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 스물다섯 살
“보고하라.”
율리어스는 나직이 보고하라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의 심장은 불안하게 요동쳤다. 이상했다. 평소와는 달리 느려터진 가이우스의 대답이, 이유 없이 제 손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발끝에서부터 느껴지는 불안한 기운이.
아니어야 했다. 일리안 하인리히는 살아 있어야만 했다.
그녀를 가지고자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일 터다. 그러나 율리어스는 단 한 번도 일리안이 먼저 바라지 않음에도 강제로 가지려 든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율리에스에게 있어서 일리안이란 너무도 소중했고, 단 하나밖에 없었으며,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보고하라, 가이우스.”
간절히 바랐던 회백색 머리칼조차 감히 만질 수 없었다.
율리어스는 적어도 이번 생에선, 그녀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조금도 돌아보지 않는 일리안을 언제나 뒤에서만 바라보았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저 사람은 가질 수 없으니까.
덜컥이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 책상 아래에 달린 서랍이 열렸다. 그러나 가이우스는 대체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그것조차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서랍 안에는 날카로운 단검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말하라.”
“……주군이시여.”
“네가 고하지 않겠다면 직접 움직이겠다.”
가이우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적어도 그녀의 죽음만은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달리 대답을 주저하는 가이우스의 모습이, 이제는 땀이 흐르다 못해 벌벌 떨리는 제 손가락이 알려주고 있었다.
“일리안 하인리히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율리어스는 그 순간 숨이 턱 막힌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제는 일리안이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막막함, 자신은 다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절망감……. 그 모든 것들이 율리어스를 짓눌렀다. 숨이 막혀왔다.
이미 꺼내두었던 서랍 속으로 손이 기어들어 갔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떨리는 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검을 꽉 붙잡았다.
이상했다. 제 손목 아래에서 온갖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울룩불룩 튀어나온 살을 찢어 파내고 싶은 충동이 뇌리를 스쳤다.
칼을 들어 푹 찔러 넣었다.
희미한 통증이 오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제 손목 아래를 기어 다니는, 보이지 않는 벌레를 잡는 게 먼저였다.
울컥대는 붉은 피가 시야를 가린 탓에 벌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손목에 쑤셔 넣은 칼로 그 내부를 몇 번이고 들쑤셨다. 참지 못할 간지러움이 그나마 가셨다.
“주군이시여!”
율리어스가 고개를 들자 가이우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 속으로 핏자국이 점점이 튄 제 흰 얼굴이 보였다.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얼굴은 자신의 전부가 죽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다른 것도 같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눈빛이 멍했다.
가이우스의 얼굴 위로 깊은 절망이 올라왔다. 그러나 율리어스는 제 손목에서 검을 빼내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핏물이 율리어스의 앞섶을 더럽혔다.
자리에서 일어선 율리어스가 피를 뚝뚝 흘리는 채로 집무실을 걸어 나갔다. 그를 가로막은 것은 가이우스였다.
“제발, 율리어스 님.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치료를 하십시오. 제발, 제발……!”
그를 붙잡다 못해 무릎을 꿇은 가이우스는 이내 카펫 위로 쿵 머리를 찧었다. 손목에 구멍이 나고, 텅 빈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주군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다. 그는 이렇게 망가져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때였다. 가이우스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율리어스가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어 옆으로 밀어냈다.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가이우스는 차라리 율리어스가 지금 제게 화를 내는 것이길 바랐다. 손길은 가차 없었지만 그만큼이나 감정도 없었다. 일리안 하인리히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걸 안 순간부터, 율리어스는 줄이 끊어진 인형 같았다.
옆으로 넘어진 가이우스를 내버려 둔 채 율리어스가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의 발걸음 뒤로 길게 이어진 핏자국들이 손목의 상처가 심상치 않음을 말했다.
몸을 추스른 가이우스가 다급하게 집무실을 뛰쳐나왔다. 그의 시야로 복도 끝에서부터 걸어오고 있는 펜서가 보였다. 마음이 조급해 격한 기침과 함께 목소리가 터져 나갔다.
“펜서 님! 율리어스 님을 막아주십시오!”
걸어오던 펜서가 놀라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의 눈에도 피가 흘러넘치는 율리어스의 손목이 보인 모양이었다. 펜서가 다가와 그 앞을 가로막았다.
펜서는 가이우스처럼 무릎을 꿇어 몸으로 앞을 막는 대신, 그의 피가 흐르는 손목 위 팔뚝을 잡아챘다. 펜서로부터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율리어스 님……. 도련님. 치료를… 치료부터 합시다. 이 늙은이가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펜서.”
나이가 제법 든 펜서였지만 아직 율리어스와 눈높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펜서는 그의 팔을 붙잡은 채 간절한 눈으로 율리어스를 바라보았지만, 율리어스는 이미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복도 저 너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율리어스의 눈동자가 펜서를 담았다.
“일리안이, 죽었나.”
펜서의 주름진 눈가로 눈물이 차올랐다. 스물다섯 해가 넘도록 모셔온 도련님이었지만, 이렇게도 절망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펜서는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어 떨리는 입매를 꾸욱 참았다.
“죽었어?”
그러나 율리어스는 그의 부답을 받아주지 않았다. 동공과 홍채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까맣게 물든 율리어스의 눈이 펜서의 대답을 재촉했다. 결국 펜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죽었군.”
그래, 죽어버렸어…….
율리어스가 펜서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잠시 죽음 같은 적막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깨진 것은, 펜서의 손을 더러운 것이라도 털어내듯 떨쳐 버린 율리어스 때문이었다.
펜서가 다시 잡을 새도 없이 율리어스가 그 공간에서 사라졌다. 그를 잡기 위해 손을 뻗던 펜서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허무와 공허였다.
