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7화 (7/488)

7화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동굴 안이라 그런지 그 향은 독했다. 역겹고 속이 쓰릴 정도였다. 조금 전 식사했던 것이 위를 통해 역류할 것 같은 악취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이엘은 흔들리는 눈으로 유리병을 응시하다 벌벌 떠는 손으로 움켜쥐고 단숨에 들이켰다.

“괜찮니, 엘?”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이틀 정도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익숙해져야 돼. 땅 위 세상은 전부 그런 냄새뿐이야.”

씁쓸하게 답하는 오드를 보며 이엘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한때는 바깥세상을 향한 환상으로 살아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와 그런 건 다 부질없어졌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토록 염원하던 세상을.

얼마나 변했는지.

얼마나 변하지 않았는지.

“네 체향, 호르몬. 모두 가려 줄 거야. 임시방편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마셔야 하고 마실 수 없다면 향을 몸에 발라야만 해. 하지만 몸에 바르는 건 오래 지속되지 않아. 명심해.”

“마시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거니?”

“보통 한 달 내외로. 그러니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마셔야 해.”

“남은 양은 어느 정도야?”

“열 달이 조금 넘는 정도. 앞으로 열 번 먹을 양밖에 없다는 이야기야.”

“그 뒤엔? 다시 만들어 줄 수 있어?”

“다시 10년이 필요해.”

“뭐? 그럼 땅 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겨우 열한 달이란 소리야?”

“그래. 그 이후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든지 아니면 체향을 감추지 못하고 위에 존재하든지.”

생각보다 기간이 짧다. 이엘이 입술을 안으로 말아 깨물며 낮은 탄성을 질렀다. 사실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오드의 선물은 이엘조차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애당초 이런 액체 없이 땅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열한 달을 번 셈이었다.

그래, 그 이후의 일은 그때 정하면 돼. 최악을 가정하던 것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으니까.

“열한 달 안에 그것들을 찾아야 돼, 엘.”

“알았어. 찾을게.”

“말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손을 댈 수가 없단다. 그것을 가져오는 건 온전히 네 몫이야.”

오드의 말에 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수리의 눈알, 타이곤의 갈기, 늑대의 기름. 그것이 이온을 깨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 외의 것은 오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이엘은 세 가지만 지상에서 구하면 된다.

그거면 이온을 깨울 수 있다.

“어디 가니?”

“이온을 보고 오려고.”

이엘이 오늘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오드를 뒤로하고 이온이 있는 침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온은 오늘도 평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침대 아래 무릎을 꿇고 앉은 이엘이 손을 뻗어 이온의 뺨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한 올 떼어 냈다. 생기를 잃은 뺨은 차갑게 식은 탓에 축축하게 느껴졌다.

이엘이 자랐듯 이온의 몸도 자랐다. 오드의 성력으로 그도 그녀와 함께 자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몸은 자랐어도 몸의 주인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너는 아직도 행복한 시간에 살고 있니?”

네가 눈을 떴을 때. 이 절망적인 현실에 너는 어떻게 반응할 거니, 이온? 나를 이렇게 홀로 두고 넌 여전히 행복한 꿈만 꾸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미안해할 거야?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괴로워. 여전히 불구덩이에 있어, 이온.

“차라리 날 구하러 오지 말았어야 했어, 이온. 그날. 그 기사단은 내가 아니라 네 곁에서 계속 널 지켰어야만 했어. 그랬다면 나는 조금은 편하게 눈을 감았을지 몰라.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햇빛이 찬란한 땅 위의 세상에서, 뜨겁지만 행복하게 눈을 감았을 거야. 그래. 날 그렇게 뒀어야 했어, 이온.”

네 못난 애정이 날 구덩이로 밀어뜨렸어. 왜 넌 날 온전히 구하지 못하고 항상 이렇게……. 말을 잇지 못한 이엘이 숨을 여러 번 몰아쉬며 침대 맡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끅끅 소리를 삼켜 내며 울분을 토해 내던 이엘은 침대 시트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알고 있다. 이온을 원망의 대상으로 두는 건 억지와 투정이란 사실을. 그를 향한 모난 애증이었다. 그렇게라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은 현실 때문에.

