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죽음을 바칠 시간-1화 (1/123)
  • 1. 시간은 단 한 번만 흐른다.

    평소에 비해 유난히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올해로 마흔 살이 된 일리안 하인리히는 구를 만큼 구른 용병이었다. 그녀는 바로 어제, 자신이 몸담고 있던 푸른 새벽 용병단에게 은퇴를 고했다.

    “뭐? 갑자기 어째서?!”

    “별 이유가 있나. 이제 늙을 만큼 늙었잖아, 나도.”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용병단장 팔레스타인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보통의 남자 용병들도 마흔쯤 되면 은퇴를 준비한다. 용병이라는 일이 생사를 걸고 하는 만큼 나이가 들고서도 할 정도로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흔이나 나이를 먹은 여자 용병을 계속 데리고 다니는 것도 민폐라고 생각했던 일리안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마흔이면 가장 팔팔할 때인데, 무슨 소리야!”

    “뭐야, 팔레스타인. 왜 이렇게 흥분했어? 이제 못 본다니 아쉽기라도 하냐?”

    “그게 아니라……!”

    일리안은 평소처럼 농담하듯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찌푸린 인상을 풀 기색이 없어 보였다.

    팔레스타인은 하려던 말을 멈칫했다. 제 얼굴을 가린 그는 책상 앞에 선 일리안에게 됐다는 듯 손을 저으며 나갈 것을 종용했다.

    퍽 다정한 인물로 유명한 팔레스타인이 화를 내는 것은 푸른 새벽 용병단에 10년 넘게 몸담은 그녀에게도 낯선 일이었다.

    그의 반응이 걸리긴 했지만 일리안은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온 대로 빠르게 제 물건들을 정리했다. 5년 전부터는 주어진 숙소에서 용병단의 식구들과 대충 몸을 비비며 살았지만 이제는 그 숙소에서도 나와야 할 터였다.

    모두와 싱거운 작별 인사를 고하고 문을 나서는 일리안을 또다시 붙잡은 것은 용병단장, 팔레스타인이었다.

    “이, 이렇게 급하게 간다고?!”

    “망설일 게 있나? 쇠뿔도 단김에 뽑아야지.”

    일리안은 늘 짓는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 마지막으로 본 팔레스타인의 얼굴은 제법 어두웠다.

    그러나 일리안은 그런 사소한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의 제 인생을 고민했다. 이제껏 모아둔 돈은 제법 되었지만 노년을 책임지려면 무엇이든 직업은 필요할 터였다.

    술집을 해볼까, 식당을 해볼까. 카페를 하기에는 너무 늙었지.

    일리안은 평범한 미래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볼을 긁었다. 사지 멀쩡하게 용병단에서 나오는 용병은 몇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미래를 박살 낸 것은 용병단을 나온 지 몇 시간도 채 흐르지 않은 새벽이었다.

    쾅, 쾅, 쾅쾅!

    오늘 하루 머무르기로 한 여관의 나무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에 일리안은 잠에서 깨어났다. 가늘게 눈을 뜬 일리안이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

    기묘한 침묵에 가늘게 눈을 떴던 일리안의 얼굴 위로 무표정이 떠올랐다. 문 너머로 느껴지는 살기는 평생을 용병으로 지낸 그녀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나무문에 귀를 기댄 일리안은 기척을 느꼈다. 적어도 하나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쿠당탕!

    문이 부서지며 열린 것은 그때였다. 족히 열 명은 넘는 사내들이 우르르 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달빛을 받으며 살랑거리는 커튼뿐이었다. 활짝 열린 창문이 이미 그녀가 빠져나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급하게 창문에 다가간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고요하게 내려앉은 거리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달려가고 있었다. 남자는 짧게 혀를 찼다.

    “당장 쫓아가!”

