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408화 (408/488)
  • 408화

    “안 돼!!”

    별안간 스완의 침실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경비를 서고 있던 하이에나들이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혹시라도 침입자가 들어왔을까 침실 안을 샅샅이 뒤지려고 했으나, 스완이 손을 뻗어 그들을 말렸다.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패, 패티스 님을……!”

    “악몽을 꿨나?”

    “패티스 님을 마, 만나야겠어요.”

    스완의 온몸이 땀에 절어 축축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침대를 짚고 바닥에 발을 내렸으나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이에나 우논이 재빨리 다가가 그를 부축하며 안색을 살폈다.

    “무슨 일이지? 급한 일이 아니면 내일 아침에 뵙도록 해라. 백작님께서 침실로 들어가신 지 얼마 안 됐어.”

    “그, 급한 일이에요. 백작님께 가야 합니다.”

    “고작 악몽 때문에 백작님을 뵙겠다고……,”

    “피시와 관련된 일이라고요!”

    “…….”

    “제발 부탁이에요. 패티스 님을 뵙게 해 주세요.”

    피시의 이름이 언급되자 하이에나들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우논 중 한 명이 침실을 수색하고 있던 하이에나 테르 한 마리를 불러들였다. 그러곤 그의 등에 스완을 태우더니 패티스의 침실로 데려다주라는 말을 전했다.

    하이에나의 등에 탄 채 황궁 복도를 달리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건 꿈이 아니었다. 마치 그 현장에 자신이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기만 했다.

    “패티스 님! 스완이에요! 패티스 님!”

    패티스의 침실 앞에서 요란하게 문을 두드렸다. 스완이 금방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갈 기세여서 그를 데려다줬던 하이에나는 뒤에서 스완을 말려야 할지 말지 고민에 빠졌다. 패티스는 늘 새벽까지 업무를 보다가 동이 틀 즈음 잠깐 눈을 붙이는 게 고작이라 지금 깨우면 또 하루 종일 피곤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스완. 우선 진정하고 네 침실로 돌아가서……,”

    “뭐야. 무슨 일이야.”

    그러나 그가 말리기도 전에 침실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흐트러짐 하나 없는 패티스가 스완과 하이에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잠을 깨워서인지 아니면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것에 대해 화가 나서인지, 패티스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넌 시간 개념도 없나? 이 시간에 그렇게 문을 두드리면……,”

    “피시요!”

    “피시?”

    “피시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라니, 무슨…….”

    그 순간 스완이 제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스완?”

    “잠깐만요! 폐, 폐하께서……!”

    “폐하께서 왜!”

    “무, 문제가 생겼다고…….”

    이엘이 스완에게 뭔가 신호를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패티스는 제 심장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두 사람의 이름이 하필이면 안 좋게 거론되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스완을 데려왔던 하이에나에게 눈짓으로 돌아가 보라고 하곤 주저앉은 스완을 일으켜 세워 제 침실로 들였다.

    스완은 소파에 앉은 뒤에도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이엘과 신호를 주고받는 건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방해하지 말고 조용한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패티스는 초조한 기색을 숨기며 찻잔을 가져와 스완의 앞에 내주었다.

    고니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할 때마다 패티스 역시 괴롭기만 했다. 피시와 폐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거지? 그것도 둘이 동시에? 피시는 제 영지에 있을 테고 폐하는 지금쯤 올리세스의 영지에서 나와 남부 쪽으로 가셨을 텐데, 대체 왜……. 패티스는 주먹을 쥔 제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곤 긴 한숨으로 감정을 억눌렀다.

    그 후로도 스완은 꽤 긴 시간 동안 이엘과의 대화에 온 신경을 쏟았다. 패티스는 언제까지고 묵묵히 기다려 줄 생각이었으나, 돌연 스완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걸 보고 나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스완. 무슨 일이야.”

    “자, 잠깐만요……. 폐하가 하시는 말만 듣고…….”

