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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446화 (446/488)

446화

이엘의 목소리에도 이온은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다가가 손등으로 이온의 땀을 닦아 주며 호위로 붙여 두었던 기사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랬던 거지?”

“정확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도의 경계에 막 들어섰을 때부터 급격히 나빠지셨습니다.”

“그 전엔? 다른 문제는 없었나?”

“예. 잠도 잘 주무셨고 식사도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도에 들어오실 때부터 갑자기 가슴 쪽이 아프다고 하시더니, 조금 전에 이렇게 쓰러지신 겁니다.”

이엘은 아까부터 이온이 움켜쥐고 있던 그의 가슴께에 제 손을 얹었다. 다행히 평소처럼 심장은 뛰고 있었다. 몸도 뜨겁지 않았고, 겉으로는 문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온. 눈 좀 떠 봐.”

“으윽……!”

“괜찮아. 내가 아프지 않게 해 줄게. 그러려면 네 상태를 알아야 돼.”

“흐으……아윽! 시, 심장, 심장이 너무 아파…….”

“심장?”

딱 집어 심장을 가리킨 이온의 말에 이엘이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땅에서 올라와 매일같이 오드에게 검진을 받을 때마다 몸에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대체 갑자기 심장이 아픈 이유는 뭘까.

“우, 움직일 수가 어, 없었어……!”

간신히 목을 쥐어짜며 말을 이어붙인 이온의 설명에 이엘은 기사에게 물을 가져오라 명하고 다시금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또? 또 어떤 식으로 아파?”

“저, 점점 더 아, 아파……. 트, 특히 북쪽으로 향할수록 더 아파…….”

“북쪽? 북쪽에 뭐가…… 성전?”

이미 카노프 공작령을 지나쳐 제도의 경계를 넘었다. 그들은 패티스와 앤디가 이끄는 제도군과 올리세스의 사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북쪽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북쪽의 길목엔 성전이 위치하고 있다.

“설마 성전 때문에…….”

“제 생각도 같습니다!”

밖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드가 소리쳤다. 성전으로 향할수록 이온의 몸 상태가 나빠지고, 그의 곁에 오드가 접근할 수 없다? 그 얘기는 이온의 몸이 성력과 신성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건 그가 온전치 못한 방식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신의 축복을 받아 태어난 아이가, 신이 아닌 다른 이물질로부터 살아났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온을 두고 막사 밖으로 나온 이엘이 다급히 오드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가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 침묵하자, 이엘은 주변을 전부 물렸다.

“오드. 이온이 아픈 건…….”

“제 생각도 같아요, 폐하. 제도에 있는 성전은 그 어떤 영지에 있는 성전보다 성력이 강합니다. 실제로 신의 힘이 가장 막강해지는 곳입니다. 1제국 때와 달리 지금의 제국은 신성제국이니까요.”

예전엔 선황이 제도의 더러움을 바탕으로 ‘그’를 만났다면, 현재의 제국은 이엘이 즉위하자마자 오드의 성력으로 정화시켰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 깨끗한 땅이었다.

“제도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제 성력은 강해집니다. 성전뿐 아니라 제가 성력을 나눠 줬던 성전기사단들 또한 그곳에 있습니다.”

“…….”

“이온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할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이런 사지에 이온을 놔둘 순 없어.”

“그게 ‘그’가 노렸던 일입니다.”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소리네. ‘목소리’는 이온을 살려 줬지만, 완전히 살려 주지는 않았다. 조금만 틀어져도 이온은 곧장 죽는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이온을 일종의 볼모로 삼아, 제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이온을 다시 땅 아래로…… 그곳으로 어떻게 돌려보내.”

이엘은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땅 위로 올라와 행복해하던 제 쌍둥이를 또 어떻게 땅 아래로 밀어 넣는단 말인가. 물론 이온은 그녀가 땅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그대로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엘은 이온을 다시 땅 아래로 돌려보내는 일만큼은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줘, 오드.”

“우선 당분간은 다른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다른 곳? 어디?”

“제 영지로 데려가겠습니다.”

“이카르?”