가이우스가 황급히 펜서에게 달려왔다.
“쫓아가야 합니다, 펜서 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장, 지금 당장…….”
“말릴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
펜서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젖어 든 제 얼굴은 상관 않은 채 그저 말을 이어갔다.
“가이우스 님이… 그분을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원하는 사람은 하나뿐입니다.
덧붙이는 펜서의 목소리가 먹먹할 정도로 젖어 들었다. 알고 있었다. 율리어스가 바라는 이는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가이우스가 치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잖습니까, 펜서 님.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가이우스는 알지 못했다. 고작해야 15년밖에 율리어스를 모시지 않았던 그는, 율리어스가 아홉 살 처음 일리안을 만났을 때부터 함께 해왔던 펜서와는 달랐다. 가이우스는 아마도 율리어스가 일리안 없이도 살 수 있노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펜서는 알고 있었다. 제 주인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이지를 가지고 있었고, 아홉 살에 일리안을 만나 그녀밖에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죽어도 산 사람은 산다는 그 논리가, 율리어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펜서라고 해서 율리어스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모셔온 제 주인을 펜서는 진심으로 아꼈다.
그래서 가이우스를 붙잡지 않았다. 자신이 율리어스를 데려오겠다며 뛰쳐나가는 가이우스를 붙잡을 수도, 그렇다고 그런 그를 뒤따라 갈 수도 없었다. 펜서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간절히, 율리어스가 죽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 * *
가이우스는 율리어스가 일리안이 지내었던 용병단이나 그녀를 추억할 만한 장소로 갔을 줄 알았다. 그래서 몇 시간이 지나도록 일리안의 흔적이 묻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율리어스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율리어스가 향했을 법한 곳을 찾아다니다 해가 저물어갈 즈음이었다. 가이우스는 설마 싶어 일리안이 살해당했다는 곳으로 향했다.
어쩌면 가이우스는 은연중에 율리어스가 일리안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를 조금이라도 기억하기 위해 가장 흔적이 많이 남은 곳으로 향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절벽 위에선 바람이 몰아쳤다. 사람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절벽 끝까지 왔지만 그곳에도 율리어스는 없었다.
“대체 어디 계신 겁니까…….”
그 가파른 절벽을 보다, 하루 나절 동안 그를 찾아다니던 가이우스의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일리안을 따라 율리어스가 이곳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대로 펜서에게 돌아가 율리어스의 죽음마저 보고해야 할지도 몰랐다. 가이우스가 울음기 섞인 눈으로 절벽 끝에 바짝 다가갔다.
가파른 절벽 끝에 발이 닿자 돌 부스러기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가이우스는 그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에서 떨어졌다면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가이우스 또한 일리안의 시체를 찾으라는 명령을 못 내리지 않았던가. 율리어스마저 이렇게 놓아주어야 하나 싶던 가이우스의 눈물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문득 가이우스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 멀리, 강가…….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
가이우스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뒤로 돌아 뛰어갔다. 산을 내려가고, 발아래로 느껴지는 뭉툭한 돌멩이를 밟으며 가다 무릎이 꺾여 넘어질 뻔도 하였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가빠진 숨을 골랐을 때에는 겨우 위에서 보았던 강가에 도착한 뒤였다. 가이우스가 울먹이며 그 앞에 선 사람을 불렀다.
“율리어스 님……!”
율리어스가 그곳에 있었다.
옷이 모두 젖은 채로,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허리까지 차오른 강 속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손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강 속을 자꾸만 정처 없이 헤매었다.
그의 손톱은 이미 모두 벗겨져 있는 채였다. 그러나 율리어스는 그렇게 하면 일리안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 강바닥을 매만지길 반복했다.
이미 그의 눈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율리어스의 머리 위로 커다란 강물이 허공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가 제 마나를 써서 강물의 일부분을 들어 올린 것이었다. 그가, 이 의미 없는 행위를 몇 시간 동안이나 반복하고 있던 것인가.
강물에 들어가지도 않은 가이우스의 얼굴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그가 물에 젖어 든 목소리로 율리어스를 부르며 강 속으로 들어갔다.
“율리어스 님, 율리어스 님……!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가이우스가 그의 허리를 잡고 말렸지만 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밖에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자꾸만 더, 더 깊은 강 속으로 들어가 일리안을 찾으려 들었다. 그의 부르튼 입술 사이로 일리안, 하고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일리안 님이 이런 모습을 바라셨겠습니까. 일리안 님은 당신이 이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일리안, 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율리어스가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율리어스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 탓이었다. 그는 제 허리를 붙잡은 가이우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죽으러 가는 줄 알았던 가이우스는, 이내 다급히 그를 말렸다. 이미 이곳도 얕은 곳이 아니었다.
“율리어스 님……?”
공허한 눈의 율리어스가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무언가 문득 닿아왔다. 언뜻 보면 강까지 흘러들어온 해초의 일부 같기도 했다. 그것이 율리어스의 손톱이 벗겨진 손가락 마디마디를 감아왔다.
율리어스가 홀린 것처럼 그것에 다가갔다. 숫제 달려가는 것 같기도 했다.
손길이 회백색의 해초로만 보였던 그것을 따라갔다. 그러자 차갑게 식어버린, 이미 퉁퉁 부어버린 누군가의 피부가 닿아왔다.
다급해진 율리어스는 그것이 흉측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몹시도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제야 율리어스의 품에 안긴 그것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일리안이 그곳에 있었다.
이제껏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실이 끊긴 인형처럼 걸어 다니던 율리어스의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그는 오열했다. 일리안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었다. 짐승이 우는 것처럼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스물다섯 살,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