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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시는 대로-259화 (259/488)

259화

*

“부단장님. 전부 수거했습니다.”

“남아 있는 건 더 없었고?”

“예. 독수리 쪽에서 마지막으로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린 돌아갈 준비를 하자.”

앤디는 기사단 정리를 마치고 제 손에 들린 보호석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고작 이 작은 알갱이 하나에 우린 손발이 묶인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게……. 원통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현재는 성전의 허가하에 제도 내와 각 귀족의 영지에 일정한 개수의 보호석이 분배된 상태다. 그 보호석엔 오드의 결계식이 추가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통제는 성전에 있었고, 이렇게 허가받지 않고 바다에서 떠오른 보호석들은 기사단이 은밀하게 움직여 수거해 오드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오드는 제 1르뷔 제국 때처럼 보호석의 수가 많아지지 않게, 이런 식으로 건져 올린 것들은 전부 다 파괴했다. 오드가 보호석을 만들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게 알려진 이상 누구도 보호석에 관해 쉽게 움직이진 않겠지. 오드는 이엘을 위해 기꺼이 미끼가 된 것이다.

기사단 정렬을 마친 우논 하나가 조심스럽게 앤디를 향해 운을 뗐다.

“오드 님은 괜찮으실까요? 놈들이 폐하를 노리는 게 아니었다면 타깃은 오드 님일 텐데요.”

“아냐. 놈들은 폐하를 포기한 게 아냐. 아마 영지 시찰 도중을 노리고 있을 거고, 오히려 눈속임용은 제도와 오드 님이겠지. 그쪽은 성전기사단과 3기사단, 거기다 하이에나까지 지키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어.”

“폐하는 안전하신가요?”

“나도 모르겠어. 연락을 할 수가 없으니까. 이럴 땐 스완이 부럽네.”

앤디는 혀를 차며 늑대의 영지가 있는 방향을 가만히 쳐다봤다. 스완이든 이엘이든 무슨 문제가 생기면 곧장 제도에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아직 오드 쪽에서도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무사히 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게 옳다.

“앤디 님! 잠시 이곳으로 와 주십시오!”

“무슨 일이야?”

“여기…… 뱀의 껍질인 듯합니다.”

앤디가 미간을 찌푸리며 서둘러 자신을 부른 우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늑대들이 비켜 준 곳엔, 누군가 뒷정리를 다 하지 못하고 급하게 마무리한 흔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우논의 말처럼 뱀의 껍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탈피를 했다기보다는 자리를 뜨면서 탈피가 덜 끝난 개체가 실수로 흘린 흔적으로 보였다.

“한두 마리가 아닌 듯싶습니다.”

“그래. 냄새로 얼핏 맡아도 수 마리다. 뒤섞였어.”

“일부는 억지로 냄새를 지워서 사라진 듯합니다. 그것까지 포함하면 수십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보호석을 가져간 모양인데.”

앤디가 제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뱀의 껍질을 주우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급하게 수습을 하다가 말고 떠났다는 건 우리가 곧 이곳에 도착할 거라고 들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일부러 보호석 몇 개는 이곳에 두고, 일부만 챙겨서 달아난 것이다.

한편 앤디의 뜬금없는 혼잣말에 우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뱀이요? 이종족에겐 필요가 없을 텐데요. 게다가 보호석을 활성모드로 돌리는 순간 오드 님이 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겉으로는 그렇지. 오드 님의 성력은 특별하거든. 아주 작은 반응에도, 또 아주 먼 거리에서 활성화된 보호석이라 해도, 갖고 있는 성력이 충분히 크다면 기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하셨어.”

“…….”

“다만 성력이라는 건 신앙심으로부터 크기를 키워 가는 거라고 그랬으니까.”

“그럼…….”

