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97화 (97/109)

#97. 아버지

선혜와 태준, 그리고 수호는 레스토랑에서 시켰던 음식을 포장해서 집으로 왔다. 세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태준이 성을 냈다.

“아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태준이 휙, 수호를 돌아보았다. 곰곰이 뜯어보던 그가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누가 봐도 내 아들이지, 어딜 봐서 우리 형 아들이래요?”

“아, 튀잖아요!”

이번에 성을 내는 건 수호다. 분노하던 것도 잠시, 태준이 얼른 티슈로 수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새침하게 째려보면서도 가만히 아빠의 손길을 받는 수호다. 그 모습을 보며 웃던 선혜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러게요.”

“진짜 사람들 생각하는 것 하고는. 아주 그냥 싹 다 물갈이할 수도 없고.”

푹푹. 불퉁한 얼굴을 한 채 전투적으로 식사를 하던 태준이 별안간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 죽었어.”

다소 불안한 얼굴로 선혜가 물었다.

“뭘 어쩌게요?”

“어쩌긴 뭘 어째요. 계속 말해야지. 수군거리는 무리들 볼 때마다 쳐들어가서 알려줄 거예요. 우리 수호, 내 아들이라고. 신태준 아들이라고.”

선혜는 상상하다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회사에서 수군거리는 무리들에게 대뜸 소리치는 태준을 떠올리자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라도 좀 소문이 가라앉았으면 좋겠어요. 괜히 커져서 태준 씨 가족들 귀에 들어가기 전에.”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실로 이상한 소문이 자식 둘뿐만 아니라 그리도 이뻐하는 손주를 후려 쳤으니 말이다. 선혜가 열심히 밥을 먹는 수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 때였다.

“내일 하루 만에 조용히 해결해야 할 것 같긴 해요.”

태준이 하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태준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뭔가 심히 무서워하는 얼굴이다.

실제로 태준의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회사에 난 소문을 자신의 집안 식구들이 안다면 정말 난리가 날 터였다.

특히나 아버지인 현철의 귀에 들어간다면…….

“왜 그래요?”

태준이 느닷없이 진저리를 치자 선혜가 물었다. 태준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어릴 적 현철이 화났을 때를 떠올리며 다리를 떨고 있었다.

태준이 집안 식구들 중에 제일 무서워하는 건 형인 태석도, 누나인 태연도, 엄마인 시연도 아닌 아버지 현철이었다. 남들은 팔불출에 젊어서 성공한 사업가로만 알고 있지, 화가 나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근데 내일 하루 동안 그런 식으로 해명하면 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 보죠. 괜히 사람들이 태준 씨를 이상하게 볼까 걱정이 되는데.”

“미친놈 취급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

다른 방법을 논하려고 했는데 태준은 고집스러웠다.

“자식 위해서 뭐든 못할까.”

선혜의 손이 문득 멈추었다.

“난 계속 부딪힐 거에요. 가만히 바보같이 당하지만은 않을 거라고요.”

선혜는 그 말에 태준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거칠게 파스타를 씹어먹던 태준이 의아하여 바라보았다.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아뇨.”

선혜가 엷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끔은 미친 척 부딪치기도 하고 그래.’

‘그렇게 바보같이 당하고만 살지 말고.’

태준의 말에 아버지인 석주 생각이 났다. 방금 태준이 했던 말은 석주가 엄마인 경애의 가게에서 자신에게 했던 잔소리와 같은 말이었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지민과 고은에게 따지느라 잊고 있었다.

선혜는 밥을 먹다 말고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 기록과 메시지 함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석주에게서 온 연락은 하나도 없었다. 다시금 통화를 시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침나절 경애가 말을 전해준다고 했었던 게 생각이 났다. 엄마가 말을 전달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석주가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긴, 그렇게 원망만 쏟아낸 자식이니 얼굴 마주 보고 밥 먹기가 껄끄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밥 한 끼 같이 먹기도 어려운 부녀관계라.

깨작거리던 선혜는 수호의 식사를 챙기는 태준을 보았다. 선혜가 부자 사이의 훈훈한 분위기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쓰게 웃는 때였다.

멀리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선혜의 것이었다. 선혜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기도 모르게 기대하는 얼굴로 발신인을 보았다가 ‘엄마’라는 두 글자를 보고 맥이 조금 빠졌다.

