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236화 (236/488)
  • 236화

    그는 체향을 모조리 빨아들일 것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웅얼거렸다. 마치 안정제를 찾아 달아올랐던 몸을 식히려는 모양새였다. 이엘은 제 품에 들러붙은 검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리며 나지막이 답했다.

    “사랑해요, 노아.”

    “…….”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

    “나도 당신을 사……!”

    신경질적으로 크라바트를 벗어 던진 노아가 이엘의 뒷말을 먹어 치웠다. 어느 때보다 뜨겁게 맞부딪쳐 오는 입술을 피할 도리가 없어 몸이 자꾸 뒤로 밀렸다. 분명 커다란 소파였는데도 달라붙은 두 사람을 수용하기엔 퍽 좁아 보였다.

    결국 노아는 한 손으로 이엘의 허리를 감아 올려 침대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 풀썩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맞붙은 입술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혀로 진득하게 입 안을 헤집기 바빴다.

    동시에 끈이 완전히 풀리며 옷이 더욱 느슨해졌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발간 뺨을 깨물 듯 알랑거리다가 턱을 타고 빠르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몸 위에 길이라도 새겨져 있는 것처럼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타고 내려왔다.

    그러곤 얼굴이 잔뜩 붉어져 이도 저도 못 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춰 주었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모자라요, 난.”

    “아…….”

    “아프면 나를 때리십시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이엘은 터져 나오려는 소리를 억누르고 손을 뻗어 노아의 셔츠를 벗겼다.

    그 조심스러운 행동에 남자가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속삭였다.

    “만지세요. 언제든, 당신이 원하는 만큼.”

    그렇게 한참이나 맞붙었던 숨이 떨어지더니, 노아의 시선이 그녀의 상체에 닿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고 이엘은 그의 얼굴을 손끝으로 건드리며 씁쓸하게 물었다.

    “흉측한가요?”

    “아니. 전혀.”

    이전에도 봤던 상처였다. 12년 전 전쟁에서 살아남았던 그 흉터가 그곳에 있었다. 르네가 남겼으나 만든 건 노아의 몫이었다.

    “아픕니까?”

    “괜찮아요. 어릴 때라…… 아프지 않아요.”

    “…….”

    “노아.”

    “그땐 아팠겠죠.”

    거친 손바닥이 천천히 흉터를 쓸고 지나가자, 여린 살갗이 파르르 떨렸다. 아물었지만 사라지지 않는 흉터 위에 노아는 입술을 맞췄다. 성욕이 담기지 않은 경건한 입맞춤이 느릿하게 이어졌다. 그는 씁쓸한 목소리로 사죄하듯 중얼거렸다.

    “그날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

    “내 잘못이 아니라면서요. 그러니까 노아의 잘못도 아니에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이엘이 두 손을 펼쳐 그의 뺨을 감싸고 제 얼굴로 당겼다. 단숨에 그의 윗입술을 베어 물고 길게 빨았다가 놓더니, 그가 좋아하는 미소를 지어 주었다.

    “계속 입 맞춰 주세요.”

    “…….”

    “내 상처가 사라질 만큼, 계속이요.”

    노아는 그 애절한 목소리를 듣고는 그녀의 뺨을 감싸며 조용히 입을 맞췄다.

    *

    “아…….”

    조용히 탄식하던 이엘이 제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떴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또 다른 저녁이 찾아온 뒤였다.

    “깼습니까?”

    “……노아. 지금 시간이…….”

    “식사거리를 좀 가져왔어요.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노아의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레 감싸 일으켰지만, 이엘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찔 떨었다.

    “엘! 괜찮아요?”

    “네, 네……. 괜찮아요, 조금 아파서…….”

    민망한 웃음을 지었지만 금세 찾아온 고통에 도로 인상을 찌푸렸다. 도무지 몇 번을 한 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도중에 기절한 것 같은데, 또 정신을 차리고 곧장 몸이 맞붙었던 것도 같고……. 얼굴이 새빨개진 이엘이 아랫입술을 깨물자, 노아가 그녀의 뺨에 길게 입을 맞추며 달랬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정말.”

    “뭘 좀 먹어야 해요.”

    “배가 안 고픈데…….”

    “나를 위해서요.”

    “…….”

    “당신이 쓰러지면 안 되니까.”

    우논의 교미는 인간과 달라서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만일 그가 약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잠도 자지 않고, 먹는 것도 뒤로한 채 몇 날 며칠을 달라붙었겠지. 그 방증으로 노아의 입맞춤이 점차 진득해져 가기 시작했다.

    “노, 노아…….”

    “빨리 먹고 기운을 차려 주세요.”

    “흣……!”

    새하얀 목 위에 울혈이 가득했다. 남자는 그녀를 뒤로 눕혀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조심스레 부축해 세웠다. 잠든 그녀의 몸을 깨끗한 물수건으로 닦아 주었는데도 온몸에서 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는 주먹을 쥐며 자제력을 발휘하고는 빠르게 식사거리를 내왔다.