이온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그녀를 뒤따라왔던 이카르가 오드와 이엘의 대화를 끊고 끼어들었다.

“황자를 제 영지로 데려가겠습니다, 폐하.”

“하지만…….”

“제 영지는 외부의 침입이 어렵습니다. 성전 역시 영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고요.”

“…….”

“저희가 황자를 지키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재규어의 영지라면 안심이다. 재규어의 개체수가 적기는 해도 전쟁에 있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재규어 한 마리가 가진 전력이 얼마나 큰지 모두가 경험했기에. 지금 상황에 재규어만큼 훌륭한 보호막도 없을 테지만…….

“이카르 백. 혹시라도 아르세니온에게서 어머니를……,”

“아닙니다, 폐하.”

“…….”

“황자는 황자이고, 리카르디스는 리카르디스라는 걸 잘 압니다. 그러니 염려 마십시오.”

이엘은 예전에 이카르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제게서 자꾸만 어머니를 찾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걱정했지만, 지금의 이카르는 그때의 이카르가 아니다. 그는 더 단단해졌고 더 성장했다. 무엇보다.

“나의 폐하. 폐하를 두고 황자를 따르는 반역은 없을 테니, 염려 마십시오.”

“농담은. 하나도 재미없구나, 백작.”

“재규어 식 농담이 안 맞으시는군요, 폐하.”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이카르가 웃었다. 결국 이엘은 이카르와 재규어에게 이온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막사 안에서 이온을 품에 안고 나오는 이카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제 옆에서 불안한 듯 손을 맞잡는 리노를 바라보았다.

“리노. 너도 이카르를 따라가겠나?”

“예? 아…… 예! 가, 가겠습니다.”

“이카르 백. 한 명 더 부탁해.”

“갑자기 아이들을 맡은 학교가 된 기분인데요.”

“리노와 이온은 아이가 아닌걸.”

“뭐 저희 눈으로 보기엔 그렇다는 거죠.”

이카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곤 리노를 향해 눈짓했다. 이엘은 이카르에게 안겨 있는 이온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짧게 입술을 묻었다가 뗐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이온, 조금만 참아. 너를 구해 줄게.”

“……이엘.”

“응. 이온, 말해.”

“난…… 이 정도면 충분해.”

“…….”

“더 이상 나 때문에 널 희생하지 마. 넌…… 내 동생이야, 엘.”

저가 내 오빠라고 하면 내 부담이 조금이라도 덜어질까. 아니, 이온. 네가 내 오빠가 아니라 내가 네 누나야. 내가 널 지켜 줘야 하는 누이였어. 그러니까 이젠 내게 맡겨, 이온.

“네 아픈 심장도 곧 깨끗이 나을 테니.”

“…….”

“출발해라, 이카르 백. 곧 연락하겠다.”

“알겠습니다.”

재회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또 헤어지게 됐다. 이엘은 이카르와 재규어들이 사라진 곳을 그렇게 한참 응시한 채 서 있었다.

*

제도로 입성하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일부만 오갈 때완 달리, 현재 이엘의 기사단과 동맹군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애초에 적들의 눈에 안 띄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인원을 나눠서 가기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늑대와 2기사단이 주축이 되어 출발한 선발대의 뒤를 이엘과 나머지 동맹군도 바짝 따라붙었다. 하늘에선 독수리와 매가 괴성을 지르며 맞붙었고, 땅에선 늑대와 하이에나들이 올리세스의 편에 선 이종족들과 능력을 사용하며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심부에서 지휘하고 있던 이엘은 하트의 등에 올라탄 채 총을 연발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꾸에엑!!”

“으아악!”

이종족과 인간의 비명 소리가 뒤섞여 끔찍한 소음을 만들었다. 전력으로 보면 이엘의 동맹군이 월등하게 우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쪽은 개량된 포필렌의 효과 때문인지 동맹군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상태였다.

탕! 뒤에서 습격하려던 이종족의 공격을 허리를 숙여 가볍게 피한 이엘은 총으로 그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생각보다 포필렌의 효과가 어마어마한 듯합니다.”