뭘 기대한 건지. 자조적인 얼굴로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던 선혜는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 선혜야. 나 춘흰데!

전화기 너머로 격앙된 춘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 가게에 지금 빨리 와 봐야 될 것 같아.

“왜요, 언니? 무슨 일 있어요?”

- 아휴. 진짜……. 말하자면 길고, 네가 빨리 와서 사장님 정신 좀 차리게 만들어줘. 응?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선혜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침실로 들어가 금방 나갈 채비를 하고 나온 선혜를 보고 태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가요, 선혜 씨?”

“엄마한테요. 잠깐 수호 좀 봐 줘요, 태준 씨.”

선혜는 쏜살같이 말하고 집을 나섰다.

*

경애의 가게 문 앞에는 ‘영업 끝’ 팻말이 걸려 있었다.

손님이 없어 불이 거의 다 꺼져 있는 국밥집 안에서는 경애가 다 식은 순대국밥을 안주 삼아 소주를 병째 기울이고 있었다.

“엄마.”

가게에 들어와 멍하니 경애의 모습을 보던 선혜가 망연한 얼굴로 부르자, 경애가 술병을 기울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춘희가 이때다 싶어 경애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들었다. 경애가 앉은 식탁에는 벌써 소주가 세 병이 뒹굴고 있었다. 이렇게 과음하는 엄마는 처음 본다 싶었다.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선혜야…… 우리 딸. 우리 예쁜 딸…….”

경애가 중얼중얼 선혜를 부르며 손을 뻗어 얼굴을 만졌다. 거친 엄마의 손길을 받던 선혜가 그 손을 잡아 내려 꼭 잡아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래.”

선혜는 아까부터 통 보이지 않는 석주를 찾아 눈을 굴리다가 물었다.

“아버지가 무슨 사고라도 쳤어?”

“사고? 그래…… 쳤지, 사고.”

“무슨 사고.”

선혜가 경애의 손을 꼭 잡으며 갈급히 물었다. 또 무슨 일로 엄마의 마음에 이렇게 상처를 줬나 싶어서.

“늬 아빠 튀었다.”

튀었다니. 순간 선혜는 제 귀를 의심했다.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지.”

“엄마 돈 먹고 튀었다는 거야?”

“아니.”

경애가 아침에 받은 차 키와 편지를 선혜의 앞으로 던졌다.

“그거 주고 튀었다.”

선혜는 의아한 얼굴로 차 키와 편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편지를 열었다.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선혜의 눈이 점점 커다래지다가 흔들렸다. 편지지를 덮는 선혜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돈 없다고 그랬잖아. 월세 밀려서 엄마네 가게에 일하겠다고 한 거 아냐? 무슨 돈이 있어서 차를 사 줘?”

경애가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엄마가 알아봤거든?”

차를 발견한 그 즉시 그대로 뛰쳐나갔다. 석주의 행방을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일하던 작업장에 찾아갔고 석주와 그나마 친분이 있었던 인부에게 물어 석주의 집으로 갔다.

석주가 사는 집은 낡은 빌라였다.

그리고.

‘여기 월세 없는데요?’

빌라 주인이라는 여자와 맞닥뜨려 알게 된 사실은 빌라에 있는 방 중에 월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전부 전세라고.

그리고 석주는 이사를 가고 없었다. 전셋값은 경애에게 선물한 차의 가격과 맞먹는 돈이었다.

“어쩜 그러니? 늬 아빠 어쩜 그래.”

“…….”

“이렇게 다 퍼주고 말도 없이 사라지면…… 나더러 어쩌라고.”

“…….”

“아주 지 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

경애의 말을 듣는 선혜의 얼굴은 그저 멍했다. 석주가 경애에게 남겼다는 편지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집어 넣는 때였다.

봉투 안에, 무언가가 하나 더 있었다.

또 다른 편지였다. 선혜는 천천히 편지지를 열어보았다.

[선혜에게.]

그건 석주가 선혜에게 남긴 편지였다. 석주의 글씨체임을 알아본 선혜의 눈이 세차게 떨렸다.

[너를 그 신호등에서 봤을 때가 생각이 나네.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울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아이의 어엿한 엄마가 된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선혜도 같은 때를 떠올렸다.

신호 대기 중에 신호등을 후다닥 건너가던 석주와 마주쳤던 순간을.

[하지만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더 컸어. 내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그리고 더없이 미안했단다.]

