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이 잠든 사이에-75화 (75/96)

75화.

하룻밤이 지나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연에게 첫 감기몸살이 찾아왔다.

머리도, 몸도 무겁게 가라앉아 움직이기 싫다는 연을 억지로 침실 소파에 앉힌 설우가 첸이 끓여온 죽을 천천히 떠먹여 주었다.

죽을 넘기기 위해 씰룩이는 볼을 구경하는 세 남자의 입가에 웃음기가 맺혔다.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이 더욱더 사랑스럽다.

“어때, 먹을만해?”

“맛있는데 머리가 둥둥 울려요. 머릿속에 돌멩이가 들었나 봐요, 무거워.”

담요를 돌돌 말고 있던 연이 설우의 가슴팍을 찾아 머리를 기울였다. 기댈 곳이 필요했다.

안타까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설우가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연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약만 먹어도 금방 내릴 텐데. 윤 교수가 곧 해열제 가져올 거야, 조금만 참아.”

처방 없는 약을 먹을 수 없으니 가벼운 감기몸살에도 의사가 필요했다.

“꼬맹이 아픈 게 다행은 아닌데 다행이다.”

“무슨 헛소리야.”

“솔직히 오늘 못 일어날 줄 알았어. 이틀은 잘 줄 알았는데 감기몸살이면 감지덕지 아니냐고. 많이 좋아졌나 봐.”

“맞아요! 오빠 마음도 조금 덜 아프죠? 아우, 머리 무거워…. 난 지금 물에 빠진 솜이불 같아요.”

이든에게 신나게 동조하던 연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야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설우를 찾았다.

“꼬맹이, 열 올라서 해롱거리는 게 꼭 술 취한 것 같아. 귀여워.”

“좋은 말로 할 때 하지 마라.”

힘없이 입만 벙긋대는 연을 가만히 둘 수 없어 찰떡같은 볼을 누르는 이든에게 살벌한 경고가 돌아왔다.

-공동현관에서 방문 호출이 들어왔습니다.

“연이 약 왔나 보다! 이든 네가 가서 가져와.”

“와, 첸 형 말하는 것 봐. 꼬맹이 약이 온 게 아니고 윤 교수가 온 거고, 가져오는 게 아니라 모셔오는 거지! 연이 오고 형도 많이 변했다. 모든 게 꼬맹이 중심이야.”

“입바른 소리 하지 마, 너랑 안 어울려. 가서 빨리 약이나 받아 와.”

“가잖아, 간다고!”

툭툭, 종아리를 차는 첸의 발을 밀어낸 이든이 몸을 일으켰다.

“자, 한 입 더.”

“아.”

“내일 약속은 미뤄야겠어.”

“괜찮아요, 약 먹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어머니랑 삼촌도 많이 걱정하셨을 텐데 약속 미루지 말아요.”

“알았어. 힘들면 언제든 말해.”

“네, 근데 오빠 회사는요?”

“안 가, 약 먹고 같이 누워서 놀자.”

“좋아요! 으….”

활기차게 어깨를 들썩이려다 관자놀이를 부여잡은 연이 흐물거렸다.

몸은 한없이 무거웠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

[현 여당 대표의 더러운 유희]

민정당 대표 백창석 의원이 20대 여성의 납치 청부 혐의로 현장에서 경찰에 입건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백창석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백창석 의원의 지시로 여성을 납치했다는 피의자 김 모 씨의 일관된 진술과 체포 현장이 백창석 의원이 현재 거주하는 집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경찰은 범행이 이루어진 곳이 피의자 김 모 씨가 접근할 수 없는 장소였다는 점, 피의자 김 모 씨의 집에서 거액의 현금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백 대표의 청부 사실이 어렵지 않게 입증될 것이라 밝혔다.

[백창석 의원 성매매 의혹]

[백창석 의원과 한강일 시장, CH그룹 차성태 회장에게 뇌물수수 혐의]

백창석 대표의 체포 소식과 불법적인 정경유착 의혹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는 모두 백창석과 그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현진그룹과 설우의 압박과 더불어 여론까지 들고일어나니 백창석의 넓은 인맥들도 꼬리를 내렸다.

화진이 검찰에 넘긴 자료까지 합세해 적폐 세력을 단번에 몰아낼 기회였다.

