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마지막 당부
경찰의 등장으로 놀이동산은 다소 소란스러워졌다.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이 연행되는 재민을 보며 수군거렸다. 그런 재민의 손목에는 석주가 감아놓았던 청테이프 대신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아, 진짜 오해시라니까요?”
재민은 뻔뻔하게도 그렇게 외쳤다. 물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눈치였다.
곧 재민이 경찰차에 올라탔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수호와 그 보호자인 선혜와 태준, 그리고 목격자인 석주도 경찰서로 향해야 했다.
태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석주를 보며 물었다.
“병원부터 안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석주는 재민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퉁퉁 부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팔도 여기저기 발갛게 부어오르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다리를 잘못 맞았는지 절뚝거리기까지 했다.
“병원은 이따가 가도 괜찮으니까 일단 경찰서 가서 증언부터 할게.”
말을 마친 석주가 돌아섰다. 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석주를 팔을 뻗어 붙들었다.
“따로 가시게요? 같이…….”
그러다 문득 선혜가 생각나 움찔거리며 돌아보았다.
선혜는 말없이 석주를 보고 있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석주는 그런 선혜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엇갈리는 부녀의 시선 사이엔 어쩔 줄 몰라 하는 태준이 있었다.
그래도 석주를 혼자 보내기엔 마음이 좋지 않아 태준이 선혜를 설득해 보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같이 가요.”
선혜가 입을 열었다. 석주가 놀라 쳐다보자 선혜는 몸을 돌려 수호와 함께 태준의 차에 먼저 몸을 실었다.
태준과 석주의 눈이 마주쳤다. 석주가 다시금 거절을 표하기도 전에 태준이 석주를 차로 이끌었다. 석주는 못 이기는 척 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곧 태준이 모는 차가 경찰서로 향하기 시작했다.
선혜는 수호와 함께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수호의 손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경찰이 다가와 칼로 청테이프를 끊어주었지만, 피가 통하지 않은 지 오래라 아직 저린 감이 남아 있었으니까.
“엄마. 나 이제 괜찮은데.”
“그래도.”
“나보다는 할아버지가 더 많이 다치셨어.”
수호의 말에 석주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수호가 석주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할아버지. 그 호칭을 들은 석주의 눈이 가만히 떨려온다. 문득 선혜가 집을 떠나던 순간이 떠올랐다.
멍하니 바라보았던 배 속에 있었던 아이.
그때는 배가 부르지도 않았었는데 언제 세월이 흘러 아이가 저렇게 자라났을까.
자라는 과정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갈무리 지어야 할 마음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못 볼 걸 생각하면 자꾸만 가슴이 미어질 테니까.
“응. 괜찮아.”
“제가 이따가 약 발라드릴게요.”
“그래.”
수호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석주를 보는 선혜의 얼굴에는 여전히 혼란과 의문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궁금한 게 많은데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 석주와 눈이 마주쳤다.
선혜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석주의 표정은 시야 밖이라 보이지 않았지만, 특유의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선혜는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집어삼켰다. 그 속이 쓰디썼다.
*
주말 저녁 장사를 마무리 지어가는 경애의 가게.
경애는 부재중 연락이라고는 한 통도 없는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얘는 왜 연락이 안 와.”
[이따가 또 연락할게, 엄마.]
선혜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 내용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연락이 안 오니 걱정되는 건 당연지사.
가게도 한산해졌겠다, 경애는 핸드폰을 들어 선혜와 통화를 시도했다.
의외로 신호음은 금방 끊어졌다.
- 어, 엄마.
“아니. 연락 준다고 해놓고 통 연락이 없길래 전화해 봤어.”
- 미안. 정신이 없어서 깜박했어.
“노는 게 그렇게 재밌어? 지금도 놀이동산이야?”
- 아니.
“그럼 벌써 호텔 들어갔어?”
-……아니.
경애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선혜의 목소리가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경애의 감이 촉을 세웠다.
“선혜야. 너 지금 어디야?”
의미심장하게 묻는 투에 선혜가 천천히 대답했다.
- 경찰서.
경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 경찰서?”
경애의 격한 반응에 쉬고 있던 춘희가 다 놀라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경찰서라니!”
선혜가 차분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는 경애의 얼굴은 점점 더 아연해졌다.
*
당장 오겠다는 경애와 통화를 마친 선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피의자 진술을 하기에 여념이 없는 재민과 경찰 쪽을 바라보았다.
재민은 뻔뻔한 표정으로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애를 납치합니까. 납치하려고 했던 거 아니라니까요?”
“납치하려고 한 게 아닌데 왜 애 손목에 청테이프를 감습니까?”
“실수예요. 술김에…….”
“술이요? 술을 드셨다고요?”
“예. 놀러 오기 전에 약주를 좀 했는데 그게 좀 과했나 봅니다. 그래서 장난이 지나쳤고.”
