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이 잠든 사이에-73화 (73/96)
  • 73화.

    형택이 연의 펜던트를 빼앗은 데는 거창한 이유가 없었다.

    ‘휴대 전화, 목걸이, 반지, 시계. 뭐가 되었든 차를 옮겨 탈 땐 그 아이가 지니고 있던 물건은 전부 버려두고 와.’

    고용인의 명령이었다.

    두 번이나 연을 놓친 백창석 대표는 아주 신중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란 것을 아는 그는 치명적인 허점을 만들 수 있는 요인들을 사전에 차단했다.

    굳이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 차를 바꿔 타게 한 것도, 연의 소지품들을 버린 것도 백 대표의 꼼꼼한 계획의 일부였다.

    “아, 안 돼요. 목걸이는 안 돼요! 가진 거 다 드렸잖아요. 왜 굳이, 악!”

    쓸데없는 반항을 하는 연의 머리채를 잡은 형택은 펜던트를 가는 목에서 뜯어내었다.

    “시끄럽게 하면 다시 재갈을 물릴 테니 조용히 가자고.”

    “저,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말했잖아. 널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그게 누군데요.”

    펜던트를 트렁크에 던져 넣는 것으로 차를 옮겨 탈 준비를 마친 형택이 연을 조수석에 태웠다.

    눈과 입. 다리는 자유롭게 풀어 주었지만, 투박한 로프에 긁혀 빨갛게 물든 손목은 조수석 차창 위에 달린 손잡이에 단단히 고정했다.

    “있어, 평창동에 사는 천년 묶은 능구렁이.”

    “누구든 내 남편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요.”

    “하하하! 생긴 거랑 다르게 정말 담력이 좋은 편인가 봐. 대부분 그 자리에 앉아 묶이면 울기 바쁜데 말이야.”

    당해 본 적이 있어 더 두려웠지만, 당해 본 적이 있어 더 침착할 수 있었다.

    펜던트를 빼앗기는 바람에 상황이 나빠진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설우가 저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내가 도망쳐야 해.

    “아가씨 남편도 정신없을 거야.”

    “그렇겠죠, 날 잃어버렸으니까.”

    “제 할아버지가 아내를 사지로 내몰았으니. 제정신일 리가 없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 아가씨를 백 대표한테 보내는 건 CH그룹 차성태 회장이라고. 대체 얼마나 밉보인 거야? 좀 잘하지 그랬어. 나이도 어린데, 안 됐네.”

    서울 외곽을 돌아 다시 평창동으로 가는 길.

    처음 살벌했던 얼굴을 지운 형택은 멍하니 운전을 하기가 심심한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게요, 더 잘할걸. 할아버지가 날 이 정도까지 미워하는 줄은 몰랐어요.”

    나름대로 예쁘게 보이려 노력했는데. 제 노력은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미 퉁퉁 부은 눈꺼풀 아래로 핑, 눈물이 돌았다.

    설우를 다신 보지 못할 거란 말이 사실이 될 것만 같았다.

    ***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든 화진이 뜨거운 차를 식히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여유로워 보였으나 드러나지 않은 가슴속엔 1분에 한 번씩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끓인 지 얼마 되지 않은 홍차보다 뜨거울 것이 분명했다.

    [차 회장님께서 결국 연이에게 손을 대셨어요. 찾고는 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요. 설우는 곧 한남동으로 갈 거예요, 넋이 나갔습니다.]

    셋 중 유일하게 정신줄을 잡은 첸은 곧바로 화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노망난 노인네에게 욕설을 퍼부어줄 작정으로 한남동으로 향하던 화진은 이내 마음을 바꿔 미리 점찍어 두었던 특수부 검사를 찾아왔다.

    “박 회장님을 제 사무실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럼 조사실에서 보고 싶었나 보죠? 아쉽지만, 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잡혀 올 만큼 나쁜 짓 안 해요. 세금도 더럽게 많이 내고.”

    “네, 뭐. 그래서 검찰청 안에서 마주칠 일은 없다고 생각했죠.”

    “특수부에 좋은 소스를 주려고 왔어요.”

    화진이 무심하게 툭, 테이블로 올린 USB는 그녀가 차곡차곡 모아둔 자료와 설우의 자료가 합쳐진 정경유착의 증거였다.

