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내 아가
긴 복도 끝에서 푸른 안광이 번득였다.
기요틴의 칼날이 떨어질 때 흩뿌려지는 빛이었고, 번개가 메마른 나무를 태우는 빛이었다.
재앙을 예감한 쥐 떼들이 황급하게 복도를 기어 도망친다.
평상시 죄수들의 살점을 뜯어 먹으며 살던 흉수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작은 소리가 합쳐져 점점 요란해졌고, 이윽고 하나의 흉측한 굉음이 되었다.
겨우 얕은 잠에 빠진 죄수들을 깨우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가장 처음으로 창살 밖을 내다본 죄수의 눈이 뽑혔다.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분리된 안구는 복도를 굴렀고, 성큼성큼 걸어온 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혔다.
창살을 쥔 손가락 역시 잘렸다. 창밖으로 내민 팔이 폭발했고 끄트머리가 보인 발가락이 날아갔다.
연갈색 머리의 남자는 자비 하나 보이지 않으며 뚜벅뚜벅 계속 걸어갔다.
마치 쥐를 몰듯이.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음마다 바로 양옆 칸에 갇힌 죄수가 죽었다.
남자가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땐, 그 복도에 있는 죄수들 전부가 몰살당해 있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덜덜 떨고 있는 간수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간수는 차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생각도 못 하며 애원만 주절거렸다.
“자…… 자, 부, 부디 자비를.”
“그는 어딨나?”
“누, 누구 말씀─”
이번엔 저 하늘에서 푸른빛이 번득였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는 분명 마법이었다.
감옥이 기습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마탑이 마법사들을 보냈다는 신호.
척단의 마법사들이 도착했다는 그 희망적인 상징에도, 간수는 눈을 홉뜬 채 얼어붙었다.
번갯불 사이 비친 남자의 얼굴은.
그는.
“……아아아악!”
손이 지져지는 느낌에 간수는 비명을 내질렀다.
더듬더듬 시선을 내리자 그의 손에 울긋불긋한 종기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제, 제발, 자비를─”
“어디지?”
“최, 최하층이요!”
남자는 미련 없이 간수의 목숨을 끊고 뒤돌아보았다.
그가 저지른 학살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복도가 침묵에 잠겨 있다.
아무렇잖게 발을 돌렸다.
계단을 날아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고도 경쾌했다.
“서둘러야겠어.”
마탑 소속 마법사들을 만나면 한없이 귀찮아질 테니.
그냥 거머리도 지긋지긋하거늘, 하필 그들은 능력 있는 거머리들이었다.
‘언제 한번 마탑에 불을 질러 박멸해 볼까.’
남자는 기분 좋은 생각에 작게 흥얼거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어둠이 음울하게 짙어졌지만, 그의 유희만은 막을 순 없었다.
먼지 엉킨 거미줄을 밟는 걸음은 마냥 사뿐했다.
“도착했네.”
쾅─!
다음 창살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 폭발음은, 감옥의 입구로 쏟아져 들어오던 마법사들의 귀에 똑똑하게 새겨진다.
흉악범이 감방에서 탈출했다는 걸 알려주듯, 정문의 창살이 삐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와!”
밖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뭣들 하는 거야, 당장 감옥 밖으로 나오라고!”
“하지만 지금 잡아야─”
“잡는 것 좋아하시네! 당장 빠져나와!”
겨우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은 뒤늦게나마 달리려 했지만, 창살은 이미 바닥에 가까워져 있었다.
작은 틈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 나온 마법사를 마지막으로, 미처 나오지 못한 세 명은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버렸다.
“어떡, 하죠?”
누군가가 헐떡이며 질문했다.
그들의 눈은 가장 경험 많은 마법사를 향해 일제히 꽂혀 있었다.
초조한 시선 속에서 시엘샤 듀페르는 거세게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운에 맡겨야지. 만약 그 새끼가 빠져나왔다면 저 안의 셋은 멀쩡할 테고.”
“빠져나오지 못했다면요?”
“죽어.”