    “스완.”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답지 않게 초조함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패티스가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스완은 이엘과의 대화가 끝난 건지 소파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이 엉망이다. 고니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얼룩져 엉망진창이었다. 보다 못한 패티스가 일어나 서랍에서 손수건을 꺼내 와 스완에게 내밀었다.

    “닦아.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해도 되니까 우선 진정해.”

    “…….”

    “괜찮아. 진정해.”

    스완은 물기 묻은 눈동자로 패티스를 쳐다봤다. 어떻게 말해야 하지……. 당신한테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용기가 없었다. 당신의 소중한 형제가 죽었다고, 내가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두려움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스완.”

    “…….”

    “괜찮으니까 말해도 된다.”

    예감한 걸까? 스완은 자신을 바라보는 패티스의 눈동자에 담담함이 서린 것을 확인하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받았다. 그 손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닦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전히 용기는 나지 않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피시가 전사했습니다.”

    “…….”

    “헤르, 헤르몬 산에서…….”

    “…….”

    “시체는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급습으로 인해 폐하께선 도피하셨고 피시는……,”

    피시는……. 스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제 손바닥 안에 얼굴을 숨겼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걘 그냥 뭍으로 올라와 알게 된 다른 종족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마음이 괴로운 거야…….

    왜. 왜 나는 또 이렇게 누군가를 잃어야 하는 거야, 왜.

    “폐하께서는.”

    “…….”

    “안전하신 것이냐.”

    패티스는 침착하게 이엘의 안부부터 물었다. 스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울음을 억눌러 삼켰다. 패티스 앞에선 그만 울어야 한다. 지금 누구보다 혼란스럽고 괴로울 사람은 패티스일 테니까. 저 사람의 감정은 남겨 둬야 했다.

    하지만 패티스는 스완의 예상을 깼다.

    “그럼 됐어.”

    “……됐다고요?”

    “폐하께서 안전하시면 됐다고.”

    “그게 끝이에요? 피시가 죽었다고요. 근데…… 끝이라고요?”

    “전사는 명예로운 거야. 철없는 소리 하지 마.”

    “하아. 당신 형이잖아!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당신의 형……크윽!”

    “입.”

    “…….”

    “소리 지를 만한 시간이 아니라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패티스가 스완의 목을 거세게 누르며 더는 입을 벌리지 못하게 했다. 그 짧은 순간, 스완은 패티스의 눈에 서린 슬픔과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끝없는 슬픔이 저 하이에나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미약하게 남은 희망 또한.

    “시체를 찾지 못했다면.”

    “…….”

    “죽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 그렇게 속단을……,”

    “그러는 넌. 어떻게 속단할 수 있지? 피시가 죽었다고 단언할 수 있나?”

    패티스의 호통에 스완은 열었던 입을 닫았다. 그러곤 조금씩 저가 보았던 환상 같은 예지들을 머릿속에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피시가 능력을 사용하다가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장면을 보았다. 폭발하듯 무너지고 쌓이는 잔해 속에서 피시는 탈출하지 못하고 깔려 죽고 말았다. 머리가 깨져 피가 흥건한 현장을 보았지만 그땐 그게 예지인지 꿈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았던 거다.

    ‘네가 자꾸 마음이 쓰이고 너를 자꾸 조급하게 만들고. 유난히 네 신경을 거슬리는 것들이 근 시일 내로 일어날 거야. 사실 처음엔 잘 몰라. 그게 정말 예지인지, 아니면 상상인지. 혹은 꿈인지.’

    아버지 빈센트가 제게 했던 충고를 떠올렸다.

    ‘처음엔 그냥 겪어 봐. 그래야 느낌을 알아.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처음이…… 왜 하필 피시인 건데요. 왜 하필 피시의 죽음인 건데요. 왜 이게…… 시행착오의 시작이 되어야 하는 건데요.

    다른 게 먼저였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피시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억지라는 걸 안다. 예지는 미리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미래가 아니니까.

    “스완.”

    “……네.”

