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83화 (83/109)
  • #83. 생애 최고의 선물

    선혜는 수호와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태준의 생일파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풍선과 온갖 장신구들로 집을 꾸미고, 저녁 요리를 준비하고. 한우로 끓인 미역국이 먹음직스럽게 끓어 오른다.

    밥을 하고 반찬을 세팅하고.

    마지막으로는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케이크는 초만 꽂힌 채 대기 중.

    “아빠 스물일곱 살이야?”

    수호가 스물일곱 개의 초를 보며 물었다. 선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생각난 얼굴로 수호에게 물었다.

    “아빠한테 편지 써 준다더니. 다 썼어?”

    이번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수호다.

    “응!”

    선혜가 기특하다는 얼굴로 수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엄마도 편지 썼어?”

    “응.”

    대답을 마치자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태준. 선혜가 말한 대로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댔다고 메시지를 보낸 그였다.

    메시지를 확인한 선혜가 수호에게 속삭였다.

    “수호야. 우리 초에 불 붙이자.”

    수호는 신이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 위에 꽂힌 스물일곱 개의 초에 차례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스물일곱 개의 초에 모두 불이 붙었을 때.

    탁. 선혜는 불을 껐다.

    초와는 별개로 반짝거리는 야광지가 눈에 들어온다.

    선혜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생일파티, 준비 완료.

    *

    선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태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대가 만발하여 콧노래가 절로 새어나오는 중이다.

    선혜가 끓여준다는 미역국은 얼마나 맛있을까. 수호 이 녀석, 아빠 생일 선물은 준비 했으려나 모르겠네.

    ‘선혜 씨도 선물 준비 했을까?’

    준비했을 거라는 데 생각이 치우치자, 가슴이 벌렁거렸다.

    겨우겨우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켰을 때 쯤 엘리베이터가 선혜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태준은 발걸음을 서두르며 선혜의 집 현관문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 태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센서등이 반짝 들어온 현관을 제외하고 집안이 캄캄했다.

    “선혜씨? 수호야?”

    두 사람을 부르며 신을 벗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 태준은 바닥에 붙여져 있는 화살표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화살표는 거실로 이어져 있었다. 태준은 화살표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막 거실로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선혜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수호의 노랫소리도.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촛불 스물일곱 개. 케이크를 들고 서 있는 선혜.

    “사랑하는 우리 아빠.”

    그리고 그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수호.

    “생일 축하합니다-.”

    행복이란 게 이런걸까.

    “생일 축하해요, 태준 씨.”

    “생일 축하해요, 아빠!”

    깜짝 파티를 준비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가슴이 찡해진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태준의 목소리가 흔들리자 선혜가 태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태준 씨, 울어요?”

    “아뇨, 울기는 누가…….”

    그때, 수호가 형광등을 켰다. 밝아진 시야에 눈을 찡그리던 선혜는 발긋해진 태준의 눈가를 보고 입을 벌리다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다 하마터면 케이크를 놓칠 뻔했다. 가까스로 케이크를 바로 잡은 선혜가 태준의 눈앞에 케이크를 들이밀었다.

    “아빠! 소원 꼭 빌어야 돼요!”

    소원이라.

    태준은 소원을 생각하며 눈앞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소원, 별거 없다.

    그냥 셋이서 언제까지고 이렇게 행복했으면.

    후. 불을 껐다.

    *

    태준은 선혜가 차려준 밥상을 단숨에 비워냈다. 미역국을 한 냄비를 했는데 싹 비웠고, 밥도 세 공기나 먹었다. 차려놓은 반찬도 싹쓸이를 했다. 음식물 쓰레기 통의 존재가 무안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선혜는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는 태준을 겨우 만류시키고는 싱크대 앞에 섰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하려는 때였다.

    뒤에 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허리를 끌어안는 단단한 팔이 느껴졌다. 등을 덮어오는 온기. 슬쩍 돌아보면 태준이 뒤에 딱 붙어 있다.

    “수호가 보면 어쩌려고요.”

    “보면 뭐 어때서요.”

    “그래도.”

    민망하여 수호 쪽을 힐끔거리다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수호는 신경 쓰지 않는 얼굴로 둘을 보다가 이내 TV로 시선을 돌렸다.

    “부모의 적당한 애정 행각은 애들 정서에도 좋대요.”

    태준이 그렇게 말하며 선혜의 관자놀이에 슬며시 입을 맞췄다. 선혜가 돌아보자 입술도 살짝 겹쳐온다. 적당한 애정 행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은 순간 그가 입술을 뗐다.

