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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470화 (470/488)
  • 470화

    우는 목소리마저 감미로운 곡조 같았다. 사람들은 홀린 듯 포레스트를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그를 걱정하며 달랬다.

    처음엔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며 달래던 사람들이 포레스트의 몸에 가득한 상처를 보더니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이건 단순한 폭력이라고 보기엔 살의가 가득했던 것이다. 그 순간 여론이 심각한 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아스타로 님은 너무 폭력적이세요! 저번엔 저도 그분께 뺨을 맞았다구요!”

    “아스타로 님은 무서워요. 그분이 정말 신의 대리자라고 해도…… 저는 무서워요. 그분을 감히 쳐다볼 수가 없는걸요.”

    “이 가여운 사제님을 보세요. 이분이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때리나요. 포레스트 님은 늘 저희에게 안정만 주시는데.”

    “이래서는 안 돼요. 우린 포레스트 님을 지켜야 한다고요.”

    어느새 포레스트는 제외하고 저희끼리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안엔 해독제 덕분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상당했다. 그들이 주도하여 일방적으로 아스타로를 몰아세웠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잴 것도 없었다. 그날 밤 거사가 벌어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스타로와 포레스트의 추종자들이 서로 대치하며 소리를 높였다.

    결국 아스타로가 천막을 나와 엄한 소리를 내며 경비병들을 시켜 포레스트의 추종자들 몇을 잡았지만 반발은 더 심해졌다. 그들은 폭동을 일으키며 아스타로를 죽이려 들었다.

    상황이 아스타로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스타로는 대외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내부의 일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는데, 그 빈틈을 포레스트가 공들여 파고들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민심을 파고든 포레스트는 어느새 아스타로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아스타로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젠장. 이 빌어먹을 놈이……!”

    “아스타로 님! 상황이 심각합니다. 우선 몸을 피하시는 게 좋으실 듯합니다!”

    “난 아무 데도 안 가. 내가 올리세스 님을 황제로 만들 책사인데, 대체 내가 어딜 간단 말이냐!”

    “그럼 선발대로 가셔서 올리세스 님께 이 소식을 아뢰시는 게 어떠십니까!”

    올리세스는 선두와 함께 먼저 출발했다. 병사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차라리 선발대에서 저놈들을 기다렸다가 올리세스의 정예병과 함께 전부 처리해 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결국 아스타로는 허겁지겁 막사를 뛰쳐나와 이종족의 등에 올라타고 미친 듯이 선발대를 향해 달렸다. 시끄러운 함성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막사가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젠장! 젠장! 감히 나를……! 그렇게 씩씩거리며 포레스트를 죽일 생각만 할 때였다.

    “아스타로 님! 앞에 늑대가……!”

    “늑대?”

    고개를 돌리니 눈에 익은 늑대 한 마리가 산 위에서 저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포레스트가 길들인 그 늑대였다. 젠장, 놈이 이곳까지 왔나?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사이, 잿빛 늑대가 맹렬한 속도로 산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탕! 탕! 총을 연발했지만 늑대는 날랜 다리로 총을 피하며 달려들었다.

    “죽여! 놈을 죽이라고!”

    깊은 산에 거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독기를 품은 앤디에게 총은 하찮은 도구에 불과했다. 그는 아스타로의 목을 따겠다는 일념으로 미친 듯이 뛰었고, 끝끝내 놈의 목을 물고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크윽! 사, 살려, 살려 줘……!”

    “걱정 마. 지금 당장 죽일 생각 없으니까.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마.”

    앤디는 아스타로의 상체를 이빨로 문 채, 꼬리로 그의 병사들을 후려쳐 밀쳐 냈다. 그와 동시에 산 위에서 슈프와 다른 늑대들이 뛰어와 쓰러진 병사들을 처리했다.

    앤디는 아스타로를 바닥에 내려놓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스타로는 기절하기 직전에서야 저 회색 늑대가 테르나 둔이 아닌 우논이었음을 알아챘다.

    “네, 네가 어떻게 우논일 수가…….”

    “눈 감아. 가는 길이 평탄하진 않을 테니까 차라리 기절해 있는 게 네게도 좋을 거다.”

    그러곤 주먹으로 아스타로를 기절시켰다. 일 처리를 끝낸 늑대들이 앤디를 바라보았고, 그는 아스타로를 그중 한 마리의 등에 태운 채 다시 산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포레스트다. 저 뱀이 계속해서 해독제를 나눠 주고, 그러면서도 내부의 권세를 잘 잡고 휘두른다면 저들이 제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부는 또다시 커다란 분열을 맞게 될 것이다. 부디 그 타이밍이 맞아야 할 텐데……. 어쩐지 제도에서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 게 마냥 불안했다.

    별일 없을 것이다. 괜찮을 거야. 애써 위로하며 앤디와 늑대들은 빠른 속도로 제도를 향해 달렸다.

    *

    밀로는 킨의 비늘을 뗀 이후로 그 곁에서 사흘을 꼼짝 않고 지켰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늘을 그에게 도로 붙일까 말까, 사흘 내내 고민했었다.

    ‘도로 붙이지 마.’

    ‘뭐?’

    ‘쓸데없이 인간처럼 나약하게 굴지 말고, 냉정하게 상황 판단하라고.’

    ‘…….’

