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수호의 사춘기
한 중학교의 참관 수업.
여느 때와는 달리 교실 뒤편에는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 모인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중학생부터는 보통 참여율이 낮아서 한두 분을 모시고 조용히 진행하는데, 오늘따라 참여율이 남달랐다.
하지만 남다른 건 참가율뿐만 아니었다. 보통 참관 수업 같으면 다들 제 자식, 혹은 제 부모를 주시하거나 힐끔거리기 마련이건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곳을 힐끔거리는 모두의 시선. 그곳에는 비주얼이 남다른 남녀가 우뚝 서 있었다. 바로 선혜와 태준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조용히 속으로 한숨을 삼키는 선혜와는 달리, 태준은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빛내며 한곳을 바라보기 바쁘다.
손에 든 카메라로는 앞에 서서 발표를 하고 있는 수호를 찍기 바쁘다. 마치 유명 연예인을 만나러 온 소녀 팬과 같은 모습이었다. 수호의 관심을 끌기 위해 팔을 흔들기도 했다.
하도 유난을 떨어서 선혜가 손으로 툭 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선혜를 돌아본다. 머쓱하게 웃는 게 강아지 같았다. 그런 태준을 보며 고개를 살짝 내젓는 그때였다.
“그…….”
옆에 서 있던 한 학부모가 말을 걸었다. 가늠하듯 선혜를 뜯어보더니 묻기를.
“수호 어머님이시죠?”
“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저쪽은…….”
학부모의 시선이 옆으로 흐른다. 여전히 수호의 시선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태준에게.
“수호 큰 형인가?”
“네?”
선혜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학부모가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해한다.
“아, 아니에요?”
“네. 수호 아빤데…….”
“네? 아빠라고요?!”
놀란 학부모의 목소리가 꽤 커서 수업을 하던 선생님과 더불어 학생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선혜는 가까스로 표정 관리를 하다가 옆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기로서니, 그렇게밖에 안 보일까 싶어 보았는데.
앞에 서서 발표를 하는 수호와 비교하자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었다.
올해 열여섯. 중학교 3학년이 된 수호는 키가 훌쩍 컸다. 175센티미터 남짓이었지만 비율이 좋아 못해도 180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사춘기를 지나며 성숙해진 얼굴은 어렸을 적보다 태준과 훨씬 비슷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태준보다는 좀 더 무게감이 있다고나 할까. 특유의 과묵하고 까칠한 성격 탓이었다.
“…….”
수호는 말없이 태준을 응시했다. 수호의 시선을 받은 태준은 얼굴을 상기시키며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손나팔을 만들어 입 모양으로 ‘멋있다, 윤수호, 짱이다, 내 아들!’을 조용히 외쳐대기까지.
그 모습을 보던 수호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드러난 귓가가 발긋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서…….”
그러더니 발표를 이어갔다. 수호의 외면에 태준이 올망거리는 눈으로 선혜를 보았다. 선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발표를 하는 수호의 미간이 전보다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이제 태준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덕분에 옆에 있는 태준은 잔뜩 시무룩하다.
수호가 까칠하게 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그 정도가 심하다. 그래도 태준이 이렇게 시무룩해지면 쳐다는 보는데. 태준의 기분을 풀어주기라도 하는데.
“발표하는 데 심란하게 왜 그러는 거예요, 대체.”
발표가 끝나자마자 태준에게 톡 쏘아붙인다.
“수호야.”
선혜가 말리듯 말하자 사나운 눈빛을 거둔다. 하지만 선혜를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멀어지는 수호의 뒷모습을 보며 선혜는 복잡한 눈빛을 했다.
사춘기. 또 다른 말로 질풍노도의 시기.
이 시기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은 요즘이었다.
*
똑똑. 노크하는 소리에 공부하고 있던 수호가 문 쪽을 돌아보았다.
“밥 안 먹어요.”
“진짜? 오늘 오빠가 좋아하는 돈가스인데.”
그런데 문 너머에서는 의외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수애였다.
곧 문이 열리고 수애가 틈새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수애가 총총 다가왔다.
“오빠 진짜 밥 안 먹어?”
“응.”
“왜? 오빠가 좋아하는 고구마 치즈 돈가스인데?”
“그냥. 배가 안 고프…….”
그때였다. 꼬르륵. 우렁찬 소리가 울려퍼진 것은.
수애의 작은 체구에서 나올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수호는 무안한 얼굴로 제 배를 쓰다듬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애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진땀이 났다.