    선혜는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태준은 선혜의 어깨에 턱을 기댄 채 설거지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나 진짜 감동했어요. 너무 좋았어.”

    감동이라니. 아직 선물은 주지도 않았는데.

    선혜는 태준을 위해 마련한 선물을 생각했다. 편지를 직접 주고 싶다는 수호를 따라 선혜도 태준에게 선물을 따로 직접 줄 생각이었다. 그 선물은 침실에 있었다.

    언제 선물을 주면 좋으려나, 고민하는 때였다.

    “나, 오늘 자고 가도 돼요?”

    태준의 물음에 선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래요? 수호랑 셋이.”

    “……수호는 자기 방에서 재울 건데.”

    선혜가 눈을 깜박였다. 그것도 잠시뿐. 곧바로 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민망하여 선혜는 다시 몸을 돌려 설거지를 재개했다.

    태준이 그런 선혜 뒤로 더욱 바짝 붙었다.

    “내가 수호 재울게요.”

    여유가 사라진 목소리가 다급하다.

    “수호가 제일 재미없어하는 동화책이 뭐예요?”

    태준의 말에 선혜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수호를 빨리 재우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투철하기 짝이 없었다.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태준은 수호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들, 이제 씻고 잘까?”

    *

    씻는 걸 보조하겠다고 했으나, 수호는 혼자 씻을 수 있다며 홀랑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태준은 수호의 방에서 동화책을 고르며 수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동화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해.”

    어른인 자신이 봐도 재미없는 게 없다. 열 권째 훑어보고 있을 때 수호가 방으로 들어왔다.

    “다 씻었어?”

    “네.”

    태준이 침대를 탁탁 치자 다가와 앉는 수호다. 태준은 미리 준비해 둔 헤어드라이어로 수호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자, 이제 눕자.”

    “잠깐만요.”

    왜, 또?

    마음이 급한 태준의 눈썹이 슬며시 일그러지는데 수호가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다가왔다.

    돌돌 말은 도화지에 리본이 묶여 있다. 수호가 그것을 태준에게 척하니 내밀었다.

    “이게 뭐야?”

    “편지요.”

    “편지?”

    “네. 아빠 생일이라고 해서 썼어요.”

    태준이 눈을 크게 뜨고 수호를 바라보다 곧장 리본을 풀려 했다. 그러자 수호가 손을 내밀어 태준의 행동을 막았다. 태준이 바라보자 고개를 젓는다.

    “나중에 보세요. 저 자면.”

    태준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웃었다. 편지의 내용이 몹시도 궁금했다. 수호를 빨리 재워야 할 명목이 하나 더 생겼다. 마음이 배로 급해졌다. 침대를 두드리는 다급한 손길에 그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수호는 태준이 누우라는 곳에 누웠다. 태준은 침대에 앉아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 아는 내용임에도 수호는 태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와 열심히 파티를 준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태준과 선혜의 간절한 바람 때문일까.

    수호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

    선혜는 침실에서 태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태준을 위해 마련한 선물이 협탁 위에 놓여 있었다. 정사각형의 작은 상자와, 편지.

    상자 안에 든 것은 시계였다. 태준이 차고 다니는 시계가 메탈이라서 가죽을 하나 샀다. 그런데 태준에게 어울릴 법한 걸 찾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전에 석주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던 시계와 디자인이 비슷한 걸 고르고 말았다.

    시계 말고 다른 걸 살까 싶었지만 이만한 선물을 찾기가 힘들더라.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는데 문이 열리고 태준이 들어왔다. 손에는 수호가 준 도화지 편지를 든 채였다.

    “수호가 준 거예요?”

    “네.”

    짧게 말한 태준이 협탁을 쳐다도 보지 않고 도화지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단숨에 선혜의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감아 당기더니 입술을 겹쳤다.

    황급히 원피스 단추를 따는 그의 손을 막으며 선혜가 입을 열었다.

    “수호는…….”

    “자요. 그러니까.”

    수호 자니까.

    “우리는 하던 거 마저 합시다.”

    “……저기.”

    다시금 선혜가 막아서자 태준의 눈이 비딱해졌다.

    “줄 게 있어서요.”

    “줄 거?”

    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협탁에 있는 상자와 편지를 가져와 태준에게 건넸다.

    “생일 선물이에요.”