경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술만 마셨다고 하면 심신 미약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다 보니 이렇게 술 핑계를 대는 놈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계획범죄도 아니고, 술을 먹고 술김에 애랑 놀려고 하다가 실수로 애 손목에 피도 안 통할 만큼 청테이프를 칭칭 감으셨다고요? 굳이 그 후미지고 CCTV도 없는 화장실 뒤편에서?”
“아, 당연하죠. 맨정신이었으면 피는 좀 통하게 감았겠…….”
“이 사람이 진짜!”
참다못한 경찰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재민은 움찔했지만, 말을 번복하진 않았다.
계속해서 술김에, 실수로 저질렀다고 계획범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음주 측정을 해서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임이 드러났지만, 술이 벌써 깼을 거라고 다시 모르쇠로 주장하였다.
“아니. 제가 계획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증거를 들먹이자 경찰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재민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때였다.
“형사님.”
석주가 다가와 섰다.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증거.”
석주가 대뜸 핸드폰을 내밀며 말하자 경찰도 재민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은 잠자코 핸드폰을 받아들여 석주가 띄운 앨범을 확인했다. 앨범 속 사진을 넘겨 보는 경찰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졌다.
자신을 노려보는 형사의 서슬 퍼런 눈빛에 재민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하. 이 사람이 진짜. 이래도 시치미 뗄 겁니까?”
“아니 뭐길래 그러세…….”
형사가 재민의 말을 끊고 척하니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재민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앨범 속에는 자신의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다.
수호의 유치원 앞에서 서성거리는 모습. 수호를 바라보는 뒷모습도 찍혀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을 통해 찍은 자신의 집 안 사진도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범죄자를 흉내 내 칠판에 몰래 찍은 경애와 선혜, 그리고 수호의 사진을 붙여넣고 빨간 매직으로 표시해 놓은 모습이 핸드폰 앨범에 담겨 있었다.
재민이 부들거리다 버럭 소리쳤다.
“이건 엄연히 스토킹 아닙니까! 사생활 침해이기도 하고요!”
“그건 나중에 따로 묻기로 하고.”
경찰이 손을 휘휘 내젓다가 눈을 치켜떴다.
“계획범죄 맞죠.”
“…….”
“아, 맞잖아요! 계획범죄! 똑바로 말 안 해요?”
형사가 소리 내 테이블을 내려치자 내려치는 소리에 맞추어 재민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재민은 두툼한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그게 그러니까…….”
눈을 아무리 여기저기 굴려보아도 떠오르는 돌파구가 없었다.
재민이 그러고 있는 동안 석주는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가 챙겼다. 그러다 문득 이쪽을 바라보는 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선혜와 태준은 의아하고 혼란스러운 얼굴이었고 수호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척하니 엄지를 치켜드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다가 찢어진 입술이 따끔거려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수호가 선혜에게 말했다.
“엄마. 약 사다주면 안 돼? 나 할아버지 약 발라드릴래.”
선혜가 잠자코 수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선혜가 약을 사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준이 자신이 사 오겠다고 나섰지만, 선혜는 고집스레 홀로 경찰서를 나섰다.
다행히 근처에 늦게까지 하는 약국이 하나 있었다. 선혜는 소독약과 연고, 그리고 반창고를 두둑이 샀다. 돌아서려다가 문득 다리를 절던 석주가 떠올라 다시 약사에게 다가갔다.
“파스도 하나 주세요.”
*
한편 선혜가 약국에서 약을 사고 있는 그 시각.
경애는 헐레벌떡 경찰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찰서를 휘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건 수호였다.
“할머니!”
“수호야!”
경애는 수호에게 달려가 수호를 품에 꼭 끌어안아 주었다.
“아이구, 내 새끼. 얼마나 놀랐을까.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응?”
자신을 정신없이 살피는 경애에게 수호가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그런데도 경애는 수호를 품에 다시 한번 꼭 안아주었다.
놀란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무렵이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우리 수호를…….’
경애는 눈을 부라리며 경찰서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뜻밖의 인물을 발견하고는 눈을 홉떴다. 경애가 굳은 얼굴로 수호를 품에서 떼어내고 천천히 일어섰다. 경애의 등장에 당황을 금치 못하는 석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경애의 얼굴 위에 떠 오른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끝내 분노로 바뀌어 석주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붙들었다.
“너, 너 이러려고 휴가 낸 거였어? 어?! 어떻게 네 손주를……!”
“저기, 장모님.”
그런 경애를 말린 건 태준이었으나 진정시키는 데 한몫한 것은 수호였다.
“할아버지 아니에요!”
“뭐?”
“저기! 저 아저씨가 나쁘게 굴었어요. 할아버지는 나 지켜줬단 말이야!”