“괜찮으니까 기사 마음껏 쓰라고. 자긴 왜 이렇게 간이 작아?”

-난 메이저잖아요! 세 번까진 돌아봐야 한다고. 어쨌든 차 회장 기소 확실하다는 거죠? 기소 예정이라고 단독 친다?

“그래, 확실하다고. 구속은 장담 못 해도 기소는 조만간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써.”

-오케이, 특종 감사. 그동안 박 회장님 뻐꾸기 짓 한 보람이 있네. 아니, 근데 아무리 라이벌 기업이라도 시아버지면.

“나한테 인터뷰 따려고 그래? 할 말 끝났으니까 끊어, 바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기자와 통화를 마친 화진이 냉수를 벌컥, 벌컥 들이켰다.

한동안 틀어막혀 있던 속이 찬 기운에 휩쓸려 시원하게 뚫렸다.

“한남동 분위기는 어때?”

“그날 이후로 발길 끊었어, 그 정신 나간 노인네 꼴도 보기 싫어. 검찰 조사 전에 감출 거 감추고 버릴 거 버리고 있겠지.”

“하긴. 연이는 괜찮은 거야? 오면 무슨 말을 먼저 해줘야 할지. 짐승만도 못한 놈들 같으니라고.”

화진과 나란히 앉아 설우와 연을 기다리는 성진이 주먹 쥔 손을 부들거렸다.

소식을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한동안 CH그룹 계열사 건물이 보이지 않는 길만 찾아다닐 정도로 화가 났었다.

괜히 부담을 줄까 설우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았던 성진은 연의 안부가 몹시 궁금했다.

“괜찮으니까 데리고 나온다고 했겠지.”

대책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설우를 보지 못한 화진 또한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랑 하나 빼곤 넘치게 갖고 태어난 아이가 사랑 때문에 무너지는 순간이 가슴속에 단단히 박혔다.

가르치지 못한 걸 왜 혼자 배우고 자라서는, 가여운 내 새끼.

제 욕심에 눈이 멀어 낳아놓고 돌봐주지 못한 젊은 날의 과오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가 싶다.

“어! 오빠 신발 끈 풀렸다. 내가 묶어 줄게요.”

“밥 먹고 나올 때 묶으면 되지, 뭐 하러. 하지 마, 다리 아파.”

“오빠도 저번에 묶어 줬잖아요. 이번엔 내가 할래요.”

“뭐든 똑같이 해야 직성이 풀리지.”

“다 됐어요. 잘 묶었죠?”

“그러네, 이제 들어가자.”

생각보다 밝은 연의 목소리를 듣고 화진과 성진이 의아한 시선을 마주할 때 벌컥, 문이 열렸다.

“안녕하셨어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삼촌!”

“어, 왔어? 앉아. 오면 식사 바로 준비하라고 했어.”

“연이 뭐 좋은 일 있니? 왜 이렇게 웃어.”

괜찮니, 아픈 데는 없니.

가장 먼저 물으려고 했던 말이 예쁜 미소 한 번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반대말이 튀어나왔다.

설우의 옆에 꼭 붙어 살갑게 인사하는 연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랑 삼촌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백화점도 가잖아요. 좋은 일이죠!”

“백화점?”

“네, 오빠가 여기서 스테이크 먹고 다 같이 백화점 간다고 했는데.”

설우가 빼준 의자에 앉은 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진과 화진은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다.

“연이 펜던트도 다시 사야 하고, 기분 전환하게 호텔 말고 백화점에서 쇼핑 좀 하려고요.”

물에 젖은 코인 티슈를 펼치던 화진이 얼빠진 얼굴로 설우를 바라보았다.

“오늘 휴무도 아니거든? 사람 많은 백화점에서 얼마나 유난을 떨려고! 그냥 룸에서 해.”

“어머니, 그땐 제가 많이 아플 때라 오빠가 예민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잠도 2시부터 딱 한 시간만 자고요, 밥 먹다 잠들지도 않아요. 밤에 잘 땐 오빠를 괴롭히긴 하는데…. 낮엔 멀쩡해요.”

“그래, 누나. 연이가 가고 싶은 거 같은데 같이 가자. 연이 뭐 갖고 싶은 거 없니? 삼촌이 사줄게.”