“오빠는 이따가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까 먼저 먹어, 수애야.”
수애는 대답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빤히 수호를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쳐다보나 싶어서 눈을 마주하고 있는 때였다.
“오빠. 엄마 아빠랑 싸웠어?”
수애가 정곡을 찔러 수호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니, 싸운 건 아니고…….”
“근데 왜 같이 밥 안 먹는데?”
“그냥.”
“그냥?”
“응. 그냥.”
그냥이라는 말에 장사 없는 법. 더 토 달 말이 없어 입을 다문 수애다. 하지만 방을 나서지 않고 또 수호를 빤히 쳐다본다.
왜 또 이렇게 쳐다보나 싶어 마주하고 있는 때였다.
수애가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허공에 세워보인다. 표정이 비장하여 주먹질이라도 할 셈인가 싶은 때였다.
“오빠 힘내. 내가 있잖아.”
의외의 말에 수호의 눈이 커졌다.
“아니다. 나도 있고,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다 있어. 오빠 옆에. 우리 다 오빠 편이야.”
우리 다- 하면서 짧은 팔로 허공에 원을 그린다.
“그러니까 힘내. 알았지?”
그러더니 힘! 하면서 주먹을 꼭 쥐어 보인다. 수호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수호가 손을 뻗어 수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수애야. 근데 밥은 이따가 먹을게. 혼자 먹고 싶어서.”
수호의 말에 수애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수긍하며 방을 나섰다.
수호는 고마운 눈으로 방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공부에 집중했다.
배고픈 것과는 별개로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상처받은 태준의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수호는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중 좀 할걸. 요즘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 되는지.
이따가 기회를 봐서 사과라도 할 성싶었다.
*
태준은 요즘 들어 잠을 설치는 게 잦아졌다. 새벽에 깨면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선혜가 깰세라 조심스럽게 안방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식탁 앞에 앉는 행동에 익숙함이 배어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데 긴 한숨이 샜다.
참관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수호의 담임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수호의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슬슬 아이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선생님은 수호의 우수한 성적을 거론하며 특목고 진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본인도 수호에게 말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혜와 태준은 수호의 성적보다 다른 게 궁금했다. 성적이 아닌 학교생활이 말이다.
친구들은 어떻고, 교우 관계는 어떤지에 대해서. 혹시라도 학교생활이 수호의 심경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선생님은 별문제 없다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반장 노릇을 너무 잘해주어서 든든할 따름이라고.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럼 가족들한테 서운한 게 있나?
하지만 마땅히 짚이는 바가 없었다.
고민과 한숨이 이어지는 때였다.
수호의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수호가 걸어나왔다. 태준과 마찬가지로 잠을 설친 모습이었다. 부엌으로 걸어오다가 태준을 발견하더니 화들짝 놀란다. 태준은 수호를 집에서 마주하는 것조차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학원에, 집에 오면 밥 먹을 때 빼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빠 때문에 깬 거야?”
“……아뇨.”
“아…… 그렇구나.”
어색한 대화는 금방 끝이 났다. 태준은 맥주 캔을 만지작거리며 물을 마시는 수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참관 수업 이야기를 하자니 좋지 않았던 수호의 표정이 떠올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덜덜 떠는데 수호가 돌아본다. 태준은 얼른 다리 떨던 걸 멈추고 무안한 얼굴로 웃었다. 맥주를 목에 기울이려는 때였다.
“아빠.”
수호가 불렀다. 한참 머뭇거리더니 입술을 뗀다.
“아깐 죄송해요.”
“…….”
“괜히 예민하게 굴어서요.”
수호는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앉아 있던 태준은 수호의 뒷모습을 보다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닫히는 수호의 방문을 붙들어 잡았다. 수호가 다소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태준은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다가 좁은 문틈 새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수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새삼 알았다.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지가 한참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까칠한 아들이 무서워 다가가지도 못했었나 보다.
다행히도 수호는 태준의 손을 밀어내거나 내치지 않았다.
가만히 태준의 손길을 받고 있을 뿐.
“혹시라도 서운한 게 있거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
“아빠는 늘 수호 편이잖아. 알지?”
태준이 손을 떼자 수호가 고개를 들었다. 수호의 시선이 태준에게 길게 머물렀다.
“잘자, 수호야. 좋은 꿈 꾸고.”
이만하면 됐지 싶어 태준은 물러났다. 닫힌 방문을 보다가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마시던 맥주를 마저 마시는 때였다.
