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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에-57화 (57/96)
  • 57화.

    검사가 모두 끝났다는 이든을 보러 가는 길.

    설우의 손을 꼭 붙잡은 하얀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든이 너무 많이 다쳐서, 너무 아파서 날 미워하면 어쩌지.

    다신 돌봐주지 않겠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같은 층, 같은 복도에 있는 이든의 병실 앞에 금세 도착한 연이 작은 한숨을 뱉어냈다.

    “왜 이렇게 떨어.”

    “이든이 나 안 밉대요?”

    “전혀, 너 때문에 다친 거 아니라고 했잖아. 아, 얼굴을 늦게 보여줘서 미워할 수도 있겠네.”

    장난스러운 미소로 연을 다독인 설우가 병실 문을 열었다.

    “연아!”

    소파에 뻗어있던 첸이 먼저 반색을 하며 상체를 세웠다. 연이 잠든 동안 애가 닳은 건 설우뿐만이 아니었다.

    “첸.”

    “언제까지 이렇게 걱정시킬 거야. 이리 와, 한 번 안아줘.”

    첸이 두 팔을 벌리자 설우의 눈치를 살핀 연이 쪼르르 다가가 품에 안겼다.

    “죄송해요.”

    “오늘 컨디션은 어때?”

    “좋아요.”

    “나부터 안아 줘야지, 순서가 틀렸잖아.”

    “야야! 일어나지 마, 뼈 안 붙어.”

    불편한 몸을 억지로 일으키는 이든을 만류한 첸이 침대를 비스듬하게 세워 주었다.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지면서 폐를 찔렀다고 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수술 부위와 부러진 뼈가 주는 통증이 상당했다.

    “그냥 풀어 둬요, 이미 다 봤어요. 많이 안 다쳤다고 했으면서, 거짓말.”

    상체에 빽빽하게 감긴 붕대가 답답해 환자복 상의를 풀어 헤쳐둔 이든이 울상을 짓는 연을 보고 슬며시 단추를 채웠다.

    손등에 꽃인 주삿바늘이 거추장스럽게 흔들거렸다.

    “하나도 안 아파, 정말이야.”

    연이 오기 전까지 인상을 쓴 채로 신경질을 부리던 이든은 터진 입술을 열심히 끌어올렸다.

    “잘못했어요, 이든 옆에 꼭 붙어있었어야 했는데.”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일부러 들이박은 그 여자가 미친 거지.”

    “그 여자요?”

    “아, 아직 몰랐구나. 운전자가 한주희야. 널 다치게 하고 싶었나 봐.”

    보호자용 간이 의자에 앉은 연이 긁힌 상처가 가득한 이든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서 내 탓인 거야.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바로 뒤에 선 설우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펠리체 안에서 벌어진 사고였기에 아직 사건 접수는 되지 않았지만, 고의성이 다분한 교통사고는 살인 미수나 다름없었다.

    “그 여자 만나게 해주세요, 가만 안 둘 거야.”

    “너 진짜 안 무서워. 괜히 얻어터지고 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 으윽!”

    “이든! 괜찮아요?”

    쒸익, 쒸익.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는 연을 보며 웃던 이든이 가슴을 움켜쥐며 고개를 숙였다.

    아, 망할. 진통제를 맞아도 이 모양이네, 괜히 꼬맹이 신경 쓰이게.

    이를 악문 이든이 첸을 슬쩍 바라보았다. 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연이 데리고 들어가, 밥 먹이고 쉬어야지.”

    “그래. 나중에 다시 오자, 연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연이 설우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고마워요, 이든. 이든 덕분에 난 하나도 안 다쳤어요.”

    “내가 밀어서 넘어졌잖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저번에 너 화상 입었을 때, 정말 마음 아팠거든.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픈 게 나을 거 같았어. 근데 해보니까 확실히 이게 더 나아. 네가 이러고 있었으면.”

    내가 아마 한주희를 죽였을지도.

    “아플까 봐 못 안아줘요, 나으면 안아 줄게요. 갈게요.”

    여전히 한쪽 눈가를 찌푸린 이든에게 환하게 웃어 준 연이 손을 흔들었다.

    이들과 함께 있는 공간은 어디든 온기가 넘쳤다. 그렇게 싫어하던 병원도 함께 있을 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참 많이 사랑받고 있구나.

    두려움으로 요동치던 심장이 제 속도를 되찾았다.

    셋 중 누구도 없으면 안 될 만큼 애틋해진 가족이었다.

    손을 맞잡고 펠리체로 돌아온 설우와 연은 곧장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밖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돌아오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옷부터 갈아입어.”

    “네!”

    잘 웃다가도 순간순간 멍해지는 연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설우는 그녀가 상념에 빠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주스 한 잔 마실래?”

    “우앗! 보지 마세요.”

    “뭘 또 부끄러워해. 같이 목욕도 해놓고.”

    커다란 욕조에서 신나게 물장구까지 치더니 이제 와서 내외를 하려고 드네.

    “그때도 부끄러웠어요, 너무 밝아서.”

    “장난해? 잘 놀았잖아, 너.”

