 손바닥에 ‘華’ 자를 새겼잖아요. 저 진으로 넘어가면 윤선아 씨가 무사할지는 장담 못 해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흔적을 남긴 거라고요. 시체에서 답을 알아낼 수 있도록.”
어쨌든 집으로 돌아온 한국인을 불분명한 진으로 넘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끌끌, 아쉽구나. 혈교에 무림맹주의 목을 달아 놓을 좋은 기회였는데.”
“아직 혈교의 이 술(術)은 불안정하기 그지없죠. 우리가 멀쩡히 귀환한 게 천운일 정도로. 지금 저것의 얼굴만 봐도 보이잖습니까?”
류사현이 덧붙인 그 말에 입술을 꽉 깨문 윤선아가 검을 휘둘렀다. 일격에 주교의 목이 날아갔다.
발치까지 데구르르 굴러온 주교의 머리통을 툭 쳐 멀리로 보내고 핵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차원 #SF3156-1의 근거지입니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차원 #SF3156-1과의 연결을 영구히 끊으시겠습니까?』
역시 예상대로 이곳은 무림 세계의 근거지가 맞았다.
“허가.”
『차원의 연결을 끊어 냈습니다.』
『게이트가 닫히기까지 남은 시간 - 00:05:00』
핵의 빛이 스위치를 내린 듯 픽 꺼졌다. 끊어진 차원의 게이트가 슬슬 소멸 준비에 들어갔다.
“그럼 저희도 나가죠. 자세한 건 밖에서 이야기해 드릴게요.”
미련 가득한 눈으로 벽에 그려진 진을 한 번 힐끗한 윤선아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 * *
“그러니까 지금 귀환자들 때문에 게이트들이 터지는 거다?”
카페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방음 스킬을 치고 이제까지의 일과 가설을 설명하자 설명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윤선아가 냉소적으로 물었다.
“정확히는 귀환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려고 지구와 연결한 차원의 통로가 침략 루트가 되는 거죠.”
“그럼 따지고 보면 천마 놈의 잘못이라는 거군.”
“류사현이라고 부르시죠. 방음 안 된 곳에서도 천마 놈이라 부를까 봐 겁납니다.”
류사현이 팔짱을 꼈다.
두 귀환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회귀자에 귀환자까지 있으니까 여기에 책 빙의자까지 끼면 딱이네.
카페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윤선아의 휴대폰이 다시금 이어지려 하던 그들의 대치를 끊었다.
“여보세요.”
- 윤선아 씨, 혹시 던전의 핵을 박살 내셨습니까?
“던전의 핵?”
- 보스룸, 그러니까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붉은색 거대한 광물 말입니다.
똑똑히 들려오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손으로 X자를 만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앞에서 보기만 했는데요.”
윤선아의 태연한 어조에 통화 상대가 울컥했다.
- 그러면 왜 게이트가 소멸……!
“제가 한 게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목소리에 실리는 살기에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전화가 뚝 끊겼다.
“이제는 게이트 자연 소멸설도 나오겠네요.”
류사현이 킬킬거렸다. 차라리 자연 소멸설이 나와 주면 나야 좋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귀환자들이 돌아온 게이트가 오늘처럼 차원의 근거지일 확률이 높단 말이죠.”
하루에 열리는 게이트는 셀 수 없이 많고 범위 또한 전국이다. 차원의 연결을 끊을 수 있는 건 관리자뿐이다.
차원의 근거지를 찾아 연결을 끊으면 게이트 생성을 줄일 수 있지만 내가 전국 모든 게이트를 들어가 차원의 근거지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일단 귀환자를 찾아 그들이 돌아온 게이트의 연결을 끊어 내는 게 내 계획이었다.
내 정체와 계획을 들었음에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던 류사현이 물었다.
“그럼 귀환자는 어떻게 찾을 겁니까?”
“공개적으로 찾아야죠. 대한민국 5천만 인구 하나하나한테 귀환자냐고 물어보고 다닐 순 없잖아요.”
내 말에 류사현은 미쳤냐는 눈빛을 보냈다.
“뭐, 인터넷에 ‘귀환자 모여라’ 게시글이라도 올리시게요? 내가 봤을 때 마왕님 신상만 까이고 댓글은 귀환자는커녕 허언증, 관종, 어그로만 잔뜩 달릴 것 같은데.”