    “이게 뭡니까?”

    “적폐 집단이 악의 카르텔을 형성한 증거, 라고 해두죠. 자료에 나오는 인물 전부 거물입니다. 안에 든 자료로 기소까진 충분할 거예요. 구속은 강 검사 실력을 믿어 볼게요. 고위층 사냥꾼으로 유명하니까 끝까지 물고 늘어져 줄 거라 믿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윗선에서 오는 압력 정도는 내가 막아 줄 수 있으니까.”

    찾아온 이유를 단숨에 늘어놓은 화진이 미련 없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려고요? 자료 보면서 같이 말씀 좀 나누시죠.”

    “바쁜 일이 있어요. 아들 잡아먹을 노인네 머리털을 전부 뽑아줘야 하거든요, 지금 당장.”

    “?”

    폭탄과 다름없는 정보를 넘겨 놓고 바쁜 일이라니, 그리고 머리털은 또 무슨 소리인지.

    현진그룹 총수의 성격이 남다르단 소문이 거짓은 아닌 듯싶었다.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요, 강 검사.”

    화진은 후후, 불어 식히던 홍차를 입에 대지 않고 그대로 검사실을 나섰다.

    홍차는 금세 식었지만, 그녀의 속에선 여전히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터벅터벅, 복도를 돌아 다이닝룸에 들어선 설우를 보고 가장 놀란 건 유정이었다.

    “설우야, 너 꼴이 왜 이래! 무슨 일 있는 거니?”

    엉망진창이란 말이 어울렸다. 이리저리 헝클어진 머리와 이마에 맺힌 식은땀, 붉게 충혈된 눈.

    다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가족들의 의아한 눈동자가 설우에게로 쏠렸다.

    대충 손에 쥔 슈트 재킷이 상석에 앉은 차 회장을 마주하자 툭,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서재에 들어가 있어.”

    설우가 찾아온 이유를 모를 리 없는 차 회장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유정을 지나쳐 다가온 설우는 그대로 뚜벅뚜벅, 차 회장이 앞으로 다가섰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 이게 맞는 거지. 네깟 놈이 날 이길 순 없지.

    차 회장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생겨났다.

    “아직 식사 중이다, 서재로 들어가 있으라니….”

    털썩. 힘없이 차 회장의 발밑에 꿇어앉은 설우가 고개를 숙였다.

    “설우야!”

    설우와 차 회장을 번갈아 보던 다른 가족들이 기함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이 어디 있어요, 어디로 보내셨어요?”

    닳고 닳아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내가, 순수 따윈 없는 내가.

    “쯧, 사내놈이 그깟 계집애 하나 때문에 별짓을 다 하는구나.”

    널 욕심낸 벌일까.

    “이혼하라면 하고, 원하는 여자랑 결혼도 할게요. 할아버지 뜻대로 살겠다고요.”

    순순히 한주희랑 결혼했더라면, 네가 예뻐 죽는 다른 아이들과 살도록 했더라면.

    내가 너를 욕심내지 않았더라면.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어.”

    그저 네 웃는 모습에 만족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연아.

    처참하게 구겨진 얼굴을 타고 떨어진 눈물이 대리석 바닥을 적셨다.

    “그러니까 연이 좀 돌려주세요. 아파요, 많이 아프다고요. 우, 으윽…. 내가 없으면 안 돼요, 혼자 있으면 안 돼요. 제발, 제발요.”

    피 섞인 가족 누구도 본 적 없는 설우의 눈물이었다.

    “세상에.”

    “…….”

    “연이. 연이요, 할아버지…. 우흑.”

    차오르는 숨을 버겁게 뱉으며 울부짖는 남자가 낯설었다.

    차 회장의 방식을 잘 아는 가족들은 설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 번 자존심을 짓밟히며 설우에게 졌던 차 회장이 결국 손을 쓴 것이겠지.

    잠시 눈치를 보던 유정이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 재빨리 화진의 번호를 찾았다.

    [설우 여기 왔어. 아버님이 연이를 어떻게 하셨나 봐]

    얼마 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즐거운 듯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보아서 그런지 더 마음이 쓰였다.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짓까지 하는 건지.

    항상 차 회장 말에 복종하던 유정의 눈에도 그를 향한 원망이 차올랐다.