수호가 척하니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본 경애는 재민의 얼굴을 보고는 움찔했다. 상견례 날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던 저를 부축해주었던 그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콜록!”
멍해진 정신을 일깨워준 건 석주의 기침 소리였다. 경애는 후다닥 석주의 멱살을 쥔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엉망인 석주의 몰골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상처투성이인 석주의 얼굴에 손을 뻗는 때였다.
“엄마?”
부르는 소리에 경애가 퍼뜩 놀라며 돌아보았다.
어느덧 약국에서 돌아온 선혜가 두둑한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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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건 태준의 몫이요, 석주를 치료하는 건 수호와 선혜의 몫이었다.
수호를 재민과 같은 공간에 계속 두기도 뭣하여 세 사람은 밖에 나와 있었다. 경찰서 앞에 놓인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중. 수호는 서툴지만 정성 어린 손길로 석주의 얼굴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아이의 서툰 손길에 아프고 따가울 법도 하건만 석주는 치료받는 내내 수호를 기특하다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혜는 그런 석주를 줄곧 응시하고 있었고.
그러다 문득 엇갈려 있던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선혜도 석주도 서로를 피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선혜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석주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어물쩍 대답했다.
“그냥 어쩌다가 알게 된 거야. 양재민 저 녀석이 수호 노리는 거.”
경애의 가게 근처에서 재민을 발견하여 경애를 지키기 위해 일을 시켜달라고 조르고, 그러다 재민이 노리는 게 수호라는 걸 알게 된 과정은 모두 말하지 않았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휴가까지 쓰면서 저 남자 쫓아다닌 거예요?”
“그래.”
“저희한테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석주는 말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씁쓸한 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말했다면 너희가 믿어줬을까, 하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꼭 탓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말하면 선혜의 눈에 맺히는 죄스러움이 깊어질 테니. 그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끊어지자 수호가 마저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이 빗나가 입술을 문지르던 손이 입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약의 침입에 놀라 석주가 콜록거렸다. 그러다 핏덩이가 왈칵 쏟아졌다. 놀란 선혜가 눈을 크게 뜨는데 석주가 서둘러 손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 핏자국을 닦았다.
“입안이 터져서 그런가 봐.”
머쓱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서도 왜인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문지르느라 약이 다 지워진 입가를 바라보다가 선혜는 수호의 손에서 연고를 가져갔다. 손가락 끝에 연고를 적당히 짜낸 선혜가 손가락을 석주의 입가에 가져갔다.
선혜의 행동에 석주는 꽤 놀란 얼굴이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그저 잠자코 선혜의 손길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손끝에 닿는 상처가 꽤 깊어서 인상을 찡그리던 선혜는 문득 저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석주와 눈이 마주쳤다.
길게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했다. 연고 뚜껑을 닫고 정리하는 손길에 서두름이 묻어났다.
“대충 다 했어요. 이거 드릴 테니까 집에서도 꾸준히 바르시고요. 안 그러면 흉 져요.”
봉투를 건네며 덧붙였다.
“파스도 있으니까 붙이시고요. 병원에도 가시고…….”
“선혜야.”
부드럽게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고맙다.”
석주가 그렇게 말한 것은.
선혜는 한참 동안 석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말에 가슴이 말도 못 하게 찡해졌다.
고맙다는 말은 자신이 들어야 할 말이 아니라 자신이 석주에게 해 주어야 할 말이었다.
“저야말로…… 감사해요. 수호 지켜주셔서.”
코끝이 시큰거리는 걸 겨우 누르고 가까스로 그 말을 했다. 말을 꺼내 놓고 보니 말도 못 하게 민망하여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생각을 실현하고자 수호의 손을 잡고 돌아서려는 때였다.
“선혜야.”
석주가, 다시금 선혜를 불렀다.
비스듬히 돌아보자 한참 동안 선혜를 바라보고 있던 석주가 입을 열었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갑자기 무슨 잔소리일까 싶었지만.
“너는 옳고 바른 사람이니까 그래도 돼. 그리고.”
잔소리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 편은 어디든 한 명쯤 있는 법이야.”
그건.
“네 편 없다고 걱정하지 마. 혼자가 아니니까.”
서툴기 짝이 없지만.
“그러니까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
애정 가득한 당부.
“아빠같이 살지 말고.”
선혜는 묻고 싶었다.
왜 갑자기 그러느냐고.
왜 꼭 마지막처럼 그렇게 말하냐고.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말이 나오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
알았다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수호의 손을 잡은 채 돌아설 뿐.
그런 선혜의 뒤로 석주의 목소리가 낮게 파고들었다.
“아빠가 미안했다.”
그 말에 선혜는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려다가 말았다.
다시금 걸음을 재개했다. 그러다 경찰서 앞에 다다라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
석주는 그곳에 없었다. 휑한 가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석주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순간이 이별의 순간이라고는.
선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