“류사현 씨, 윤선아 씨. 혹시 언제 차원 이동했는지 날짜랑 시간 기억나요?”
내 물음에 미간을 슬쩍 찌푸린 류사현은 기억을 짜냈다.
“현 연도로부터 2년 전, 아마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은 새벽이었고. 친구들이랑 술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싱크홀이 생겨서…….”
“7월 12일 새벽 2시. 집으로 들어가던 길에 갑자기 생긴 싱크홀에 빠졌죠. 그날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똑똑히 기억나요.”
윤선아가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줄줄 내뱉었다. 윤선아의 말에 류사현이 기억났다고 손뼉을 짝, 쳤다.
“귀환자들이 차원 이동을 당한 날짜와 시간, 방식은 똑같아요. 세계 시간만 다를 뿐이지 모두 한날한시에 차원 이동당했죠.”
관리자1에게 공인받은 사실이었기에 신뢰할 만했다.
여름, 새벽, 싱크홀. 이 세 가지 키워드만 들어간다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토도도독, 엄지손가락으로 휴대폰 자판을 두드려 헌티드에 게시글을 작성했다.
HUNTED
[자유게시판] 테이머 궁물 받는다
20XX-08-08 12:00 조회: 114,795 작성자: 마탑주2v
현직 테이머임
현재까지 복종시킨 몬스터 20마리, 파트너 몬스터 1마리
등급은 A고 최고 등급 스킬 SS급
혹시 궁금한 거 있음 댓글 ㄱㄱ
XX07120200싱크홀
비댓X 쪽지
다른 곳으로 캡처해서 퍼 가도 ㄱㅊ
댓글(277)
베그칰: 파트너 몬스터 몇 급임?
└마탑주2v: 1급
KILLERLKILL: 몬스터 한꺼번에 몇 마리까지 복종시킬 수 있어?
└마탑주2v: 몬스터 등급에 따라 다름
dj9999: 1급 몬스터는 무조건 테이밍 가능?
└마탑주2v: 놉
노안마드리드: 테이머랑 소환사랑 다른 거임?
└마탑주2v: 소환사는 모르겠는데 테이머는 몬스터를 복종시키고 조종할 수 있고 파트너 지정하면 소환도 할 수 있음
└7895: 소환사는 걍 소환수 소환만 ㄱㄴ
└별이샵공삼: @7895 소환수가 몬스터야?
└7895: @별이샵공삼 ㄴ 뭔 영혼의 동물이라는디
대왕피죤: 솔직히 스스로 테이머 몇 티어라고 생각함?
└마탑주2v: 1티어ㅎ
디베인: ㄹㅇ 머리도 몸도 안 쓰고 개꿀 빠네ㅋㅋㅋㅋㅋ
└마탑주2v: 부러우면 너도 테이머 해ㅠ
└마탑주2v: 아, 맞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ㅠ
└로딩중: @마탑주2v 와, 기 ㅈㄴ 세네ㅋㅋㅋㅋㅋ
└씨바씨ㅏ바아이싸바: @마탑주2v 열폭러들을 팩트로 후려갈겨 버리누ㅋㅋㅋㅋ
전투연금이될거야!: 처음 영상에서 님이 몬스터 밖으로 불러낸 거임?
└마탑주2v: 아니 걔가 나왔어
└전투연금이될거야!: @마탑주2v 혹시 그때 미등록 각성자였는지 아니면 일반인이었는데 각성한 건지
└마탑주2v: @전투연금이될거야! 일반인
sdak964: 실검 조작 어케 한 거야? 너 빽 있지?
└마탑주2v: 노코멘트
슈언: 제일 밑에 암호 뭐임?
└슈언: 전화번호는 아닌 것 같은데
…….
쭉쭉 올라가는 조회 수와 댓글에 씩 미소를 지었다. 나는 미끼를 던졌고 낚이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여.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귀환자 모임을 만드는 데에 순순히 협조해 주셔야겠어.”
다 같은 귀환자에 이 사달의 다 같은 원인 제공자인데, 나만 고생할 순 없지.
* * *
헌티드에 올라온 지 10분 만에 인기글로 간 게시글의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던 남자의 손이 가장 밑의 암호 같은 숫자와 글자의 조합에서 멈췄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이 무얼 뜻하는지 너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2년 전, 여름날 새벽, 싱크홀.