    “아버지, 설마!”

    “그래. 내가 치웠다, 그 애. 어차피 이럴 작정이었어. 저놈이 파라다이스로 장난을 치니 그 시기가 당겨진 것뿐이지.”

    “할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어떻게 그런 짓을 하세요.”

    말을 할까 말까 머뭇거리던 관우까지 한 마디를 보탰다.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피를 토하듯 외치는 사촌 동생을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설우가 아내를 얼마나 살뜰히 챙기고 사랑했는지 두 눈으로 보았던 가족들은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 제가 당장 가서 데려올 테니 말씀해주세요.”

    “되돌려 줄 거였으면 애초에 빼앗지 않았을 거다.”

    “할아버지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했잖아요. 더 늦으면 안 돼요, 빨리….”

    “차설우, 일어나.”

    “이젠 아주 제집 드나들듯 오는구나.”

    비서실장인 성재와 함께 들어온 화진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참아내며 설우의 팔을 잡았다.

    유정은 메시지를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화진이 놀라웠지만, 그녀는 이미 한남동으로 오던 중이었다.

    “일어나, 빨리!”

    “엄마, 연이가 아무 데도 없어요. 겁이 많아요, 무서워서 나만 찾을 거예요. 끌려다니다가 잠들면 큰일인데. 연이가 계속 기다릴 텐데.”

    연을 잃은 설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재고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최악을 상상하지 않으려 해도 백창석이 떠올랐고, 힘없이 잠드는 모습이 아른거리니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빌고 애원할 수밖에.

    조금이라도 빨리 연을 찾을 수 있다면 무릎을 꿇는 것은 물론 그 어떤 짓도 할 생각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눈물로 범벅이 된 아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간신히 쥐고 있던 이성의 가는 끈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내가 경고했지.”

    “뭐, 뭐? 으윽…!”

    “…대박.”

    화진은 가장 가까이 있는 그릇을 들어 그 안에 담긴 나박김치를 차 회장의 얼굴로 끼얹었다.

    촤악! 김칫국물이 흩어지는 소리와 함께 얼이 빠진 차 회장이 연신 눈을 깜빡였다.

    김치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를 때까지. 제가 지금 무엇을 뒤집어쓴 건지 알지 못했다.

    씻어낼 수 없을 굴욕의 순간이었다.

    “기어이 내 아들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 이 미친 노인네가!”

    “어머, 동서!”

    “그만, 진정해. 여보.”

    차 회장의 흰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을 기세로 달려드는 화진을 간신히 잡은 유정과 현준이 그녀를 말렸다.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똑똑히 봐, 당신 아버지가 설우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당신 아버지 사람이긴 하니? 저게 사람이냐고!”

    “연이 어디 있어요, 아버지. 더 복잡해지기 전에 말씀하세요. 이미 설우랑 결혼한 아이예요. 제 며느리고, 아버지 손자며느리라고요!”

    “난 그 애를 손자며느리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아버지!”

    끝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차 회장을 보는 다른 가족들의 눈에도 경멸이 스몄다.

    한없이 넓게만 보이던 조카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가엽게 보던 유정이 앞치마를 벗고 차 회장 앞에 섰다.

    “연이 데려오세요.”

    “뭐야?”

    얼굴 곳곳에 묻은 음식물 찌꺼기를 닦아내던 차 회장이 제 귀를 의심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맏며느리의 강직한 목소리였다.

    “당장 데려오지 않으시면 관우 아비랑 이혼하고 이 집에서 나가겠어요.”

    “이게 무슨 되먹지 않은 소리야!”

    “되먹지 않은 건 당신이지.”

    끝내 설우를 일으켜 세운 화진이 날을 세웠다.

    “30년이 넘도록 이 집안에 헌신했어요. 지금 이혼하면 못해도 CH그룹 삼 분의 일 정도는 제 몫으로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누구 마음대로! CH 주인은 나야!”

    “지금 총괄회장은 접니다, 아버지. 원한다면 협의이혼 해줄게. 지금까지 고생한 만큼 재산 분할도 정확히 해줄 거고.”

    “저도 엄마랑 같이 나갈게요, 할아버지. 이 타이밍에 나가면 작은어머니가 현진에 한자리 내어 주시겠죠. 제가 정의로운 편은 아닌데 이번 일은 정말, 감당이 안 되네요.”