누군가가 항의하려 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듯 목소리 높여 외치려 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에 그는 결국 입을 다물었고, 시엘샤는 음울하게 덧붙였다.
“에샹 감옥은 그렇게 지어졌어.”
“언,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놈이 이미 빠져나왔다면, 안의 셋이 의미 없이 감금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시엘샤는 대답 대신 주머니를 더듬었다.
약연을 입에 문 것과 동시에 진홍색 연기가 끝에서 흘러나온다.
임무 중에 약연을 피우는 것만큼 금기는 없었지만, 누구도 시엘샤를 탓할 순 없었다.
약연을 쥐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경련하는 걸 똑똑히 목격한 탓에.
“놈이 빠져나왔다면.”
시엘샤는 연기를 뻐끔뻐끔 내뱉은 뒤 뇌까렸다.
“사흘 안엔 우리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어.”
“하지만─”
“사흘 안에 도시 하나를 폭발시키든, 숲 전체를 날려버리든. 어쨌든 미친 짓 하나를 저지를 테니.”
“…….”
“그 새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건넜─”
말을 마무리하기도 전.
세상을 찢는 굉음이 그녀의 말을 탐욕스레 먹어치웠다.
귀가 먹먹해졌다.
죽은 자들의 통곡보다 더 오싹한 소리가, 살아 있는 자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사흘이라는 장담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시엘샤는 약연을 물고 있는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일제히 경직한 채 감옥만을 쳐다보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게 대체 무슨…….”
수많은 탄식이 전부 소리를 잃었지만 모두 알아들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비극이라서. 차마 표현해선 안 되는 절망이라서.
마탑의 최고 설계사였다는 클레프 에샹이 평생을 걸고 지은 에샹 감옥이 그대로 무너지고 있었다.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가, 광기에 미친 마법사들을 격리하던 감옥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기절할 것 같은 심정으로 지켜만 볼 뿐.
마침내 찾아온 정적 속의 폐허에 새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까악─!
까만 날개를 요란하게 퍼덕거리며 즐겁게 외쳐댄다.
까악, 까악, 까악─!
……감옥은 무너졌다.
“마탑에 연락해.”
그리고 카밀 베르뉴는 탈옥에 성공했다.
아니, 정확히는 카밀 베르뉴가 아니라 카밀 베르뉴의 ‘인형’이 탈옥에 성공했다.
그리고 탈옥시킨 주범이 바로 카밀 베르뉴일 테고.
‘너무 당황해선지 생각이 꼬여버렸군.’
시엘샤는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주저앉아 연거푸 마른세수를 퍼부었다.
에샹 감옥 최하층에 갇혀 있던 건 카밀 베르뉴의 ‘인형’이었다.
아마 주인의 마력 일부를 보관한 채로 따로 움직이고 있었던 인형.
그것을 붙잡은 건 천운이 따랐다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기적에 가까웠다.
애초에 알렉시스 뤼셍이 아니었다면 인형의 머리칼 한 올조차 보지 못했을 터.
‘잘 보관해.’
냉랭한 목소리가 명령하던 게 아직도 또렷하다.
‘내가 이걸 부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니까. 부순 순간 저 마력이 원주인에게로 돌아갈까 봐.’
인형을 대하던 태도가 어찌나 싸늘했던지, 인형을 한번 연구해 보고 싶다고 방방 뛰던 마법사들은 눈치 보며 주눅이 들어야 했다.
말 한마디 꺼낸 순간 바로 눈빛으로 포를 뜰 듯한 살기였었지.
“망했어…….”
그리고 카밀 베르뉴가, 끝끝내 인형을 가져갔다.
온전한 마력을 되찾은 놈은 더욱 기고만장해서 날뛸 터다.
그 새끼가 또 무슨 폭탄을 터뜨릴지, 무슨 미친 짓을 하며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약 올리며 도망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빌어먹을!”
시엘샤는 일어서며 발을 쾅 굴렀다.
눈을 연신 깜박였어도, 무너져내린 에샹 감옥은 변함이 없었다.
수감된 죄수들, 그러니까 광기로 폭주해버린 마법사들은 전부 깔려 죽었을 터.