“네가 왜, 엄마가 사줄게. 내년 봄에 예쁜 거 많이 나오더라. 간 김에 예약해도 괜찮겠어.”

“저 옷 많아요!”

“알아, 설우가 많이 사줬겠지. 그래도 옷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아프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인자하게 웃은 성진이 미리 나온 샐러드를 연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감기 빼곤 괜찮았어요.”

“얘, 너 목이 왜 그러니?”

화진의 날카로운 시선이 설우의 목덜미에 닿자 샐러드를 집어먹던 연이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

밤이면 밤마다 제가 설우를 괴롭힌 흔적이었다.

“누나는 뭐 그런 걸 물어? 한창 좋을 때잖아.”

“아, 그 자국.”

연이가 생각보다 저돌적인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셔츠 깃 위로 살짝 드러난 푸른 멍은 사랑의 증표라고 하기엔 과해 보였다.

“사생활에 관심 두지 마세요.”

“하여튼 말하는 싸가지.”

“연아, 신경 쓰지 말고 먹어. 원래 만나면 싸우잖니.”

사나운 말투를 고집하는 모자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성진이 슬그머니 포크를 내려두려는 연을 말렸다.

“흠흠! 음식은 코스로 했어. 연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시키고.”

“네, 감사합니다!”

“스테이크 몇 개 먹을래?”

“오늘은 두 덩이만 할게요.”

“웃긴다, 둘 다. 연이한텐 왜 이렇게 다정해? 서로 좀 그렇게 다정해 봐.”

설우는 그렇다 쳐도 화진 역시 연을 대할 땐 놀라울 정도로 살가웠다.

“저런 애한테 나쁘게 굴면 그게 사람이니?”

강자한텐 강하고 약자한텐 약하다, 뭐 이런 건가.

장난스럽게 웃는 성진을 툭, 건드린 화진이 샐러드를 덜었다.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식사였다.

***

말캉한 입술을 두어 번 오물거려 달콤한 솜사탕을 발견한 연이 입안 가득 그것을 베어 물기 위해 혀를 달싹였다.

한입에 넣어 녹이고 싶은데.

원하는 만큼 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연은 솜사탕을 빨아 녹이는 데 집중했다.

쪼옥, 쪽. 일정한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살결에 완벽히 적응한 설우는 눈을 반쯤 뜬 채 제 위에 누운 연의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반응하듯, 잠에 취한 얼굴이 설우의 목덜미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미 붉은 반점이 가득한 목에 새로운 흔적이 새겨졌다.

지나치게 많은 자국은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고 눈살을 찌푸릴 만큼 외설적이었다.

“그만하고 일어나야지. 오늘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없자 설우가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더.”

“더할 거야?”

“으, 응.”

“그래.”

납치 사건 이후로 연은 하루도 빠짐없이 설우의 위로 올랐고 매끈한 살결이 음식인 양 입에 넣었다.

첫날 계단에서 떨어질 뻔한 연을 제 위에서 재운 게 화근이었다.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지만, 위험하게 돌아다니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설우는 굳이 고치려 하지 않았다.

납치될 당시에 거친 밧줄에 묶여 살갗이 벗겨진 손목을 본 후로 연을 묶는다는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웠다.

“으윽.”

연을 허벅지에 앉히며 상체를 세운 설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솜사탕을 녹이듯 부드럽게 오물거릴 때도 있지만, 질긴 고기를 뜯듯 잘근거릴 때도 있었다.

오늘처럼 빨다가 짓이기는 경우도 있고.

아릿한 고통을 무던히 참아낸 설우가 연을 안아 들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픈 건 괜찮지만, 이대로 두었다가 제게 상처를 낸 연이 상심하는 건 괜찮지가 않았다.

“연아, 일어나.”

여전히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연을 파우더룸 콘솔에 앉혀 떨어뜨렸다.

갸우뚱거리는 어깨를 잡아 흔들자 연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몇 시예요?”

“9시. 오늘도 잘 일어났어.”

“오늘도 오빠 목을 물었고요.”

“오늘은 안 물었어, 그냥 할짝거렸어.”

“잇자국 생겼어요.”

벌써?

“이런.”

생기기 전에 깨우려고 했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뒤늦게 확인한 설우가 멋쩍게 웃으며 목덜미를 가렸다.