    설우가 다른 쪽을 보는 동안 옷을 갈아입으려던 연이 화들짝 놀라 팔을 들었다.

    “왜, 왜요!”

    속옷만 걸친 상체를 열심히 가리는 연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다가간 설우가 도드라진 날개뼈를 훑으며 팽팽히 조여진 버클을 풀어냈다.

    “속옷도 갈아입어야지. 아, 벗고 있어도 되겠네. 둘밖에 없으니까.”

    “입고 있을 거예요! 저리 가요, 빨리.”

    “알았어, 뒤돌아 있을게.”

    복숭앗빛으로 물든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설우가 뒤를 돌자마자 다급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흘깃거리며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있을 연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귀여울 거 같은데, 한 번 돌아봐?

    “돌아보지 말아요!”

    “하하하, 알았다니까.”

    검은 속내를 잘도 알아챈 연이 선수를 치자 설우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다 입었어요, 이제 봐도 돼요.”

    “자, 그럼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세요. 야식도 먹어야겠는데? 너무 가볍잖아.”

    “키가 작아서 그래요.”

    “아니, 마른 거지.”

    “야식은 안 먹을래요, 내일 아침 많이 먹을게요.”

    연을 서랍장 위에 올려둔 설우도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딴청을 피우려 했지만 잘 빚어진 복근이 드러나자 눈동자가 저절로 굴러갔다.

    “왜. 운동 좀 더할까?”

    “아뇨, 지금도 충분해요. 다른 여자한텐 절대 보여주지 말아요.”

    “당연하지.”

    “나는 눈 감고 있을게요.”

    “그냥 봐도 되는데.”

    말과 동시에 슬랙스가 벗겨져 내려갔다.

    의도치 않게 드로즈 차림을 보게 된 연의 눈이 커다랗게 변해갔다.

    “오빠의 걘 원래 늘 그런 거예요?”

    “푸흡! 그럴 리가. 네가 벗는 걸 봐서 그래. 신경 쓰지 마, 알아서 괜찮아질 거야. 안겨, 자러 가자.”

    “바로 앞인데 안고 가요?”

    “어디든. 종일 안고 다닐 수도 있어.”

    “팔 아플 텐데.”

    “전혀.”

    “응? 일해야 돼요?”

    연을 침대에 내려둔 설우가 업무용 태블릿을 챙겼다.

    설우의 집무실에 자주 드나드는 연에게도 익숙한 물건이었다.

    “응, 자료 한 개만. 금방 볼 거야.”

    “나 때문에 회사도 못 갔겠다.”

    “괜찮아, 약부터 먹자.”

    침실 한쪽에 둔 미니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온 설우가 알약 두 개를 내밀었다.

    익숙하지만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왼쪽으로 와.”

    “왜요? 나 안 묶어요?”

    “잠들면 묶을 거야. 왼쪽에서 손잡고 있으라고.”

    “불편하잖아요, 일하는데.”

    “오른손 하나면 충분해. 그리고 일보다 네가 먼저야, 너랑 놀면서 해도 돼.”

    억제대 때문에 항상 안전가드 옆에서 자는 연이 설우의 왼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을 잡아주기 위한 작은 배려였다.

    “이든이랑 첸은 한참 떠들 시간인데. 없으니까 조용하네요.”

    “난 둘이 있는 게 더 좋아.”

    “나도 좋아요. 인천 리조트도 좋았고, 호텔도 좋았고요.”

    “오늘은 참을 거니까, 꼬시지 마.”

    “이게 어떻게 꼬신 거예요.”

    “다른 게 좋았다는 의미로 들려, 침대에서 뒹군 거라든지.”

    중요한 자료를 꼼꼼히 읽으면서도 건성으로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것도 좋긴 했죠. 이든은 언제 퇴원할 수 있어요?”

    “좀 걸릴 거야. 우리 신혼여행 다녀올 때쯤?”

    “결혼식에도 못 올까요?”

    “올 거야, 이든이 널 얼마나 아끼는데.”

    망설임 없이 차에 뛰어드는 놈이 오지 않을 리가 없지.

    부러진 갈비뼈가 붙기도 전에 첸을 졸라 나올 것이 뻔했다.

    “여전히 실감이 안 나요, 며칠 안 남았는데.”

    “이미 같이 있으니까. 그날 컨디션 안 좋으면 바로 말해, 참지 말고.”

    “그럴게요. 오빠 근데 그거 알아요?”

    “뭐?”

    “오빠 일하는 모습 되게 섹시한 거.”

    일자로 뻗은 눈매와 날렵한 턱선이 단연 돋보였다. 정면에서 그를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집중할 때면 찌푸려지는 미간에서조차 색기가 흐른다.

    제 곁에 있음에도 항상 가지고 싶어지는 남자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욕심.

    “이게 또 꼬시네.”

    “할까요?”

    “잘 생각해, 너 이틀 만에 제대로 일어났어. 교통사고 연락받고 오늘까지 내가 속이 썩어서 한번 시작하면 자제가 안 될 거 같아. 내 옆에 눈뜨고 있는 널 계속 확인하고 싶을 거 같거든.”

