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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338화 (338/488)
  • 338화

    *

    “정신을 집중해.”

    “하고 있어!”

    “자세가 흐트러졌잖아. 너처럼 어설픈 놈은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맞는 말이라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네.”

    스완이 구시렁거리며 흔들렸던 자세를 고쳤다. 드레인은 이런 부분에서 엄격하기 때문에 가르쳐 준 자세에서 조금만 흐트러져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쓴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엄격한 가르침에 스완의 이마에선 어느새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너 제대로 훈련하고 있는 건 맞아? 뭐가 이렇게 엉성하고 어설퍼? 며칠이 지나도 변한 게 없잖아.”

    “억울하네. 사피라 경에게 호되게 훈련받고 있거든?!”

    “그게 벌써 두 달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도 진척이 없는 건데.”

    “이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출력이 점점 더 세지고 있다고!”

    스완이 억울하다는 듯이 반박하는 순간,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간 성력이 엄청난 폭발로 이어지고 말았다.

    “악!”

    저가 해 놓고 저가 놀란 스완은 몸을 한껏 움츠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줄곧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드레인이 빠르게 손을 써, 스완의 폭발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러곤 짜증이 난 얼굴로 스완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나 죽이고 싶어?!”

    “참 나. 이 정도 폭발로 안 죽잖아!”

    “난 죽어!”

    “어?”

    “여긴 내 능력 꿈 안이야. 이 능력이 깨지면 넌 다시 네 세계로 돌아가지만, 난 여기서 잘못되면 곧장 죽는다고.”

    드레인이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소리를 지르며 핏대를 세우던 스완이 머쓱해진 건지 제 콧등을 긁적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미안……. 몰랐어. 조심할게.”

    “…….”

    “미안하다니까? 근데 정말 조절이 안 돼서 그래. 지금도 내가 원해서 터진 폭발이 아니었다고.”

    이것만큼은 억울하다는 듯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열심히 항변하는 스완을 쳐다봤다. 사실 그 부분은 드레인도 동의하는 바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완의 성력이 놀랄 만큼 커지고 있었으니까. 그 얘기는 저 백조의 성장이 기대가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스완이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스완이 훈련을 게을리 하거나 습득력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드레인도 인정하긴 싫지만, 저 백조는 습득하는 속도가 빠른 건 물론이고 제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비상했다.

    그러나 스완이 말했듯 그가 사용하는 성력의 출력이 수용 가능한 한계선을 웃돌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오늘은 저번에 만났을 때의 몇 배나 되는 출력이 나오는 바람에, 솔직히 드레인도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하마터면 자신도 조절하지 못할 뻔했다.

    “이상해. 아버지를 만나고 설명을 들은 뒤로 성력이 내게로 흡수되는 속도가 빨라졌어.”

    “너. 네 아버지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니?”

    “언제냐니. 몇 달 됐지. 그때 잠깐 본 게 전부였어. 일이 많아서 그쪽엔 다녀올 엄두도 못 내는걸.”

    “마지막으로 봤을 때 네 아버지는 괜찮았고?”

    “괜찮냐니? 뭔 소릴 하는 거야?”

    “그냥 전체적으로. 컨디션이나 뭐 그런 거.”

    “그냥 똑같았어. 늘 똑같지, 뭐.”

    심드렁하게 대꾸한 스완은 혼자 훈련을 해 보겠다며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드레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혼자 아등바등 성력을 쓰고 있는 스완을 쳐다봤다.

    “그냥 쟤가 뛰어난 건가.”

    성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차이가 있다. 같은 성력이라고 해도 그 성력을 담고 있는 개체가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양과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완은 예상외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었다.

    솔직히 드레인은 스완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겉보기에도 연약해 보이는 데다가, 성정도 유약한 듯해서. 그냥 제 몫이나 하면 다행이란 생각으로 훈련을 이끌었던 건데……. 생각보다 수확이 좋았다.