죽은 것처럼 누워 숨만 쉬고 있는 하나뿐인 피붙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온. 조금만 기다려. 금방 돌아올게.”

그의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가 떼고는 이엘이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이상했다. 무릎이 또 시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뻑뻑함 없이 유연하게 움직이던 그녀의 관절이 또 우두둑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손바닥으로 제 무릎을 탁탁 여러 번 치고는 입술을 일자로 다물어 아픔을 참아 냈다.

“이제 이것도 끝이야.”

햇빛을 보지 못해 생긴 병이니까. 햇빛만 보면 나아질 것이다. 지상엔 여전히 치료 약이 많을 것이고 이 정도 치료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뻑뻑한 무릎이 너무 시리다.

이온을 뒤로해야만 하는 마음도 똑같이 시렸다.

*

결계가 끊어졌다. 아니, 깨지듯이 부서진 결계는 칼날이 되어 천장을 마구 후벼 팠다. 그것을 신호로 오드의 지팡이는 천장을 계속 찔렀다. 얇은 막대기가 천장을 쑤실 때마다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흙더미가 아래로, 또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흙은 무너지면서 가루가 되었고 이엘의 머리카락에 앉기도 전에 공기 중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렇게 너무도 쉽게. 땅이 열렸다.

“아……!”

숨이 막혔다. 처음의 느낌은 그거였다. 낯선 공기가 심장과 폐부를 파고들더니 멈춰 있던 몸 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무향무취의 것들이 온몸에 쏟아진다.

오드가 만들어 낸 허상에 익숙해졌던 그녀의 몸은 낯선 것을 받아들이기 조금 벅찼던 것인지, 참지 못하고 이엘이 무릎을 꺾어 주저앉았다. 실제 공기는 오드의 성력으로 구현했던 공기와는 전혀 달랐다. 분명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10년의 간극은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들었다.

“윽!”

“이엘. 숨을 쉬어. 호흡을 하는 거야.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어.”

오드의 침착한 말에도 이엘은 좀처럼 해내지 못했다. 그녀의 피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뜨거울 정도로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에 하얗게 빛을 내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처럼 따갑고 쓰라렸다. 이엘은 온몸으로 쏟아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 누워 꺽꺽거렸다.

“이엘! 견뎌야 해. 네가 원한 세상이잖아.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어떡해. 견뎌. 견뎌 내, 이엘.”

그녀의 고통까지 오드가 제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엘은 생각보다 또렷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제 촉각에 온몸이 말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땅 아래로 뛰어 내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귓가엔 오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견디라는 그의 말이, 그녀를 견디게 만들었다.

맞아. 이까짓 것도 해내지 못한다면, 이곳에 올라온 의미가 없어.

“괜찮아. 나의 엘, 괜찮아. 여긴 네가 살던 세상이야. 몸이 곧 적응할 거야. 너도 노력을 해야 돼. 우선 숨을 천천히 쉬어. 천천히 마시고 다시 내뱉는 거야. 알겠니?”

“윽……으응…….”

그의 말대로 천천히 입을 벌려 흡입하고 또 토해 냈다. 공기가 날이 되어 폐부를 마구 찔러 대는 환각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이엘은 견뎠다. 손바닥이 손톱에 패여 피가 날 정도로 거칠게 몸을 흔들며 견디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보다 민감해진 촉각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감각이 배로 느껴지는 만큼 아픔도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잘 버티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변해 까무룩 쓰러지기 직전, 하늘이 다시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급박했던 숨이 천천히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제야 이엘의 시야에 주변이 들어왔다. 이곳은 울창한 나무가 줄을 선 아름다운 숲이었다. 땅굴에서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이엘. 잘하고 있어. 그렇게 하는 거야. 이제 익숙해지면 돼.”

