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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353화 (353/488)

353화

묵직한 이카르의 질문에 노아는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아니. 지켜야지.”

“…….”

“폐하께서 자기 목숨보다 사랑한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그를 죽여.”

내가 어떻게 두 번이나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겠어. 선황의 아들은 이미 10여 년 전에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지금 살아 있는 아르세니온은 선황의 아들이 아니라 나타니엘의 형제일 뿐. 그녀의 가족이니, 곧 제 가족이기도 하다.

“오드 님께 아르세니온의 존재를 물어보려 했던 건 그를 지킬 방도를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이엘의 곁을 채워 주었지만, 그녀의 가슴 한구석은 여전히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자신이 절대 메울 수 없는 부분이다. 그곳은 오직 그녀의 피붙이로만 채워지는 곳이니까.

아르세니온. 그리고 테오도로.

“이카르. 이제 나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맞서 싸울 셈이다.”

“……‘그’와?”

“그래.”

“…….”

“무섭지 않아. 두렵지도 않고.”

내 아이. 그녀의 아이이자 자신의 아이. 테오도로를 지키기 위해, 노아는 무엇이든 할 작정이었다.

*

“서, 성공했습니까?! 제가 지금 성공했어요?!”

뒤로 나동그라졌던 스완이 왁왁 소리를 질러 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모양인지 제 손바닥과 주변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뜬 채 입을 쩍 벌렸다.

“내가…… 방어를 했어…….”

스완의 주변은 엉망진창이었다. 땅에서 솟아오른 뾰족한 얼음 기둥이 스완을 에워싸고 있었고, 허공에서 떨어진 커다란 바위로 인해 바닥은 움푹 패여 있었다. 사방에서 쏟아진 온갖 공격으로부터, 오직 스완이 있는 곳만 온전했다.

“이제야 밥값 좀 하겠네.”

앤디의 중얼거림을 들은 패티스가 아주 잠깐 웃었다. 앤디의 말처럼 조금 전 보여 준 스완의 성력이 꽤 쓸 만했던 것이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드레인이라는 여자가 상당히 높은 강도로 스완을 굴린 모양이었다. 성전기사단장인 사피라마저 일취월장한 스완의 실력에 매번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패티스는 그간 스완의 얼뜬 구석만 봐 왔기 때문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다 내가 성전기사단장 자리에 오르는 거 아니야?”

“헛소리는 여전하군.”

그러나 곧 헛된 망상을 하며 실실 웃는 백조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나저나 앤디 경. 리노를 탈출시킬 수 있겠나?”

“스완을 이용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완은 대외적으로 알려져선 안 돼. 능력을 사용하다가 누군가 스완의 정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곤란하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강구 중이긴 합니다.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요.”

노아의 귀환 이후 대충 전후 사정을 듣게 된 이엘이 스완을 통해 제도에도 소식을 전해 왔다. 윌터 백작가가 소유한 영지들 중 한 곳에 리노 윌터가 갇혀 있으며, 그 마을은 가짜 사제가 장악한 상태라 쉽게 손쓸 수 없을 거라고.

“게다가 그 마을 사람들은 세뇌를 당한 게 아니기 때문에, 스완이 환각 능력으로 건드린다고 해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미 한 번 노아 님을 놓친 전적이 있기 때문에 경계는 더 삼엄해졌겠지.”

“예.”

“누군가 인질이 되어 그곳에 잡혀 들어가지 않는 이상 어렵겠군.”

그렇다면 우선은 유통되는 포필렌을 계속 추적해 볼까. 아마 지금쯤 노아의 명령을 받고 알폰스가 늑대의 영지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곧 있으면 올리세스의 상단이 그곳을 방문하겠지. 그곳을 시작으로 올리세스는 이종족과도 포필렌 거래를 할 심산인 듯했다.

물론 올리세스의 생각처럼 유통이 쉽게 이루어지고 있진 않다. 내부에선 노아가 마을을 탈출하기 직전까지 손을 써 두어 막아 놨고, 외부에선 소식을 접한 동맹 종족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수적으로 올리세스는 완벽한 열세에 있다.

그렇다고 안심하면 이르지……. 패티스는 여차하면 포필렌을 하이에나의 영지에도 받아들여 올리세스의 뒤를 쫓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리노 윌터를 빼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쨌든 아직 급한 일은 아니니 상황은 두고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보다 저는 로빈과 나눴던 얘기가 신경 쓰입니다.”

앤디의 말에 패티스가 열었던 입을 닫았다. 그 역시 로빈이 신경 쓰였다.

며칠 전에 있던 귀족회의엔 당연히 로빈도 참석했다. 올리세스를 만나러 떠났던 노아가 행방불명됐다고 생각할 테니 그의 소식이 궁금해서라도 참석했을 것이다. 물론 노아의 귀환은 그 이후였기 때문에 여기서 얻어 간 소득은 없었을 테지만.

어쨌든 귀족회의에 참석했던 로빈은 앤디와 패티스에게 렉토스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며.

