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첸과 함께 예약한 룸 앞에 선 설우가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사외 이사들만 모인 오찬이자 CH파라다이스의 계열사 분리를 확정 지을 자리였다.
“자료는 전부 준비됐어?”
“계열 분리에 필요한 자료는 공정위에 전부 넘겼어.”
“상황은 어때.”
“지사장과 직원들은 우호적인 편이고, 이든 사고 때 위임받은 주식을 포함해 네가 가진 지분이 압도적이라 주주총회로 이어져도 계열 분리는 가능해. 차현수 총괄회장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내 이사들 역시 찬성했어. 결과적으로 파라다이스엔 득이 될 테니까.”
여러 개의 서류 봉투를 든 첸은 오랜만에 갖춰 입은 반듯한 정장이 불편해 와이셔츠 목깃을 잡아당겼다.
“사외 이사들만 해결하면 되겠군.”
“맞아, 사외 이사 중에서도 딱 여섯. 뼛속까지 차성태 회장 사람이니 무슨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설득은 불가능해.”
“설득이 안 될 땐 협박이 답이지.”
“이걸로 충분해, 법 위에서 사는 놈들이라 불법적인 증거가 한가득이야. 털어 보니 가관이던데.”
첸이 손에 든 봉투를 가볍게 흔들었다.
“좋아, 들어가자.”
CH그룹에서 CH파라다이스를 완전히 들어내기 위한 마지막 단계였다.
독립시킨 파라다이스를 방패로 세워 조부가 더는 연을 괴롭히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오셨습니까, 차 사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사외 이사들이 앞다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네요, 첸 이사. 하하하! 난 아직도 첸이란 이름 뒤에 직위를 붙이는 게 어색해요.”
“어감이 영 특이하잖습니까.”
“출신이 워낙 밑바닥이다 보니 점잖게 쓸 이름이 없네요.”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앉으시죠.”
가벼운 농담이 섞인 인사가 지나자 음식이 들어와 커다란 8인 상을 빠르게 채워나갔다.
“어떻게,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음주 가무가 일상인 김정태 이사가 말을 꺼내자 술을 즐기는 다른 이사들이 설우의 눈치를 살폈다.
환갑이 지난 이들이 젊은 오너 앞에 쩔쩔매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누가 뭐래도 이 방 안에서 모든 결정권을 가진 건 설우였다.
“전 아직 퇴근 전이라, 술은 안 되겠네요.”
“다음번엔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술이 빠져 아쉬운 입맛을 다시던 이사들은 평소보다 더욱 딱딱하게 구는 설우가 의아했다.
갑자기 자리를 만든 이유조차 모르고 있는 그들은 첸이 한구석으로 치워놓은 서류 봉투를 힐긋거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고요한 식사가 이어졌다.
“이제 얼추 식사는 끝난 것 같은데.”
“음식이 괜찮네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로 목을 축인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식사 자리를 만든 용건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입맛이 돌지 않아 깨작거리던 설우가 첸에게 눈짓하자 각자의 이름이 적힌 서류 봉투들이 주인을 찾아 나누어졌다.
“이게 뭡니까?”
“천천히 읽어 보시죠.”
호기심 어린 얼굴로 봉투를 열었던 이들은 일목요연하게 타이핑된 자신들의 치부를 읽고 기함했다.
양쪽에 여자를 끼고 유흥업소 입구에서 찍힌 사진을 발견한 김 이사는 손에 든 자료를 모두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무, 무슨 짓입니까, 차 사장! 대체 이걸 왜!”
새하얀 종이를 빼곡히 채운 범법행위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만큼이나 다양했다.
불법 성매매와 탈세는 여섯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음주단속에 걸릴 때마다 거액의 돈을 주고 무마시키고, 원정도박을 즐기고, 마약과 폭행 등 자식들의 범죄까지 덮었던 만행들을 되뇐 이사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갔다.
“회장님 비호 아래 참 호의호식하셨어요. 할 짓, 못 할 짓 구분 없이 많이들 해주신 덕분에 자료가 넘쳐 첸이 고생을 좀 했습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설마 회장님 지시라도?”
“제 독단입니다.”
“차 사장! 우린 CH와 함께 늙어온 사람들입니다. 이제 와 내치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당장 회장님께 가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하세요. 대신 그 자료들은 곧바로 검찰과 언론에 넘길 겁니다. 감당할 자신 있으세요?”
“이걸 가져온 이유가 뭡니까.”