    한편,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친 일리안은 혀를 빼어 물고 숨을 골랐다. 그녀의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에 방향을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양 갈래로 나누어진 길. 일리안은 어디선가 보았던 장면에 미간을 좁혔다.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열댓 명의 남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일리안은 잠시 고민하다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오른쪽은 잘 다듬어진 광장과 이어지지만 사람이 없는 이 새벽엔 그곳으로 도망쳐 봤자 얼마 안 가 잡힐 것이 뻔했다.

    차라리 산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게 나을 것 같아 택한 길이었다. 몇 개의 자갈들이 얇은 일리안의 신발 밑창 아래로 빼곡하게 느껴졌다.

    “왼쪽으로 갔어!”

    “위로 몰아붙여, 도망갈 곳 없도록!”

    사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리안은 험한 산속을 달려오느라 나온 땀을 대충 훔쳐 닦았다.

    어두운 산속인 탓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시간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샅샅이 뒤지는 저들의 모습으로 보아 해라도 뜨는 순간 들킬 것이 뻔했다.

    살아나갈 방도를 구하던 일리안은 생각에 빠져 제 발아래에 있던 나뭇가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지끈.

    고요한 산속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코앞을 지나가던 두 명의 사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일리안이 몸을 낮추고 숨어 있던 수풀 속을 향해서였다.

    거친 숨조차 멈춘 일리안은 소리만으로 그들의 기색을 살폈다. 몇 분간의 고요함이 흘렀을 때였다.

    “여기 있다! 이쪽에 있어!”

    그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일리안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은 달리기에 유용하지 못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리안은 제 뒤를 바짝 따라오는 사내들의 숨소리에 몸을 숨기지도 못하고 달려야만 했다. 쉴 새 없이 달리던 그녀의 앞에 드러난 것은,

    “쥐새끼 같은 년. 그러니까 은퇴하고도 사지가 멀쩡하지.”

    커다란 강이 흐르는 절벽이었다. 일리안은 절벽의 앞에 멈춰 서서 허리를 숙여 무릎을 짚었다.

    다 잡은 사냥감이라 생각한 사내들은 혹시라도 그녀가 마지막 반항을 할까 천천히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던 일리안이 몸을 돌린 것은 그때였다.

    “뭔데?”

    “……뭐, 뭐?”

    “왜 죽는지는 알고 뒤져야 할 것 아니야, 나도.”

    일리안은 땀에 들러붙은 제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기며 그들에게 물었다. 사내들 중 1명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네년, 두 달 전에 핀튼 마을에 들어갔었지?!”

    “아아, 기억난다. 마을끼리 합심해서 여자아이 1명 괴롭히던 곳?”

    “건방진 년! 그건 우리 마을의 전통이었어!”

    침이 튀도록 소리치는 사내를 향해 일리안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핀튼 마을은 두 달 전 그녀가 의뢰로 들어갔던 마을이었다.

    고요한 마을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도적들의 약탈에 시달리던 마을 사람들은 공양하는 제물인 양 주변 마을의 아이들을 그들에게 바쳤다.

    일리안은 잡혀간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의뢰한 일을 맡았을 뿐이었다. 대부분 청소되었지만 몇 명의 사내들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었다.

    “푸른 새벽 용병단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혼자인 놈이 뭘 할 수 있다고……!”

    혼자.

    일리안은 나직이 그 단어를 읊조렸다. 그들의 말대로 그녀는 늘 혼자였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우정을 나눈 친구도 없다. 평생을 떠돌이로 살았던 그녀는 지금도,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혼자였다.

    그 사실에 짧게 웃음을 터뜨린 일리안은 턱을 들어 그들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상대를 꿰뚫을 것 같은 힘이 담겨 있었다.

    “내 목에 얼마가 걸려 있냐. 그래도 만 골드는 걸려 있겠지?”

    일리안의 한 마디에 사내들이 다가오던 몸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이었다.

    20년을 넘게 용병으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만약 그들이 그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왔다면 지금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와야 할 이유는 없으리라.