    ‘네 일이나 잘해. 이건 내 일이니까 끼어들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킨은 용의 모습으로 돌아가 바닥에 누워 잠들 준비를 마쳤다. 그 본체가 커다란 성전 건물 외부를 둥글게 감싼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덜렁 남겨진 밀로는 손을 뻗은 채 감히 킨에게 닿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밀로는 폭주 직전의 용들을 가장 가까이서 봐 왔다. 그들은 여러 마리의 용이 달려들어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날뛰었고, 성격이 포악해져 대화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비교하면 킨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한 상태였다. 폭주 전조 증상 같은 건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비늘을 떼라고? 아무리 동족에게 무관심한 용이라 할지라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나중에 다 잘되면 그때 붙여.’

    ‘킨.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넌 여기 일에 관심도 없었잖아. 나처럼 나타니엘에게 호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늑대나 하이에나 같은 이종족과 교류를 해 온 것도 아니면서.’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떼. 이제 나도 입 다물 거니까 그만 물어보고.’

    그 순간 밀로는 킨이 물었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지금 전력으로 올리세스가 만들어 낸 저 괴물들을 이길 수 있냐던 질문. 해답은 저곳에 있었다. 킨의 비늘……. 저것만 떼면 그들이 온다.

    그래. 만약 잘못된다고 해도 도로 붙이면 되니까. 그렇게 합리화한 밀로는 손을 뻗어 눈을 감은 킨의 비늘 중 하나를 뚝 뗐다.

    그러곤 무섭도록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푸른빛을 내던 용이 점점 색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했다. 잠든 게 맞다는 걸 아는데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게 두려워 밀로는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사흘을 지켰다.

    그렇게 나흘째 되던 날. 용이었던 킨은 그 크기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밀로는 인간의 형체로 돌아온 킨을 성전 깊은 방에 눕히고 성전을 나왔다.

    갑갑함에 성전 밖만 서성이던 밀로는 별안간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허겁지겁 전장으로 뛰쳐나왔다. 이 익숙한 냄새. 용 특유의 무향. 어떤 향도 느껴지지 않는 그 냄새가 천공에서 쏟아지듯 퍼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동족인 밀로가 그 냄새를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마주했다.

    “꼬맹이네.”

    저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하는 이는 정말 암컷이었다. 암컷 용이 정말로 왔다고. 무작정 달려 나간 곳에서 맞닥뜨린 여자가 양팔을 앞으로 교차해 꼰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밀로를 위아래로 훑으며 뒤에 서 있던 유클리드에게 말했다.

    “이런 풋내기 말고. 그놈 사체나 가져오라니까.”

    “너희가 정말로 이곳에 왔다고?!”

    놀란 밀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조금 전에 짜증을 내던 여자와 그 옆에서 하품을 하던 여자가 동시에 밀로를 쳐다봤다. 그녀들의 뒤에 있던 유클리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사이를 파고들어 대화에 끼었다.

    “그 용은 곧 전달해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레이디.”

    “주긴 뭘 줘. 설마 쟤네가 말하는 사체라는 게 킨의 사체를 말하는 건 아니지?!”

    “밀로. 일단 진정해라.”

    그나마 말이 통하는 르네가 밀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흥분한 용이 그렇게 쉽게 진정할 리 없었다. 밀로는 저를 잡는 르네의 팔을 밀쳐 내고 암컷 용들에게 다가갔다.

    “필요할 땐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 그러면서 뭐? 뭘 달라고? 사체?”

    “얘. 흥분하지 좀 말렴. 귀청이 터지겠구나.”

    조금 전까지 하품하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가비가 밀로를 쳐다보기 위해 손수 허리를 접고 시선을 맞췄다. 용은 인간의 모습일 때 암컷이 수컷보다 키와 체격이 크기 때문에 가비가 밀로의 눈을 맞추려고 상체를 살짝 숙였던 건데, 어쩐지 위에서 아래를 압살하는 듯한 분위기가 됐다.

    그건 이곳에 모인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종족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위에 있는 그녀들이 눈을 내리깔고 주변을 스윽 훑어보니, 모두가 분위기에 압도되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비는 밀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걔가 마지막이었지? 킨 말이야.”

    “…….”

    “말 안 해 줄 거니? 우리도 바빠. 우리가 너희 수컷들처럼 할 일 없이 뒹굴거리는 줄 알아? 너희가 유기하고 간 직무 처리를 고스란히 우리가 받느라 일이 쌓였어. 알긴 아니?”

    가비는 다소 조롱하듯 한숨을 쉬며 밀로를 힐난했다. 그랬는데도 밀로가 아무 대답이 없자, 이번엔 그녀의 옆에 있던 여자가 다시 밀로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풋내기. 킨이 어디 있는지 네가 안내해.”

    “싫다면?”

    서늘한 밀로의 대답에 여자가 웃었다. 저 어린놈이 설마 여기서 저 혼자 암컷 용 두 마리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뭘 믿고 저렇게 반항하지? 저깟 육지 놈들을 믿고 까부는 건 아닐 테고. 그 생각을 하며 여자가 짧게 혀를 찰 때였다.

    “미엘. 가비. 너희의 도움이 필요해.”

    돌연 밀로가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밀로의 태도에 여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이종족들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입을 쩍 벌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안하무인인 용이 지금 무릎을 꿇었다고?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정작 밀로는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전쟁의 핵심은 저 암컷들에게 있다. 지금 상황에 누구보다 큰 전력이 되어 줄 수 있는 건 저들밖에 없다.

    “미엘. 킨은 아직 광증에 걸린 게 아냐. 너희를 불러들이려고 일부러 비늘을 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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