벌겋게 달아올라 흥분한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음을 다잡은 건 박 이사였다.
직접 나서 이런 수고를 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었다.
“곧 CH그룹에서 CH파라다이스가 분리될 겁니다. 파라다이스 아래 있는 호텔, 백화점, 리조트까지 전부. 이사님들이 반대하셔도 분리가 되는 데 문제는 없습니다만, 성가신 분란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 제가 이렇게 공을 들였습니다.”
“아, 아니, 차 사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분리라니요!”
“회장님 뒤통수를 치겠다는 뜻입니까?”
“글쎄요. 굳이 뜻이 있다면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기 전에 회장님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두려는 것뿐입니다.”
“좋습니다. 차 사장 말에 따르겠어요.”
“이 자료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이사들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은 이들은 예상보다 더욱더 쉽게 설우에게 굴복했다.
20년만 젊었더라면 충성심 운운하며 객기를 부렸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늙어빠진 몸뚱이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고 싶지 않았고 자식과 더불어 손자들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불필요한 잡음 없이 지금처럼 살아가고픈 마음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됐네.”
목을 죄는 넥타이를 잡아 내린 첸이 촘촘하게 잠긴 와이셔츠 단추를 열었다.
부지런히 시간을 쏟은 결과물이 이제 한 발자국밖에 남지 않았다.
공정위 승인이 떨어지고 계열 분리 절차가 시작되면 다시 펠리체로 돌아가야지.
“연이 보고 싶다.”
“넌 잠깐 보고 왔다며. 난 요 며칠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고!”
한동안 일에 파묻혀 지냈던 첸이 억울함을 담아 소리쳤다.
나도 머리 쓰지 말고 몸을 쓸걸.
매일 같이 연을 끼고 칠렐레, 팔렐레 놀고 다니는 이든이 부러웠다.
“곧 펠리체로 갈 테니까 실컷 봐.”
“괜찮겠지?”
“괜찮아, 워낙 생활 반경이 좁은 아이라 해를 끼치기 쉽지 않을 거야. 애들도 많이 붙여뒀고, 목걸이도 있잖아.”
한 단계, 한 단계. 차 회장을 이겨 먹기 위해 올라설 때마다 연의 안위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
꼼꼼하게 방패를 엮어내고 있었지만 완벽할 순 없었다.
설우가 인지하지 못한 빈틈은 세 가지였다.
펠리체는 안전할 거란 믿음, 수십 년간 견고하게 쌓아온 차 회장의 인맥, 손자에게 연달아 일격을 맞은 조부의 하늘을 찌르는 분노.
끝내 한곳에 모여 설우를 벼랑 끝에 세우기 충분한 빈틈이었다.
맏며느리 유정이 가져다준 다과를 즐기고 있던 차 회장이 드르륵, 드르륵 소음을 내는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납니다, 차 회장.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셨습니까, 백 대표.”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늙은이 둘이 통화라니.
“명절 인사를 기대하면 될까요.”
수행원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직접 대면하는 일이 많은 이들은 연신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예, 그것도 해야죠. 하지만 오늘은 그런 용건은 아닙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공정위원장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공정위원장?”
-예. 차설우 사장이 공정위에 계열 분리 심사를 넣었답니다. 수일 내로 승인이 날 예정이라는데 승인을 막을 수 없으니 미리 연락했다고 하네요.
챙그랑, 잘 익은 딸기를 꽂아 들고 있던 포크가 접시 위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쪽에 아는 이가 없었다면 눈 뜨고 코가 베일 뻔했습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 파라다이스가 분리되면 CH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거예요.
“이 넋 빠진 놈이 기어코!”
-안 좋은 상황을 제쳐놓고 보면 무섭도록 수완이 좋은 젊은이예요. 나 참, 손주를 잘 키우셨다고 해야 할지.
한남동에 들어오고 파라다이스 지분을 받아 간 이유가 회사를 떼어가려던 거였다니.
꼭 설우를 앞에 둔 양, 차 회장의 눈매가 매섭게 찢어졌다.
“망아지처럼 날뛰는 꼴을 더는 봐줄 수가 없겠네요. 승인을 미룰 순 있겠습니까.”
-말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쩌시려고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원하는 아이 데려가세요.”
-진심입니까?
되묻는 백 대표의 목소리에서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묻어났다.
영영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 더욱 아쉬운 아이였다.
“언제든 떼어버릴 혹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예요.”