“묶는 게 싫으면 입이라도 어떻게 해줘요. 오빠 목이 지금 어떤 줄 알아요?”

“싫어, 내가 좋아서 두는 거야.”

“입마개 같은 거라도요.”

“네가 개야? 그런 걸 왜 해.”

“개가 낫죠. 적어도 주인은 안 무니까.”

“너 말 그렇게 할래?”

온화하게 풀려있던 설우의 얼굴이 금세 사나워지자 연의 눈꼬리가 아래로 늘어졌다.

“잘못했어요.”

입은 버릇처럼 잘못을 말했지만, 차라리 묶이고 싶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을 새도 없이 생겨나고 덧나는 고통의 흔적들을 지켜봐야만 하는 연은 늘 속이 쓰렸다.

“많이 좋아졌잖아, 응? 이제 갑자기 잠들지도 않고 오래 자지도 않잖아. 밤에 움직이는 거 하나 남았는데 오빠가 이거라도 하게 해주라. 너 다치면 내가 죽을 거 같아서 그래.”

수면제를 먹이기도 싫고, 묶어두기도 싫어.

네 병을 대신할 수 없으니 내가 아프고 내가 다치는 게 더 좋아.

설우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리지 못한 연이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대신 너무 아플 땐 참지 말아요. 약속.”

“약속.”

이러다 정말 오빠를 크게 다치게 할까 봐 두렵다는 말을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약속 어기면 말 잘 듣는 다람쥐는 없어질 거예요. 반항기 넘치는 다람쥐만 남겠죠.”

“푸흡! 네가 반항하면 어쩔 건데.”

“겨울잠을 잘 거예요.”

“이든한테 협박하는 법을 배웠나 본데?”

“먹혔어요?”

“먹혔어, 그건 좀 무섭다. 매일 봐도 보고 싶은데 어떻게 견디라고.”

그럴듯한 협박에 피식, 웃은 설우가 반짝이는 눈동자에 입을 맞췄다.

“아침 인사예요?”

“응, 안겨. 씻으러 가자. 빨리 나가야 오래 데이트하지.”

다시 설우의 목에 팔을 걸어 안긴 연이 상처로 범벅이 된 목덜미에 호호, 입바람을 불었다.

“씻고 약 발라 줄게요. 잠은 좀 자요?”

“그럼. 밤새도록 내 목을 갖고 놀진 않으니까.”

“침대도 넓은데, 멀리 밀어버리지.”

“싫어. 이렇게 꼭, 끌어안고 잘 거야.”

“사랑해요, 그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내 구원이고, 내 기적인 사람인데.

“또 기가 팍 죽었네.”

이제 정말 그만 아프게 하고 싶어.

그만 상처 내고 싶어.

욕실 앞에 도착해 바닥으로 내려온 연이 욕조에 물을 받기 위해 뒤돌아선 설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랑이 큰 만큼 속이 상했다.

“오빠 혹시 나중에라도 나한테 지치면….”

“그럴 일 없으니까 옷이나 벗어, 시무룩한 다람쥐를 야한 다람쥐로 바꿔 줄 거야.”

“푸흐, 그게 뭐예요. 오빤 왜 이렇게 한결같아요? 아픈 사람을 돌보는 건 힘든 일이잖아요.”

“그만큼 사랑하니까.”

“사람이 이렇게 멋있으면 안 되는 건데.”

연을 마주 본 설우가 욕조에 걸터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말간 금빛 눈동자에 설우의 새카만 눈동자가 겹쳐졌다.

“안 되긴 왜 안 돼.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네 건데.”

엉망진창인 목덜미에서 연이 끝까지 시선을 돌리지 못하자 설우가 손을 들어 그녀의 눈을 가렸다.

동시에 말캉한 입술이 단숨에 먹혀들었다.

“우으….”

연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자 설우가 손과 입술을 차례로 떼며 한걸음 물러섰다.

“맘껏 물어, 난 좋아.”

“왜 웃어요, 바보 같아.”

“내 목 그만 보고, 웃는 거 보라고. 어때?”

어떻긴 뭘 어때, 근사하지.

어두운 욕실을 밝히는 그의 미소는 훗날 꿈에서도 아른거릴 정도로 예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