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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410화 (410/488)

410화

다소 급한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올리세스의 병사들이 약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그새 떠돌이 이종족까지 제법 모은 건지, 무리에 섞이지 않고 살아가는 이종족 개체도 보였다. 그 수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올리세스와 그의 아비 윌터 백작은 보이질 않는다. 놈들은 이곳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이곳이 아니라 제도인 게 틀림없었다.

‘이곳은 저희 늑대들에게 맡기시고 폐하께선 우선 몸을 피하십시오.’

알폰스는 이엘에게 총을 건네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옆으로 비틀며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적을 향해 재빨리 총을 쐈다. 그 신호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총 소리가 폭발처럼 연이어 터졌다. 혼란한 틈을 타 이엘을 태운 하트와 피시를 태운 노아만이 그 장소를 빠져나와 도망쳤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커다란 동굴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췄다. 갈수록 피시의 상태가 악화되는 듯해서 상처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잠깐 쉬어 갈 곳으로 그 동굴을 찾았던 건데…….

사고는 거기서 터졌다. 근처에 숨어 있던 올리세스의 병사들이 퍼붓는 공격을 막아 내며 상대하다가 피시의 능력이 폭주하고 만 것이다.

피시는 이엘과 노아, 하트가 도망칠 수 있도록 막혀 있던 동굴의 안쪽을 능력으로 들어내려 하다가 폭발하는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했다. 굉음과 함께 동굴은 무너졌고, 잔해 속에 피시는 갇혔다.

‘폐하, 죄송해요.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 목소리에 안 된다며 소리를 질렀지만 일은 이미 벌어지고 난 뒤였다. 피시는 제 희생을 감행했다. 이대로면 아군이 오기도 전에 올리세스의 사병이 더 먼저 들이닥칠 것이라 판단했기에, 퇴로를 뚫기 위해선 폭주를 해서라도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던 듯했다.

어쩌면 피시는 이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어가 안 되는 능력은 늘 폭발을 불러일으켰으니까. 능력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폭주는 예고된 일이었다.

“반드시 찾아 줄게. 기다려, 피시…….”

무슨 일이 있어도 널 포기하지 않아. 어떻게든 널 찾아낼 거야. 그냥 두고 가지 않을게, 피시.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조금만…….

“폐하! 잠깐 나와 보셔야 할 듯합니다.”

그때 막사 밖에서 누군가 그녀를 깨웠다. 이엘은 손에 쥐고 있던 체스 말을 내려놓곤 눈가를 손등으로 꾹꾹 누르며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지?”

“혹시 이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트가 내민 것을 가만히 쳐다보던 이엘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저가 받았다. 손 위에 올려놓은 펜던트를 열어 그 안에 그려진 그림을 확인했다.

“여기서 피시의 냄새가 났습니다.”

“…….”

“근데 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라, 혹시나 폐하께서 아시는 것인지 해서 가져왔습니다.”

수색을 떠났던 늑대들 중 한 마리가 익숙한 냄새를 맡고 잔해를 파헤쳤지만 그곳에 피시는 없었다. 대신 이 펜던트가 덜렁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펜던트를 주워 와 피시의 형인 하트에게 내밀었지만 하트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피시의 것이 맞아.”

“…….”

“내게 보여 준 적이 있어. 친구가…… 시모네가 준 거라고 했어.”

시모네의 이름에 하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피시의 물건임을 확인했으니 그곳에 피시가 파묻혔던 것 또한 확실해졌다. 하트가 다시 근위대와 기사단을 추려 수색대를 보내려 했지만 창공을 날던 독수리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땅으로 활강해 앉았다. 그는 르네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합류한 엔리케였다.

“없습니다.”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저희 눈으로 찾아봤지만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

“하지만 사체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신체의 일부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가 샅샅이 뒤졌는걸요.”

알폰스가 강력하게 그곳의 상황을 설명했다. 늑대들이 냄새를 맡으며 산 전체를 수색했지만 피시의 머리카락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상공에선 독수리가 능력으로 땅 아래까지 투시해 봤지만, 역시나 피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대체 어디에……,”

“올리세스가 데려갔을 수도 있어.”

이엘의 말에 모두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이건 이엘이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가정이었다.

“대체 올리세스가 왜……!”

“이유를 대라면 수없이 많지. 놈이 피시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저택에 불을 질러 크리스와 인질을 빼돌린 것에 대한 복수심까지. 올리세스가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치 못하다는 걸 생각하면 댈 수 있는 이유는 수없이 많아.”

노아 역시 이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다른 건 몰라도 화재 사건이 올리세스의 급한 성미를 자극한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무작정 달려들 리 없다. 사실상 이번 전쟁은 올리세스 쪽이 엄청난 손해를 봤을 터였다.

“정말 올리세스가 피시를 데려갔다면, 아니. 피시가 살아 있기만 한다면, 그거면 돼. 그거면 된다. 피시를 되찾아 오면 되니까.”