아마 그 같은 사람을 찾는 거겠지. 다른 귀환자들 역시 이걸 보는 순간 무슨 뜻인지 알았으리라.
물론 이것에 응답해 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 때가 아니었으니까.
“재미있는 짓을 하네.”
키득 웃으며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린 그의 휴대폰에 공지 메시지가 도착했다.
[러스터 길드에서 공지드립니다]
- 일주일 후, 길드장이 주관하는 B급 게이트 공략이 있습니다. 인원은 무기계 7 법사계 6 치유계 3, 조건은 등급 B급 이상이니 혹여 레이드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신청서를 작성해 담당자 메일로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 수신 메일 주소: ehdrms56**@naxer.com
길드장 주관이라는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침 잘됐네.”
슬슬 간 보는 것도 질렸는데 말이야. 곧 제 손에 들어올 러스터 길드를 생각하며 남자는 길게 입꼬리를 찢어 웃었다.
* * *
『카페 채팅』
[드래곤슬레이어: 님도 귀환자??? ①]
[슛팅스탛: 저거 2년 전 여름 새벽 2시 싱크홀 ㅁㅈ? ①]
[내가바로위대한마왕이다: 어디로 떨어지셨어요? ④]
[빛의성녀님: 헌티드 말고 다른 커뮤에도 꽤 숨어 있을 거 같은데 이거 캡처해서 뿌려도 됨? ①]
[리블: 와 대박ㅋㅋㅋㅋ 님 진짜 간 크시닼ㅋㅋ ③]
[hid2634: 저기요 혹시 맨 밑에 암호 뭔 뜻이에요? ①]
[데이메이: 귀환자 맞죠? 맞죠???? ②]
…….
쌓여 가는 채팅에 채팅창을 쓱쓱 넘기다가 거슬리는 닉네임에 눈살을 팍 찌푸렸다. 마왕은 나야, 둘이 될 순 없어.
내 침대에 뻗어 과자를 먹던 윤세인이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얼굴도 다 팔렸는데 굳이 인터넷 세상에서 관종 짓을 하는 이유가 뭐야, 친구야?”
“심심해서.”
채팅창에 오픈 채팅방 링크를 하나하나 복붙해서 보내며 대꾸했다.
〉Local Channel-ROK
〉귀환자 단체 채팅방
〉〉공지 사항: 이름은 차원 이동한 곳에서의 직업, 혹은 세계관으로 부탁드립니다
마왕: 귀환자 아니면 나가 주세요
드래곤슬레이어: 아니, 마왕님,,, 확실치도 않으면서 채팅방을 파신 거?
마왕: 확실한 사람들만 초대했고 혹시 몰라서 덧붙인 거니까 오해 ㄴ
천마: 진짜 모으다니
천마: 정말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스팀펑크: ㄹㅇㅋㅋ 귀환자 커넥션 없나 생각하자마자 노빠꾸로 암호글 올려 버리기
마탄의저격수: 다들 용케 돌아오셨네
소드마스터: 황제가 붙잡는데 대공 위까지 버리고 돌아왔습니다ㅎㅎ
혁명군 수장: 더러운 귀족 놈들과 황가 놈들한테 혁명의 빨간 맛 코리안 죽창 맛을 보여 주고 황가 놈들의 몇천 년 보물 이용해서 돌아왔죠ㅋ
무림맹주: 하…….
혁명군 수장: 무림맹주님은 돌아오기 싫으셨나 보네요?
용사: 이게 무슨……?
성녀: 제가 지금 여초 커뮤에서 글 올리고 쪽지 받고 있으니까
성녀: 누가 남초 커뮤에 올리고 쪽지 받아서 데려오셈
이단심문관: 전 에타에 올리는 중
마왕2: 저기요 제가 마왕인데요
마왕: 저도 마왕임
- 진리를깨달은연금술사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 마탑주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마탑주: 와 대박ㅋㅋ
- 농노1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이 와중에도 사람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귀환자가 이렇게 많았다니. 그동안 용케 안 들키고 조용했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네 얼굴은 아까부터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를 않냐? 월급 올랐어?”
빈 과자 봉지를 부스러기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스레 방바닥에 내려놓고 실실 쪼개고 있는 윤세인에게 물었다.