-새 식구를 들일 준비를 해야겠네요.
“펠리체 안으로 사람을 들이세요. 쉽진 않겠지만, 펠리체 말고는 데려갈 방법이 없을 겁니다. 밖에 나가 있을 땐 이든 말고도 가드가 여럿 붙어있어요. 얼핏 듣기론 펠리체 문화센터에 다닌다고 하니 그쪽을 공략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하하! 좋은 선물 감사합니다, 차 회장. 모쪼록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화통하게 웃으며 통화를 끝낸 백 대표와 다르게 차 회장은 오물을 씹은 얼굴로 휴대 전화를 내려놓았다.
치가 떨릴 만큼 거대한 분노가 온몸을 휘몰아쳤다.
오로지 배신감으로 가득 찬 머릿속엔 서슬 퍼런 화진의 경고는 잊힌 지 오래였다.
제 발아래 둘 수 없는 핏줄은 잘라내면 그만이었다.
***
연과 설우가 생활하는 한남동 별관에 낭랑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꽃 자수가 놓인 하얀색 저고리와 연분홍색 치마를 입은 연이 거실 소파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15살이 되던 해, 설을 마지막으로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그 노래 이제 안 불러.”
“정말요? 아빠랑 오빠랑 매번 불렀는데. 제주도에 같이 있었을 때 오빠도 불렀잖아요.”
“네가 졸랐잖아. 내일 엄마한테나 가자니까 말도 안 듣지. 괜히 또 싫은 소리 들으려고.”
“적응돼서 괜찮아요. 맨날 도망만 친다고 더 미워하시면 어떡해요. 나갈 때 나가더라도 최선을 다해야죠, 지금이 기회예요!”
잠도 안 자고, 컨디션도 좋으니까.
설 전날의 한남동은 일가친척의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손님들을 맞이하며 음식까지 해내느라 바쁜 손위 동서들을 따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연은 본관으로 넘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우리 다람쥐, 한복은 또 왜 이렇게 잘 어울려.”
“황 여사님이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셨어요. 뽀뽀 몇 번 하고 나갈까요?”
“아니, 안 할 건데.”
“아니, 할 건데.”
말장난을 친 연이 쪽, 하고 입술을 가져다 댔다.
“멋대로 할 거면서 묻긴 왜 묻고?”
“오빠가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죠. 우리 연이 예뻐 죽겠네, 이런 표정으로 봤잖아요.”
“그건 맞아. 자꾸 예뻐져서 큰일이야, 어디 내놓기가 무섭다고.”
연을 못살게 굴던 독한 약을 줄이니 빛을 품은 얼굴엔 언제나 생기가 넘쳐흘렀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알맞게 오른 살도 제 몫을 해냈다.
시간이 지나 연이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 날이 와도 쉽게 내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늦은 저녁엔.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다른 여자들이 맨날 오빠를 훔쳐본다고요.”
“오빤 힘이 세서 괜찮은데 내 다람쥐는 연약하니까. 누가 해코지할까 봐 그렇지.”
“이든 있잖아요. 나중에 이든한테 싸움도 배울게요.”
“나중에 다 나으면 배워, 목걸이는 어디 있어?”
“방에요, 아까 샤워하기 전에 잠깐 풀어놨어요.”
“얼른 하고 와, 절대 풀지 말라고 했잖아.”
설우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사라지자 연이 후다닥, 움직여 목걸이를 가져왔다.
설우가 처음 연에게 주었던 천사 펜던트는 여러 번의 세공을 거쳐 위치 추적기가 심어지고 설우의 번호까지 새겨졌다.
일종의 미아방지 목걸이인 셈이었다.
“했어요, 목걸이!”
“그럼 이제 나가자. 근데 나가서 뭐 하려고?”
“전 부칠 거예요.”
“뭐?”
“아까 테라스에서 봤는데 마당에 엄청나게 큰 지붕이 생겼어요. 큰어머니랑 형님들은 다 거기서 전 부치고 계시고요. 황 여사님도 거기 가신다고 나가셨어요.”
“넌 안 해도 돼, 기름이라도 튀면 어쩌려고.”
“사실 내가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오빠가 같이하면 되잖아요, 응?”
첸이 요리하는 걸 매번 구경하다가 베이킹 수업까지 듣더니. 음식을 만드는 데 흥미가 생긴 건가.
무엇이든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는 연이 그저 귀엽다가도 가여워진다.