“놓칠 수 있다. 당연히 활성모드로 발동한 시간이 길면 오드 님이 아시겠지만, 아주 잠깐 켰다가 꺼 놓으면 놓칠 수 있지. 그 타이밍이 안 좋다면…… 그래, 놓칠지 몰라.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보호석을 찾는 거야.”

건국 초기에 인간들이 허가받지 않은 보호석을 몰래 발동했다가 잡힌 적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오드가 모든 보호석을 감지할 수 있다는 소리가 퍼지게 된 것이다. 그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으나 맹점은 있다. ‘반드시’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가 없으니까.

앤디는 뱀의 껍질을 손가락으로 비비적거리며 뒷말을 이었다.

“게다가 오드 님의 성력이 이전보다 커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인간들의 신앙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아. 조금만 흔들려도 쉽게 변할 거야.”

“그럼 어떻게 할까요.”

“우선 테르 몇 마리만 은밀히 뱀의 영지로 보내도록. 수상한 냄새를 맡으면 더 파헤치지 말고 곧장 복귀하라고만 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래, 수상하긴 했지. 영지 시찰을 제안했던 것도 로빈이었으니까. 폐하께서 뱀의 영지에 가시기 전에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야겠어. 앤디는 생각을 정리하곤 재빨리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

“역시 잔챙이였어요. 털어도 아무것도 안 나와.”

스완이 투덜거리며 젖은 머리카락을 타월로 대충 털었다. 그 교양 없는 행위에 알폰스가 혀를 찼지만 백조는 개의치 않았다. 씻고 나와 옷도 대충 걸친 상태로 집무실에 들어오더니, 앞에 황제가 있든 말든 제 할 말을 쏟아 내기 바빴다. 이엘도 그의 무례를 딱히 꼬집지 않아서 알폰스는 미간을 찌푸리는 걸로 잔소리를 대신했다.

“확실히 아무것도 없었어?”

“그렇다니까.”

겨우 이런 일로 내가 갔어야 했냐고! 나는 폐하를 마중하러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꿍얼거리는 스완을 뒤로하고, 일라이저가 보고를 올렸다.

“출신지는 전부 모리아 출신이었습니다. 제국이 재건되고 다른 모리아 사람들처럼 제도 내로 들어와 살던 자들이었고, 그중에는 신변 보호를 요청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혹했고, 보호석까지 받게 되어서 일에 가담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이종족과 달리 제한적인 수명을 살고 있다. 그들에겐 ‘미래’보단 ‘현재’의 쾌락과 안위가 가장 중요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게 자신을 보호해 줄 수단과 돈이었다. 즉, 보호석과 돈.

그래, 제국이 건국되고 3년이나 지났으니 슬슬 움직일 때도 됐지.

대충 젖은 머리카락을 타월로 말린 스완이 소파에 털썩 앉으며 운을 뗐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너무 허술해서 기가 막혔어요.”

“허술하다고?”

“실력이 형편없는 건 둘째 치고 싸울 마음도 없어 보였거든요.”

“…….”

“폐하를 미행하던 놈들은 실력자였다고 했죠? 이쪽은 그냥 방패용이거나 버리는 카드가 아니었나 싶어요.”

굳이 자신이 가지 않았어도 쉽게 납치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배후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환각으로 몰래 데려왔다가, 다시 몰래 데려다 놓을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다면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2기사단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안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매복조를 버릴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대충 인원을 추렸다고? 심지어 매복조 중 일부는 돈만 받고 작전도 무시한 채 제도로 돌아갔다고 했다. 뭐 하나 제대로 맞는 게 없는 엉성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놈들이 갖고 있던 보호석은 진짜였나?”

“예, 맞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보호석이었습니다.”

뒤에 서 있던 안드로가 이엘의 물음에 답하며 갖고 있던 보호석 하나를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이엘은 보호석을 꼼꼼히 살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보호석의 통제권은 성전과 오드에게 있으며, 허가를 받았다는 표식이 새겨진 보호석만을 소유할 수 있다. 그마저도 보호석에 위치를 알 수 있는 결계식을 걸어 두었기 때문에 판매나 양도 같은 건 절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보호석은 어떤 한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재물이 아니었다. 설령 그게 귀족이라 할지라도.

