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149화 (149/488)
  • 149화

    때마침 저 먼 곳에서 다른 늑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잃어버렸던 보호석을 모두 회수했다는 소식이었다. 서둘러 귀환하라는 앤디의 명령에 이엘은 로날드의 등 위에 올라탔다. 로날드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방법이 달리 없어, 일단은 그녀를 태우고 무리로 복귀했다.

    앤디와 마주한 이엘은 로날드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곤 빠르게 앤디의 앞에 저가 안고 온 이종족을 보여 주었다. 순식간에 커다란 눈을 치뜬 앤디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와 새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 어디서 주운 거야?!”

    “풀숲에 쓰러져 있었어요. 아무래도 공격을 당한 모양입니다. 영지로 돌아가 치료를 해도 될까요?”

    “하지만 조금…….”

    무슨 일인지 모르는 늑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엘과 앤디를 쳐다봤다. 앤디는 난감한 얼굴로 제 뒷머리를 마구 헤집다가 긴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돌아가도록 하자. 상처가 좀 깊은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 귀환한다!”

    영지로 가는 길은 며칠이 더 걸릴 테니 이엘은 임시방편으로 가져왔던 약초로 지혈을 먼저 했다. 새끼는 끙끙 앓으며 바동거렸지만 곧 안정을 되찾고 새근새근 잠에 빠졌다. 이토록 커다란 상처에도 잘 참는 걸 보니 기특하기도 했다.

    “오헬, 알지? 그거…… 새끼 아닐지도 몰라. 쟤넨 크기로 가늠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작은 크기는 새끼 테르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그래. 성체는 작아져도 한계가 있거든. 이렇게 작은 크기면 설령 우논이라고 해도 완전한 새끼일 테지.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이종족은 이종족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앤디는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 기절한 새끼를 로브로 감싼 이엘은 따뜻한 품에 끌어안으며 다시 로날드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늑대의 무리는 다시 밤낮 쉴 틈 없이 달려 사흘 만에 영지로 복귀했다.

    뱀의 눈을 피해 모두 돌아온 것을 확인한 안드로는 그녀와 앤디를 노아에게 인도했다. 안드로는 이미 저 멀리서부터 이엘의 품 안에 든 것을 확인한 눈치였다. 그는 말없이 집무실 문을 열어 주고 안에 있던 테르들을 전부 돌려보냈다.

    “보호석은 전부 회수했나?”

    “예, 폐하. 말씀대로 전부 회수했습니다. 그보다 이걸…….”

    “무슨…….”

    말을 잇다 말고 노아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어쩐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왕의 표정을 살피며 이엘이 줄곧 품 안에서 체온을 나눠 주고 있던 새끼를 꺼냈다. 흉터가 남았지만 새끼는 갸릉갸릉 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 있었다. 노아의 표정이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폐하. 재규어입니다.”

    “…….”

    “멸종하지 않았어요.”

    젠장. 그의 잇새로 욕이 튀어나왔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우선은 오드에게 치료를 맡겨도 괜찮을까요?”

    “…….”

    “폐하.”

    “알았다. 오드에게 보내.”

    앤디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이엘에게서 재규어를 받았다. 그러곤 황급히 문을 닫고 왕성을 빠져나갔다. 안드로는 차갑게 내려앉은 노아의 얼굴과 평소와 똑같은 이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가 보면 재규어를 주워 온 게 노아인 줄 알겠다.

    “안드로.”

    “예, 폐하.”

    “멸종했다고 단언하지 않았나?”

    “송구합니다.”

    안드로의 잘못도 아닌데 괜히 화풀이가 그에게 향했다. 안드로는 알면서도 왕의 노여움을 부러 맞아 주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사죄하는 안드로를 힐끔 본 이엘이 다시금 노아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폐하. 노여움을 푸세요. 멸종하지 않은 건 다행인 일이잖아요.”

    “다행이지. 하지만 네가 또 꿈에 연연하게 되는 건 내겐 불행이야.”

