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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315화 (315/488)

315화

“암컷 용에 관한 소문은 이종족 사이에서도 유명하지. 분명 존재하는 것 같기는 한데, 볼 수가 없으니까.”

“밀로 때문에 눈치채셨군요?”

“그래, 맞아. 그리고 앤디 경에게 들었어. 네가, 용은 암컷과 수컷의 능력이 다르다고 했다던데.”

“맞아요. 저도 아버지에게 들었어요. 그땐 뭍으로 나간 적이 없는 아버지가 어떻게 그런 내용까지 다 알고 있나 했었는데……. 하나하나 밝혀지고 나니 충격의 연속이네요. 아무튼 용의 암컷이 어떤 능력인지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었는데요, 그 여자를 만나서 알게 된 거예요.”

“꿈.”

짤막한 패티스의 말에 스완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가 널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고?”

“네. 제가 성력을 잘 사용하는지 보러 오겠다고.”

“알겠어. 수고했다. 뒤의 일은 조금 더 고민해 보고,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으면 널 찾을게. 가서 쉬어.”

“네.”

“그리고 내일부터 당장 성전기사단장을 찾아가도록 해라.”

패티스의 묵직한 말에 스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호르난 경에게는 내가 따로 말해 두도록 하지. 그에게 제대로 배우도록 해.”

“패티스 님까지 잔소리를 하십니까?”

“네 성력이 폐하께 도움이 될 테니까. 목숨 걸고 훈련해. 오드 님처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아.”

“애초에 오드 님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요! 성전기사단처럼 빌려 쓰는 정도에 불과할 텐데요, 뭘.”

“말대꾸하지 말고 오늘은 가서 쉬어. 내일부터 만만치 않은 일정이 될 거야.”

평소랑 똑같이 딱딱한 대답인데 왜 저렇게 얄미운 건지 모르겠다. 스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패티스를 째려보다시피 쳐다보고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그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패티스는 스완의 괴성에 얼얼했던 제 귀를 손바닥으로 한 번 꾹 눌렀다가 떼고는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역시 백조는 질색이라니까. 상성이 전혀 맞질 않아. 스완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진이 다 빠졌다.

“용의 암컷이라…….”

용은 강하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그 하나하나의 개체가 갖고 있는 능력치가 보통의 이종족보다 월등히 강하다.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살고 있는지 알려진 게 없는 미지의 종족. 솔직히 말하면 패티스는 그들이 이 세상의 일에 관심을 거둬 주기를 바라고 있다.

“밀로라는 놈이 암컷의 존재를 폐하께 숨긴 것만 봐도, 그쪽 종족이 얼마나 위험한지 방증하는 셈이야.”

패티스는 밀로와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 용이 이엘을 얼마나 아꼈는지는 주변에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이엘이 유일하게 생존한 인간 여자이기 때문에 겪었던, 그리고 겪어야 할 어려움을 놈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엘을 자신의 종족들이 있는 곳으로 피신시키지 않았다는 건, 그들이 있는 세계 역시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게다가 급하게 제 종족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고 했지……. 무슨 일일까? 용이 제멋대로라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급하게 떠날 만한 이유가 있었나? 그것도 폐하 외에는 그 이유를 모른다고 했으니.

패티스는 갈수록 깊어지는 고민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똑똑. 잠깐 눈이라도 붙이려고 했던 패티스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조금이라도 쉴 틈이 없군. 그는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남겼다.

“백작님. 포르 자작령에 다녀왔습니다.”

“보고해.”

“예.”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 하이에나 한 마리가 약식으로 인사를 하곤, 두 팔을 등 뒤에 대며 보고를 올렸다.

“이름은 코르넬 포르. 과거 1제국 땐 평민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그의 친척 중 한 명이 황실 연구원 소속이었고, 인간들 사이에서도 꽤나 똑똑했다고 합니다. 차기 연구원장 자리에도 여러 번 거론되었다고 하더군요.”

“코르넬과 폐하의 관계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과거 폐하께서 러셀 후작의 마을에서 머물 때, 폐하와 뜻을 함께하던 자들 중 하나가 코르넬 포르 자작입니다. 2기사단장인 일라이저 러셀 후작, 3기사단장인 라니에로 페루츠 후작, 그리고 코르넬 포르 자작. 이렇게 세 명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온 절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작위를 거절했다던데?”

“맞습니다. 폐하께서 처음엔 백작 위와 재상을 겸하여 제안하셨으나 그가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자작 위도 거절했지만 신귀족과 구귀족의 균형을 위해 받아들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좋아. 코르넬 포르 얘기는 그쯤 하고. 황실 연구원이었다던 그의 친척에 관해서는 알아낸 게 더 있나?”

중요한 건 코르넬 포르가 아니다. 렉토스가 말했던 포르는 코르넬 포르가 아니라 그의 친척일 테니까.

“이름은 테런스 포르. 어린 나이에 황실 연구원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굉장히 똑똑했다고 했습니다. 특이점은 황실 연구원치고는 이종족에게 큰 반감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헛소리. 반감이 없는데 황실 연구원에 들어갔다고?”

황실과 그 연구원은 이종족의 완전한 적대점이다. 그곳이 모든 전쟁의 근간인데. 말도 안 되는 보고에 패티스는 코웃음을 쳤다.

“정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차기 연구원장이 되지 못한 이유가 이종족에 대한 우호적 태도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는데, 백작님 말씀대로 그가 정말 이종족에 우호적이었다면 황실 연구원이 되었을 리 없죠.”