“돈은 얼마나 받았는데?”

“액수가 꽤 됐습니다. 현재 영지 안정과 개발 때문에 그만한 자금을 댈 수 있는 귀족은 거의 없습니다. 한 손에 꼽히니 배후 세력을 찾아내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합니다. 게다가 받은 것에 광물도 있었습니다.”

“광물이면…… 하나밖에 없군.”

“스라소니.”

“좋아. 이 일은 안드로 경에게 일임해서 배후와 목적을 확실히 알아내도록 해라.”

“예.”

이렇게 쓸데없이 자금을 펑펑 쓸 만큼 여유로운 귀족은 별로 없다. 게다가 현재 광물 자원이 유통되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을 텐데. ……근데 이렇게 쉽게 흔적을 남긴다고?

유클리드에게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 그는 속을 알 수 없으니, 차라리 직접 대면해서 물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엘은 일단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녀의 피로를 눈치챈 늑대들이 하나둘 인사를 마치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일라이저 역시 고개를 숙여 절하곤 기사단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젖은 머리카락을 타월로 덮은 스완은 소파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있을 따름이었다. 노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백조를 툭툭 건드렸다.

“스완. 너도 그만 네 방으로 돌아가.”

“벌써?”

“폐하께서 피곤해하시니까.”

“근데 공작님은 왜 안 돌아가?”

“뭐?”

“오늘은 내가 폐하를 모실게.”

그럼 안 되냐는 듯 천연한 표정으로 스완이 노아를 쳐다봤다.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엘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이엘을 바라봤는데, 표정이 똑같아서 더 크게 웃고 말았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폐하?!”

“왜 웃으십니까?”

그렇게 사이가 안 좋던 노아와 스완이 저렇게 닮아 보이다니. 머리까지 검은색으로 물들여서 그런지 찡그리고 있는 얼굴이 더 닮아 보였다. 그 말을 하면 분명 두 사람 다 싫어하겠지만.

“그만 쉬고 싶으니 먼저 침실로 가겠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마련된 별저에서 잘 테니 그리 알도록.”

“하지만…….”

“두 사람도 푹 쉬도록 해.”

그녀를 붙잡으려던 노아의 손만 허공에 남겨졌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스완이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리더니 노아의 등을 두어 번 쳐 주며 짐짓 위로하는 척했다.

“그래, 그래. 가끔은 폐하께서도 혼자 계시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야. 공작님도 이해하지?”

“시끄럽다. 손 치워.”

상처받은 영혼이구만. 스완은 노아의 등에 대고 혀를 쏙 내밀고는 재빨리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노아는 텅 빈 집무실을 둘러보다가 피곤한 듯 소파에 잠시 몸을 맡겼다.

아무리 우논이라고 해도 누적된 피로를 당해 낼 재간은 없었다. 이엘과 근위대를 찾기 위해 잔뜩 긴장했던 데다가 돌아온 뒤로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하루 종일 쉬지도 못했다. 그렇게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녘이 되어 있었다.

일어난 김에 끝내지 못한 일을 하려 책상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던 노아는, 습관처럼 정원이 바로 보이는 커다란 창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습관이었다. 그녀가 제 영지에 있든 없든. 여기서 정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창밖을 내다봤는데.

“……엘?”

이엘이 두툼한 모포를 몸에 걸친 채 정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지키듯, 커다란 하이에나 한 마리가 정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본체로 돌아간 하트일 것이다.

이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 건가. 불면증이 심해졌다더니 정말로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어제 같이 잘 때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 생각에 겉옷을 챙겨서 나가려던 노아는 일순 걸음을 멈추고 다시 창문 쪽으로 향했다.

“저건…… 무슨 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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