    “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

    “그러니까 괜찮아요.”

    안드로는 짧은 한숨 끝에 묵례하며 먼저 자리를 피해 주었다. 커다란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이엘은 노아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안색을 살폈다. 최근 들어 신경 쓸 일이 많아지자 얼굴이 몹시 상한 상태였다. 자신보다 더 마음고생을 하는 중인 노아에게 내심 미안했다.

    “……상처는 치료해 주고. 당분간은 근처에 가지 마.”

    “쫓아내실 거예요?”

    “상처가 나으면 쫓아내야지. 네 곁에 위험한 놈들을 둘 순 없어.”

    “그래 봤자 새끼인데요.”

    “뭘 모르는군. 재규어는 크기를 제멋대로 바꿀 수 있는 종족이다. 저렇게 작아 보여도 실제로는 성체일 수도 있어.”

    몸을 크게 키울 수도, 작게 줄일 수도 있는 종족이 재규어였다. 그러니 작다고 해도 그게 성체인지, 새끼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저렇게 작은 건 대다수가 새끼이긴 하다마는. 그래도 노아는 불편했다. 한때 외면했던 종족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수고했어, 나타니엘.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빙그레 웃는 이엘의 손을 끌어 그 손바닥 위에 자잘한 입맞춤을 했다. 기껏 허락이 떨어진 게 이 정도라 늑대는 갈급함을 숨기고 작은 애정만 표현했다.

    *

    탁자 위에 올려 둔 빈 약병을 쳐다보다가 길게 심호흡을 했다. 저 마지막 약병을 비운 지 며칠이 지났다.

    원정을 나가 재규어를 주워 온 지도 벌써 사흘. 예정해 놓은 날짜가 코앞이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이엘은 몇 번의 심호흡 끝에 별저를 나섰다. 그러곤 오드가 있는 성전으로 곧장 향했다.

    오늘도 성전은 고요했다. 재규어는 오드의 치료로 빠르게 회복 중이었다. 그 회복 추이를 보니 우논일 것이라고 늑대들은 단언했다. 다만 새끼 우논이 어떻게 여태 살아 있냐는 게 의문인데…….

    재규어는 1차 전쟁이 있기도 전에 멸종한 종족이었다. 당시 황태자의 눈 밖에 나, 완전히 전멸했다. 그때 살아남았다고 보기엔 턱없이 작은 크기였다.

    “눈을 좀 떠 보렴.”

    가뜩이나 새끼들에겐 마음이 여려지는데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은 놈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그동안 변변치 못한 생활이었던 건지 뼈가 보일 정도로 바싹 마르고 탈수 증상까지 보였다. 숨을 쉴 때마다 빵빵한 배가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괜찮아. 정신을 차리고 먹이를 주면 그것도 금세 나을 거야.”

    “오드.”

    흰 예복을 입고 등장한 오드가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아침 예배 후에 기도실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던 모양이었다.

    꽤 오랜만에 보는 오드의 얼굴이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오드를 피해 온 탓에. 그녀의 어색한 침묵을 눈치챈 오드는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을 붙여 왔다.

    “생명력이 강해.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편이야.”

    그가 잠든 재규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엘은 오드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색색 숨소리까지 내며 깊게 잠든 재규어가 뒤척거리자, 이엘이 손을 뻗어 토닥토닥 두드렸다.

    “나랑 비슷하네.”

    “…….”

    “어떻게든 살아남았잖아. 나를 닮은 것 같아.”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개체다. 이엘의 부드러운 눈동자에 새끼 재규어가 담겼다. 빨리 깨어나야 할 텐데.

    “나의 엘. 잠깐 나 좀 봐 줘.”

    “응.”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어.”

    “응, 알아.”

    “후회하지 않아?”

    “응. 후회 안 해.”

    단단한 눈동자가 그를 또렷하게 향했다. 오드는 수심이 담긴 낯으로 짧은 한숨을 쉬더니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신께서 원하지 않으실 거야.”