그러니 원하는 건 뭐든, 함께해 주어야지.
“그래, 알았어. 같이 해.”
부산스럽게 신발을 신은 연의 손을 잡은 설우는 바닥에 끌리는 치맛자락을 잡아주며 본관 정원으로 향했다.
동네잔치를 하고도 남을 정도의 음식을 하는 중인 정원은 혼잡해 보였지만, 워낙 이골이 난 일인 탓에 뚝딱, 뚝딱. 명절 음식을 만들어냈다.
“고생하시네요, 큰어머니.”
“설우 나왔구나?”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 예쁘기도 해라. 연이는 꼭 한복 모델 같네.”
“감사합니다. 큰어머니도 예쁘세요.”
차성태 회장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정상적인 범주에 속했다.
그중 특히 유정은 연에게 살갑게 다가섰다. 애초에 인사성 밝고 선한 아이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화진에게 연의 상태를 전해 듣고 나선 그녀를 다른 며느리들처럼 가르치겠단 생각 자체를 접은 상태였다.
물론 유정의 며느리들은 특별대우를 받는 연에게 불만을 품었지만, 차 회장에게도 거침없이 대드는 설우와 화진에게 기가 죽어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점심 먹을 때나 나오지 뭐 하러 일찍 나왔어.”
“저도 도와드리려고요!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열심히 해볼게요.”
“할아버지 눈치 보여서 그래? 괜찮아. 안에서 안 나오실 거야.”
“아뇨, 명절이잖아요. 저 때문에 오빠까지 겉돌게 하기 싫어서요.”
“아깐 그런 말 안 했잖아. 그냥 전 부치고 싶다며.”
“미리 말하면 신경 쓰지 마,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라고 하면서 못 나가게 할까 봐.”
설우를 흉내 내기 위해 눈매를 관자놀이로 쭉, 잡아당긴 연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하하하, 연아 그거 설우 따라 한 거니?”
“얘 특기예요.”
“애교 많은 부인이랑 살아서 심심할 일은 없겠네. 황 여사, 하던 거 연이 주고 저쪽에서 잡채 좀 봐줘요.”
“예? 연이 사모님요? 어휴, 위험해요!”
“제가 같이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펠리체에서부터 연을 봐온 황 여사가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설우가 함께 오자 이내 자리를 비켜주었다.
“안녕하세요, 첫째 형님. 안녕하세요, 둘째 형님. 안녕하세요, 여사님. 안녕하세요, 정원사 아저씨!”
“대문 앞에선 가드한테도 가서 인사하고 오지, 왜.”
“아, 그럴까요?”
“됐어, 빨리 앉아. 하고 싶은 거 하셔야죠.”
“네에.”
천막을 돌며 인사를 하는 것으로 모자라 멀찍이 떨어진 정원사에게까지 소리치다 뒷덜미가 잡힌 연이 널찍한 프라이팬 앞에 자리를 잡았다.
유정이 다가와 시범을 보여주자 다양한 리액션을 뽐내던 연이 동그랑땡 반죽을 올리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팬 조심, 조심! 뜨거워. 좀 더 멀리서 해. 한복 조심하고, 걸려서 넘어져. 기름 튀면 아파, 연아. 더, 더 뒤로.”
“오빠, 이것보다 더 뒤에서 어떻게 부치고 어떻게 뒤집어요.”
“…….”
설우의 말대로 뒤로 가다 보니 프라이팬에서 한참 멀어진 연이 입술을 삐쭉였다.
“잔소리쟁이!”
“푸흡!”
“하하하.”
같은 공간에 있는 가족들과 직원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연과 설우에게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엎고 결혼을 하기도 했고, 식사 때마다 독설을 퍼붓는 차 회장과 싸우는 설우를 본 사람도 여럿이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하는지도 궁금했을 터였다.
기름 한 방울이라도 튀길까 전전긍긍하다가도 걱정 섞인 잔소리를 퍼붓고.
못한다고 놀리다가도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연을 보는 설우를 구경하던 이들은 간간이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좋을까.”
“신혼이라 그런가, 아니면 연애결혼을 해서 그런가.”
“사랑이 넘치니 그렇겠죠.”
“법석을 떨어 결혼할만하네. 설우 도련님이 좋아 죽는구만.”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부부 때문일까.
고된 일에 지쳐가던 이들도 표정이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서로의 얼굴에 부침가루를 묻히며 장난을 치는 부부는 보는 사람에게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그림같이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