    “응, 좋아요.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돼요. 아무 생각 못 하고 잠들게 해주세요. 이대로 자면 나쁜 꿈을 꿀 거 같아요.”

    기억이 돌아온 이상 완전히 회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틈만 나면 떠오르는 사고의 기억을 억지로 밀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원초적인 감정에 매달려 잊어내고 싶었다.

    잠든 내내 악몽에 시달리면 또 설우를 잠 못 들게 만들 테니까.

    “아프게 할지도 몰라.”

    태블릿을 멀찍이 치운 설우가 티셔츠부터 벗어 던지며 연을 제 허벅지 위로 안아 올렸다.

    “괜찮아요, 나 이제 잘해요!”

    “무슨 자신감이야? 지금까지 내가 살살한 건데. 만세.”

    “만세.”

    연이 두 손을 번쩍 들자 헐렁한 잠옷이 휙 벗겨져 사라졌다.

    고요했던 방 안이 더운 숨소리로 가득 차는 건 순식간이었다.

    더 세게, 더 깊게.

    헐떡이는 숨이 귓가를 자극할 때마다 부딪히는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가 커졌다.

    부드럽게 저를 안던 이전의 설우와 상반된 몸짓이었다.

    아, 오빠가 그동안 참 많이 봐준 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더, 더, 더.

    작정하고 치닫는 설우에게 안긴 연은 멈추지 않고 밀려드는 쾌락에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다.

    “아, 아흣! 오빠, 잠깐!”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너무 이상해요. 흐응, 어떡해.”

    손과 입으로 이어진 전희로 이미 한계였던 연은 아랫배를 간질이던 쾌락에 온몸을 사로잡혔다.

    거칠게 몰아치는 움직임을 따라 오르내리던 연이 다급하게 설우를 끌어안았다. 달라붙은 가슴팍이 후끈거렸다.

    “연아.”

    “네?”

    “넌 진짜, 너무 야해.”

    제품에서 버둥거리는 그녀와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안으면 안을수록 보드라운 살결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했다.

    사고의 기억을 회피하고 있는 연을 알면서도, 끝내 고통 속에 몸부림칠 그녀를 알면서도, 이성을 놓을 수밖에 없다.

    본능만 남은 짐승이랑 다를 건 뭐냐고.

    자신을 힐난하면서도 격렬한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순진한 얼굴과 다른 예민한 몸. 열꽃이 핀 하얀 살결을 보는 검은 눈동자에 짙은 욕정이 새겨졌다.

    “오, 오빠가 더 야하거든요.”

    목소리에도 잔떨림이 묻어났다. 허리가 멋대로 들썩이자 바짝 긴장한 채 발끝을 오므린 연은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 못 하게 해달라며. 괜찮아, 자연스러운 거라고.”

    “이, 이게 어떻게 자연스러워요! 저번엔 이렇게,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 아니었어요. 나 너무, 읏! 그만해야 할 거 같아요.”

    “이상한 게 아니고 좋은 거야.”

    “으응, 오빠, 제발 그만…!”

    “참지 마. 시트는 갈면 그만이니까.”

    열락의 끝에 도달한 순간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에 잔뜩 일그러진 설우의 얼굴이 보였다.

    나도 지금 저런 표정일까.

    무섭게 좁아지는 공간을 두어 번 드나들던 설우도 고개를 떨구며 무너졌다.

    황홀한 살결을 충분히 맛본 그는 천천히 연을 놓아주었다.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연이 열을 식히는 동안 설우는 협탁 위에 놓인 은색 껍질을 주욱 찢었다.

    “그건 또 왜요!”

    “이제 한 번으로 안 돼. 약 기운 돌 때까지 나만 보게 해줄게.”

    한 번 시작하면 자제가 안 될 거란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난 오빠만큼 체력이 좋지 않다고요. 그리고 안 해도 오빠만 보는걸요.”

    “이것도 운동이야, 체력은 하면서 늘리는 거지. 걱정하지 마, 시트도 이미 엉망이잖아.”

    “노,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닌데, 사랑하는 건데.”

    능글맞게 속삭인 설우가 다시 연과 몸을 겹쳤다.

    “나도 사랑은 해요.”

    “응, 나도 사랑해. 그러니까 네가 책임져.”

    “뭘요?”

    “나. 나 이제 너 없이 못 살아, 나 버리지 말고 평생 사랑해줘야 해.”

    “그건 내가 했던 말이잖아요. 못 버려요, 난 전부 오빠 거라고요.”

    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내 것이다.

    “맞아, 넌 내 거야. 아파서 힘들 텐데 잘 버텨줘서 고마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낫게 해줄게. 조금만 더 힘내, 다 괜찮아질 거야.”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손길로 연의 이마를 쓸어주던 설우가 옅은 미소를 띤 입술을 머금었다.

    견디기 힘든 쾌락을 향해 다시 한번 달려가면서도 끊임없이 바랐다.

    가여운 내 천사가 돌아온 기억 때문에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기를.

    웃는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네가 너무 많이 울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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