그 뒤로도 미안하다는 말은 계속되었다.

[혼자 힘들게 애를 키우게 해서 미안해.

어머니와 계모에게 핍박받는 너를 지켜보기만 해서 너무 미안하고.

너에게 자꾸만 등 돌렸던 것도 미안해.

돈에 눈이 멀어 그런 파렴치한 놈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던 것도.

나는 정말 나쁜 아빠였어.]

나쁜 아빠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미안해 선혜야.]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그런 아버지.

그런데 아니었다.

[미안하다.]

다만 서툴렀을 뿐.

그래서 실수와 잘못이 난무했을 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너희 엄마가 너를 소개시켜준 날로. 그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알아차렸어.

놀라지 말았어야 했는데. 반가워하면서 너를 안아줬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너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줬어.]

그땐 몰랐다. 스물일곱 살.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린 나이였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주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병약한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외아들. 그리고 고된 의사 생활.

그 와중 느닷없이 나타난 옛 연인과,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딸.

정말 무책임하고 몰인정했다면, 그리도 무서워하던 할머니에게 딸인 자신을 소개시키려고 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석주에게 있어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깨달음은 그렇게 조금씩 찾아들었다.

아버지도 분명 아빠가 처음이었을 텐데.

그래서 서툴고 우여곡절이 있었을 텐데.

감히, 완벽을 바랐다.

그래서 상처가 됐나 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혜 너는 수호에게 누구보다도 좋은 엄마야. 그러니까 나를 닮았다는 그 말이 너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길지 않은 편지는 그렇게 끝나 있었다.

[사랑하는 선혜에게, 석주가.]

사랑한다는 수식어를 선혜의 이름 앞에 붙인 채로.

“하…….”

허탈하게 웃음이 새는데 눈가는 촉촉해져만 갔다. 자꾸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선혜는 급하게 봉투에 도로 편지를 밀어 넣었다.

그런데 뭐가 걸린다. 봉투 안에 뭔가가 더 있었다.

선혜는 손을 넣어 꺼내보았다.

딸려 나오는 건, 저번에 수호와 놀러간 곳과는 다른 놀이동산의 입장권 네 개였다. 어린이 표 하나, 성인 셋.

그리고 그와 더불어 생명보험증서가 있었다.

상속인 칸에는 선혜의 이름 세글자가 적혀 있었다.

어머니도 여의고 이혼까지 했으니, 법적으로 선혜가 유일한 상속자였다.

오랜기간 동안 넣은 보험금은 그 금액이 꽤 컸다.

이게 대체 뭔지.

돈 같은 거 필요 없는데.

내가 아버지에게 원했던 건…….

“선혜야!”

뒤에서 춘희가 부르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선혜는 가게를 뛰쳐 나왔다. 뜨거운 숨이 입김이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아버지.”

조금 젖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아빠.”

하지만 불리는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둘러보는 곳곳에 가슴 아픈 추억만이 남아있을 뿐.

‘돈이라도 필요하신 거예요?’

‘정말 염치도 없으세요.’

‘아버지라면 이제 엄마도, 나도…….’

‘지긋지긋하니까.’

석주에게 했던 말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그게 아파서일까.

애써 참았던 눈물이 그예 흘러내리고 말았다.

선혜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근처 벤치에 주저앉았다.

옆을 돌아보았다.

초라했던 석주가 기가 죽어 앉아 있던 그 자리를.

탓하는 말이 터져나왔다.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내가 아버지에게 원했던 건.

시간이었다.

충분히 미워할 시간.

그러다 그 미움이 조금씩 닳아 없어질 시간.

그 시간마저 허락하지 않은 아버지가 못내 원망스러웠다.

“흑…….”

초라했던 모습이 잔상처럼 아른거리자 흐느낌이 터졌다.

‘선혜야.’

경찰서 앞에서 했던 당부들도 덩달아 떠올랐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너는 옳고 바른 사람이니까 그래도 돼. 그리고.’

‘네 편 없다고 걱정하지 마. 혼자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

‘아빠같이 살지 말고.’

선혜가 벤치에 주저앉아 울고 있자 춘희가 뛰어나왔다.

“아이고, 너까지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니, 선혜야. 응? 아이고…….”

차가운 밤공기를 선혜의 흐느낌이 적셔갔다.

가을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너무도 차갑고, 시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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