    “그것도 알아.”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

    “응. 나는 괜찮아. 후회 안 해.”

    어차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는걸. 이엘은 그 말을 삼킨 채 애써 웃으며 재규어로 시선을 돌렸다. 오드는 그녀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흔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를 남긴 채 성전을 나갔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그녀의 계획을 도와주겠다는 의미였다. 절실한 조력자의 힘을 다시 받게 되었는데도 어째 마음이 기쁘지 않다. 참 미묘한 감정이다.

    그 생각에 잠깐 넋을 놓았을 때였다. 새끼가 누워 있던 작은 침대가 흔들리더니 작은 흙바람과 함께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위엔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래진 짐승이 누워 있었다.

    설마 저게 본래 크기……? 경악한 이엘이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주춤했다.

    새끼가 아니다. 저건 완전한 성체의 크기였다. 이엘은 밖에 대기 중인 늑대들을 부르기 위해 소리를 치려고 했지만 그보다 재규어가 더 빨랐다. 줄곧 감겨 있던 눈꺼풀이 번쩍 떠진 것이다.

    안광을 번뜩이며 짐승의 매서운 눈빛이 그녀에게 닿았다. 오랜만에 느낀 이종족 특유의 눈빛에 잔뜩 짓눌려 입술을 뗄 수 없었다. 저 능력에 한번 사로잡히면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누님?”

    그러나 재규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의외의 단어였다. 곧이어 재규어는 눈빛을 거두고 당혹스런 얼굴로 한참이나 이엘을 바라보다가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숨 쉴 틈을 번 이엘이 재빨리 늑대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부름에 늑대들이 성전으로 들이닥쳤을 땐, 커다란 재규어가 백금발의 인간으로 변한 뒤였다.

    “물러나!”

    곧장 들이닥친 앤디가 서둘러 이엘을 제 뒤로 숨겼다. 뒤를 따라 들어온 기사단이 검을 손에 쥔 채 남자를 둘러싸고 포위망을 좁혔다. 기사단이 정복 차림으로 들어선 것을 보니 촉각을 세우고 내내 기다린 모양이었다. 앤디는 이엘을 밀어 내다시피 뒤로 물리고 검집에서 검을 뽑아 남자를 향해 겨누었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냐?”

    앤디의 질문에 남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차갑게 식어 버린 눈동자로 싸늘하게 주변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나는 살아남으면 안 되는 존재인가?”

    “…….”

    “우리 종족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그런 의미가 아닌 걸 알면서. 심사가 잔뜩 꼬여 버린 남자는 한참이나 늑대들을 쏘아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앤디의 등 너머였다.

    “그건 뱀의 새끼인가? 아니면 빌어먹을 황족?”

    “함부로 나불거리지 마라.”

    정예기사 중 하나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검을 바짝 갖다 대자, 남자의 목에서 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차가운 날붙이의 접촉에도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릿수로 밀리기 때문에 참고 있는 건지, 그게 아니면 이깟 상황 따위는 두렵지도 않은 건지. 순탄치 않은 세월을 고스란히 맞은 검은 눈동자가 감정 없이 이엘에게 닿았다.

    그는 능력을 쓰고 있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엔 어떤 위압감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샅샅이 살피는 것처럼 고요하고 차가울 뿐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남자가 맥없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가슴을 동여맨 새하얀 붕대에서 다시 붉은 피가 번져 갔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린 남자는 이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내보내.”

    “폐하.”

    다시 사경을 헤매듯 쓰러져 버린 재규어를 향한 매정한 축객령이었다.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노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새끼라면 몰라도 성체라면 말이 달라진다. 지금도 늑대의 영지엔 별 이종족이 다 있는데 구태여 재규어까지 끌어안을 생각은 없었다.

    처음부터 달갑지 않은 손님이기도 했고.

    “끌어서 성 밖으로 내쫓아.”

    “폐하.”

    “아. 새벽에 쫓아. 오헬 잠든 사이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