다시금 수호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성큼성큼 다가온 수호가 냉장고에서 사이다 한 캔을 꺼내더니 태준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맥주 캔을 따듯 캔을 딴 수호가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호가 거하게 용트림을 했지만 태준은 웃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왜 이러나. 조금은 두려운 눈으로 수호를 볼 뿐.
“있잖아요, 아빠.”
수호가 사이를 두고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는데…….”
수호가 태준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요?”
대체 뭐길래 수호가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는 걸까.
“걱정하지 말고 얘기해 봐. 뭐길래 그래?”
한참을 머뭇대던 수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나, 너무 다 잘하는 것 같아요.”
태준은 순간 눈을 슴벅거렸다. 웃어야 하는 타이밍인가 순간 고민했지만 수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 웃지 못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도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아…… 그렇구나…… 음, 그래…… 그럴 수 있지…… 다 잘하면 그런 고민을 할 수도…….”
가까스로 표정 관리를 하면서 말을 잇는데 자신이 듣기에도 연기 투다. 어릴 때부터 눈치가 남달랐던 수호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터. 태준의 반응을 보더니 미간을 확 찌푸린다.
급기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뒤늦게 태준이 그 뒤를 쫓아갔지만 닫힌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수호야. 아빠가…… 아빠가 미안해. 응? 아휴. 아빠도 잘나서 우리 수호 마음 다 이해해. 응? 재수 없다고 하나도 생각 안 했어. 그러니까 그러지 말고 아빠랑 좀 더 얘기하자. 응?”
수호야, 수호야.
문 앞에 매달려 애걸복걸하는 때였다.
“……거기서 뭐 해요?”
“아빠 뭐 해요?”
난데없는 소란에 잠에서 깨버린 선혜와 수애가 방에서 나와 눈을 비비며 태준에게 물었다.
태준은 미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다가 애처로운 눈으로 닫힌 방문을 보았다.
한편 수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빠한테 말한 내가 바보지. 엄마한테나 얘기해 볼걸…….
그렇게 다소 소란스러운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며칠 뒤 주말.
네 가족은 놀이동산으로 나들이를 갔다. 선혜와 수애는 일부러 둘이 붙어다니며 어색한 수호와 태준 사이를 붙여놓았다.
두 사람의 노력이 가상한 덕택인지, 아니면 오랜만의 나들이에 수호도 마음이 풀어진 건지 금세 두 사람 사이는 다시 가까워졌다.
“수호야. 저번에 네 얘기 듣고 아빠가 많이 고민해 봤는데 말야.”
“아, 진짜. 그때 얘기 꺼내지 마요.”
까칠하게 대꾸하는 수호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콩 쥐어박은 태준이 입을 열었다.
“고민되는 거 충분히 이해해.”
수호는 인상을 찌푸리고 머리를 매만지면서도 태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맛있는 메뉴가 너무 많으면 선택하기가 어렵잖아? 네 경우도 그런 거지, 뭐.”
태준은 음, 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수호 네가 가장 가슴 뛰는 걸 했으면 좋겠어. 공부든, 뭐든 간에. 아빠가 있는 힘껏 서포트해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슬쩍 쥐어보이는데, 모처럼 만에 철없는 아빠가 아닌 듬직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알았지?”
수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등 뒤로 따듯하고 큰 손이 닿았다.
언제나 너를 위해 여기 있겠노라. 든든한 마음이 온기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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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해진 분위기를 이어 네 가족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선혜는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혜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태준이 웃어보였다.
“비슷하죠.”
“그러게요.”
인테리어나 메뉴가 아를에서 태준과 첫 식사를 했던 곳과 상당히 흡사했다.
“뭐가 비슷한데요?”
수애가 무구한 얼굴로 물었다. 태준이 대답했다.
“엄마랑 아빠랑 처음으로 같이 밥 먹었던 데랑 비슷한 곳이야.”
수애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건 수호도 마찬가지.
수호조차도 태준과 선혜의 만남과 연애에 대해 자세히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아빠랑 프랑스에서 만났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프랑스? 거기가 어딘데?”
수호와 수애가 번갈아 질문을 던진다. 둘 다 궁금한 눈치였다.
태준과 선혜는 그때와 비슷한 가게에서 추억에 젖어 들어갔다.
낭만이 가득한 프랑스 니스와 아를.
그곳에서의 추억이 하나둘 살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