    저렇게 스완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건, 나중에 성력을 완전히 통제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스완에게 성력이 흡수되는 속도가 문제였다. 처음 나자르와 계약을 했던 백조의 직계들은 갖고 있던 성력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식을 하나씩만 낳았다. 그게 그들이 원해서였는지, 아니면 그것마저 나자르의 보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조금의 누출도 생기지 않도록 이어 왔다.

    그리고 성력을 제 자식에게 전부 전해 주고 나면, 자신의 쓸모를 다한 듯 아비는 죽게 된다.

    “속도를 보면, 저놈 아비란 자가 걱정이란 말이지.”

    드레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무것도 모른 채 엉성한 훈련만 하는 스완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스완 스스로가 인식할 정도로 그에게 흡수되는 성력의 속도가 빠르다는 건, 놈의 아비인 빈센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일 텐데.

    “혹시 페널티 때문인가?”

    빈센트는 제 친구였던 시모네를 살리기 위해, 말해서는 안 되는 미래를 말했다. 물론 말한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테지만 어쨌든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신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혹시 그것 때문에 스완에게 넘겨주는 성력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진 건가?

    “이것 봐! 성공했어!!”

    저를 향해 소리를 내지르는 스완을 향해, 드레인은 영혼 없는 칭찬의 박수를 쳐 주었다. 그녀의 성의 없는 반응을 알아챈 스완은 발소리를 쿵쿵 내며 가까이 다가왔다.

    “진심을 좀 담아 봐!”

    “진심이었어.”

    “너…… 폐하한테도 이렇게 영혼 없이 대해?”

    “그럴 리가.”

    “…….”

    “난 그분을 좋아하는데?”

    “허, 참 나. 그럼 난?”

    “글쎄, 너는 좀…….”

    좀 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소리를 왁 내지르는 백조의 반응에, 드레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다는 듯 제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그러곤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넌 좀 어딘가 어설프잖아.”

    “내가? 내가 어디가 어설픈데? 와, 나 살면서 어설프다는 말 처음 들어 봐.”

    “네가 정말 오냐오냐 자란 모양이구나. 아무도 네게 말해 주지 않은 걸 보면.”

    ……역시 용은 나랑 안 맞아. 스완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한참 씩씩거리다가 자리에 벌러덩 드러눕더니 포기를 선언했다.

    “몰라, 나 이제 더는 안 할래. 돌려보내 줘.”

    “너 생각보다 뻔뻔하구나? 지금 네가 돌아갈 처지나 된다고 생각하니?”

    “응. 피곤하니까 돌아갈래.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만 할 거야.”

    쯧쯧. 그릇이 크면 뭘 해. 마음의 그릇은 저렇게 좁기만 한데. 드레인은 혀를 차며 스완을 돌려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는 저런 어린애를 일일이 다독거리며 챙겨 줄 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돌아가렴. 다음에 만날 땐 부디 성장해 있기를 바라.”

    “두고 봐. 내가 다음에 만날 땐 자유자재로 성력을……! 어? 자, 잠깐만!”

    “뭐야.”

    “할 말이 있었는데 깜빡했어.”

    바닥에 기절한 듯 누워 있던 스완이 뭔가 생각난 건지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이걸 까먹었지? 폐하한테 혼날 뻔했네.

    “뭔데 그래? 귀찮으니까 빨리 말하고 돌아가.”

    “폐하께서 물어보라고 하셨어.”

    “너 요샌 무조건 폐하 핑계를 대더라?”

    “아니야! 이번엔 진짜라고!”

    걸핏하면 이엘 이름을 대며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스완을 노려보듯 쳐다봤다. 저 고니는 요새 훈련의 강도를 조금만 더 높이려고 하면 기가 막히게 황제 핑계를 대며 도망치기 바빴다.

    자신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좀처럼 믿어 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스완은 억울한 듯 항변하듯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폐하의 어머니에 관한 꿈도 네가 꾸게 한 거냐고 물어보셨단 말이야!”

    “폐하의 어머니?”