    마치 극진한 간호를 받듯 스푼 하나 손으로 쥐지 못했다. 이엘은 그가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서도 민망함을 감출 도리가 없이 고개를 계속해서 뒤로 내뺐다.

    “제가 먹을게요. 혼자 먹을 수 있어요.”

    “먹다가 말 것 같아서 그럽니다.”

    “…….”

    “입맛엔 맞아요?”

    “네. 맛있어요.”

    이엘은 오물거리다가 불현듯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제 침실이 아닌데…….”

    “맞아요. 3층 객실입니다.”

    “네? 왜 여길…… 아니, 언제 여기로…….”

    그녀의 물음에 노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들었던 스푼을 내려놓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구하고 예쁜 눈동자에 저가 담기자, 그는 작게 미소 지으며 이엘의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가 떨어졌다.

    “침실이 엉망이 됐어요.”

    “아…….”

    “수리 중입니다.”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침대 귀퉁이가 박살 난 걸 시작으로 옮겨 가는 곳곳마다 무너졌던 것도 같다. 쿠션도 다 터져 버려서 솜뭉치가 날아다녔던 건 꿈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아랫입술을 깨물며 붉어진 뺨을 가려 보려고 했다.

    “엘. 날 봐요.”

    “네.”

    “당신 눈은 너무 예뻐서, 나 아닌 다른 것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엘.”

    “응, 보고 있어요. 노아를요.”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그가 계속 제 이름을 불렀다. 자신을 봐 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같았다. 이엘은 물끄러미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가 했던 것처럼 유려한 그의 입술 위에 잔입맞춤을 선물했다.

    “당신도 나만 봐요, 노아.”

    “…….”

    “당신 눈도 보석처럼 예쁘니까.”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입술을 덮쳤다. 잘근잘근 깨물며 애무하더니 그녀의 턱을 쥐어 벌리고 안을 향해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와장창. 그가 아끼는 고급 식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도 노아는 개의치 않았다. 또다시 불씨를 당긴 것처럼 그는 제 옷 벗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래도 식사는 그른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이엘이 그의 옷 벗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

    겉옷까지 걸쳐 입은 노아는 성큼성큼 침대께로 걸어왔다. 그가 걸을 때마다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틀 전에 새로 바꿨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시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앉았다가는 그대로 내려앉을 것만 같아서 하는 수 없이 의자를 가져와 앞에 내려놓고 앉았다.

    아침잠이 없는 편인데도 벌써 며칠째 오후까지 늦잠을 자는 그녀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느꼈다. 노아는 말없이 손을 뻗어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어 주었다. 같은 성별을 가진 시종이 시중이라도 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탓에 궂은일은 그가 도맡아 하고 있었다. 물론 여자 시종이 있었다고 해도 자신이 했겠지만.

    하얀 뺨 위에 발간 홍조가 마치 그림처럼 달라붙은 지 꽤 됐다.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목이 타는 기분이 들어서 노아는 억지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똑똑. 결국 이렇게 문을 두드리는 지경까지 왔다. 노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엘이 깨기 전에 빠르게 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조용히 문을 닫으며 평소보다 서늘한 눈으로 공작을 노려봤다.

    “시끄럽다. 깨면 어쩌려고 그래?”

    “죄송합니다…….”

    어쩐지 앤디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기분이 좋으실 줄 알았는데 왜 저렇게 저기압이시지? 아니, 솔직히 억울하다고요! 정무에 나오지 않으신 게 대체 며칠째인 줄은 아십니까?!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꿀꺽 눌러 삼켰다. 일주일도 너무 짧으셨던 건가……. 이렇게 화낼 줄 알고 안드로가 저를 보낸 게 틀림없다.

    “급한 일은 마무리하지 않았나? 이렇게 찾아올 정도로 급한 게 더 남았어?”

    “그게…… 아무래도 나타니엘 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종족이 많아서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누가.”

    “일단 하이에나 쪽에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계속 오고 있어요. 스라소니는 여전하고요. 또 로빈 님도 나타니엘 님을 찾고 있습니다.”

    “로빈이? 정신을 차렸나?”

    “차린 지 꽤 됐습니다.”

    별저에 눌러앉은 지 일주일이나 됐으니 그 정도면 회복력 빠른 우논이 정신을 차리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도 식사를 위해 별저에 하루 한두 번 왔던 안드로가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최근에야 그녀를 찾기 시작했단 소리일 테고.

    “무슨 일인데.”

    “말은 안 하시던데요. 나타니엘 님과 단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아마 안드로 선에서 몇 번 거절했겠지. 그런데도 놈이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요구하니 어쩔 수 없이 앤디를 보낸 듯했다.

    노아는 앤디에게 먼저 돌아가란 손짓을 하곤 닫힌 침실 문을 바라보았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게 좋을 텐데. 그녀에게 이야기하면 분명 혹사당한 몸으로 일하러 가겠다고 할 게 빤했다.

    결국 노아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혼자 왕성으로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