    “넌 조금 전에 폐하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기 전에 날 찾아왔어. 그러곤 날 보자마자 피시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알렸지.”

    “…….”

    “폐하께서 알려 주기도 전에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말해.”

    스완은 고니의 호수에서 제도로 돌아온 뒤로 줄곧 침실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로 감정이 복잡한 듯해서 패티스는 굳이 캐묻거나 스완을 불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칩거 생활을 하던 고니가 며칠 만에 침실 밖을 나오자마자 저를 찾아와 한다는 소리가 대뜸 피시에게 문제가 생겼다라니. 그리고 뒤를 이어 전해진 피시의 전사 소식까지. 의심이 들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다.

    “스완.”

    “예지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뭐? 예지?”

    “네. 아버지의 성력이 거의 대부분 제게 넘어왔거든요.”

    스완이 아무 이유 없이 침실에 틀어박혀 지냈던 건 아니다. 호수를 떠나 이곳으로 오면서부터 제게 넘어오는 성력의 양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그 속도를 버거워했는데 빈센트에게 남은 시간이 한 달밖에 없으니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질 수밖에. 그 탓에 스완은 침실에 누워 며칠을 끙끙 앓았던 것이다.

    “언제부터? 왜 말하지 않았지? 그러면 너는 피시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건가? 왜 말하지 않았어. 왜 그 일을 막지 않……!”

    패티스가 이렇게까지 격앙된 언성으로 따질 줄 몰랐던 스완은 너무 놀라 입술만 달싹였는데, 그의 표정을 보고 패티스도 흥분한 제 자신을 알아차렸다.

    머리가 식으니 이성이 돌아온다. 성력과 관련한 이야기는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스완이 말해 줬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스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그러실 만했으니까요.”

    “그래서. 네 예지에서 피시가 정말 죽었나?”

    “처음엔 그랬어요. 처음 봤던 예지에선 분명히 피시가 잔해에 깔려 머리가 터져 죽었으니까요.”

    이렇게까지 잔혹한 설명은 덧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패티스가 상세히 보고하는 걸 원하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예지에선 피시가 폭주하다가 폭발하는 모습까지만 봤어요. 잔해 속에 깔렸는데…… 죽는 모습까진 보지 못했습니다.”

    예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고 수많은 장면이 보였기 때문에 그중에 진짜 예지가 무엇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 마구 뒤엉켜 보인 것이다. 괴롭지만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한번 겪어 봐야 어떤 게 진짜 예지인지 알게 된다는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스완은 이제 알 것 같았다.

    “폐하께선 뭐라고 하셨지?”

    “폐하께선 피시를 포기하지 않으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

    “백작님. 제가 예지를 갖게 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아까 백작님이 하신 말씀이 옳아요. 무엇도 속단할 수 없습니다. 피시가 정말 죽었는지 아니면 살아 있는지, 제 미숙한 예지 능력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네가 아까 피시의 전사를 내게 전했다는 건, 폐하께서도 공식적으론 피시의 전사를 공표하기를 원하시는 걸로 받아들여지는데.”

    “네. 현재 헤르몬 산은 올리세스의 병사들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피시의 흔적을 수색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대외적으로 피시는 전사한 상태인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이엘이 그렇게 정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패티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고 제 입으로 말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죽었으면 어떡하지? 정말로 피시 네가 죽어 버렸으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러기에 내가 얌전히 영지나 지키라고 했는데. 왜 영지를 나와서 폐하가 계시는 헤르몬 산까지 갔던 걸까? 왜 늘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멍청한 형님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건지 모르겠다. 패티스는 두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폐하께서 또 말씀하신 게 있나?”

    “전쟁을.”

    “…….”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

    “제도가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이곳을 단단히 수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전쟁. 주어가 생략되어 있었지만 패티스와 스완은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 정말 최종장에 들어섰네.”

    “그 전에 패티스 님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데?”

    “제 계약이요. 폐하와 제 영혼을 묶었던 계약의 기한이 곧 끝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