하트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건지,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며 이엘에게 말했다. 이엘은 그 말에 대답해 줄 여력도 없는지 손등으로 땀을 훔쳐 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확실히 전보다 체력이 떨어졌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게 장점이었는데, 그마저도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폐하.”

“괜찮다. 앞으로 전진해. 선두는 내가 이끌겠다.”

“폐하!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일라이저가 재빨리 달려와 그 앞에 대기 중이던 늑대의 등 위에 올라탔다. 일라이저의 도움으로 중심부를 빠져나와 선두까지 도착한 이엘은, 앞에서 지휘 중이던 노아를 향해 손짓했다.

그와 동시에 늑대들이 일제히 얼음으로 땅바닥을 얼려 버렸고, 빙판 위를 내달리던 이종족들이 하나둘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저쪽에 있던 곰이 땅을 우저적 가르는 바람에 얼음이 깨지고 말았다. 그 갈라진 땅을 타고 표범이 보낸 전기가 흘러와 얼음이 녹아 생긴 물에 닿은 자들을 감전시켰다.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바닥에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보며 하트는 조금 전보다 더 빨리 달려 돌파구를 만들었다.

“러셀 후작! 늑대들을 붙여 줄 테니 폐하를 모시고 황궁까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리게! 여긴 나와 르네가 맡겠다!”

사활을 걸어야 할 때가 왔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노아가 그렇게 외치곤 제 쪽으로 날아오는 독수리 르네의 발을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곤 하늘 위에서 검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얼음 조각들을 내리꽂아 공격을 퍼부었다. 바닥에 꽂힌 조각들이 벽처럼 두껍게 세워지자 이엘을 태운 하트와 늑대들이 그곳을 뛰어넘어 건너갔다.

“어서 출발하십시오!”

노아의 외침과 함께 하트는 전속력으로 황궁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뒤따르는 늑대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따라붙는 추격대를 공격하며 엄호했다.

이엘은 끈으로 하트와 자신의 몸을 묶어 고정시킨 뒤, 몸을 뒤로 돌려 적들을 향해 화살을 쐈다. 모두 명중하지는 않았지만 아예 쏘는 것 자체를 못 하던 예전보다는 훨씬 잘했다. 그 모습에 옆에서 내달리던 알폰스가 대단하다며 그녀를 추켜세웠다.

“대단하십니다, 폐하! 실력이 어마어마하신데요?!”

“민망하구나, 알폰스 경.”

“농담이 아니고 진짭니다. 르네 공작이 궁수대 대장 자리를 내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이 그렇게 농담할 때마다 앤디 경이 생각나.”

“왜 제게 욕하십니까…….”

이런 상황에도 제 기분을 띄워 주겠다며 어울리지 않는 농담이나 하고 있는 알폰스 덕에 긴장이 풀렸다. 이엘은 활을 도로 어깨에 메며 멀어져 가는 전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안 되겠어. 포필렌 해독제를 서둘러 상용화시켜야겠어.

“폐하!”

그때 반대편에서의 접전을 마치고 이쪽을 돕기 위해 달려오던 앤디가 이엘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렇게 달리셔도 괜찮으십니까?! 하트 경! 너무 난폭하게 달리는 거 아닙니까? 지금 폐하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해야 합니다. 잘 아는 사람이 이러면 어떡합니까?”

“앤디 경. 그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마.”

이엘의 말에도 앤디는 흥분해서 하트를 다그쳤다. 반면 하트는 이엘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 아주 조심히, 그러나 추격을 따돌릴 만큼 빠른 속도로 잘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앤디의 말을 아예 귓등으로도 듣고 있질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폰스가 이엘에게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보십시오. 앤디 경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잖습니까.”

“뭡니까, 알폰스 경. 갑자기 왜 나더러 심각하다고 합니까?”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귀도 밝다. 하트를 향해 연신 대거리를 하고 있던 앤디는 제 이름이 들리자마자 눈을 세모꼴로 뜨고 알폰스와 이엘을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그 모습에 이엘은 짧게 웃고는 앤디를 알폰스에게 떠넘기고 다시 황궁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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