물론 패티스는 거절했다. 렉토스를 이미 처리했다는 거짓말로 로빈의 접근을 막은 것이다. 당연히 로빈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내뱉으며 렉토스와의 만남을 재차 요구해 왔다. 그러다 포기한 건지 마음을 바꾸고 뱀의 영지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냥 만나게 해 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어요.”

“아니. 렉토스는 우리가 포르 자작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혹여 로빈과 만나서 포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곤란해.”

“그럼 차라리 렉토스 놈을 죽이시죠? 후환이 없도록.”

“황명이 내려오지 않았으니 그건 안 돼.”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고문하는 건 되지만 죽이는 건 안 된다니……. 저것만큼 무서운 말도 없을 것이다. 앤디는 속으로 혀를 차며 지하 감옥에서 매일같이 앓는 소리를 내는 렉토스를 향해 아주 작은 동정심을 가졌다.

“그것보다 우린 여기서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야 해. 리노 윌터를 데려올 수 없다면 그에 관한 다른 정보라도 알아내야 한다.”

“어떤…….”

“리노 윌터는 선황이 직접 처단을 명했던 자야. 그것도 역모죄에 준하는 중범죄자다.”

“하지만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 않습니까?”

“맞아. 게다가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역모죄에 준하는 중죄를 저질렀지만 그 가문은 멀쩡했다는 게 여간 수상한 게 아니야. 그 정도 죄라면 삼대를 멸족하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선황은.”

패티스의 말에 앤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치광이 선황이 그런 심각한 죄를 저지른 리노의 가문을 멀쩡히 살려 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선황은 황위에 집착이 심한 편이었으니 반역에 가까운 죄라면 뿌리까지 뽑았을 터였다.

그러나 윌터 가문이 비록 공작에서 백작으로 강등되기는 했어도 2차 전쟁이 터지기 직전까지 모든 귀족들의 존경을 받는 유서 깊은 가문이란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 얘기는 리노의 죽음에도 가문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소리가 된다.

“아마 리노의 아비인 윌터 백작조차 제 아들이 어떤 이유로 죽어야만 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럼 역시 죽어야 했던 이유가, 선황이 ‘그’를 만나려 한다는 걸 리노가 알아챘기 때문이겠군요.”

“그런 것 같아.”

리노는 선황이 ‘그’를 만나려 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선황은 리노가 함부로 입을 열기 전에 그를 죽일 생각으로 심한 고문을 퍼부었고, 그로 인해 소년은 미쳐 버리고 만 듯했다.

물론 진실을 알지 못하는 리노의 아비는 제 아들을 살리기 위해 황제에게 엎드렸을 것이다. 선황으로서도 윌터 가문과 완전한 대척점에 서는 건 불이익이 많으니 순순히 리노를 백작에게 돌려보냈을 테고.

“리노가 미쳤기 때문에 살려 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선황의 예상과 달리 리노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군요.”

“게다가 그의 스승이 정말 포르 자작의 숙부라면, 리노가 온전한 정신만 되찾으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설령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 우리에겐 스완이 있으니까.”

패티스의 시선이 스완에게 닿았다. 그는 여전히 한쪽에서 저가 사용한 성력의 흔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광분한 듯 날뛰고 있었다.

“호르난 경. 긴장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자리, 조만간 내가 차지할 것 같으니까.”

성전기사단장인 사피라는 스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백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앤디와 패티스도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 버렸다.

“뭐…… 쟤도 아주 가끔은 쓸모 있으니까요.”

“앤디 경. 그렇게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마음인지 나도 잘 아니까.”

“네? 아니…… 뭐…….”

앤디는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쨌든 저 백조의 환각 능력만 사용하면 리노의 과거를 헤집어 작은 실마리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로선 리노를 빼돌리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듯했다.

그 일로 고심하는 패티스의 눈치를 한참 살피던 앤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패티스 님. 이건 그냥 제 사견입니다만, 인간들과도 교류하시는 건 어떠실지요.”

“뭐? 지금 나더러 인간들과 손을 잡으라는 말인가? 경은 그들을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패티스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신경질적으로 돌아섰다.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앤디는 또다시 속으로 혀를 차곤 애써 웃으며 다시 넌지시 운을 뗐다.

“조르단 공작은 제법 괜찮지 않습니까?”

“…….”

“군사나 행정 쪽으로도 부족함이 없잖아요. 게다가 예외적으로 폐하의 황위를 강력히 지지했던 구귀족이기도 합니다.”

조르단 공작은 구귀족 세력 중에서 드물게 청렴하고 반듯한 인간이었다. 그러면서도 1제국 때부터 능력은 문무에 가리지 않고 출중하여, 언뜻 독수리를 떠올리게 하는 고고함이 있는 자였다.

“백작님도 이번 일들을 겪으시면서 아시겠지만, 이제 더 이상 저희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포섭해야 할 인간은 조르단 공작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지민뿐만 아니라 제도 내에 있는 제도민들에게도 인망이 두터우니까요.”

“이미 그쪽에 사람을 보냈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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