    태준이 멀뚱멀뚱 상자를 바라보고만 있자 선혜가 대신 상자를 열어주었다. 상자를 열자 모습을 드러내는 가죽 시계. 태준의 눈이 커다래졌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태준이다. 선혜는 소리 없이 웃으며 태준의 손목에 채워진 메탈 시계를 풀러내고는 가죽 시계를 채워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뿌듯함에 미소가 지어지는데 태준이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풀러 도로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순간 석주의 모습이 떠올라 선혜의 눈이 흔들렸다. 선혜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마음에 안 들어요?”

    “그게 아니라.”

    태준이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는 웃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근데, 왜…….”

    “아까워서 못 차겠어요. 이걸 어떻게 차.”

    아까워서. 그 단어가 뇌리에 새겨지는 때였다.

    “그리고.”

    태준이 허리를 다시금 안아 바짝 끌어당겼다. 코앞에서 나른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어차피 시계는 풀어야 하잖아요.”

    그 말에 선혜는 마음을 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태준의 입술을 먼저 머금었다. 태준의 얼굴에서 여유가 단숨에 사라졌다. 태준은 그대로 선혜를 쓰러뜨려 침대에 눕혔다.

    그러다 생각 나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뒤늦은 첫 고백이었다.

    *

    태준은 기절하듯 잠이 든 선혜의 옆에 앉아 있었다. 선혜의 머리칼을 살살 쓸어내리다가 협탁에 놓인 수호의 편지를 가져가 펼쳤다.

    펼치자마자 보이는 건 그림이었다. 비슷하게 생긴 남자 둘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글씨. 아빠와 나. 그림 속 태준과 수호는 행복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었다.

    [아빠에게.]

    태준은 그림 아래 적혀 있는 수호의 편지를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생일 축하해요, 아빠. 선물로 아빠 그렸어요. 그리면서 보고 싶었어요.]

    서툰 글이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보고 싶었다니. 매일 같이 보는데도 보고 싶었다는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아빠가 우리 아빠라서 너무 좋아요. 우리 아빠여서 고마워요, 아빠. 그리고 앞으로는 아빠 속상하게 하지 않을게요. 착한 아들이 될게요.]

    속 썩여도 괜찮은데. 착한 아들이 아니어도 나는 너를 사랑할 건데.

    [사랑해요, 아빠. 많이 많이. -수호가-]

    수호의 편지는 그렇게 끝이 나 있었다.

    태준은 빨간 크레파스로 적힌 사랑한다는 말을 보고 또 보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그림과 편지를 반복해서 보다가 고이 말아 다시 리본으로 묶어두었다.

    그러고는 선혜가 준 시계를 다시금 손목에 차 보았다.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선혜가 준 편지를 펼쳤다.

    하얀 편지지에 선혜의 글씨가 가지런하게 적혀 있었다.

    [태준 씨에게

    태준 씨.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어요.]

    마음에 들다마다. 선혜가 처음으로 주어서 더 특별한 선물이다.

    [고마운 게 많아요. 수호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어서 고맙고 나에게도 신경을 많이 써 줘서 고맙고요.

    그런 태준 씨에 비하면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늘 미안해요. 표현도 서툴고 무뚝뚝해서 말은 잘 못하지만, 태준 씨가 좋아해 주는 만큼, 아니면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태준 씨 많이 좋아해요.]

    좋아해요. 선혜가 처음으로 한 고백이다.

    [태준 씨가 그랬죠. 6년 동안 한 번도 날 잊은 적이 없다고.

    나 또한 그랬어요. 6년 동안, 태준 씨가 꿈에 나왔었거든요. 갈수록 당신을 닮아가는 수호를 볼 때마다 심란했는데 사실 보고 싶었던 거였어.]

    그랬구나. 당신 또한 나처럼. 처음부터 일방적인 마음은 아니었던 거다.

    마음이 뭉클하여 계속하여 읽어내려가는 때였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요. 태준 씨 당신은 내 인생의 빛 같은 사람이에요.]

    빛이라. 그 표현을 곱씹으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때였다.

    다음 순간 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멍해졌다.

    [사랑해요. 많이 많이.]

    사랑한다는 선혜의 고백 때문이었다.

    그 부분만 읽고 또 읽고. 아마 눈으로 편지지가 닳았다면 벌써 닳아 없어질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

    편지를 고이 접어 봉투에 집어넣은 태준은 자리에 누웠다.

    옆을 바라보다가 팔을 뻗어 선혜를 안았다. 잠결에 품에 파고드는 선혜를 보며 태준도 눈을 감았다.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절로 지어졌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단언하건대.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그녀의 사랑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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