눈을 빛낸 세인이가 내 어깨를 덥석 붙들고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번에 나온 귀환자 있잖아, S급이래. S급 검사!”
검존 윤선아가 S급이 뜬 모양이었다. 하긴, 천마가 S급인데 화산파 장문인 겸 무림맹주가 A급이면 게임이 안 되잖아. 별호도 검존(劍尊)이던데.
이제 공식적인 한국의 S급은 총 아홉 명. 그중 네 명이 검사. 와중에 메이지 떡락의 원인, 서열1위포거스는 굳건히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헌터명 변경 금지법이 완화되었지만 서열1위포커스는 여전히 서열1위포커스였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지 헌터명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쪽팔린 헌터명이어서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었다.
헌터명에 비속어나 불용 한자가 있다던가, 헌터명을 들었을 때 남한테 불쾌감을 준다거나 하는 정도가 관리국이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였다.
헌터명 변경 과정 역시 개명 과정과 동급으로 복잡했기에 헌터명 변경 금지가 풀렸음에도 막상 헌터명을 바꾸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드디어 검사 떡상의 날이 도래했다! 이젠 나도 1티어다!”
드디어 1티어로 등극했다며 내 어깨를 쥐고 흔드는 윤세인의 손을 툭툭, 털어 떼어 냈다. 1티어면 뭐 할 건데. 무슨 할인 혜택이라도 주냐?
[천우현 - 채현 씨?]
[천우현 - (사진)] 오후 1:11
[천우현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오후 1:12
[천우현 - 귀환자들은 어쩌다가 모인 거고 대체 어떻게 모은 거예요?] 오후 1:13
오픈 채팅방 캡처 사진을 보내며 다급하게 물어 오는 천우현의 메시지에 볼을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사람한테는 말을 안 했던가?
‘안 했구나.’
무림 세계 귀환자들인 류사현이랑 윤선아에게만 했구나. 세상에, 같은 세계에서 돌아온 사람한테 말하는 걸 깜빡하다니.
[너무 과도하게 생겨나는 게이트 수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요] 오후 1:13
천마 놈에게 밀려 버린 용사님에게 간단히 상황 설명을 보냈다. 무언가 많이 생략된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핵심은 다 들어갔으니까.
* * *
“그러니까 귀환자들이 이 게이트 사태의 원인이란 소리입니까?”
방음 스킬이 걸려 있었기에 천우현의 목소리는 카페 테이블 바깥으로 퍼져 나가지 않았다.
내 옆에서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삐딱하게 앉아 있던 류사현이 천우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 번만 싸워 보면 안 되나?”
대답 대신 돌아온 뜬금없는 말에 천우현이 당황으로 눈을 깜빡였다. 귀를 후비며 눈가를 꿈틀한 류사현이 투덜거렸다.
“아니, 지루하잖아. 나오라고 해서 나왔더니 전에 하신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있고. 이럴 거면 왜 저를 부르셨는지, 마왕님?”
“우현 씨랑 단둘이 만나기엔 세간의 시선이 좀 그래서 시선 분산용으로.”
아이돌급 외모의 랭킹 1위 S급. 덕질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인기도로 따지면 주태윤은 지는 별이었고 천우현은 새로이 뜨는 태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신상 다 까인 나랑 열애설 나 봐. 주태윤 때와는 비교도 못 할 수준으로 싸불 받는 거야.
내 말에 내 차림을 훑은 류사현이 냉소했다.
“나 참, 아무도 오해 안 할걸요. 누가 추리닝 입고 데이트합니까? 그리고 사람을 시선 분산용으로 앉혀 놓는 건 그만두죠?”
“그래서 원하는 대로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허니브레드도 사 줬잖아요. 대체 뭐가 불만이야.”
“누가 500년 묵은 꼰대 아니랄까 봐…….”
시위하듯 허니브레드를 포크로 콱콱 찔러 대던 류사현이 내 째림에 구멍 내던 빵 조각을 얌전히 입으로 가져갔다.
“지루하다고 쌈박질할 생각 하지 말고 너튜브라도 보고 있든가.”
“같은 검사끼리 누가 더 강한지 자웅을 겨루어 보는 건 지루한 삶의 유일한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 천우현 씨? 아니면 용사님이라 불러 드릴까?”