처음 땅 아래 동굴로 내려갈 때도 비슷했다. 그때는 이엘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더 괴로워했지만 적응도 그만큼 더 빨랐다.

그때를 떠올려, 엘! 그렇게 하면 돼. 오드는 안쓰럽게 이엘을 바라보며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적당한 박자에 맞춰 이엘이 간헐적으로 숨을 토해 냈고 그 빈도가 차차 줄었다.

하얗게 질렸던 낯빛이 점차 핏기를 찾아 생기가 돌아왔다.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두 볼 위에 물기가 떨어져 내렸다.

뜨거운 햇볕에 붉게 그을렸던 그 외의 피부들도 천천히 제 색을 되찾았다. 동굴에서의 10년이 무색하게 이엘은 땅 위 세상에 차차 녹아들었다. 그녀가 있어야 했던 세상으로, 마치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이제 괜찮니?”

“조금…… 목이 타. 뜨거워서 숨이 막힐 것 같아.”

열에 들뜬 이엘이 땀을 흥건하게 흘리며 잔디에 숨을 토해 냈다. 오드는 물을 가져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라며 그녀를 두고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엘은 오드를 바라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싹 말라 버린 입술 틈으로 달뜬 숨만 흘렸다.

한차례 고비가 지나가고 나니 또 다른 고비와 맞닥뜨렸다. 낯선 감각이 또 목구멍으로 느껴졌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눈가에 눈물까지 어린 이엘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샤아악― 소름 끼칠 듯한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정신을 잃은 이엘의 근처까지 다가온 커다란 뱀이 순식간에 그녀의 몸뚱어리를 똬리 틀 듯 쥐어짜기 시작했다.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똘똘 감았음에도 커다란 뱀은 여전히 몸뚱이의 반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뱀이 이엘을 향하여 커다란 입을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일 때 이엘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 희미한 정신의 끝자락을 잡았다.

“아……아파…….”

소리를 지르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엘의 녹색 눈동자가 검은 뱀의 녹안과 마주쳤다. 둘의 눈동자 색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비슷했다.

뱀이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나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이엘은 긴장이 풀린 것인지 정신을 완전히 놓아 버리고 말았다.

검은 뱀은 한 발 뒤로 물러나더니 바닥을 빠른 속도로 휘돌아 땅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순식간에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흑발의 남자는 사박사박 이엘의 앞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녹안이었고 쓰러진 인간 역시 흑발과 녹안이었다. 허리를 순순히 접은 남자가 이엘의 작은 몸뚱어리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

“……혼혈?”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한참 냄새를 맡았다.

아니. 완전한 인간의 것이다. 뱀의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냄새. 그는 인간 특유의 그 냄새를 진저리 나게 싫어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품 안에 있는 인간은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자꾸만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맡아 본 것 같은…….

이건 대체 뭐지?

“왕이시여.”

기척도 없이 다가온 회색 뱀이 조금 전 남자처럼 땅을 몇 번 휘돌더니 금세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접어 앉은 회색 뱀은 제 주인이 품에 안고 있는 인간 남자아이를 바라보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더러운 인간을 어찌…….”

“성으로 돌아가자.”

“예? 그것도 가져갈 것입니까?”

“이것으로 실험을 해 보도록 하지.”

“로빈 님. 그건 대체 어디서 주우신 것입니까? 근본도 없는 불결한 것은 왕께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됐어. 이미 정했으니까 더는 말하지 말도록.”

눈가를 접어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남자가 검지를 제 입술에 댔다. 로빈은 제 품 안에서 여린 숨을 색색 쉬며 잠에 빠진 인간 남자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특이한 인간이었다. 충분히 실험 대상으로 가치가 있을 만한.

때마침 준비가 거의 다 되어 가던 차였다. 오늘의 수확은 썩 나쁘지 않군. 로빈이 웃었다.

“돌아가자, 리플.”

“예, 왕의 뜻대로.”

뱀의 왕이 인간 남자아이를 주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