    스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설명을 붙였다. 이엘이 종종 꾸는 꿈이 하나 있는데, 그 꿈속에서 그녀는 아비인 선황에게 목이 졸려 죽곤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 꿈의 주체가 사실은 그녀의 어머니가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은 드레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폐하를 만나는 게 어려운 상태라 꿈으로 여러 번 접선을 시도한 건 사실이지만, 모든 꿈을 내가 꾸게 한 건 아니야.”

    “그럼 저건 네 능력이 아니란 소리지?”

    “그래. 내가 보여 준 능력은 아니야.”

    “알겠어. 그렇게 전해 드릴게.”

    “폐하의 어머니는 갑자기 왜?”

    “나도 모르겠어. 네게 물어보라고만 말씀하셔서.”

    그 순간 드레인은 스완에게 무슨 말을 해 주려고 하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걸 놓치지 않은 스완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뭐야? 나한테 할 말 있지? 너 뭐 알고 있지?!”

    “넌 참.”

    “빨리 말해.”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다고.”

    “눈치가 빠른 건 쓸데없는 게 아니라 아주 유용한 거야.”

    “말도 참 잘하고.”

    “칭찬하는 척 넘어가지 말고, 빨리 말해.”

    이 백조는 참 특이하다. 어설퍼 보이다가도 철저해지기도 하고. 예민한 것 같아 보이다가도 넉살 좋게 사람을 대하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특이한 놈이란 말이야……. 드레인은 그렇게 생각을 덧대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폐하께서 선황후 폐하에 관해 알아보고 계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지금 꾸고 계신 꿈은 내가 그분께 보여 드린 꿈이 아니야.”

    “그럼?”

    “글쎄. 그거야 모르지.”

    “뭐야. 그럼 엉터리 꿈인가? 근데 몇 년째 반복해서 꾸신다고 했는데.”

    “그럼…… 폐하의 기억일 수도?”

    용에게 꿈은 능력이지만 인간에게 꿈은 또 다른 의식의 세계, 그러니까 기억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이 있잖아? 꿈은 다 거짓이라고.”

    “…….”

    “꿈이란 공간은 우리 용들에게 있어선, ‘능력’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되지만 인간은 사정이 달라. 인간들이 만드는 꿈의 공간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들만의 오롯한 공간이야.”

    “이를 테면 소망의 세계라든지?”

    “맞아. 소망의 세계, 기억의 세계, 걱정의 세계, 등등. 뭐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꾸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용이 능력으로 만들어 낸 꿈은 기억할 수밖에 없고, 그 용이 계속해서 꿈으로 침투한다면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용의 능력이 아닌데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다면? 그건 무의식이 너무나도 열망해서 만들어 낸 이상향이거나,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과거의 기억이겠지.

    “폐하께서 선황후 폐하를 너무도 그리워하셔서 그런 꿈을 꾸고 계신 걸 수도 있고, 혹은 그 꿈이 폐하가 잊어버린 과거의 편린일 수도 있고.”

    “…….”

    “무작정 선황후 폐하의 꿈이라고 단정 짓기엔 이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얼굴도 못 보신 것 같은데 확단하기엔 일러.”

    “알겠어. 그럼 그렇게 폐하께 전해 드릴게.”

    “나중에 네가 폐하에게 능력을 쓰는 날이 오면, 그때 내가 직접 폐하를 만나 볼게. 이렇게 전달하는 것보다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나을 듯하니.”

    드레인의 말에 스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엘도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이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완을 찾지 않는 건, 아직까지는 드레인을 만나는 게 급한 일은 아니라는 의미일 터였다. 게다가 그녀 쪽 상황도 만만치 않게 꼬인 듯했고.

    “성전기사단장에게 잘 훈련받아. 전에 봤을 때보단 오늘이 좀 더 쓸모 있어 보이네. 그가 잘 가르치나 봐?”

    “쓰, 쓸모? 사람한테 쓸모라니!”

    “그것만큼 정확한 단어도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뭐 틀린 말 했니? 그런 표정을 짓는 드레인에게, 스완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대신 혼자 구시렁거리며 한참 불만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네 아버지도 좀 보고 와.”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왜? 너 우리 아버지랑 아는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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