“네, 안 그렇습니다.”
천우현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이쪽은 댁처럼 대련하고 살아온 게 아니라 마수랑 마족 베어 나가면서 살아왔다고.
검이 대련이나 즐거움의 수단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존 수단이었다니까?
“이야기가 잠시 딴 길로 샜군요. 그러면 채현 씨가 귀환자들을 모은 이유가…….”
“오직 저만 차원 연결을 끊을 수 있거든요. 귀환한 게이트 제보받고 보스룸까지 레이드 시켜야죠.”
나를 보는 류사현의 눈이 블랙 기업 악덕 사장을 보는 듯한 눈초리로 변했다.
내가 아무리 이 게이트 사태에 큰 지분을 차지한다지만 혼자 일하긴 억울하죠. 나는 열심히 일하는 K-주인공이 될 마음이 하나도 없죠.
적어도 자기가 돌아온 게이트는 자기 손으로 클리어하자.
* * *
HUNTED
[급구] 마석, 몬스터 시체 삽니다
20XX-08-11 09:14 조회: 710 작성자: 깡철의연금술사
마석(지름 10cm 이상) 5개, 7급 이하 몬스터 시체(보관 상태 좋아야 함) 2구
총 300만 원에 삽니다. 댓글로 사진 제시해 주세요. 상태 확인하고 거래하겠습니다.
댓글(2)
(비밀댓글)마탑주2v: (사진)
└(비밀댓글)깡철의연금술사: 채팅 드려도 괜찮나요?
내 인벤토리 안에 잠들어 있는 마석들과 꽝꽝 언 몬스터 시체를 떠올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인벤토리에서 마석과 몬스터 시체를 꺼내 늘어놨다.
조명 아래서 예쁘게 사진을 찍어 댓글을 선점했다. 세상에, 이게 300만 원이라니.
[택배 거래가 좋아요 직거래가 좋아요?] 읽음
[깡철의연금술사 - 어디 사세요?] 읽음
[동작구요] 읽음
[깡철의연금술사 - 제가 직접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읽음
구태여 직거래를 하자는 게 좀 찝찝하긴 했지만 이쪽까지 굳이 직접 온다고 하는 사람한테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얼떨결에 내 몸만 편한 직거래가 성사되었다. 편의점까지 가서 택배 부치기도 귀찮았는데 잘됐지, 뭐.
“마탑주이브이 님?”
“깡철의연금술사 님 맞으시죠?”
다행히 깡철의연금술사는 여자였다. 내 닉네임을 부른 여자에게 마석이랑 급속 냉동한 몬스터 시체가 담긴 박스를 내밀었다. 요청 사항대로 윗면에는 테이프를 붙이지 않은 채였다.
박스를 열어 사진과 같은 물건인지 확인을 마친 깡철의연금술사가 입을 열었다.
“계좌번호 불러 주시겠어요?”
“X협 3XX-1XXX-4XXX-8X 이채현이요.”
곧바로 300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냥 집 앞 골목길에 열린 E급 게이트에 마실 나가듯 가볍게 들어가서 마석 몇 개 떼어 오고 몬스터 시체 좀 주웠을 뿐인데 300만 원을 벌었다.
왜 그렇게 헌티드에 처음 사 먹는 한우 사진이 올라오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한우 사 먹어야지.
깡철의연금술사가 몸을 막 돌리려는 나를 향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이제 모일 사람들은 대부분 모였으니 게시글은 이만 삭제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암호를 해독하는 데에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랍니다.”
휙 고개를 돌려 다시 마주 보니 무테안경을 쓱 올린 깡철의연금술사가 말을 덧붙였다.
“새로운 이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끌어오면 되고요.”
덧붙여진 말에 깡철의연금술사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혹시 진리를깨달은연금술사 님?”
조심스러운 내 물음에 여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확실한 긍정의 미소였다. 기왕 이렇게 만난 거 내가 귀환자들 긁어모은 용건이나 묻기로 했다.
“혹시 어디 게이트로 넘어오셨는지?”
“제가 열었던 차원의 문은 제 손으로 확실하게 닫았답니다.”
음, 닫으셨구나. 단호한 말에 볼을 긁적였다. 그래, 이분처럼 문을 확실하게 닫고 왔으면 얼마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