그리고 그들의 동료 셋도 비명횡사했다.
“뭐 이런 쓰레기 같은─”
온갖 험난한 욕설을 내뱉었어도 누구 하나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참담한 심정으로 폐허를 멀거니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세 마법사와 절친했던 이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마탑에서 보낸 지원 인력이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탈력감에 젖은 채로 망연하게 서 있어야 했다.
부마탑주 팀벨이 와서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계속.
시엘샤는 수색대에 합류하는 대신 정리 작업을 도왔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세 마법사는 문 바로 옆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의 주검은 예를 갖춰 수습되었고, 영원히 떠난 동료들에게 예를 표한 뒤 시엘샤는 묵묵하게 돌덩이를 옮겼다.
끝도 없는 수였지만.
그보다 더 끈질기게.
그렇게 하나, 둘, 폐허의 파편을 옮기던 그녀는 결국 원하는 물품을 찾아내었다.
복도 천장에 몰래 숨겨져 상황을 전부 녹화하던 마법구.
카밀 베르뉴가 마법구를 찾아내 깨뜨릴 정도로 섬세한 인간이 아닐 거라 믿었고─애초에 미치광이에게 무슨 치밀함을 기대하겠는가─특수 마법이 걸린 장치답게 마법구는 건물 전체가 무너지는 대참사 속에서도 멀쩡했다.
“헉, 찾은 거야?”
“네.”
팀벨이 허둥지둥 곁으로 다가와서 마법구를 건드렸다.
불어넣은 마력에 의해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자, 바삐 움직이던 마법사들이 하나둘씩 잽싸게 모여들었다.
시엘샤는 오늘 밤의 참사부터 시작되도록 영상을 조정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다급하게 도망치는 쥐 떼들이었다.
흉수들은 제대로 울지도 못하면서 겁에 질린 채 복도를 내달렸다.
그들 바로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는 남자가 얼마나 흉악한 범죄자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저벅저벅, 다소 큰 발소리와 함께 마침내 침입자가 등장한다.
예상했던 대로…… 카밀 베르뉴.
곳곳에서 울분 섞인 소리, 씨근덕거리는 한숨, 체념 깃든 탄식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시엘샤는 이를 갈며 뇌까렸다.
“미친 새끼.”
이어지는 학살은 전혀 놀랍지 않아서.
시엘샤는 울렁거리는 속을 억누르며 죄수들의 신체 일부가 날아다니는 장면을 감내했다.
죄수들은 분명 저와 비슷할 처지일 텐데도, 살인귀는 자비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지는 간수와의 독대.
하지만 카밀 베르뉴는, 간수를 처참하게 죽인 뒤 바로 내려가기는커녕 뒤돌았다. 자신이 만든 피의 축제를 감상이라도 하고 싶은 듯.
[…….]
“저 새끼, 뭐라고 중얼거린 거야?”
팀벨이 나직하게 질문한다. 시엘샤는 손을 뻗어 해당 부분을 되감았다. 그리고 다시 재생.
[……아.]
“소리가 너무 작은데.”
“최대한 키워봐.”
“이미 마법 두 개 겹치지 않았어?”
증폭 마법을 통해 음성을 키우자, 그제야 단어 하나가 명징하게 들렸다.
[……아가…… 아.]
“아기?”
“그 미친놈이 설마 아기를─”
“설마, 잘못 들었겠지.”
증폭 마법이 네 개 겹쳐졌다.
시엘샤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놈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유심하게 관찰했다.
어둠에 가려져 흐릿해도, 어떻게든…….
[어떡하지?]
순간 우울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걱정이 가득해 시무룩하게까지 들리는 음성.
걱정? 방금 수십 명을 학살한 연쇄살인마가 걱정?
하지만 저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분명 ‘걱정’인지라, 소름이 돋다 못해 구역질까지 나왔다.
저런 개새끼에게, 타인을 향한 애정이 남아 있을 리 없는데. 그런데.
이어 들린 말에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얼어붙었다.
[내 아가가, 유리를 삼킨 것 같아.]
<다음 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