“하지만 어디로 데려갔을지 현재로선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전시 상황이라 예전처럼 올리세스의 영지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알폰스의 말에 이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에 빠졌다. 아마 영지 경계를 더욱더 강화했겠지. 당장 눈앞에 있던 리노 윌터의 구출도 더딘 상태였다. 이카르와 연합했던 유클리드가 리노가 감금된 마을에 들어가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리노에게 접근하는 게 어려운 건지 탈출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피시까지 납치가 됐다면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전쟁이 코앞이었다. 리노 때처럼 피시를 찾기 위해 병력을 나눌 순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이엘은 긴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피시가 어디 있는지만 안다면……. 하다못해 리노가 피시를 인질 교환을 목적으로 외부에 보여 주기만 한다면, 피시의 생사 여부라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 절박함에 목이 졸리던 차였다.

― 폐하.

머릿속을 울리며 이엘을 부른 건 다름 아닌 스완이었다. 어쩌면 이 혼란한 틈을 타 올리세스가 공격할 곳이 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엘은 헤르몬 산을 내려오면서 바로 스완에게 연락했었다. 제도를 수호하고 전쟁을 준비하라며. 그리고 함께 전했던 피시의 소식에 스완은 울부짖으며 괴로워했다.

그랬던 스완에게서 돌아온 이틀 만의 연락인 터라 이엘도 긴장한 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 피시에게 보호석이 있대요. 패티스 님이, 예전에 피시가 세잔티노로 갈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줬다고 했어요.

보호석? 패티스가 이종족인 피시에게 보호석을 줬다면, 그 이유는 능력의 사용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석 고유의 결계식으로 소유자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당시 세잔티노로 피시를 홀로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던 패티스는 혹여 피시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그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보호석을 함께 보냈던 게 틀림없다.

― 아직 피시를 찾지 못하셨죠? 그 애가 살았는지, 혹은 실종됐는지…… 아직 모르는 거죠?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엘은 자신이 없는 시간 동안 피시와 스완이 쌓아 올린 우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피시의 사고 소식을 전할 때 스완이 보였던 격렬한 반응에 이엘은 제 가슴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프기만 했다.

그랬던 스완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저렇게 이성적으로 묻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지 이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 꼭 찾아 주세요, 폐하. 그 애는 보호석을 갖고 있을 거예요. 보호석엔 고유의 결계식이 있잖아요. 그걸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잖아요. 부디…… 부디 제 친구를 찾아 주세요. 폐하, 제발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백조의 간절한 부탁에 이엘은 반드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더는 실망을 안겨 줄 수 없었고,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피시가 보호석을 갖고 있대.”

“예?”

“예전에 패티스 백이 그에게 보호석을 준 모양이야. 이런 일을 염두에 두고.”

갑작스런 이엘의 말에 하트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패티스가…… 피시에게 보호석을 줬다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늘 형제에게 무관심하고, 특히 피시를 한심하게 생각하던 패티스가 그렇게 섬세한 방식으로 챙겼을 줄 몰랐던 것이다.

“결계식을 보내 주었으니, 오드 님. 부탁합니다. 피시의 위치를 찾아 주세요.”

이엘의 부탁에 오드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와 함께 막사로 들어갔다. 막사 밖에서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며 웅성거리던 무리는,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휘장이 걷히며 밖으로 나오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폐하. 위치를 알아내셨습니까? 피시 남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그래.”

“그럼 당장 저희가……!”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서둘러 무리를 나눠 피시를 구출하는 팀을 꾸리려던 알폰스를 이엘이 말렸다.

“네? 어째서……,”

“유클리드와 이카르에게 맡긴다.”

“무슨…… 설마 거기에 있는 겁니까?!”

“그래. 리노가 있는 그 마을로 향하고 있다.”

이제야 피시의 기이한 행동이 이해됐다. 동굴의 퇴로를 뚫기 위해서라기엔, 피시의 폭주는 너무 과장됐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수적으로 열세에 있긴 했지만 그 자리엔 근위대장인 하트와 기사단장인 노아가 있었다.

당시 공격을 퍼붓던 올리세스의 병사들에겐 보호석도 없었기에 지지부진한 상태이긴 했어도 결국엔 이쪽이 이길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런데도 피시는 끝내 제 능력의 한계를 풀고 폭주해 동굴을 무너뜨렸다.

그건 결국 피시가 일부러 잡혀갔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폐하, 죄송해요.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의 마지막 말은 결국 이걸 뜻했구나. 리노를 직접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 마을에 들어가 뭔가 알아내기 위해. 피시는 일부러 잡혀갔던 것이다.

“엔리케 경. 지금 당장 내가 알려 주는 곳으로 가, 이카르 백작을 만나도록 해라. 그에게 전시 상황이 되었음을 알리고, 피시가 곧 그 마을에 도착할 거라고 알려. 리노를 탈출시킬 때 피시도 함께 탈출시키도록.”

“예, 폐하. 아, 그리고 조금 전에 보호석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폐하께서 올리세스의 영지에 머무르고 계실 때, 피시 남작님이 저희에게 파견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래, 그건 알고 있다.”

피시는 올리세스의 영지에 남아, 펜던트 속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좀 더 수색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미리 독수리 쪽에 연락을 취해 도움을 요청했고 르네는 엔리케를 보냈다. 이엘과 무리가 올리세스의 영지를 떠난 뒤엔 피시와 엔리케가 함께 그곳을 뒤졌을 터였다.

“그곳에서 남작님이 봐 달라고 하셨던 장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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