“…….”

“아, 그리고 이건 좀 다른 내용인데요. 별로 시답잖은 내용이라서 보고를 드려도 될지…….”

“말해. 작은 것도 놓쳐선 안 되니까.”

“테런스 포르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2차 전쟁 때 실종됐습니다.”

왜 시답잖은 내용이라고 말한 건지 알 것 같았다. 당시 공포로 물든 제도는 아수라장이었고, 인간 여자들은 닥치는 대로 자신들을 죽이러 온 뱀과 일부 이종족을 피해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제 몸에 심어진 인식표를 모두 제거하고 달아나다, 그 인식표에서 퍼진 독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

“인식표 때문에 죽었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황실 연구원은 전원 사살하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연구원의 식솔들은 전부 찾아내서 죽였는데요. 테런스 포르의 두 딸은 인식표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라졌대요.”

“불에 탄 것도 아니고?”

“예. 뭐, 자살했을 수도 있고. 바다에 빠져 죽었을 수도 있죠. 어쨌든 시신은 못 찾았다고 합니다.”

“알겠어. 계속해서 조사해. 포르 일가에 관해 내가 모르는 게 있어서는 안 되니까.”

“예.”

우논이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패티스는 다시 소파에 몸을 깊게 파묻으며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제도에 발이 묶여 직접 알아볼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답답한 일일 줄이야. 몇 년을 황궁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일만 하던 이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지금은 좀 쉬셨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나의 폐하께선 절대로 그러실 리 없지. 안 봐도 선하게 보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패티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루빨리 다시 뵙고 싶다. 제도는 돌고 돌아 마지막에 귀환하시는 종착점이 될 텐데, 그날이 오기까지 아직 한참이 남은 탓에 불현듯 답답해졌다.

차라리 제도를 피시에게 맡기고 하이에나의 영지엔 내가 가 있을까? 그러면 폐하를 더 빨리 뵐 수 있을 텐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패티스는 저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가정이었던 건지 피식 웃고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피시에게 제도를 맡겼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차라리 하이에나의 영지를 맡기는 게 낫지.”

자신이 피시를 믿게 된 건 사실이지만, 피시의 능력과 상황까지 모두 받아들인 건 아니다. 아직 피시는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니까. 그 아이는 그냥 하이에나 영지를 지키는 것이면 충분하다. 혹 그곳을 벗어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땐 나도, 하트도 제대로 살지 못할 테니.”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러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펜을 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

“뭐? 누가 왔다고?”

“늑대의 공작이 찾아왔습니다.”

“냄새를 맡았나?”

올리세스 윌터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널브러져 있던 소파에서 일어났다. 늑대는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올리세스는 헝클어진 제 머리카락을 손으로 가볍게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그간 황실의 동맹인 종족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이종족들과 한 번씩은 만났지만 늑대는 만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지금 황제와 멀어졌다고는 해도 한때는 그녀를 전적으로 지지했던 이종족이 늑대였으니까. 그러니 그에게 있어 늑대란, 누구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종족인 셈이었다.

게다가 늑대는 현재 인간과 이종족들 모두의 신뢰를 받고 있는 유일한 종족이기도 했으니까. 이런 혼란한 시대에 양측의 신뢰를 받는 존재가 있다는 건 올리세스에게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자신이 황위에 오르기 위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놈들로 인식한 지 오래였고.

“뭐, 내 편이 되어 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늑대가 아주 근사하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바겠지. 대외적인 과시용으로 보여 주기에도 그럴싸할 뿐만 아니라, 그 정도 미모를 가진 남자라면 올리세스가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가질 만했다. 아주 흡족할 정도지. 확실히 이종족의 미모가 뛰어나긴 해. 올리세스는 휘파람을 불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 그는 노아의 방문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다른 영지로 출타 중이니, 가문의 모든 통솔권은 제게 맡겨져 있다. 여기서 늑대 놈과 협상만 잘하면 생각지 못한 이익을 남길 수도 있겠어. 올리세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비열하게 웃었다.

저택 밖으로 마중을 나간 올리세스는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노아를 지켜봤다. 온통 새카만 남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맣지 않은 구석이 없는 남자. 그러면서 신념은 올곧고 우직해서 어두운 검은색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

한마디로 자신과는 극과 극이란 소리였다. 올리세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욕을 뇌까렸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이종족 특유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오금이 저렸던 것이다.

종족의 수장으로 불리는 우논들을 한두 번 만난 게 아닌 자신조차도 공포감에 사로잡혀 턱이 달달 떨렸다. 확실히 저놈은 다른 놈들과는 뭔가 달라…….

“사전에 연락을 주지도 않고 무례하게 찾아왔는데도 방문을 허락해 주니 고맙소, 남작.”

“이렇게 사적인 자리에서 뵙게 되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각하.”

노아가 건넨 손을 덥석 잡으며 그의 의중을 살피려 애썼다. 분명 황제와 함께 시찰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그녀를 따라 독수리의 영지로 가지 않고, 돌연 제 영지에 찾아왔을까.

직전에 있던 곳이 뱀의 영지였는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필 로빈의 영지엔 세작을 심어 두지 못한 터라 소식을 알 도리가 없어 답답했다.

“내가 찾아온 이유가 궁금한 듯한데.”

“물론입니다. 각하께선 제 가문 따위에 큰 관심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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