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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298화 (298/488)
  • 298화

    조이나는 모두가 동경하는 대상이었고, 모두가 선택받길 바라는 암컷이었다. 종족을 이끌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는 그녀는 가장 완벽한 수컷을 짝으로 맞아야 했다. 하지만 가장 완벽한 그녀의 곁을 차지한 건, 가장 흠이 많고 모자란 수컷 시모네였다.

    모든 하이에나들이 그를 비웃었고 욕했고 무시했다. 아무리 약한 수컷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해도, 시모네는 그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모두들 그가 며칠 안으로 그녀에게서 버려질 거라고 손가락질했지만 피시만은 달랐다. 그가 느끼기에 시모네는 조이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강해. 시모네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어.”

    “그래. 왠지 너랑 비슷한 느낌이네.”

    “지금 뭐라고 그랬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스완의 혼잣말을 듣지 못한 피시가 재차 물었지만, 스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입을 꾹 닫았다. 그사이 두 사람을 태운 로날드가 호수에 도착했다. 오드가 데려다준 곳이 호숫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금세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늑대의 등에서 내린 스완이 성큼성큼 걸어가, 호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내가 오는 걸 몰랐나? 왜 아빠가 안 보이지.”

    저번처럼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스완이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가 호수에 발을 집어넣더니, 순식간에 백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너희는 여기 있어. 난 무리가 있는 곳에 다녀올게.”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피시가 두 손을 꼭 쥐며 스완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스완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안 돼. 이건 종족의 미래와 안전이 달린 문제라, 설령 폐하께서 부탁하셨어도 난 거절했을 거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알겠어. 고집부리지 않을게. 다만…… 혹시 네 아버지가 나를 만나는 게 싫어서 이곳에 나오지 않는 거라면.”

    피시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주저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저쪽에서 시모네의 이야기를 꺼려할 수도 있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께 전해 줄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 그게……. 아니야. 딱히 할 말은 없었던 것 같아.”

    “아까 백작님한텐 용건 있어서 같이 갈 거라고 하지 않았어?”

    “응. 그냥 제도에만 있으려니 갑갑해서 거짓말 쳤어. 얼른 다녀와, 기다릴게.”

    “뭐…… 알았어, 그럼. 금방 올게.”

    커다란 백조로 돌아간 상태인 스완이 날개를 펼쳤다가 접고는 안쪽 깊숙한 곳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스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피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 말 있으셨던 거 아니에요? 왜 전해 달라고 안 했어요?”

    저 멀리 뚱하게 서 있던 로날드가 다가와 물었다. 피시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성체가 된 늑대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이 늑대를 아주 예전에 봤던 것 같다. 새하얀 눈밭에서 이엘을 처음 보던 날, 그녀의 곁을 지키던 새끼 테르들 중 하나인 게 틀림없다.

    피시는 어느덧 번듯한 성체가 된 로날드를 한참 바라보다가, 무릎을 끌어 모아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렸다.

    “물어보기가 겁나서.”

    “네?”

    “시모네가 하이에나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거든.”

    “…….”

    “시몬은 늘 무리에서 겉돌았어. 물론 나도 비슷한 처지였지만, 그래도 난 직계였으니까 시몬보다는 나은 형편이었지.”

    직계였던 자신에게도 힐난과 따가운 눈초리가 쏟아졌는데, 하물며 별것 아니었던 시모네에겐 어떠했겠는가.

    하이에나라는 종족은 스스로를 향한 자부심이 대단한 종족이기 때문에 종족에 누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나 유약한 수컷은 종족의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생각했으므로 혐오 이상의 감정을 그에게 쏟아부었다.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선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을지도.

    “그래도 난…… 내 종족이 좋거든. 근데 시몬이, 자신이 하이에나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면 어떡하나…….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어.”

    “…….”

    “내게도 시몬은 소중한 친구였거든.”

    “…….”

    “아, 오랜 시간 그를 잊고 산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피시가 실소하듯 웃으며 마지막을 말을 내뱉고는 무릎에 얼굴을 완전히 파묻었다. 소중한 동족 중 유일하게 제 친구가 되어 준 사람이었다. 시몬은 제게 있어 조이나만큼이나 애틋한 존재였다.

    “그게 뭐 어때요.”

    “응?”

    “하이에나면 어떻고, 백조면 어때요.”

    “…….”

    “저도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폐하가 늑대였다면 좋았을 텐데. 폐하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좋을 텐데.”

    “…….”

    “근데 그게 뭐 어떤가요. 폐하께서 인간이고 제가 늑대인 게, 뭐 어때요. 인간이고 늑대이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지면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어느새 바로 옆까지 다가온 로날드가 피시의 옆에 앉았다. 그러곤 앞발을 모아 그곳에 얼굴을 올린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설령 시모네라는 그 하이에나가, 자기가 하이에나로 태어난 것에 후회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뭐가 있어요.”

    “…….”

    “그 사람이 당신한테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면 죽는 순간까지 당신을 믿었다는 거잖아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로날드의 말에 피시는 뭔가에 맞은 것처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자신을 끌어내 주는 말이었다.

    “완전히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예전에 저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세요? 폐하의 곁엔 저와 같은 새끼 테르들 외에도 새끼 우논이 한 마리 있었던 것.”