    “저도 나갈게요.”

    “저도요.”

    “이, 이! 배은망덕한 것들이!”

    식탁에 앉아있던 모두가 차 회장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설우에게 향해있는 잔혹한 칼날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겨눠질 수 있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집을, 차 회장의 잘못된 아집을 바로잡아야 했다.

    독재자가 쌓아 놓은 모래성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결정하세요, 아버지. 연이 있는 곳을 알려 주실 건지, 이 큰집에 혼자 남으실 건지.”

    “회장님한테 퍽 잘 어울리는 결말이네요. 장례식에 피붙이 하나 없고, 죽어서 제삿밥조차 받아먹지 못하는.”

    촌철살인 같은 화진의 한마디에 차 회장의 입매가 부르르 떨렸다.

    가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저를 비난하니 차 회장은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경멸과 원망이 가득한 눈동자가 전부 차 회장에게 향했다.

    “평창동으로 보냈다.”

    차 회장이 웅얼거렸다.

    일생을 독선적으로 살아왔지만, 전부 떠나겠다는 가족들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들 물러나.”

    백 대표의 명령에 연을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이 멀찍이 물러섰다.

    천사 펜던트를 발견하고 절망한 설우가 한남동에 들어갈 무렵, 평창동에선 예상치 못한 소란이 일었다.

    손목이 자유로워진 틈을 타 정원사가 치우고 있던 깨진 화병 조각을 집은 연은 곧장 제 목으로 가져다 댔다.

    날카로운 부분이 여린 살결에 닿자 금세 핏방울이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정말 찌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아저씨가 그랬죠. 한 군데만 찔러도 사람은 쉽게 죽는다고. 목도 그중 하나예요, 맞죠? 조금만 깊어도 경동맥이 베일 테니까.”

    태연한 척하기 위해 이를 악문 연은 마지막 발악에 최선을 다했다.

    “뭐?”

    언뜻 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물음에 형택이 입을 쩍, 벌렸다.

    제가 했던 말을 이런 식으로 인용할 줄은 몰랐다. 담력이 좋다, 간이 크다, 전부 장난삼아서 했던 말이었는데.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여린 꽃과 같은 여자는 생긴 것과 다른 독살 맞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냥 오빠한테 보내주세요. 전 여기서 못 살아요. 만약 오늘 죽지 못해도 내일 다시 죽으려고 할 거고, 내일 죽지 못해도 그다음 날 다시 죽으려고 할 거예요. 매 순간 죽는 데 최선을 다할 거라고요!”

    살갗이 베여 아릿한 감각이 올라오자 금빛 눈동자 주위로 핏발이 섰다.

    “생각보다 사납구나. 네 아비는 분명 모자란 부분이 많다고 했는데, 그런 거 같지도 않고.”

    “가까이 오지 말아요.”

    백 대표가 한 걸음 다가서자 연이 한걸음 물러났다.

    백 대표는 마음이 급했다.

    드디어 손에 들어온 아이를 어서 별관 안으로 숨겨야 하는데 자꾸 시간이 끌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직접 나선 것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 없을 게야.”

    “오, 오빠한테 보내주세요. 보내줘요, 제발.”

    연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백 대표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형택에게 눈짓했다.

    형택이 슬금슬금 연의 뒤로 향할 무렵.

    경찰을 대동한 설우가 손쉽게 대문을 뚫고 돌계단을 뛰어올랐다.

    “어, 어르신! 어르신!”

    본채 안에 있던 백 대표의 하수인 중 하나가 버선발로 나와 창석을 불렀다.

    “왜 이리 호들갑을 떨어!”

    뻐억?!

    “커흡!”

    “차 사장이 왔다는 호출이….”

    한발 늦은 보고였다.

    “이미 왔네요."

    연을 뒤에서 제압하려던 형택은 하늘에서 날아온 듯한 이든의 긴 다리와 함께 잔디밭으로 쑤셔 박혔다.

    둔탁한 소리에 화들짝 놀란 연이 돌아보기도 전에 익숙한 향이 그녀의 등 뒤를 덮쳤다.

    “왜 이렇게 위험한 걸 들고 있어.”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던 설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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