    그러나 자신의 뒤에는 몸을 던지면 시체도 못 찾을 커다란 강이 있었다. 이대로 몸을 던져 죽는다면 그들이 자신을 죽였다는 증거가 되진 못할 터였다.

    일리안은 고개를 꺾어 목 근육을 한번 풀고는 말을 이었다.

    “뒤지면 돈 못 받는가 보다?”

    “이, 이 망할 년이……!”

    그가 말을 더듬는 것으로 일리안은 제 생각이 정확히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러자 일리안이 이가 드러나도록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좋아. 죽기 전에 엿이라도 먹일 수 있다는 건 다행이네.”

    팔을 넓게 벌린 그녀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혼자. 앞으로 남은 긴 시간을 홀로 지낼 자신이 그녀에겐 없었다. 죽을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 이유도 없었다.

    ‘아―, 율리어스.’

    빛 한 점 들지 않는 새까만 머리와 하얀 피부를 했던 아름다운 소년이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그 아이는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법 슬퍼할 텐데. 잠시나마 그런 생각이 스쳐가기도 했다.

    그렇게, 일리안 하인리히는 아가리를 벌린 검은 강 속으로 제 몸을 던졌다.

    * * *

    율리어스 알 리하르트의 기분은 늘 좋지 못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 의문을 가질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유달리 더러웠다. 아침부터 기묘한 불쾌감이 발끝부터 몸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대개 그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집무를 보던 율리어스가 손을 들어 가볍게 까닥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보고하라.”

    들어온 사내는 곧장 율리어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가이우스는 그의 충직한 부하였다. 율리어스의 하나뿐인 보좌관 가이우스를 두고 아랫사람들은 뒤에서 그를 ‘율리어스의 개’라고 속닥이기도 했다.

    율리어스의 보고하라는 말에는 무엇을 보고하라는 것인지에 대한 말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가이우스는 올해로 스물다섯 살이 된 율리어스를 10년이 넘도록 보필해 왔고,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일리안 하인리히.

    가이우스는 율리어스의 아래로 들어온 15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리안 하인리히에 대한 것을 보고해 왔다.

    율리어스는 시시때때로 일리안에 대한 것을 물어왔다.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지만 가이우스는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그것을 보고하곤 했다.

    가이우스의 보고를 듣는 동안의 율리어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미건조한 얼굴이지만 그를 오랫동안 보필한 가이우스는 알고 있었다.

    일리안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율리어스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없는 하루를 보내는 율리어스에게 세상은 회색이었다. 그러나 일리안 하인리히의 이야기만큼은 유일하게 색채를 띠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이우스는 오늘, 그의 보고하라는 명에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가이우스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명에 불복한 것이었다.

    “…….”

    “보고하라, 가이우스.”

    율리어스의 보고하라는 말에 ‘가이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것은 한 번 더 같은 이야기를 하게 만들 경우 용서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뜻을 모르지 않을 것이 분명한 가이우스는 그럼에도 말이 없었다. 율리어스는 제 발을 타고 오르는 불길한 뱀의 머리가 목 아래까지 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율리어스는 책상 위에 올린 손을 주먹 쥐었다. 땀이 흐르지 않는 신체 구조인 율리어스는 제 주먹 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손을 바라봤다.

    “말하라.”

    “……주군이시여.”

    “네가 고하지 않겠다면 직접 움직이겠다.”

    가이우스는 침통함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결국, 그의 입에서 절망이 담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일리안 하인리히 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목구멍으로 겨우 말을 밀어 넘긴 가이우스는 차마 주군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율리어스에게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가이우스는 1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주군의 허락이 없다면 고개조차 들지 않았을 가이우스였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한 실내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야만 했다.

    “주군!”

    가이우스는 급하게 일어나느라 무릎이 꺾이는 것도 잊고 멀지 않은 책상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야만 했다.

    율리어스가 제 손목에 칼을 꽂아 넣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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