    “응. 그때 내 공격으로 목이 졸렸던 것 같은데.”

    새끼 우논 늑대에게 능력을 사용해 목을 조를 때, 성전에서 뛰쳐나온 이엘이 저를 향해 총을 쐈다. 피시에게도 그때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아마 그 우논의 이름이 주드였을 것이다. 그녀가 떠나보냈다던…….

    “저희는 테르고, 주드 님은 우논이었거든요. 어릴 땐 같이 자랐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점점 성장하면서 그분과 제 차이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질투가 났죠. 왜 나는 우논이 아닐까, 왜 나는 주드 님과 같지 않지?”

    “…….”

    “내가 우논이었다면 당당하게 주드 님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

    “근데 주드 님이 죽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친구로 대했다는 것을요.”

    결국 종족이니, 계급이니 하는 것들은 그냥 태어날 때 주어진 이름표와 같다는 의미였다. 피시는 어설프게나마 로날드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종족에 구애받지 않고, 계급에 얽매이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건 나를 지칭하는 특징일 뿐, 내 한계를 정해 놓는 틀은 아니잖아요.”

    “응.”

    “폐하께선 저희에게 그런 걸 바라시는 거고요.”

    그의 말을 들으며 피시가 작게 웃었다. 나 역시 많이 성장했다고 느꼈는데, 그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테르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럼 너도 나랑 친구가 될래?”

    “네?”

    “왜? 싫어? 종족과 계급에 관계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며.”

    “그, 그렇긴 한데…….”

    “싫어?”

    “아뇨, 싫은 건 아니에요…….”

    로날드가 머쓱해진 건지 저도 모르게 콧김을 세게 내뿜었다. 솔직히 자신과 피시의 첫 만남이 좋지 않았던 건 자명한 사실 아닌가. 피시가 왕자였던 시절에 저 무지막지한 능력에 주드는 목숨을 잃을 뻔했고, 자신들은 형편없이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껄끄러워? 내가 너흴 공격했던 것 때문에? 그렇다면 미안해. 그땐 내가 잘못했어.”

    “아니, 뭐…….”

    “너도 알겠지만 폐하를 알기 전의 나는 미치광이였거든. 영지에 갇혀서 꼼짝도 못 한 채 매일 울기 바쁜 어린애였어.”

    “…….”

    “그래서 난 친구가 없어. 같은 종족에도, 다른 종족에도.”

    음, 그런 것치고는 친화력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무리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고 해도 타고나길 직계로 태어나 고고하게 자란 우논이라 그런가, 어딘지 모르게 당당한 구석이 있었다. 로날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친구 해요, 그럼.”

    “폐하 외에 친구를 사귄 건 네가 처음이야.”

    “그래요? 그럼 나중에 제 친구들도 소개시켜 줄게요. 우리 종족 애들이랑 다른 종족 애들도요.”

    “다른 종족? 누구?”

    “아! 근데 걔넨 하이에나인데…….”

    로날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이에나에게, 하이에나를 소개해 주는 늑대라니……. 이래도 되는 건지,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며 고민에 빠졌다.

    “하이에나?”

    “네. 예전에 종족회의 때 우리 영지에 왔던 테르들이에요. 그중 하나는 하논이라고, 잘난 척이 좀 심하긴 한데 의외로 강직하고 충성심이 강해요.”

    하논을 왜 모를까. 이엘이 자신의 영지에 머무를 때 줄곧 그녀의 곁을 지켰던 테르들 중 하나였다. 피시가 고개를 끄덕이곤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테르들은 날 피해.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이엔 계급이 존재해서 그러겠지.”

    “그럼 일단 제 종족들과 친구가 되는 걸로 시작해요. 제가 보기엔, 남작님이 마음만 먹으면 친구 사귀는 건 문제없을 것 같거든요.”

    “피시라고 불러. 남작님 말고 내 이름. 공대도 하지 말고. 작위는 너무 멀게 느껴지잖아.”

    “어, 음. 그럼 그럴까……?”

    어색한 로날드의 말에 피시가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무렵, 호수 저 너머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스완?”

    “응. 오래 기다렸지?”

    “아니. 생각보다 빨리 왔네. 빈센트를 만나고 왔어?”

    “응. 묻고 싶은 것도 다 물어봤고.”

    “그럼 제도로 돌아가자.”

    “잠깐만, 피시. 이거. 아버지가 전해 주래.”

    뭍으로 나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스완이 목에 걸고 있던 무언가를 벗어서 피시에게 건넸다. 금색의 펜던트였다.

    “이건…….”

    “언젠가 네가 여기 오면 전해 주라고 했대. 시모네는 펜던트가 젖을까 봐 저 건너편 땅에 파묻어 놨는데, 마침 내가 뭍을 밟을 수 있어서 가져올 수 있었어. 그것 때문에 아버지는 여기서 기다리지 않고 내가 그쪽으로 오길 기다렸던 모양이야.”

    손으로 밀어 올리면 내부가 드러나는 형태의 펜던트였다. 딸깍 소리를 내며 펜던트를 연 피시는 안에 그려진 그림을 보곤 슬픈 듯이 눈꼬리를 아래로 내려뜨렸다.

    “무슨 그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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